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37)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37화(137/273)
“엘리스!”
“이런 젠장!”
마족이다.
어디선가 나타난 마족이 엘리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푸화악-!
심장이 뽑혀 나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엘리스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진다.
돌아선 마족은 2m에 달하는 큰 키에 선이 날카로운 미남자였다.
인간에게는 없는 회색빛 피부가 햇빛에 반짝인다.
“그냥 두고 보려 했는데 말이야. 너무 맛있어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어!”
놈이 혀를 내밀어 입가에 묻은 피를 핥았다.
그리고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단번에 심장을 뜯어먹었다.
아그작! 쩝! 쩝!
게걸스럽게 심장을 먹어 치운다.
이내 놈이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역시 신선한 심장만큼 맛있는 건 없다니까.”
용사들은 그저 눈을 부릅뜬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니콜로가 이를 꽉 깨물었다.
‘저게 마족…’
사실 그와 동료들은 한 번도 마족을 본 적이 없다.
지금껏 마수를 사냥한 경험은 많았으나, 마족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깟 마족! 만나기만 하면 단칼에 벨 수 있다고!”“너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
“하하하하!”
동료들과 웃고 떠들며 소리쳤던 과거가 스쳐 간다.
정말이지 무지몽매했다막상 마족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저 한없이 오만한 멍청이였을 뿐이다.
‘움직여야 한다…’
일정 수준을 넘어선 마족은 특유의 기세가 존재한다.
마치 사나운 맹수를 만난 것처럼.
마족을 마주한 생명체는 오금이 저리고 몸이 덜덜 떨린다.
말로는 수없이 들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니콜로가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올라오자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놈의 전투력을 확인해야 해.’
니콜로가 품에서 전투력 측정기를 꺼내 착용했다.
[ 전투력 : 75,542 ]니콜로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예상보다 낮은 수치였다.
‘충분히 할만하다.’
지금 몸이 떨리는 것은 단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다.
싸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니콜로의 전투력은 6만 중반.
다른 동료들도 4만은 넘는다.
기습으로 엘리스가 죽어버렸지만, 남은 넷이서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전부 정신 차려!”
니콜로가 소리쳤다.
“놈의 전투력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지금껏 해온 대로 대응하면 이길 수 있다고!”
니콜로의 말에 동료들의 눈빛이 돌아왔다.
“그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우리가 지금껏 사냥한 마수가 몇 마리인데! 저깟 마족쯤이야!”
지금껏 멍청한 모습만 보였지만, 이들 또한 나름대로 3년 동안 구르고 구른 용사다.
그동안 사선의 위기를 넘나든 적도 제법 많았다.
네 명의 용사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대형을 짰다.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며 마족을 포위한다.
그 모습을 본 마족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흥. 기습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 걸 후회하게 해 주마.”
놈이 엘리스를 죽이고 곧바로 덤벼들었다면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대로 몰살당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이상 상황은 달라졌다.
‘여기서 네놈을 베고 용사 퀘스트를 완료해 주지.’
니콜로는 검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간다!”
“하아아!”
네 명의 용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짓쳐 들었다.
***
“한심해~ 너무 한심해~”
십 분.
니콜로를 포함한 파티원들이 쓰러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마저도 놈의 장난스러운 태도 덕분에 버틴 것일 뿐.
마음만 먹었다면 5분 안에 승부는 끝났으리라.
“쿨럭!”
니콜로의 입에서 피가 울컥 토해져 나왔다.
그는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차이 나는 것이냐…’
이 세계에는 수많은 용사가 존재한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십수만이 넘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중에서 괴물과 맞서 싸울 각오를 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절반.
전체 용사 중 절반만이 죽음을 각오하고 검을 쥔다.
나머지는 싸움을 포기하고 이 낯선 땅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새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죽음을 각오한 절반 중에서 진짜 용사로 거듭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대다수의 예비 용사는 1년 차에 죽는다.
3년 차가 되면 어지간한 기사급의 힘을 가지게 되지만, 그때가 되면 남은 용사는 거의 없다.
전체 비율로 따지면 5% 정도.
니콜로는 그 5% 안에서도 두각을 보인 용사였다.
항상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으며,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강해지려 했어… 그런데 왜…’
전투력 3만을 넘기면 어디를 가든 기사 대접을 받는다.
전투력 5만을 넘기면 거대 영지에서도 대접을 받고, 사실상 귀족이나 다름없는 지위를 누린다.
니콜로와 동료들은 그 모든 것을 포기했다.
오직 강해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어째서 이리도 나약한 걸까.
최현석과 눈앞의 마족.
저 둘은 뭐가 다르기에 저토록 강한 걸까.
니콜로는 알 수 없었다.
“나, 나는… 용사인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무엇일까.
자신은 삼 년 동안 무얼 한 걸까.
“용사? 푸흡! 네가 용사라고?”
마족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휴, 개나 소나 다 용사라고 떠벌리고 다니니까 무게감이 없잖아. 무게감이.”
마족이 니콜로의 머리통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주위를 둘러봐. 여기 용사가 어디 있는데?”
“…”
“내 눈에는 머저리들만 보이는데, 아닌가?”
마족이 씨익 웃었다.
“잘 가. 용사 놀이를 더 못해서 아쉽겠지만. 대신 너에게 좋은 걸 알려줄게.”
“…”
“지금 죽어도 조만간 넌 다시 살아날 거야. 그때가 되면 영원히 용사 놀이를 하게 해 줄게. 너 정도면 충분히 지휘관급 개체가 나올 것 같으니까 말이야. 킥!”
마족이 반대편 손을 들어 올렸다.
엘리스의 심장을 관통했던 손이다.
붉은 피로 적셔진 손.
날카로운 손톱 끝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니콜로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끝이군.’
다소 허무한 죽음이 아닌가 싶다.
이세계에서 와서 한 것이라곤 전투밖에 없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즐길 걸 그랬나 보다.
“…”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
니콜로는 의아했다.
왜 마무리하지 않는 거지?
설마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죽은 걸까.
그가 슬며시 눈을 떴다.
“끄으으…!”
눈앞에는 마족이 시뻘게진 얼굴로 용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마족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 최현석이 씨익 웃었다.
“잡았다.”
***
이름 모를 마족과 최현석이 격돌한다.
그 싸움은 니콜로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싸움이었다.
투웅! 콰직! 파앗!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투.
눈 깜짝할 새 공방이 오가며 거리를 좁혔다 벌리기를 반복했다.
콰아앙!
다시 한번 격돌한 둘이 뒤로 물러났다.
“후우. 오랜만에 몸 푸네.”
최현석이 가볍게 어깨를 털었다.
상당히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
그에 반해 마족은 많이 지쳐 보였다.
그때 최현석이 마족을 불렀다.
“야. 너 어디 소속이야?”
마족이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소속?”
“어디 부대 소속이냐고.”“인간인 네놈이 마왕군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딴 걸 묻냐?”“대답하기 싫으면 말고.”
최현석이 다시 움직이려 하자 마족이 재빨리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일단 최현석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니, 지금은 장단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제4군단 직할 네미스 연대.”“제4군단? 박현아 군단장 밑에 있는 놈이야?”
박현아라는 이름을 들은 마족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그년은 군단장이 아니야!”“그럼 누가 군단장인데?”“당연히 오닉스 님이지. 진정한 4군단장은 그분뿐이라고!”
오닉스라면 들어본 적 있다.
원래 제4군단장이었으나, 박현아가 오고 나서 부군단장으로 밀려난 마족.
최현석도 자세히는 모르나, 박현아와의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다고 들었다.
“오닉스라면 박현아한테 발리고 부군단장 된 놈이잖아?”
“이, 이익…!”
뭔가 역린을 건드린 걸까.
마족의 얼굴이 더욱 시뻘게졌다.
“아무것도 모르면 닥쳐! 그건 의도적으로 자리를 내어준 거야!”
마왕군답지 않게 제법 충성심이 높은 놈인 것 같았다.
“후우, 어차피 그 계집은 조만간 죽을 예정이야. 아니, 오닉스 님의 충성스러운 부하가 되겠지.”
마족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최현석은 놈의 말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마왕군 내부 사정도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단순히 싸움박질만 하는 집단인 줄 알았더니.
나름 이런저런 정치질도 하고 그런 것 같았다.
“아무튼, 너는 박현아 군단장 명령으로 온 건 아니라는 거네.”
“당연한 소리를!”
“그럼 그 오닉스라는 놈 명령으로 왔단 건데, 목적이 뭐야?”“내가 그걸 말할 것 같아?”
마족이 피식 웃었다.
절대로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듯이.
“다들 처음엔 그래.”
최현석은 마주 웃어 주었다.
그의 미소는 마족의 그것보다 더욱더 깊고 스산했다.
“맞다 보면 다 술술 불더라고.”“흥, 어디 할 수 있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어느새 다가온 최현석이 마족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드드드득-!
마족의 목이 기괴하게 꺾이며 날아간다.
최현석은 놈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코너로 들어갑니다!”
놈을 붙잡아 거대한 바위로 집어던진다.
쿠웅!
바위에 처박힌 놈에게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날렸다.
“잽! 훅! 라이트! 잽! 어퍼!”
마치 샌드백을 치듯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마족은 대응하지 못하고 연신 두들겨 맞았다.
‘무, 무슨, 움직임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둘의 움직임은 엇비슷했다.
마족은 약간 밀리기는 했지만, 충분히 버틸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최현석은 단지 그가 말했던 대로 몸을 풀었던 것뿐이다.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마족은 도저히 대응할 수 없었다.
“커허헉!”
순식간에 피떡이 된 마족이 바닥에 쓰러졌다.
“역시 마족이 질겨서 좋아. 때리는 맛이 있다니까.”
어지간한 인간이었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만한 부상이다.
그런데도 마족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슬슬 말할 생각이 들어?”
“주, 죽여라…”
“에헤이~ 무슨 독립군 코스프레를 하고 그래? 마왕군이 그렇게 충성스러운 조직이 아닌 거 다 아니까 그냥 불어.”
마족의 대답은 침을 뱉는 것이었다.
“퉤!”
가만히 맞아줄 최현석이 아니다.
몸을 틀어 피하고는 물 흐르듯 움직여 그대로 마족의 얼굴에 니킥을 꽂아 넣었다.
“카학!”
“그러니까 왜 매를 벌어.”“네, 네놈에게 할 말은 없어.”“어차피 다 알고 있어. 여기서 사령술인가 뭔가를 해서 언데드를 일으킬 생각이잖아?”
“그걸 어떻게…”
“네가 죽으면 반년 동안 준비한 거 다 물거품 되잖아. 아니야?”
최현석이 쪼그려 앉아 마족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가 속삭이듯 말한다.
“그러니까 이야기해 봐. 그러면 내가 보내줄게. 우리 둘의 약속!”
“크큭, 큭…”
갑자기 마족이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이 새끼 왜 이래 이거.”
최현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마족은 또렷한 눈빛으로 최현석을 노려봤다.
“네놈. 최현석이었군…”
“뭐?”
“가까이 다가오니 미약하게 마기가 흘러나와… 마기를 지니고 있는 인간은 최현석… 네놈밖에 없지.”
최현석이 다급히 마족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새끼가 누구 인생 조지려고!”
다급히 주변을 둘러본다.
혹시라도 누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됐으니.
“후우.”
다행히 용사 파티는 멀리 떨어져 있다.
작게 속삭이듯 한 말이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큭, 최현석. 네놈이 여기 있다는 건…”
마족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마왕군에서 도망친 거구나. 언젠가 이리될 줄 알았어!”“도망이라니 무슨 소리야?”
최현석이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도 비밀 명령 수행 중이야.”
“뭐…?”
“용사로 위장해서 인간 진영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명령을 받았지.”
마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최현석의 말이 사실인지 의심하는 눈초리다.
“헤미스 님이 내린 명령을 수행 중이라니까. 정확한 내용은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지만.”“헤미스 님께서…?”
“그래!”
최현석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혹시나 해서 찔러 봤는데, 이걸 넘어와?’
헤미스는 죽었다.
그 후 최현석이 마왕군을 떠난 지 한 달도 안 됐다.
‘시골에 6개월이나 처박혀 있던 놈이라 정보가 늦을 거라 예상했는데… 이러면 확실해진다.’
놈은 헤미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같은 마왕군끼리 이러지 말자고. 나도 여기서 위장 신분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용사 짓이란 말이야.”
한번 물꼬가 트이자 거짓말이 아주 술술 나왔다.
“야. 전후 사정을 알아야 몰래 돕든 말든 하지…!”
“…”
“오닉스 님이 명령하신 일이 뭔지 대략적으로만 말해.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장단 맞춰줄 테니까.”
악마. 아니, 용사의 속삭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