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5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50화(150/273)
라헬은 무릎을 꿇은 채로 두 손을 들고 있었다.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게 어지간히 서러운 모양이다.
“농담도 못 하는 더러운 세상…”
“손 내리지 마라.”
흘겨보자 말하자 슬금슬금 내려가던 손이 다시 번쩍 올라간다.
최현석은 다시 시선을 돌려 통신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흠, 문제네 문제야. 통신구가 있는데 쓰질 못하다니.”
막연하게 ‘언젠가는 사용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게 화근이다.
막상 사용할 순간이 왔음에도 여전히 통신구 작동법을 모른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용사 상점을 찾아봐도 통신구를 다루는 능력은 없네.”“그렇게 잡다한 능력까지 용사 상점에 있을 리가 없죠!”
벌을 받으면서도 할 말은 하는 라헬이었다.
“무슨 개소리야! 애완용품, 마약, 맛소금까지 파는 잡상점 주제에!”
최현석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온갖 잡다한 것들을 팔면서 정작 중요한 알맹이가 없는 게 용사 상점이라니.
“으흠, 듣고 보니 그렇네요.”“은근슬쩍 손 내리지 마라.”
“네.”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는 척하던 라헬이 다시 손을 들었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된 이상 기술을 배울 수밖에.”
용사 상점에서 통신구를 다루는 능력은 팔지 않는다.
하지만, 통신구 자체는 판매하고 있었다.
□ 하급 통신구 세트
설명 : 질이 낮은 하급 통신구다. 내구성이 떨어지고 통신 거리가 짧은 게 특징.
능력 : 최대 20km 통신 기능.
필요 용사 포인트 : 50
상점의 설명을 보며 최현석이 혀를 찼다.
“쯧. 내구성이 떨어지고 통신 거리가 짧은 게 특징이라니. 이건 잡상인도 아니고 그냥 사기꾼이잖아.”“그래도 가격이 싸잖아요. 원래 통신구는 엄청 비싼 물건이라구요. 하급 통신구도 최소 금화 1개는 줘야 할걸요?”“으음, 그렇다면야…”
최현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구매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허공에서 묵직한 구슬 2개가 떨어졌다.
최현석은 양손에 구슬을 쥔 채 유심히 바라봤다.
“마력을 불어넣으면 이게 서로 연결돼서 통화가 된다는 거지?”
“네.”
“라헬. 이거 사용할 줄 알아?”
어쩌면 라헬이 사용법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드런이 건네준 통신구는 마기를 쓰는 것이지만, 이건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었으니까.
예상대로 라헬은 자신만만 포즈를 취했다.
“물론이죠! 마력으로 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구요!”
“한 번 해봐.”
“맡겨만 주십쇼!”
라헬이 벌떡 일어나서는 통신구로 다가갔다.
“엣헴! 지금부터 통신구 사용법을 설명해 드릴게요.”
“그래그래.”
“우선 마력을 넣어서 잠금을 해제하고, 송신 장치를 활성화하세요. 이런 식으로.”
라헬이 통신구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웅…!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라헬의 통신구가 빛나고 거의 동시에 최현석이 들고 있던 것까지 함께 빛을 뿜어냈다.
“오오! 이제 어떡해야 돼?”“똑같아요. 이쪽에서 연락을 보냈으니 그쪽에서 받아야죠.”
“어떻게?”
“잠금을 해제하고 이쪽에서 날린 마력의 실을 붙잡으세요. 수신 장치를 활성화하는 거죠.”“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냐고!”
“…”
라헬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연다.
“용사님은 투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요?”
“…”
이번에는 최현석이 입을 꾹 다물었다.
‘설명하라면 못할 건 없지만…’
굉장히 복잡하고 길어질 것이다.
단순히 주먹을 뻗는 투기 하나에도 마력의 흐름과 변화, 신체의 자극 등 수많은 요소와 변수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투기는 그 모든 과정을 공식화해서 순간적으로 사용하게 해주는 힘.
말로 설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듣는다고 이해하는 건 더 말이 안 됐고.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당장 통신구 사용법을 익히는 건 불가능해요. 이건 원래 전문가한테 교육받아야 하는 거라구요.”“그래그래. 알겠으니까 닥치고 있어 봐.”
최현석은 일단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마력을 통신구로 흘려 넣었다.
‘뭔가 느낌이 묘하네…’
엄청 복잡한 기계장치 내부를 훑는 느낌이다.
라헬이 설명한 잠금장치라는 게 뭔지도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오오, 이건가?’
무언가 기묘한 부분이 느껴진다.
최현석이 마력을 특정 부분으로 이동시킨 그 순간.
쨍그랑!
통신구가 박살 났다.
라헬이 혀를 끌끌 찼다.
“에잉~ 쯧쯧. 용사님! 조심히 다뤄야죠. 바보도 아니고 마력을 그렇게 무식…이 아니라 터프하게 넣으시면 안 되죠… 하핫!”
무식이란 단어에서 최현석의 표정이 살벌해지자 급유턴을 하는 라헬이었다.
최현석은 한숨을 내쉬며 통신구 잔해를 바닥에 버렸다.
“네가 들고 있는 그 통신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사용 못 해?”“음, 기술자가 있다면 다른 통신구랑 연결할 수 있겠지만, 그런 방법은 저도 몰라요.”“결국, 하나가 깨지면 끝이라는 거네.”
“그렇죠!”
“쓸데없이 해맑게 말하지 마라.”
“네…”
최현석은 용사 상점에 들어가 다시 하급 통신구를 구매했다.
‘쓰읍, 벌써 100 포인트나 날아갔네.’
인벤토리를 사기 위해서 포인트를 착실히 모았는데, 이런 데서 날아가다니.
많은 포인트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업료라 생각하자.’
통신구를 구매하고 다시 라헬과 하나씩 나눠 가졌다.
다시 통신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때.
라헬이 최현석을 붙잡다.
“용사님. 일단 제가 하는 걸 잘 유심히 지켜보세요.”“아! 그러네. 네가 하는 걸 제대로 관찰하고 하는 게 좋겠다.”“그래도 큰 기대는 하지 마시구요. 사실 본다고 해도 가능성은 없으니까.”
“왜?”
“남이 사용하는 투기를 보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요?”“음, 어려울 것 같긴 하네.”“어려운 게 아니라 안 되는 거죠!”“그래그래. 알겠으니까 빨리해봐. 어렵다고 포기할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어.”
“알겠어요.”
라헬이 통신구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최현석은 모든 집중력을 동원해 그 과정을 관찰했다.
우웅…!
통신구가 밝게 빛나고.
최현석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너무 빨라.’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통신구가 활성화된다.
아주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과정.
라헬의 말대로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좀 더 천천히는 안 돼?”
“으음, 해볼게요.”
라헬이 다시 한번 마력을 흘러 넣었다.
이전보다 느려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파악하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다.
“이게 한계예요. 더 늦추면 잠금장치를 해제할 수 없어요.”“끄응… 일단 계속해 봐.”
라헬은 통신구에 마력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약 10분이 흐르고.
라헬이 지친 표정으로 바닥에 엎어졌다.
“으어어… 도저히 못하겠어요…”
통신구를 작동하는 것은 미세한 마력 컨트롤을 요구한다.
당연히 많은 정신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잠깐 사이 수백 번이나 반복한 것도 그나마 라헬이기에 가능한 것.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채 서른 번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용사님. 포기하는 게 어때요? 이렇게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구요. 시간을 갖고 차차….”
“대충 감 잡았어.”
“네?”
“한번 해볼게.”
“아니, 괜히 포인트만 날려 먹지 마시고…. 으읍!”
최현석이 라헬의 입을 틀어막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예민하게. 아주 극소량의 마력만 흘려 넣어서 천천히 길을 더듬는 거야.’
최현석의 마력이 아주 미세하게 흘러 들어간다.
라헬이 통신구에 넣은 양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극소량.
실 한 가닥처럼 흘러 들어간 마력은 통신구 내부를 탐험하듯 돌아다녔다.
‘잘못하면 바로 50포인트 날아가는 거야. 집중해라!’
최현석의 집중력이 극도로 올라갔다.
통신구 전체의 구조가 분해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여기를 지나서… 이건 아닌가? 이쪽이야. 아, 여기가 거기였구나.’
이마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최현석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통신구를 들여다봤다.
그렇게 약 5분이 흐르고.
우웅…!
통신구가 밝게 빛났다.
“됐다.”
“이게 되네…?”
라헬이 얼빠진 표정으로 최현석을 바라보던 그때.
[미세 마력 컨트롤을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마력 운용술의 등급이 B → A로 상승합니다]최현석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 마력 운용술 등급도 올랐다. 용사 포인트 100 쓴 거로 완전히 개이득 봤네.”“허어… 새삼스럽지만, 용사님이 진짜 재능충이긴 하네요.”
과연 SSS급 잠재력의 용사라고 해야 할까.
원래 장기간에 걸쳐 전문가에게 배워야 하는 기술을 눈대중으로 보고 따라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극도로 예민한 감각과 제어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아. 이제 익숙해지게 반복 훈련을 해볼까.”
최현석이 통신구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우웅…!
통신구가 밝게 빛난다
처음에는 5분이나 걸렸지만, 이번에는 채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좋아. 완전히 감 잡았어.”
몇 번 더 시도한 끝에.
이제 완전히 자유자재로 통신구를 작동시킬 수 있게 됐다.
거의 라헬과 비슷한 속도로 통신구가 활성화됐다.
“후아. 이거 은근히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네.”“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예요. 투기를 사용하는 것처럼요.”“그런데 이건 마력을 쓰는 통신구잖아.”
“그렇죠.”
“레이드런이 준 건 마기를 쓰는 통신구인데 다른 거 아니야?”“마력을 쓰든 마기를 쓰든 신성력을 쓰든 기본적인 구조는 같아요. 직접 확인해 보시면 아실 거예요.”
최현석은 곧바로 레이드런이 건넨 통신구를 확인했다.
‘아하, 확실히…’
마기를 사용하고 하급이 아닌 고급 통신구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같았다.
잠깐 내부를 훑는 것으로 어떻게 작동해야 할지 감이 잡혔다.
“좋아. 바로 시작한다.”
“지금 바로요?”
“시간 끌 필요 없잖아.”
해야 할 일을 굳이 미룰 이유가 없다.
최현석은 곧장 마기를 넣어 통신구를 작동시켰다.
우웅, 우웅, 우웅…!
통신구가 검은빛을 반복적으로 뿜어냈다.
“이거 왜 이래?”
“저쪽에서 통신을 안 받는 거예요. 항상 통신구를 가지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
전화를 걸어도 상대방이 받지 않으면 통화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우웅, 우웅…!
통신구가 계속해서 빛을 뿜어낸다.
반대편에서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다음에 다시 해야 하나.”
최현석이 포기하고 마기를 빼내려던 순간.
통신구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현석…?
***
레이드런은 한창 대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상대는 검은 갑옷의 기사 모템.
둘은 하루도 빠짐없이 실전과 같은 훈련을 거듭했다.
서로에게 좋은 훈련 상대였기에 성취 또한 하루하루 다르게 가팔라져 갔다.
#쿠웅! 콰아아!
손발과 대검이 얽히며 주변이 초토화된다.
“벌써 이 정도까지 따라오다니. 놀라운 재능이다.”
“과찬이십니다.”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둘의 대련은 멈추지 않았다.
레이드런이 주먹을 뻗고.
모템은 대검을 휘둘러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해낸다.
둘의 싸움은 단순히 속도와 위력만 강한 게 아니었다.
치열한 수 싸움 끝에 나온 공격은 상대의 움직임을 옥죄면서 전투의 흐름이 자신에게 흐르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상대 또한 그런 치밀한 설계 끝에 움직이는 것이기에 밖에서 봤을 때는 그저 단순히 공격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단장님!”
그때 누군가 레이드런을 불렀다.
돌아보니 부사단장 로이거였다.
“죄송합니다. 잠시…”
원래 레이드런이 훈련 중에는 절대 방해하지 않는 게 룰이었다.
그것을 깨고 찾아왔을 정도면 굉장히 중요한 일일 터.
“무슨 일이냐?”
“통신이 왔습니다.”
“통신… 설마!?”
“예. 사단장님이 말씀하신 그 통신구입니다.”
“알겠다.”
레이드런이 곧바로 자신의 집무실로 향해 달려갔다.
모템이 뒤따라오며 물었다.
“그놈인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집무실에 도착한 레이드런은 곧장 통신구를 활성화했다.
“최현석…?”
-예! 레이드런 님. 오랜만입니다.
“그래. 대충 보름만인가.”
오랜만에 최현석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움이 밀려왔다.
레이드런은 오두방정을 떨고 싶은 걸 참으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갑자기 연락한 것을 보면 이유가 있을 텐데.”-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뭐냐?”
-그것이…
최현석이 말을 끌었다.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무슨이든 가감 없이 말해라. 너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후우, 감사합니다.
최현석이 한번 숨을 골랐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저리 고민하는 것일까.
레이드런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이내 최현석이 입을 열었다.
-레이드런 님.
“듣고 있다.”
이어지는 최현석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사령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족의 금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