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33)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33화(133/273)
마족에게 살해당한 여성, 헤라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비가 쏟아져 내리고.
헤라의 아버지 도프먼은 죽은 딸의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현석이 돌아섰다.
“가죠.”
헤라의 시체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까 싶어 와봤으나, 딱히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굳이 이런 불편한 장소에 더 남아있을 필요는 없다.
그때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도프먼은 다행이야. 헤라의 시체라도 온전히 건졌지 않나.”“예끼! 이 사람아! 그런 말 하면 못써!”“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지난달에 죽은 내 아들은 머리조차 찾지 못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고?”
“그건…”
“후우, 저리 멀쩡한 모습으로 딸을 묻어줄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현석은 턱을 쓰다듬었다.
“아벨슨 씨. 굳이 저 여성만 시체만 온전한 데 이유가 있을까요?”“아마 도중에 제가 발견했기 때문이겠죠.”“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살인범이 마족이란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했으니까요.”
지금껏 살해 장면을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워낙 야심한 밤에 이뤄지기도 했고, 우연히라도 살해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목격자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즉, 살인범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건 아벨슨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시신이 온전한 이유는 아마 아벨슨에게 발각된 탓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녀가 침울한 얼굴로 입을 뗐다.
“안타깝네요. 상대가 마족이란 것을 진작 알았다면, 영주나 데우시스 교가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았을 텐데…”“애초에 마족이 아니더라도 신경 써야 할 일 아닙니까? 듣자 하니 6개월 동안 주민이 서른 명 이상 죽은 것 같던데.”“죽음이란 익숙한 일이니까요. 그들은 ‘고작 이 정도의 일로 나설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군요.”
최현석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목숨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안정된 삶을 추구할 수 있고, 의료 복지 혜택을 누리며 산다.
그렇기에 죽음이 그리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이 땅에는 어디에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단순히 마족과 전쟁만이 이유는 아니다.
인간, 정확히는 하층민의 목숨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와 법체계.
열악한 의료 기술과 인프라.
비위생적인 생활.
부족한 영양.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치안 등등.
모든 면에서 죽음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마법이 있긴 하지만, 이런 시골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건 아닌 것 같고.’
마법. 특히 신성력을 활용한 치유는 어떤 상처와 질병도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서민들에게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오직 높은 곳에 위치한, 그들만의 세상에나 존재하는 마법.
신분제 사회인 만큼 계층 간의 격차가 지구보다 훨씬 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얼른 그 마족
놈을 잡아서 족쳐야겠네요.”
“네.”
“그래서 묻는 건데, 사실 계속 고민 중인 게 있습니다.”
최현석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어제 본 놈의 수준이 어땠는지 기억나십니까?”
“수준이요?”
“예. 대충 어느 정도 강할 것 같다는.”“마기를 감추고 있어서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움직임을 봤을 때 적어도 대대장급은 될 것 같았어요.”
대대장급이라는 말에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소문없이 기사 목을 날리려면 그 정도는 돼야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놈의 목적이 뭔지 알겠습니까?”
“목적?”
“마왕군 대대장이라면 언제든지 이 마을은 쑥대밭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중대장만 돼도 문제없겠죠.”
이곳에는 제대로 된 병사도 없다.
허름한 목책에 몇몇 주민들이 자경단을 자처하며 돌아다니는 게 전부.
솔직히 마왕군 소대장 하나만 와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6개월 동안 마을 주민을 서서히 죽이는 걸까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으음… 그러네요.”
아벨슨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최현석이 말대로 마족의 행동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순간, 아벨슨이 눈을 번쩍 떴다.
“지금 깨달은 건데, 이 마을 유독 마기가 짙어요.”
“마기가 짙다?”
“네. 어쩐지 가슴이 계속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대기 중에는 항상 미세한 마력과 마기가 떠돌고 있다.
지역에 따라 그 밀도가 조금씩 차이 나는데, 일반적으로 마왕군의 영역이 아닌 곳에는 마기의 밀도가 현저히 낮아진다.
하지만, 이 마을은 그렇지 않았다.
“이 정도면 흑색 거성에 있을 때와 비슷한… 아니 그때보다도 더 마기가 짙은 느낌이에요.”“아! 어쩐지 여기 오고 나서 컨디션이 좋다 했더니. 마기 때문이었나 보네.”
“크왕!”
최현석의 말에 품에 안겨있던 보보가 힘차게 짖었다.
아마 동의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둘의 바라보는 아벨슨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 용사가 맞는 거겠지?’
마기에 컨디션이 좋아지는 용사라니.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 괴리감이 생기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마기가 짙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눈치를 챈다거나.”“기감이 예민하게 발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 수밖에 없어요. 수준 높은 고위 사제라도 알기 힘든 거라서요.”
“그렇군요.”
“또 대기 중의 마기가 짙다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에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현상은 일종의 미세 먼지와도 비슷했다.
미세 먼지가 조금 많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눈치조차 채지 못할 것이다.
당장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목숨에 지장이 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간에게 해가 되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무언가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드물기는 하지만, 자연적으로 마기가 짙은 지역이 존재하긴 해요.”“여기가 그런 경우처럼 보입니까?”“아니요. 그랬다면 애초에 마을이 만들어질 수도 없었을 거예요.”“그렇다면 그 마족이 뭔가 수작질을 벌이고 있다는 거네요. 그게 뭔지는 지금부터 알아봐야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마족.
마기가 짙어진 마을.
분명 뭔가 있다는 건 확실한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놈은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했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겠죠.”
최현석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내리는 탓에 해는 보이지 않았다.
“비가 오기는 하지만 주변을 좀 돌아보죠. 마을 주변에 놈의 근거지나 흔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네.”
“혹시 위험할 것 같으시면 아벨슨 씨는 여관에 계셔도 괜찮습니다.”“아니요. 괜찮아요. 상대가 마족인 이상, 적어도 최현석 씨가 올 때까지 버틸 자신은 있어요.”
아벨슨이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녀의 전투력은 대략 8만.
그 지분 대부분을 신성력이 차지하고 있다.
어지간한 마족은 압도적인 신성력을 쏘아내는 것만으로도 견디지 못하고 타버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때쯤 여관에서 다시 보는 걸로 하죠.”
***
그날 저녁.
일행은 여관에 다시 모였다.
간단하게 목욕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자, 주민 몇몇이 앉아 식사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 마을의 유일한 여관인 이곳은 음식점도 겸하고 있었다.
최현석과 아벨슨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뭔가 나온 게 있습니까?”
“전혀요.”
“저도 딱히 이상한 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마을 주변을 살펴봤으나, 무언가 특별한 점은 없었다.
“뭐, 오늘은 비 때문에 시야도 좋지 않았으니까요. 내일 날이 개면 다시 한번 찾아보죠.”
“네.”
“그럼 우선은 배부터 채웁시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배가 많이 고팠다.
때마침 음식이 나오고.
최현석은 조금 딱딱한 빵을 집어 수프에 푹 찍었다.
“으음, 이것도 먹다 보니 제법 괜찮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무미건조하게만 느껴지던 이곳의 빵이 어느 정도 맛있게 느껴졌다.
최현석은 곧이어 맥주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응?”
“마을에 용사가 찾아왔다네!”
“푸후후후-!”
최현석이 먹던 맥주를 그대로 내뿜었다.
“켈록, 켈록!”
기침하고 고개를 들자, 싸늘한 표정의 아벨슨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얼굴과 머리칼, 옷까지 모두 맥주에 젖어있었다.
최현석이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그게…”
“괜찮아요..”
“시, 실수였습니다!”
“괜찮다고요.”
“죄송합니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죠?”“그… 손에 들고 있는 흉측한 것부터 일단…”
“아?”
아벨슨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려놨다.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메이스를 들어 올리고 있었나 보다.
“아무튼, 용사라니… 정체가 들킨 겁니까?”
최현석이 눈치를 살피며 작게 속삭였다.
아벨슨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지금은 일단 시치미를 떼는 수밖에…”
둘은 옆 테이블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무려 다섯 명이라고 하네.”
“다섯?”
“그래! 내가 아까 봤는데, 다들 분위기가 대단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하나같이 얼마나 위풍당당하던지!”
“오오…!”
“촌장님 이야기를 듣더니 단번에 해결해 주겠다며 나섰다는구먼!”
최현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섯이라면 아벨슨과 자신을 말하는 건 아니리라.
‘다른 용사들이 마을에 찾아온 건가? 왜지?’
약간의 호기심과 의문이 함께 일었다.
그때 여관의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얘들아. 여기가 여관인가 봐.”“으으, 뭐가 이렇게 작고 지저분해?”“엘리스.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뉴욕에서 살던 내가 어떻게 이런 데 익숙해져? 그나마 도시는 괜찮은데 이런 깡촌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고.”
다섯 남녀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들어왔다.
최현석은 그들이 용사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누가 봐도 ‘나 용사요!’ – 하는 휘황찬란한 갑옷과 무기를 줄줄 두르고 있었다.
‘남자 넷에 여자 하나인가.’
여성은 백인이었고, 남성은 백인 하나, 동양인 하나, 중동 출신으로 추정되는 사람 하나, 마지막으로 흑인이 한 명이었다.
‘아주 글로벌하네.’
최현석은 눈동자만 움직여 빠르게 그들을 훑었다.
‘전투력은 대대장 수준.’
느껴지는 마력으로 보아하니 대대장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백인 남성 하나가 평균을 웃돌긴 했지만, 그도 대대장에서 수준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최현석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굳이 용사란 걸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아벨슨 씨는 상관없고, 문제는 나인가.’
아벨슨은 원래 이곳 주민이다.
미모가 출중하긴 해도, 용사라는 것과 연관 지을 만한 요소는 없다.
최현석은 시선을 내려 자신의 복장을 확인했다.
이곳 사람들이 입는 평범한 일상복.
체구가 크긴 하나 염색으로 머리 색을 바꿨으니 딱히 눈에 띄지는 않았다.
붉은 계열은 머리칼은 이곳에서 흔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숨기고 마력이랑 마기 제어만 잘하면 되겠어.’
마력과 마기를 한층 더 갈무리했다.
아마 작정하고 감지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눈치를 채지는 못할 것이다.
이 상태로 얼굴만 보이지 않게 잘 피하면 모를 것 같았다.
‘아, 전투력 측정기도 조심해야지.’
용사인 이상 저들도 전투력 측정기를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다.
특히, 보보는 정말 주의해야 했다.
까딱해서 들키기라도 하면 뭐라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일단 방부터 잡자고.”“니콜로. 이 작은 여관에 우리 다섯이 쓸만한 방이 있을까?”“대충 아무 곳에나 가서 쉬어. 저녁 먹고 내일 아침부터 주변을 수색해야 하니.”
여관 주인에게 돈을 내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런데 말이야. 이번 용사 퀘스트 내용, 조금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마족이 이런 시골에 6개월이나 눌어붙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마의 경계에서 거리도 제법 되는 말이야.”
“으음… 그런가?”
“상민. 어떻게 생각해? 네가 이런 잔머리는 좋잖아.”
최현석이 저도 모르게 상민이라 불린 남성을 쳐다봤다.
갑자기 한국 이름이 나오니 반사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 순간 상민이라는 남자도 최현석을 바라봤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어어, 설마!?”
상민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진다.
최현석은 본능적으로 잘못됐음을 감지했으나, 이미 늦었다.
“격투기 챔피언! 최현석 씨 아니십니까!?”
“하아, 시벌…”
아무래도 팬이 등장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