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3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30화(130/273)
남자가 문을 열고 나타났을 때, 홀크만은 생각했다.
침입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미 근방의 통행은 금지됐을 터다.
심지어 선술집 바로 앞에도 병사들이 지키는 중이다.
그렇다면 저 남자는 어떻게 들어온 것인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더 이상 고민을 이어갈 수 없었다.
“기, 길드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뭐!?”
“도시의 경비병이 길드를 공격하고 있단 말입니다!”
남자의 외침과 동시에 어디선가 날아온 칼이 용병의 목에 박히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극으로 치달았다.
“죽여!”
“이 빌어먹을 새끼들! 이제 와서 우리를 털어먹으려 해!?”“더러운 용병 놈들! 감히 반역을 꾀하다니!”
용병 측은 영주가 배신했다며 검을 휘두르고.
영주 측은 용병이 반역을 저질렀다며 검을 휘둘렀다.
채앵-! 콰아앙!
그리 넓지 않은 선술집은 금세 난장판이 됐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하나가 마력을 다룰 줄 아는 강자인 만큼, 전투의 불길은 거세져만 갔다.
“제길…!”
홀크만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검을 쥐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몰라도,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영주를 지켜야 한다.
홀크만이 다가오는 용병들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영주님! 영주님을 보호해라!”퍼엉!
그 순간, 홀크만의 뒤쪽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영주가 보였다.
“어어…?”
너무 놀란 탓일까.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느린 동작(slow motion)으로 보인다.
천천히 날아가는 영주.
공교롭게도 그가 날아간 자리에는 용병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아아-!”
“영주다아-! 죽여어-!”
기다렸다는 듯이 검과 도끼 따위를 휘두르는 용병들.
영주는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갈라졌다.
피와 살점이 바닥에 흩뿌려진다.
“크하하하하-!”
“꼴 좋다! 크헤헤!”
용병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느려졌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 영주님!”
“저 빌어 처먹을 놈들이!”
한순간에 영주를 잃은 기사들은 대경했다.
이제 두 집단에는 선택지가 없다.
영주가 죽은 이상 어떻게든 상대 쪽을 모두 죽여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홀크만은 차분히 호흡을 골랐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검을 꼬나쥐었다.
“네놈들은 모조리 죽어줘야겠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
“커헉, 허억…!”
홀크만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은 초토화돼있었고, 바닥은 고여있는 피로 인해 질척거렸다.
한때 사람이었던 고깃덩어리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광경은 과거 마족과의 전쟁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자네는 누구인가…”
홀크만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건장한 체격의 기사가 있었다.
홀크만을 포함한 이 자리의 유일한 생존자.
기사와 용병을 포함해 살아남은 것은 이 둘 뿐이었다.
“실력이 제법이더군…”
“그렇습니까?”
갑옷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묘하게 익숙하다.
“누구지? 우리 기사단에 자네 같은 인재가 있었….”
순간 홀크만의 눈이 크게 떠진다.
“서, 설마…”
“오호, 눈치챘나?”
투구의 면갑(visor)이 올라가며 얼굴이 드러났다.
“노인네도 제법이었어.”“네놈이 왜 여기에…!”
최현석을 보고, 그제야 홀크만은 깨달았다.
“전부 네놈이 꾸민 짓이었나!?”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최현석이 이 상황을 만든 게 분명했다.
그걸 깨닫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놈…! 감히 네놈이…!!!”
잔뜩 흥분하는 홀크만을 보며 최현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진정해. 부탁한 대로 영주를 족쳤는데 뭐가 불만이야?”“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영주가 죽었으면 뭘 하나.
키톤은 끝이다.
이런 초대형 참사가 벌어졌으니, 왕실은 물론이고 용병 길드 연합에서도 온갖 놈들이 찾아올 것이다.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며 부르짖는 이들이 가장 먼저 추궁할 이가 누구일까?
바로 홀크만이다.
영지를 차지하는 건 물 건너갔고, 이제 홀크만은 본인의 목숨을 걱정해야 했다.
“네가 다 망쳤다… 네가…!”
홀크만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가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콰직!
어느새 달려온 최현석이 홀크만의 머리를 붙잡고 벽에 처박았다.
“커헉!”
묵직한 충격에 신음을 토해내면서도 홀크만은 의아했다.
‘어, 언제…?’
얼마나 재빠른지, 움직임을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아득할 정도의 실력 차이.
이쯤 되면 홀크만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처음부터 최현석에게 놀아났다는 것을.
“당신 속셈, 모를 줄 알았어?”
“커허억…!”
“늙었으면 마음을 곱게 써야지.”
손아귀의 악력이 점점 강해진다.
머리가 으깨질 같은 고통 속에서 홀크만은 마지막 힘을 짜내 입을 열었다.
“어, 어째서… 이렇게…”“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꺼져가는 홀크만이 눈빛이 묻고 있었다.
어째서?
도대체 왜 관계도 없는 키톤에 와서 이런 짓을 벌였는가.
그에 대한 최현석의 답은 간단했다.
“용사거든.”
최현석의 손에서 마력과 마기가 충돌한다.
콰지지직-!
마폭식이 사용되며 홀크만의 머리가 터졌다.
[용사 퀘스트를 완수했습니다] [용사 포인트 1,000을 획득합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추가 목표 ‘키톤에서 암약하는 악의 축 제거’를 완벽에 가깝게 달성했습니다!] [기존의 보상이 2배로 늘어납니다!] [용사 포인트 1,000을 추가로 획득합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무수한 알람 속에서 최현석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 맛에 용사 하지.”
***
최현석과 아벨슨은 빠르게 키톤을 떠났다.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벌였으니, 주위의 시선이 몰리기 전에 떠나야 했다.
“괜찮겠습니까?”
“네. 걷는 일에는 익숙해요.”
말과 마차는 정리했다.
어차피 몰 줄도 모르니, 마부를 구하기보다는 차라리 도보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최현석은 용사 상점에서 마법 배낭을 사고, 그 안에 필요한 물품을 담은 채 여행길에 올랐다.
“용사님! 왜 돈을 다 두고 오신 거예요!?”
키톤을 나서는 길.
라헬이 볼이 빵빵하게 부풀리며 소리쳤다.
“라헬. 원래 욕심이 과하면 탈 나는 법이야.”“아무리 그래도 굳이 금화 스무 개만 가지고 올 필요는 없었잖아요! 몇 개라도 더 챙기지…”
라헬의 말대로, 최현석은 원래 일행의 것이었던 금화 스무 개만 챙겼다.
나머지는 영주와 용병 길드장이 싸운 선술집에 전부 던져뒀다.
“어허, 이 용사님의 깊은 뜻이 있으니 그러려니 해라.”
“칫…!”
최현석도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버리고 온 건 아니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겨서는 안 돼.’
언제 신성 제국의 추적자가 따라 붙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약간의 위험이라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버리고 온 돈은 외부에서 봤을 때 훌륭한 연막 역할을 해줄 것이다.
– 범죄조직을 소탕하고 나온 돈을 두고 다툰 영주와 용병 길드!
삼류 시나리오 같지만, 원래 이런 싸구려 이야기가 더 잘 먹히는 법이다.
“돈은 이 정도면 충분해. 말이랑 마차를 팔아서 챙긴 돈도 있잖아.”“그렇긴 하지만…”
라헬은 여전히 두고 온 금화가 아쉬운 듯했다.
그때 최현석이 씨익 웃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받아.”
물건을 받은 라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 마카롱!?”
“아까 여행 물품 챙기면서 하나 샀어.”
“용사님…!”
라헬이 눈물을 글썽이며 올려다봤다.
괜히 머쓱해진 최현석은 콧잔등을 긁었다.
“안 먹고 뭐 해. 먹기 싫어?”
“바로 먹을게요!”
라헬이 자신의 머리통보다 큰 마카롱을 들고 해맑게 웃었다.
“아앙~”
한 움큼 크게 베어 문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찌르고.
이내 극상의 달달함이 입안 전체에 퍼져나간다.
“하아…”
행복도 잠시.
부드러운 마카롱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약간의 단맛만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라헬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 번 더 크게 베어 물었다.
“맛있어… 맛있어…!”
어느새 라헬은 마카롱에 머리를 처박은 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최현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게 그렇게 맛있나? 나는 너무 달아서 별로던데.”
그는 애초에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탓에 마카롱은 지구에서도 맛이 궁금해서 한 번 먹어본 게 전부다.
‘나름 먹을 만은 했다만…’
사실 마카롱은 8개가 하나의 박스에 포장돼 있었다.
최현석은 그중 7개를 먹고 하나 남은 것을 라헬에게 준 것이었다.
‘하나씩 집어먹다 보니 없어져서… 뭐, 라헬은 덩치도 작으니까 하나면 충분하겠지!’
굳이 이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마카롱
하나에도 충분히 행복해하는 라헬이니, 말이다.
“으흐응~! 너무 맛있어!”
***
키톤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건.
영주와 용병 길드장이 다툼 끝에 공멸했다.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도미스 왕국에서 조사관이 내려왔다.
“용병 길드장이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용병 길드 연합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도 진실을 알아야겠다며 연합의 간부들이 키톤으로 들이닥쳤다.
덕분에 시종장 깁슨은 죽을 맛이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됐단 말인가…”
사실 깁슨은 이 모든 사건에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기사단장 홀크만을 부추겨 영지를 집어삼킬 계획을 세운 게 깁슨이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영주의 패악질을 두고만 볼 거요?”“페로스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소. 그놈을 영주로 내세우고 우리가 뒤에서 모든 걸 움켜쥐는 겁니다.”
영지의 무력을 전담하는 홀크만.
영지의 내정을 전담하는 깁슨.
둘이 뭉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영주의 처리는 홀크만 경에게 맡기겠습니다.”“걱정 마시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그렇게 홀크만에게 확답을 받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온 결과가 지금이 꼴이다.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다 같이 뒤져버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영주와 영지 기사단은 물론이고, 용병 길드장과 핵심 용병들까지 한순간에 몰살됐다.
영주와 길드장이 이 더러운 뒷거래 도중 다퉜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미 사건을 덮기에는 너무 커져 버렸고.
덕분에 깁슨의 목도 위험해졌다.
지금은 조사를 받고 영지를 안정시켜야 하니 살려두겠지만.
머지않아 사태가 진정되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거라는 게 깁슨의 생각이었다.
‘빨리 키톤을 떠야겠어. 어디 시골로 내려가거나, 아니라면 마의 경계에서 몇 년 동안 버텨야겠지.’
사람들이 자신을 잊을 때까지 사라질 생각이다.
여차하면 타국으로 망명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몰래 모아둔 돈이 제법 되니, 물질적으로 부족함은 없으리라.
끼익-!
그때 뒤에서 문이 열렸다.
깁슨은 돌아보지 않고 한숨부터 내뱉었다.
“후우… 내가 아는 건 이미 전부 말했다고 했지 않소?”
뚜벅, 뚜벅
문을 연 이가 다가온다.
“이 시간에 이러는 건 민폐요. 이 시끄러운 영지의 내정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시오!?”
깁슨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돌아섰다.
“어…?”
아무도 없다.
분명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들렸건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깁슨의 등 뒤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게 어떻게 된….”
그 순간 누군가 깁슨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읍, 읍…!”
거칠게 반항했으나, 깁슨을 감싼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쇳덩이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쉬잇…”
깁슨의 머리 옆으로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서늘한 눈빛을 한 불청객은 검지를 코에 가져다 댔다.
“닥쳐. 죽기 싫으면.”
깁슨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한다…’
깁슨은 바보가 아니다.
이쯤 되면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수도에서 파견된 조사관이 아니다.
용병 길드에서 온 간부는 더더욱 아니었다.
“워, 원하는 게 뭐요…”“이번 사건에 혹시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얽혀 있지 않았나?”
“그게 무슨…”
“잘 생각하고 답해라.”
깁슨은 이 불청객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 곧장 알아챘다.
“이, 있었소! 영지의 범죄조직을 소탕하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쉬잇…”
남자가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자, 깁슨이 목소리를 낮췄다.
“누군지는 모르나, 어떤 남자와 여자가 영지를 발칵 뒤집은 건 사실이오…”“인상착의를 알고 있나?”
“거기까지는…”
“너 말고 그자들에 대해 아는 이는?”“아무도 없을 거요.”
“알겠다.”
순간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드득-!
단숨에 머리가 360도 가까이 돌아간 깁슨은 그대로 절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