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4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41화(141/273)
달빛조차 모습을 감춘 밤.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비구름이 따위가 아니다.
마기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구름.
언데드 특유의 끈적한 마기가 구름이 되어 모든 빛을 삼켰다.
지독한 어둠 속에서 유일한 광원은 오직 검붉은 안광뿐이다.
스산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이곳에 무수히 많은 언데드가 있음을 말해주었다.
훅! 콰직!
최현석은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마력이 담기지 않은 평범한 주먹질에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단숨에 쪼개진다.
“관건은 힘을 아끼는 겁니다. 지배 개체가 나타날 때까지 최대한 힘을 비축해야 해요.”
이 전투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몇 시간.
어쩌면 하루 이상 전투를 이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일반인이 이토록 오랫동안 싸우는 건 불가능하겠으나, 최현석과 아벨슨은 다르다.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이들에게 장시간의 전투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전투는 단순히 버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특히 신성력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체력이 떨어져도 신성력이 있으면 싸울 수 있지만, 신성력이 없으면 체력이 남아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이들의 목표는 지배 개체를 사냥하는 것.
그렇기에 버티는 동시에 최대한 힘을 아껴 지배 개체를 사냥할 준비를 해야 했다.
“지배 개체라는 놈.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습니까?”
“아니요!”
아벨슨이 메이스로 구울의 머리를 내리찍으며 답했다.
머리가 찌부러진 구울은 그대로 엎어지고는 움임을 멈췄다.
구울은 스켈레톤보다 한 단계 상위 개체이지만, 신성력이 담긴 메이스는 버티지 못했다.
아벨슨이 호흡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마족과 싸운 오백 년 동안 사령술이 사용된 기록은 거의 없어요. 그중 지배 개체가 등장한 것은 세 번. 마지막 시기도 200년 전이죠.”“그걸 아는 아벨슨 씨가 신기할 정도로 정보가 적네요.”“여기서 범위를 지배 개체의 등장 직후 전투로 좁히면 더 적어져요.”“기록이 있기는 합니까?”
순간, 옆에서 녹이 슨 검이 날아들었다.
아벨슨은 몸을 내던지다시피 하며 겨우 공격을 피했다.
“한 번!”
그녀가 소리치며 적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까앙!
아벨슨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놈이 아벨슨의 메이스를 막아낸 것이다.
‘단순한 스켈레톤이 아니야.’
같은 뼈다귀라 해서 다 같은 스켈레톤이 아니었다.
다른 개체보다 훨씬 밝은, 마치 타오르는 듯한 붉은 안광이다.
그제야 아벨슨은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죽음의 기사(Death Knight).
죽음의 기사 중에서는 낮은 등급의 개체겠지만, 어쨌든 죽음의 기사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고위 언데드가 나오기 시작했어.’
고위 언데드로 분류되는 죽음의 기사가 나올 정도로 사령술이 강화됐다.
즉, 지배 개체의 등장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도와드립니까?”
“괜찮아요!”
아벨슨의 메이스가 밝게 빛났다.
최대한 신성력 소모를 줄여야 했지만, 상위 개체를 상대로 지나치게 힘을 아끼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차라리 조금 과하게 힘을 써서 단번에 처리하는 게 나았다.
콰직!
죽음의 기사는 신성력이 담긴 일격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부서졌다.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지배 개체의 등장 기록.”
“아.”
아벨슨이 메이스를 고쳐 쥐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지배 개체의 등장한 건 세 번. 그중 등장 직후 놈을 처리한 기록은 한 번뿐이에요.”“그래서, 막 나타난 지배 개체는 얼마나 강한 겁니까?”“정확히는 몰라요. 단지 기록상으로는 당시 영웅 네 명이 함께 놈을 처치했다고 적혀 있었어요.”“영웅이 넷이라…”
최현석의 미간이 좁혀졌다.
‘너무 애매해. 같은 영웅이라 해도 무력이 비슷하진 않으니.’
영웅이라면 최현석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다.
마왕군으로 치면 사단장급인 영웅은 그 범위가 생각보다 포괄적이다.
단순히 ‘영웅 넷이 처리할만한 수준이다!’ – 라고 정하기에는 너무 두루뭉술했다.
‘확실한 건, 쉽지 않다는 거야. 영웅이 넷이라면 지금 여기 있는 전력보다 강할 테니까.’
최현석, 아벨슨, 보보.
셋이 힘을 합쳐도 영웅 넷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보는 몰라도 최현석과 아벨슨은 명백히 영웅보다 전투 능력이 뒤떨어진다.
이들만으로 과연 영웅 넷이 모여 사냥한 지배 개체와 맞설 수 있을까.
최현석이 입술을 질끈 씹었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눈앞의 적은 두려움이 없다.
오직 산 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적은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 갉아먹었다.
‘후우, 정신 차리자!’
최현석이 눈에 힘을 주었다.
‘이미 경기는 시작됐다. 이제 와서 기권하고 물러날 수는 없어.’
수많은 전투를 치러온 최현석은 알고 있다.
마음이 꺾이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는 것을.
적이 강하다고 해도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수단을 강구하고 찾는 법이다.
그게 지금껏 최현석이 자신보다 강한 적들을 상대로 이겨 왔던 방식이었다.
-사, 산 자를 죽인다…
-죽여라… 죽여라…
그때 대기가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성 기관이 아닌, 마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
‘저놈들인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녹이 슨 갑옷을 차려입은 해골 무리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보통 해골은 아니다.
두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느껴지는 마기도 제법이었다.
“아벨슨 씨. 저것들은 뭡니까?”“죽음의 기사예요!”
“죽음의 기사?”
“스켈레톤보다 훨씬 상위 개체예요. 느껴지는 마기와 형태를 봐서는 생전의 기억으로 묶여 있고 각성도 거의 다 끝마친 것 같아요.”“쉽게 설명해 주십쇼!”“기사단이 언데드로 변한 거예요! 위험하니 조심하세요!”
마지막 문장으로 단번에 이해됐다.
살아생전에 기사였던 이들.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마족과 싸웠던 기사들이 언데드가 되었다.
녹이 슨 칼은 한때 인간을 지키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닥치는 대로 살육을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죽여라…!
무려 스물에 달하는 죽음이 기사.
놈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최현석은 놈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놈들이 아벨슨에게 붙는다면 위험할지도 몰랐으니 미리 처리할 생각이었다.
후우웅-!
날아드는 검격이 매섭다.
단순히 검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상당한 양의 마기까지 담겨 있어 자칫하면 최현석이라 해도 큰 부상을 입을 것이다.
노빌레이스
제1형 – 왕의 걸음
최현석의 속도가 빨라지며 보라색 잔상이 길게 늘어졌다.
놈들의 검은 잔상을 스치기만 할 뿐, 최현석에게 닿지는 못했다.
“흐읍!”
최현석이 기합과 함께 주먹을 내뻗었다.
이전처럼 육체만 쓰는 게 아닌, 마력과 마기를 함께 운용한 상태.
카아앙!
맞은 놈의 투구가 함몰되며 그대로 두개골까지 부서졌다.
‘생각보다 쉬운데?’
기사라고 해서 조금 긴장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본 결과 적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무리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레벨업!]죽음의 기사 몇을 처리하자 레벨까지 올랐다.
“이건…! 고급 경험치 무리!”
눈이 절로 반짝였다.
신이 난 최현석은 기사들을 찾아다니며 부수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악!”
한창 레벨업에 열중하던 그때, 뒤쪽에서 큰 괴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놈들…’
니콜로 용사 파티원이다.
그들은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섯이 함께 모여 있었다.
화르르륵!
가슴이 뻥 뚫린 엘리스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화염을 날렸다.
채앵!
살점이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니콜로는 검을 휘두른다.
그 뒤를 이어 비슷한 모습을 한 이르판, 야쿠부, 박상민까지.
모두가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최현석은 씨익 웃었다.
“그거 아냐?”
화염구를 피하고, 동시에 니콜로의 검을 붙잡은 다음 놈의 이마에 박치기를 날렸다.
콰직!
단숨에 이마가 박살 난 니콜로가 주저앉는다.
“너희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최현석은 멈추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뒤따라오는 야쿠부의 목을 부러뜨리고, 이르판의 다리를 날린 다음 쓰러진 놈의 뒤통수를 짓밟는다.
그 상태로 땅을 박차 순식간에 엘리스 앞에 섰다.
“특히 너는 진짜… 말 안 해도 알고 있지?”
최현석의 물음에 엘리스가 높은 톤의 괴성을 내질렀다.
“캬아아아아아-!”
“이년은 죽어서도 지랄이네.”
순식간에 엘리스의 지팡이를 뺏은 최현석이 거칠게 찔러 넣었다.
안구가 꿰뚫린 엘리스가 힘없이 허물어졌다.
[레벨업!]들려오는 알람이 유독 경쾌하다.
“그래도 경험치는 고맙다.”
“그아아아…!”
“아, 상민이가 남았네.”
아무리 언데드라지만, 상민을 해치는 건 마음이 조금 좋지 않았다.
“상민아. 다음 생에는 친구들 골라가면서 잘 사겨.”
순식간에 상민의 뒤로 이동한 최현석이 그대로 머리를 비틀었다.
우드득!
목이 기이하게 꺾이다 못해 상민의 머리가 몸통에서 뽑혀 나오고 말았다.
최현석이 쓰게 웃었다.
“… 미안하다. 뽑을 생각은 없었는데.”
상민의 머리를 몸통 근처에 두고는 다시 움직인다.
“구어어어어어어…!”“하아, 저건 또 뭐야?”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언데드가 달려오고 있었다.
쿠웅! 쿠웅! 쿠웅!
놈이 땅을 디딜 때마다 굉음이 울렸다.
“조심하세요! 드제크예요!”“특별한 능력이나 약점이 있습니까?”“없어요! 그냥 사체가 뭉쳐서 만들어진 육중한 무게 자체가 무기예요!”
“알겠습니다.”
드제크라는 놈의 외형은 굉장히 그로테스크했다.
수많은 뼈와 살점이 뭉쳐 만들어진 몸은 보는 것만으로도 구토가 쏠릴 정도.
비위가 제법 강한 편인 최현석도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의외로 덩치가 큰 놈들을 공략하는 건 쉽지.’
하단을 노려서 중심을 무너뜨리고 시야의 사각에서 처리한다.
특별한 마법이나 능력을 지닌 게 아니고서야, 그냥 커다란 샌드백이나 다름없다.
최현석은 거침없이 드제크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이내 둘의 거리가 좁혀지고, 드제크가 주먹을 휘둘렀다.
“구와악-!”
최현석의 눈이 부릅떠졌다.
덩치에 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였다.
‘뭐가 이렇게 빨라!?’
피하기는 늦었다.
최현석은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며 충격에 대비했다.
투웅, 콰아아아-!
주먹에 맞아 날아간 최현석이 민가에 처박혔다.
그 충격에 통나무로 만들어진 집이 무너져 내렸다.
“아, 한 방에 순살 될 뻔했네.”
최현석이 어깨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력으로 대비한 덕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자칫하면 전신의 뼈가 박살 날 뻔한 위기였다.
“구어어어어…!”
“그래. 제대로 붙어보자!”
최현석이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드제크가 육중한 다리를 뒤로 당겼다.
‘온다!’
최현석은 눈을 크게 뜨고 놈의 움직임을 살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다리.
다리를 구성하는 뼈와 살점 사이로 인간의 얼굴이 보인다.
“아아아아-!”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한 얼굴이 바로 옆을 아슬하게 스쳐 갔다.
최현석은 곧바로 몸을 틀어 마기를 끌어모았다.
레이드런식 격투술
제1형 – 초전박살(初戰搏殺)
지금 놈의 신체를 지탱하는 반대편 다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콰아아아-!
벼와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가고, 놈의 거체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어어어!”
드제크는 버둥거리며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그대로 둘 최현석이 아니었다.
“나는 정석대로 간다!”
타격의 정석.
때린 데 또 때리기.
기우뚱하는 놈의 발목을 향해 주먹을 연타했다.
결국, 드제크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쿠우웅…!
최현석은 재빨리 쓰러진 놈의 뒤통수 뒤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후두부를 향해 전력으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레이드런식 격투술
제7형 – 격괴작파(擊䂷炸波)
충격음이 울리고, 이내 드제크의 머리를 구성하는 뼈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진 육체라 내부를 뒤흔드는 격괴작파에 약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레벨업!]“이거지!”
또다시 들려오는 레벨업 알람.
최현석이 기분 좋게 웃었다.
한동안 막혀 있던 성장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건 기회야. 마기로 강해지는 건 이놈들뿐만이 아니었어.’
보통 인간이라면 마기가 짙은 이곳은 불리한 전장이겠으나, 최현석은 아니다.
마기가 짙어질수록 최현석의 컨디션 또한 올라간다.
그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서서히 머리에서 뿔이 솟아나고 있었다.
신체 변형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마기에 자동으로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오늘 레벨 한번 제대로 올려보자.”
어느새 전투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고.
오직 레벨업을 향한 욕망만이 최현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