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3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38화(138/273)
“그래. 너도 고생 많았구나.”
최현석이 다 이해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마족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양반들은 명분만 생각하지 현장 상황을 전혀 몰라요. 그냥 대충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 하면 일이 진행되나?”
“맞아!”
“항상 고생하는 건 이렇게 일선에서 싸우는 우리 같은 마족들이지!”
최현석의 말에 마족이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너는 마족이 아니지 않나?”“어허! 이 친구 섭섭한 소리 하네.”
최현석이 마기를 운용했다.
[ 펄미니엄 모드 ]머리에서 뿔이 자라나고 팔뚝에서 기다란 칼날이 튀어나온다.
피부색도 조금 변했는데, 인간의 것이라 보기 힘든 옅은 회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한 변화를 본 마족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그 모습은?”
“내가 로타크 님의 은혜를 입어 마족화를 이뤄냈다 이거야.”
“그랬군!”
“아무튼, 우리같이 일선에서 싸우는 마족들은 항상 조심해야 해.”
최현석이 갑자기 주변을 살피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인간들이 얼마나 간사한지 알아?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놈들이라고!”
자기소개를 열심히 하는 인간 용사 최현석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마족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인간이 간악하다는 건 익히 들었어.”“그거야! 여기는 그런 인간이 득실거리는 적지(敵地) 한가운데! 이런 때일수록 같은 마족끼리 뭉쳐야지.”“네 말이 옳아. 최현석.”“그래그래. 이름이 잘무스라 했나?”
잘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통성명까지 마친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제3군단 직할 연대 연대장 최현석이다.”“연대장이라니… 내가 떠날 때만 해도 중대장이라 했던 것 같은데?”“그사이 많이 강해지긴 했지.”
최현석이 씨익 웃었다.
“이제 와서 예의 차릴 필요는 없어. 어차피 서로 다른 부대기도 하고. 우리는 이제 친구잖아?”“크흠… 친구인 건가…?”“당연하지! 이런 인연이 어디 있다고!”
최현석이 잘무스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친구끼리는 원래 편하게 지내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계속 편하게 해.”“알겠어. 최현석. 너는 좋은 마족이었구나.”“당연하지. 헤미스 님이 괜히 나를 마왕군에 넣어서 키웠겠어?”“후우… 역시 다 이유가 있으셨던 건가. 그분의 혜안이 얼마나 깊으신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잘무스는 이제 백 퍼센트 최현석을 신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최현석은 슬슬 본론을 꺼내야 할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네가 여기서 하는 게 새로 개발한 마도구를 실험하는 거라 했지? 마력을 마기로 바꾸는.”“맞아. 드디어 우리 마왕군이 반격이 시작되는 거지.”“마력을 마기로 바꾼다니… 그런 건 언제 개발한 거야?”“로타크 님께서 오래전부터 연구하신 거야. 사실 검증은 완료됐고 이번 작전은 첫 실전 테스트라 할 수 있지.”“역시 로타크 님은 대단하시구만.”“당연해. 마도 공학 기술을 정립하고 만드신 분이니. 인간 측도 최근 마도 공학을 연구한다고 들었는데, 로타크 님의 것과 비교하면 수십 년은 뒤처져 있을걸.”
“호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최현석은 소름이 끼쳤다.
‘그 쥐새끼. 키메라 연구만 하는 줄 알았더니. 뒤에서 이런 짓까지 하고 있었네.’
늦게나마 헤미스가 처리해서 다행이었다.
살아남았다면 아마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됐으리라.
“그래서 그 마도구로 이용해 마력을 마기로 바꾼다. 그러면 대기 중의 마기 밀도를 높아지고… 마지막에는 언데드를 만드는 건가?”“맞아. 여기서부터는 우리 오닉스 군단장님의 역할이 커.”“내가 경력이 짧아서 오닉스 군단장님에 대해서는 잘 몰라.”
“아, 그런가.”
잘무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중얼거렸다.
“오닉스 님은 마왕군에 몇 없는 사령술사(Necromancer)야.”“그 언데드를 일으키는 마법사를 사령술사라 하는 건가?”“거의 그렇다고 보면 돼.”
말을 한 오닉스가 갑자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마족
사이에서 사령술은 배척받아. 정정당당하지 못한, 비겁하고 더러운 수라 여겨지지.”“아, 그러면 비밀스럽게 작전을 진행하는 것도 그것 때문에…?”“맞아. 그래서 이 일을 아는 건 오직 마왕님과 오닉스 님. 그리고 로타크 님뿐이야.”“다른 군단장님들은 전혀 몰라?”“모르지.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 특히나 헤미스 님은 예전부터 사령술을 배척하기로 유명하신 분이거든.”
“그래…?”
헤미스 또한 사령술을 배척했다니.
의외의 정보였다.
이제는 죽어 필요 없는 정보지만.
“그러면 나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내가 헤미스 님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최현석의 말에 잘무스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준비는 끝났어. 말했듯이 이건 모든 준비를 끝나고 첫 번째 실전 테스트를 하는 거니까. 여기서 효과가 입증되면 끝이지.”“어차피 조만간 다 까발려질 일이라는 거군.”
“그래.”
이건 정말 문제였다.
마왕이 준비한 회심의 반격.
어쩌면 대륙이 발칵 뒤집힐 만한 거대한 계획이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이놈한테 최대한 정보를 뽑아야 해.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고. 마족치고 제법 똑똑하니까.’
아주 마른오징어가 될 때까지 정보를 뽑아낼 것이다.
최현석은 초조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 마도구라는 걸 보고 싶은데.”“지금 네 발밑에 있어.”
“응?”
“이 마을 주변으로 이미 백여 개가 깔려 있지. 그중 하나가 네 발밑에 묻혀 있어.”
최현석이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비해 묘하게 땅이 고르고 흙이 부드러웠다.
손을 집어넣자 단단한 무언가가 잡혔다.
“이건가?”
뽑아내자 지름 50cm 정도의 원판이 보였다.
기이한 마법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원판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 장치에 마기를 불어넣으면 일정 시간 동안 마력을 마기로 바꿔.”“무한 동력은 아니구나.”“그런 게 가능했으면 세상의 모든 마력을 마기로 바꿨겠지.”
“하긴. 그러네.”
잘무스가 원판을 받으며 추가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마도구를 걸러 나오는 마기는 그냥 마기가 아니야. 사령술에 적합한 성질을 띤 마기지.”“마기에도 종류가 있나?”“물론! 근본은 같지만, 성질은 조금씩 다르다고. 고위 마족일수록 마기의 특색이 짙어지는 걸 너도 알지 않아?”
“아아, 그렇지.”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허약한 마족들은 그놈이 그놈 같이 느껴지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선 마족은 달랐다.
마기만으로도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을 만큼 특색이 뚜렷하다.
헤미스의 경우에는 같은 마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르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마기뿐만 아니라 마력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네.’
제4군단장 박현아.
그녀는 마력을 다룸에도 굉장히 특색이 뚜렷했다.
마기에 버금갈 정도로 날카롭고 공격적인 마력.
이런 것을 보면 마력이나 마기도 다 같은 게 아닌 듯했다.
“최근 마기의 밀도가 충분해졌다는 걸 확인했어.”
잘무스의 말에 최현석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어. 그래서?”
“이제 남은 건 언데드 술식을 진행하는 것뿐이지.”“그건 어떻게 하는데?”“그것도 준비는 끝났어. 이미 근방에 대규모 마법진을 그렸지.”
“아, 그래…?”
“응. 발동하기만 하면 끝이야. 여기는 과거 전쟁이 많이 벌어졌던 지역이거든 재료는 차고 넘쳐.”“아하… 그거 대단하네…”
이놈의 마족은 쓸데없이 준비가 철저하다.
최현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이 원판을 날려버리고, 마법진을 제거해야 해.’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움직여야 했다.
“잘무스. 그 마법진이라는 거 구경하고 싶은데.”“음, 그걸 보는 건 힘들어.”
“왜?”
“들키지 않게 정말 공들였거든. 지형지물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그린 마법진이라 하늘에서 관측해도 알아보기 힘들 거야.”
“…”
“지난 6개월은 사실상 그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잘무스의 말에서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최현석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마왕군이잖아… 제발 마왕군답게 좀 대충대충 하라고!’
이 마족. 정말 얼마나 엘리트인 걸까.
이런 인재가 마왕군에 있다는 사실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잘무스. 일단 돌아갈까?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 될 것 같아서.”
“아, 그렇겠네.”
“그래서 말인데. 너는 어디에 있어? 원래 숨어있던 장소가 있을 거 아냐.”“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산 중턱에 있어. 마을 근처에 있으면 들킬 위험이 크니 말이야.”
“아하…”
“하지만 오늘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
“응? 왜?”
잘무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쨍하게 떠 있던 해가 슬금슬금 저물기 시작했다.
“이제 곧 사령술을 시작하거든.”
“뭐!?”
최현석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시작한다고? 오늘!?”“그래. 준비가 끝났으니 더 미룰 필요는 없겠지.”“그렇구나. 그랬어…”
최현석은 주먹을 슬며시 말아쥐었다.
‘여기까지인가… 그래도 정보는 고마웠다.’
이왕이면 정보를 더 뽑아내고 싶지만, 당장 놈을 죽이지 않으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잘 가. 잘무스.’
최현석이 주먹을 들어 올리던 그 순간.
“아, 사실 나는 굳이 없어도 되긴 해… 잠깐 갔다 올까?”“무슨 소리야? 이제 사령술이 시작되는데 없어도 된다니?”“마법진 활성화는 내가 하는 게 아니거든.”
“어…?”
최현석이 눈을 끔뻑였다.
들어 올렸던 주먹도 어느새 허리 뒤로 숨긴 상황.
잘무스가 말을 이었다.
“사령술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야. 마법진을 발동하는 건 사령술에 특화된 동료들이 할 거야.”“동료가 있었어…?”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를 포함해서 이곳에 온 건 총 세명이야!”“그렇구나! 하하…!”
최현석이 이를 꽉 깨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용사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기존의 퀘스트는 자동으로 달성한 것으로 처리됩니다] [용사 포인트 5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레벨업!]메시지가 이어지고.
뒤이어 띠링! 하는 음성과 함께 퀘스트가 떠올랐다.
★☆★☆ 용사 퀘스트! ★☆★☆
당신은 살인범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까지 모두 파헤쳤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놈들의 대규모 사령술을 저지하세요!
· 목표 :
1. 주동자 마족
처리.
2. 사령술 저지.
·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및 용사 포인트 2,000
퀘스트 내용을 본 최현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잘무스. 혹시 그 사령술 언제쯤 시작하는 거지?”“글쎄… 해가 저무는 그 순간 바로 시작하지 않을까?”“해는 이미 다 저물었는데?”“그럼 곧 시작하겠네.”
“아하! 그렇군!”
최현석이 환하게 웃었다.
‘시발… 이걸 어떻게 깨라고!’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보상 때문이 아니라 2,000명에 달하는 마을 주민을 위해서라도 퀘스트는 완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