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4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46화(146/273)
최현석은 곧바로 길을 나섰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물론이죠!”
라헬이 당차게 대답했다.
최현석은 미심쩍은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여긴 아무리 봐도 길이 아닌데?”“말했잖아요. 간단한 추적 마법이라고. 마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
“그러니까 방향만 알 수 있지 거리나 길 따위는 전혀 모른다는 거죠!”
저렇게까지 당당하게 이야기할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들의 앞에는 깊은 낭떠러지가 있었다.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보니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깊이가 족히 백 미터는 넘는 듯했다.
“뭘 고민하세요. 대충 날아서 가면 되죠. 이것저것 따지지 말라구요!”“에휴, 방향은 정확한 거지?”
“물론이죠!”
낭떠러지가 있다 해도 건너갈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크레피터스 모드를 이용해 건널 수도 있고.
라헬의 마법으로 하늘을 나는 것도 가능하다.
“네 마법으로 가자.”
이번에 선택한 방법은 후자였다.
크레피터스 모드는 불안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보보도 함께 이동해야 했기에 라헬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라헬. 얼마나 남았어?”“저야 모르죠. 가다 보면 나오지 않겠어요?”
일행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절벽을 건너고, 산을 건너고, 강을 건넜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마침내 그들의 앞에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다.
“으음, 아마 저기 있는 것 같지?”“네. 추적 마법이 정확히 도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요.”
최현석은 혹시 몰라 도시 주변을 크게 돌았다.
귀찮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확인 작업이었다.
도시 너머에 아벨슨이 있어 방향만 일치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확실하네.”
잠깐 동안 도시 근방을 돌아다닌 결과 확실해졌다.
아벨슨은 도시 안에 있다.
어디로 이동하든 추적 마법은 도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도시에 들어가서 아벨슨 씨를 구출하냐는 건데…”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던 최현석이 돌연 라헬을 바라봤다.
“라헬. 혹시 변신 마법 같은 거 못써? 모습을 바꾼다거나 하는.”“무리예요. 폴리모프(Polymorph) 마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네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고?”“어쩜 그렇게 실례되는 말을!”
라헬이 주먹을 꽉 쥐었다.
“폴리모프는 아주 최고 난도의 마법이지만, 라헬도 하고자 하면 할 수 있거든요!?”
“그럼 해.”
“어… 그런데 이게 조금 불안정해요. 깔끔하게 변신이 안 될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 풀릴지도 모르고…”“쯧! 결국, 못한다는 거잖아.”
“그렇죠. 헤헤.”
라헬이 멋쩍게 웃었다.
최현석은 혀를 차고는 다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어떻게 한다…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는데…”
이러는 사이에도 아벨슨이 무슨 고초를 겪고 있을지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도시로 들어가야 그녀를 구해야 했다.
‘위장 신분 패도 잃어버렸고. 행색도 완전히 거지꼴이라 도시에서 받아줄 것 같지가 않아.’
솔직히 거지라고 말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최현석의 모습은 처참했다.
옷의 남은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
사실상 거적때기를 두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더해 돈과 위장 신분 패까지 모조리 잃어버렸으니.
도저히 정상적으로 도시에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으음… 뭔가 방법이…”
그때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험악한 인상을 한 남자들이 보였다.
“저놈은 뭐야?”
“거지 같은데.”
“무슨 거지가 저렇게 건장해!?”“얘들아 집어치워라. 오늘은 공쳤네. 쯧.”
그들은 최현석이 거지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숲으로 돌아가려 했다.
최현석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 전부 잠깐 스탑.”“뭐야? 일 없으니까 꺼져!”
놈들이 짐짓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최현석은 화를 내는 대신 환하게 웃으며 응대해 주었다.
“거지한테 적선 좀 해라.”
***
같은 시각.
트라니오 주교가 나가고.
아벨슨은 낯선 남자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소개가 늦었군. 코르칸이라 한다.”
“사냥개군요.”
사냥개란 교황의 직속 부대.
그림자와도 같은 이들이었다.
자신의 정체가 간파당했음에도 코르칸은 여유로워 보였다.
“알고 있다니 대화가 편하겠군.”
코르칸이 턱을 괴며 가늘게 눈을 떴다.
“아벨슨 마리어트. 함께 있던 배신자 용사 최현석은 어디 있지?”“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그와는 헤어진 지 오래됐어요.”“개소리 집어치워.”
순간 코르칸의 얼굴이 사납게 돌변한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불과 며칠 전에 키톤 시에서 벌어진 사건.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
“사건을 잘 덮긴 했다만, 제국의 정보력을 우습게 알면 안 되지.”“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끝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이라 이건가.”
코르칸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계집이야.’
아벨슨은 항상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군.’
사실 방금 한 말은 그냥 던져본 것이다.
그는 키톤에서 최현석과 아벨슨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최현석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최현석과 아벨슨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순 있었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잡지 못한 상황.
그래서 아벨슨의 떠보며 표정으로 파악할 요량이었는데, 워낙 무표정한 탓에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뭐, 이제 와서는 다 필요 없는 것들이지.’
어쨌든 지금 눈앞에 아벨슨이 있으니 그거면 됐다.
그의 목적은 최현석과 아벨슨을 붙잡는 것.
아벨슨이 나머지 최현석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니 거의 다 잡은 물고기나 다름없었다.
“질문을 바꾸지.”
코르칸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사령술 사건에 관해서 아는 걸 모두 말해라.”“이미 트라니오 주교님께 모두 설명했어요.”“짜증 나게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코르칸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사냥개로 활동하며 살인은 물론이고 각종 고문과 심문에 능통한 경험을 쌓은 그다.
그저 눈빛만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힘이 있었다.
“나와 힘겨루기를 할 생각은 집어치워. 네 주제를 파악하란 말이다.”
“…”
“그곳에서 있었던 일. 네가 알고 있는 것.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해.”
아벨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 부분에서 굳이 기 싸움을 할 필요는 없었다.
사령술은 대륙 전체가 알아야 할 중대한 사안이었으니까.
오히려 이 남자가 확실하게 이야기를 전달해서 모든 인간이 경각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된 거예요.”
아벨슨의 설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차례 트라니오 주교에게 설명했던지라 좀 더 명확하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그게 전부인가?”
“네. 제가 아는 건 모두 말했어요.”
사실 아벨슨은 사령술이 일어난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최현석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해서 그녀는 전투 이전에 있었던 살인 사건과 마족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 해도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흐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코르칸은 침음을 삼켰다.
‘그렇지 않아도 각지에서 마기의 밀도가 짙어지는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계집의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야.’
그가 맡은 일은 아벨슨과 최현석을 쫓는 것뿐만이 아니다.
둘을 추적하며 대륙 각지의 정보를 모으는 것 또한 주된 임무.
애초에 이쪽이 본 임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이 정보는 아주 중요했다.
당장 아벨슨과 최현석을 붙잡는 것보다 훨씬 중요도가 높은 일이었다.
어쩌면 대륙 전체가 발칵 뒤집힐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교황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
“알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최현석에 대한 이야기는 내일 다시 나누도록 하지.”
코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마기와 사령술에 관한 보고부터 할 생각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벨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수도로 이송되면 전부 말하게 될 거다. 그러니 가능하면 이곳에서 아는 걸 다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조금이라도 살 희망이 생기지 않겠나?”
“…”
“만약 이대로 입을 닫고 최현석에 관한 일을 모른 척한다면…”
코르칸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후에 무슨 일을 겪을지는 상상에 맡기지.”
그가 거칠게 문을 닫고 심문실을 나섰다.
“…”
홀로 남은 아벨슨은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그날 밤.
아벨슨은 잠자리에 들지 못한 채 뒤척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는 것임에도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도망치려면 지금뿐이야.’
아벨슨은 탈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언제 수도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르면 내일 아침.
늦어도 모레 안에는 출발할 게 분명했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문제는 코르칸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놈은 아벨슨의 방 주변에 철통 경비를 세워뒀다.
방은 안락하고 침대는 편안했으나, 사실상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내 실력으로 경비를 조용히 처리하는 건 무리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만약 경비를 뚫는다고 해도 소란이 일어나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하리라.
코르칸이 소란을 듣고 찾아오면 탈출이 실패하는 건 물론이고, 차후 도망칠 여지까지 날아가게 될 터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깊어지던 그때.
누군가 방문을 열고 다가왔다.
‘누구지…?’
아벨슨은 일부러 자는 척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적이라면 방심을 유도한 뒤에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한 남자의 것이었다.
“작은 성녀님…”
“트라니오 주교님?”
“예.”
들어온 이는 트라니오 주교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아벨슨의 어깨를 붙잡았다.
“당장 나가셔야 합니다.”“주교님. 도대체 어떻게….”
트라니오 주교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작은 성녀님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벨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라 방을 나서자 쓰러져 있는 경비들이 보였다.
“조금 강한 수면제일 뿐입니다. 죽은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길.”
주교는 아벨슨을 안심시키려는 듯 다시 한번 미소를 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주교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장소는 예배당 중앙에 있는 석상이었다.
“주교님. 여기는…?”“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주교의 몸에서 미약한 신성력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석상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드러났다.
“도시 밖으로 연결된 비밀 통로입니다. 갈림길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계속 걸으시면 됩니다.”“주교님도 같이 가요.”
트라니오 주교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곳의 주교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면 어떤 신도가 진실되게 신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
“여기 작은 성녀님의 소지품입니다.”
트라니오 주교가 몇 가지 물품을 건넸다.
그중에는 마기를 이용하는 통신구 또한 들어있었다.
아벨슨은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며 통신구를 바라봤다.
“이건…?”
“저는 작은 성녀님을 믿습니다.”
트라니오 주교가 아벨슨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아벨슨 또한 주교를 마주 바라봤다.
“모든 건 신의 뜻대로.”
“신의 뜻대로…”
“어서 가시죠. 그 남자가 언제 알아차릴지 모릅니다. 어서요!”
주교가 아벨슨을 떠밀었다.
아벨슨은 지하로 내려가면서 마지막으로 트라니오 주교를 돌아봤다.
그는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아벨슨이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다.
뒤쪽의 석상이 원상 복구되며 빛이 차단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으나, 통로가 일직선이었기에 걷는 데는 문제 없었다.
신성력을 이용해서 빛을 밝힐 수도 있었으나, 혹시나 감지될까 싶어 그러지 않았다.
사소한 실수로 트라니오 주교가 준 기회를 날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날 거야.’
아벨슨이 마음을 다잡았다.
트라니오 주교가 준 기회를 보답하는 건 살아남는 것뿐이다.
지독한 어둠 속에서 오직 감각에 의존한 채, 아벨슨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