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47)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47화(147/273)
도시로 들어가는 문제는 의외의 방식으로 해결됐다.
“산적이라도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무리입니다. 경비들이 저희를 들여보내 줄 리가…”
최현석이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콰아아!
두꺼운 통나무로 만들어진 벽이 사라졌다.
조금 부서진 게 아니라 한쪽 벽면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다.
산적 두목이 놀란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
“그 쓸모없는 머리를 보존하고 싶으면 생각이란 걸 하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산적 두목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개새끼들… 어디서 이런 괴물을 데려와선!’
불과 10분 전.
주변으로 정찰을 나갔던 부하들이 웬 거지를 주워왔다.
그런데 그 거지가 보통 거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산채의 부하들을 전부 때려눕히더니, 자신을 도시 안으로 조용하게 넣어 달란다.
“빨리.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에요.”
최현석이 아무것도 없는 손목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시간 가잖아!”
“부, 부하 중에 도시 경비와 안면을 튼 놈들이 몇 있습니다!”
“그래서?”
“그놈들을 통해서 돈을 찔러 넣어 주면 조용히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제야 최현석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할 수 있잖아! 왜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는 거야?”
“하하하…!”
“그럼 당장 출발을, 아! 그전에.”
최현석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손을 내밀었다.
“내가 입을 만한 옷 좀 빌리자.”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행 경비가 떨어졌거든. 적선을 좀 해주면 좋겠는데.”
“그건…”
두목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에 최현석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간다.”
“예?”
“뒤지고 나면 돈이고 뭐고 아무 소용없다는 소리지.”
“아…”
두목은 눈물을 머금고 전 재산인 10골드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양아치 같은 놈…!’
그는 이번 일이 끝나자마자 산채를 옮기리라 다짐했다.
***
“다들 도움 고마워.”
최현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다섯 명의 남자가 울상을 지은 채로 서 있었다.
경비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최현석의 여행 경비를 보태느라 빈털터리가 된 산적들이었다.
“저희는 이제 가봐도 될까요…?”
한 산적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실컷 얻어맞은 것도 모자라 가진 것까지 다 뜯긴 상황.
더는 최현석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흠, 도와준 건 고마운데 내가 여기 지리를 잘 몰라서 말이야…”
최현석이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산적들이 한 남자를 밀쳤다.
“도시 지리라면 여기 노리스먼이 아주 빠삭합니다!”“그럼요! 저놈이 여기 출신이라 아주 적격입죠! 하하하!”
홀로 튀어나온 남자가 원망 어린 눈초리로 동료를 바라봤다.
분위기상 막내인 게 분명했다.
최현석은 혀를 끌끌 찼다.
“쯧, 의리 없는 새끼들.”
“…”
“됐으니까 가라.”
“저, 기사님. 안내는…”
최현석을 기사라 생각한 그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에는 봐준다. 대신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 해.”
“물론입죠!”
“감사합니다!”
마침내 용사에게서 해방된 산적들이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떠나갔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벌써 저만치 멀어진 산적들을 보며 최현석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후아! 보람차다. 오늘도 타락한 범죄자 놈들을 갱생시켰네.”“누가 누구를 갱생시켜요?”
라헬이 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넌 또 왜 시비인데.”“라헬은 가끔 의문이 들어요. 용사님이 정말 용사가 맞는 걸까.”“의문인 건 네 머릿속이겠지. 그야말로 용사의 표본과도 같은 선행을 했는데 뭐가 불만이야?”“네? 불만은 전혀 없어요. 돈이 생겼잖아요!”
“…”
“단지 마카롱
하나만 사주시면 용사님이 진정한 용사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마카롱
같은 소리 하네. 아벨슨 씨가 어디 있는지나 찾아.”
“칫.”
라헬이 혀를 차고는 아벨슨의 위치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으음, 지금 위치가…”
라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라, 이게 왜 이러지?”
“무슨 문제 있어?”
“지금 여기 있다는데요?”“아벨슨 씨가 여기 있다고?”“네. 이제 저쪽으로 가네요?”
라헬이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민가와 상점이 늘어져 있었는데, 아벨슨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헛소리하지 말고 제대로 확인해.”“어라라!? 진짜라니까요!?”
다시 봐도 라헬이 가리킨 방향에는 아벨슨이 없다.
애초에 이른 새벽이라 나와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착각할 리가 없다.
“이상하다.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라헬은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으로 봤을 때는 분명 아벨슨이 이곳을 지나쳐 저쪽으로 이동 중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이상했던 것이다.
순간 최현석의 눈이 빛났다.
“라헬. 그거 높이도 감지가 돼?”
“높이요?”
“방향 알려줄 때 위나 아래쪽인지도 알려주냐고.”“그건 아니죠. 아, 설마!”
라헬이 무언가를 눈치챈 듯 눈을 크게 떴다.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래를 가리켰다.
“그래. 바닥이야.”
아벨슨은 지하로 이동하고 있었다.
***
“여기가 끝인가…”
마침내 기나긴 통로의 끝이 나타났다.
계단이 나타난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통로를 지나느라 심적으로 지친 상황.
아벨슨은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위를 막고 있는 천장을 열어젖혔다.
덜컹, 덜컹!
천장 위를 무언가 막고 있는지 잘 열리지 않는다.
조금 더 완력을 주자 끼익- 하는 소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흙이 쏟아져 내렸다.
“푸후! 후!”
아벨슨이 흙먼지를 털어내며 지상으로 올라왔다.
주변을 둘러보자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숲이었다.
아벨슨이 통로를 입구를 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교님…’
트라니오 주교의 도움으로 도시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제 곧 날이 밝고, 자신이 도망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교는 어떻게 될까.
증거가 없다 해도 문책을 피하지는 못하리라.
아벨슨이 주먹을 꽉 쥐었다.
‘우선은 살아남는 데 집중하자.’
도시를 탈출했다 해도 완전히 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놈들도 분명 통로를 발견할 것이고, 언제 추격대가 따라붙을지 모른다.
‘도망치다 보면 최현석 씨가 찾아올 거야.’
사실 아벨슨은 자신에게 추적 마법이 걸려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딱히 라헬이 마법의 존재를 숨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벨슨이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이들을 따라올 수 있었던 이유에는 추적 마법에 대한 자신감도 어느 정도 깔려 있었다.
“부상이 심각한 상태였으니 당장은 무리겠지만, 며칠만 버티면….”
“아벨슨 씨!”
“어…?”
돌아보니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는 최현석이 보였다.
“어떻게…?”
“길이 조금 엇갈려서 늦었습니다. 도시에 들어간 상태였거든요.”
“아…”
최현석은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몇 배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 번을 봤지만 정말 괴물 같은 회복력이다.
그때 최현석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가시죠!”“무슨 일이 있나요?”“주위에 숨어있는 놈들이 있습니다. 아마 아벨슨 씨가 여기 나타날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네…?”
아벨슨은 깜짝 놀랐다.
‘감시라니, 그럴 리가…’
자신은 이제 막 도시에서 도망쳐 나온 참이다.
그것도 지하 통로를 통해 최단거리로 이동했다.
설사 그녀가 도시를 탈출하자마자 들통났다 해도 벌써 이곳을 감시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방법이 가능한 것은 하나뿐.
‘내가 이곳에 나타날 것을 알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는…’
즉, 모든 게 함정이란 뜻이다.
“일단 움직이죠. 아직 포위망이 만들어진 건 아니니 뚫고 갈 수 있을 겁니다.”
“알겠어요.”
최현석과 아벨슨이 다시 움직이려던 그때.
“이미 늦었다.”
숲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그를 본 아벨슨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코르칸…”
신성 제국의 사냥개였다.
***
사냥개 코르칸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오늘 밤. 아벨슨 마리어트는 반드시 탈출을 시도한다.’
도시를 떠나는 순간 그녀가 도망에 성공할 확률은 한없이 낮아진다.
언제 이송될지 모르는 판국이니 반드시 오늘 탈출을 시도할 터.
여기서 사냥개 코르칸은 생각했다.
‘어쩌면 최현석의 위치를 알아낼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최현석은 분명 아벨슨과 함께 있었다.
마을에서 일어난 전투 흔적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재 그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 부상으로 인해 몸을 회복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아벨슨의 탈출을 막고 수도로 압송하는 건 하책이다.’
아벨슨을 수도까지 압송하고 심문하면 자백을 받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수도에는 그런 방면의 전문가가 차고 넘쳤으니까.
하지만, 이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일단 자신의 공을 다른 이들과 나누게 되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해서 최현석을 잡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자백을 받고 추격대를 다시 꾸리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차라리 아벨슨이 탈출하게 만들고 최현석과 만나도록 유도하면 한꺼번에 잡아들일 수 있어.’
여기서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코르칸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어떻게 아벨슨을 자연스럽게 풀어주지?’
아벨슨은 바보가 아니다.
의심이 많은 인물.
갑자기 풀어주면 의도를 눈치챌지도 몰랐다.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의외의 곳에서 도움이 뻗어 나왔다.
“주교의 행동이 수상합니다.”“트라니오 주교가?”
“예. 은밀히 수면제를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하의 보고에 코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아벨슨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을 붙여놨는데,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군.’
트라니오 주교는 나름대로 조심히 움직였겠지만, 이미 이 지역 교단은 코르칸의 손에 넘어온 지 오래다.
다음 교구장으로 내정된 포갈 부주교 덕분이었다.
포갈 부주교는 야망이 큰 남자였다.
그는 교황의 직속이나 다름없는 코르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처럼 바짝 엎드렸다.
거기에 더해 트라니오 주교의 은퇴가 다가오며 교단 내에서 지지 기반을 잃어가는 중인 것도 컸다.
결과적으로 교단을 움켜쥐고 트라니오 주교를 감시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잘 됐군. 티가 나지 않게 주교를 도와라.”“주교를 도우란 말씀이십니까…?”“그래. 수면제를 손에 넣게 하고, 아벨슨이 탈출하도록 도와줘. 대신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그나저나 수면제라… 그걸로 뭘 할지는 뻔한데, 어떻게 도망칠 생각이지?”
팔걸이를 톡톡 치던 코르칸이 돌연 손가락을 튕겼다.
“이곳에도 혹시 지하 통로가 있나?”“확인해보겠습니다.”
예배당 지하에 대피를 위한 지하실이나 지하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코르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을 지시했고.
그의 예상대로 도시 밖으로 이어진 제법 큰 규모의 대피 시설이 존재했다.
“일이 너무 술술 풀리는군.”
트라니오 주교가 아벨슨을 도망치게 한다.
이쪽은 미리 대기했다가 도망치는 아벨슨의 뒤를 조심스럽게 밟는다.
그렇게 해두면 아벨슨은 알아서 최현석의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간편하게 추적 마법을 걸고 싶지만, 그건 발각될 확률이 커. 어쩔 수 없이 고전적인 수법을 써야겠군.’
아벨슨과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따라가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긴 하나, 상관없다.
애초에 코르칸은 이런 일의 전문가였기에 딱히 어려울 게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지.”
코르칸의 예상이 빗나갔다.
최현석은 이미 이곳에 있었다.
“벌써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이러면 귀찮게 추적하고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그가 최현석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다친 상태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
“뭐, 상관없겠지.”
코르칸이 검을 빼들었다.
“시간을 절약하게 해 줘서 고맙다. 교황 성하께서 아주 좋아하시겠어.”
“하나만… 묻죠.”
아벨슨이 말했다.
그녀는 어딘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트라니오 주교도 당신과 함께 나를 속인 건가요…?”“트라니오 주교? 아, 그렇군. 너는 모를 수밖에 없지. 어째서 탈출이 발각됐는지 말이야.”
“대답해 주세요.”
순간 코르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트라니오 주교. 아니, 더는 주교가 아니군.”
“…”
“배신자 아벨슨 마리어트와 결탁한 트라니오는 주교직을 박탈하고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
“당신…!”
아벨슨이 눈을 크게 뜨며 뛰쳐나오려던 그때.
최현석이 둘 사이를 막아섰다.
“오케이. 여기까지.”
그가 품에 있던 보보를 아벨슨에게 건네주고는 코르칸을 돌아봤다.
“상황을 보아하니, 저기 있는 놈이 쓰레기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아벨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최현석이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런 일은 저한테 맡기시죠. 제가 또 쓰레기 처리! 범죄자 갱생! 이런 쪽으로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재활용 전문 용사가 나설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