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5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55화(155/273)
카르디널 발다.
마리어트 왕국의 영웅이자 왕실 기사단의 기사단장.
그는 쉰에 가까운 나이에도 삼십 대 후반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지의 상승으로 노화가 늦춰지는 걸 넘어 회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전설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
즉, 젊은 외모는 그가 영웅 단계의 극한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주었고, 동시에 수십 년 내로 전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나타냈다.
‘어찌 이런 일이…’
그런 카르디널 발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분노와 당혹이 묻어나는 눈빛.
경지가 높은 만큼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그였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왕실 기사단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최현석의 첫 대련 상대인 기사 가벨은 단 일격에 무너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발다는 그리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 가벨은 왕실 기사단에서 가장 어린 신입.
그 재능과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뽑은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하나, 두 번째 대련 또한 채 3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몇 년간 기사단에 몸담은 어엿한 왕실 기사였다.
이때부터 발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져 갔다.
“하아아압!”
이윽고 시작된 마지막 대련.
대련자는 기사 기포드로 기사단 서열 5위의 베테랑이었다.
기포드는 앞의 둘과 달리 분전하는 듯했으나, 불시의 일격에 턱이 돌아가며 바닥에 몸을 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확인해 보니 3명이 실신하는 데 채 20분이 흐르지 않았다.
대련에서는 투기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
즉, 세 명의 왕실 기사는 투기 없이 그냥 맞아서 실신한 것이다.
그것도 고작 20분 만에.
‘이름도 없는 용사 따위에게…! 이럴 수는 없다!’
사실 대륙에서 용사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특히 기득권층에게 용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용사라고 나대는 놈들이 알고 보니 칼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한 쓰레기니 좋게 보려야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쓰레기들이야 원래 넘쳐났고 무시하면 그만이니.
문제는 정말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놈들이다.
어느 정도 성장하고 머리가 굵어진 용사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뜬금없이 신분제를 개혁한다고 나서질 않나.
국왕이 되겠다고 설치질 않나.
조금만 강해지면 거들먹거리는 것은 기본 옵션인지라 귀족에게도 안하무인으로 대하기 일쑤였다.
‘그런 용사에게. 그것도 이름도 없는 무명의 용사에게 왕실 기사가 무너지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왕실 기사단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
카르디널 발다가 최현석을 노려보았다.
‘이게 다 저놈이 비겁한 수를 썼기 때문이다.’
최현석이라는 용사는 무기를 쓰지 않는다.
무투가는 흔히 볼 수 없는 유형.
하단을 공격하거나 심지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비겁한 수를 쓰니 왕실 기사라 해도 대련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내가 제대로 버릇을 고쳐놔야겠군.’
그가 굳은 표정으로 국왕 앞에 섰다.
“국왕 폐하.”
“무슨 일인가. 발다 경?”“외람된 말씀이오나, 번외 경기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대로 대련을 끝내기에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다의 말투는 정중했으나, 그 안에는 지독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애초에 눈이 형형하게 빛나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네. 애초에 대련은 세 경기만 진행하기로 했으니 여기까지 하지. 최현석도 피곤할 테고.”
“하오나…!”
“발다 경.”
국왕이 담담한 표정으로 발다를 바라봤다.
“혹여나 왕실 기사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네. 자네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
“그럼 오늘은 이만하지. 모두 수고했다.”
국왕이 발다에게서 몸을 돌려 아벨슨에게 다가갔다.
“저 용사가 덩치만 큰 줄 알았더니 실력도 엄청나구나. 하하! 이 정도면 믿고 너를 맡길 수 있겠어.”
“감사해요.”
국왕과 아벨슨의 편안한 대화에 분위기는 금세 풀어졌다.
모두가 웃고 떠들며 최현석에게 몰려들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용사가 나타났냐며 칭찬 일색이다.
“…”
구석에서 홀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왕실 기사단장, 카르디널 발다의 굳은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
국왕은 약속을 지켰다.
아벨슨의 교육을 완전히 최현석에게 일임한 것이다.
다만 훈련 중에는 반드시 왕실 기사 한 명이 참관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최현석은 조금 께름칙했으나, 우려와 달리 왕실 기사는 정말 지켜보기만 할 뿐.
나서서 말을 건다거나 제지를 하는 건 전혀 없었다.
“오늘은 투기 훈련만 하는 건가요?”
무사히 훈련이 끝나고.
아벨슨이 바람에 땀을 식히며 물었다.
“예. 대련 훈련은 한동안 자제할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올랐으니 슬슬 투기를 하나 만들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최현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그가 아벨슨과 대련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공주 얼굴을 쳤다가는 참수형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이곳에서도 이어갔다간 아무리 최현석이라 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아벨슨이 실력이 어느 정도 성장한 것도 사실이니, 투기를 배우기에 적당한 때이기도 했다.
“누님! 여기 계셨군요.”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화사한 은발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미남자였다.
아벨슨도 그를 보며 아는 체를 했다.
“레이스?”
“예! 오랜만입니다. 하하.”
최현석은 남자의 외모와 분위기로 그가 아벨슨의 동생임을 눈치챘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21세기에 태어났으면 얼굴 천재라 불리며 아이돌 판을 씹어먹었을 것 같은 조각 미남을 보니 괜히 배가 아프다.
“최현석 씨. 여기는 레이스 마리어트. 제 동생이에요.”“반갑습니다. 정규 용사! 최현석입니다.”“이분이 그 왕실 기사단을 순식간에 때려눕혔다는 용사입니까?”
“예. 뭐, 하하…!”
최현석이 멋쩍게 웃었다.
대련을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새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누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레이스 마리어트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최현석은 잠깐 고민하다가 손을 마주 잡았다.
왕족이 악수를 하는 게 의외였다.
‘이쪽 왕족은 소탈한 게 특징인가?’
국왕 발테어의 핏줄이라 그런 것일까.
그의 아들 또한 굉장히 소탈한 모습이었다.
마주 잡은 손을 흔들면서도 환하게 웃는 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누님. 그럼 저녁에 식사에서 뵙죠. 호그 형님도 돌아온다고 합니다.”
“오라버니가…”
“예. 오랜만에 다들 모인다고 생각하니 벌써 즐겁네요.”
***
그날 저녁.
마리어트 왕가의 가족
식사가 시작됐다.
국왕 발테어 마리어트와 왕비 모레슨 마리어트.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난 사 남매.
첫째 크리어 마리어트.
둘째 호그 마리어트.
셋째 아벨슨 마리어트.
넷째 레이스 마리어트.
아쉽게도 첫째 크리어는 타국의 왕자와 결혼을 한 터라 자리를 비웠다.
그래도 이렇게 다섯이 모인 것도 매우 오랜만이었기에 국왕 발테어는 기분이 좋았다.
“다 함께 먹으니 더 맛이 좋구나.”
국왕 발테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가족
사랑은 타국에도 알려져 있을 만큼 유명했다.
그는 지금껏 아내 모레슨만을 사랑하며 다른 여성을 만나지 않았다.
이는 일반적인 귀족
집안이나 왕실의 남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실 외에도 첩을 들이거나, 혼외자식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금실 좋은 부부의 영향인지 가족
식사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누님. 이제 마음 편히 쉬십시오. 형님과 제가 있지 않습니까.”
넷째 레이스가 말했다.
아벨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큰 누님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레이스의 말에 국왕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구나. 모두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나는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아버님. 아직 정정하신데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그러냐? 내가 얼른 죽어 왕위를 물려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
“폐하…!”
“농담일세. 농담. 하하하!”
왕비 모레슨이 눈을 흘기자 국왕 발테어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때 말없이 지켜보던 둘째, 호그 마리어트가 입을 열었다.
“레이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그렇습니까? 오랜만에 누님을 보니 저도 모르게 들뜬 것 같습니다.”“그게 아닌 것 같은데.”
호그가 눈을 빛냈다.
레이스는 곤란하다는 듯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이거 형님 눈은 못 속이겠네요. 원래는 식사가 끝나고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레이스가 국왕의 눈치를 살폈다.
국왕은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몇 달 전부터 바이든 영지에서 가트렌 제국과 마찰이 있었지 않습니까?”
바이든 영지.
마리어트 왕국에서 유일하게 신성 제국 가트렌과 국경을 맞닿은 장소.
사건의 발단은 바이든에서 거대한 규모의 금광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금광은 누가 보더라도 마리어트 왕국의 것이었으나, 신성 제국은 자신들의 땅에도 금맥이 이어져 있다며 지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광의 규모가 워낙 큰 탓에 순식간에 국가 간의 신경전으로 번졌고.
이제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서로 물러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성 제국이 금광을 포기했습니다. 완전히 마리어트 왕국의 것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합니다.”“오! 그거 정말 잘 됐구나!”
국왕 발테어가 반색했다.
솔직히 거대 제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국 측에서 물러나기로 했다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둘째 호그 마리어트는 웃지 않았다.
왕위 승계를 놓고 동생 레이스와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동생이 이런 큰 건을 해결했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무슨 수를 쓴 거지?”“수를 쓰다니요. 그저 진심이 통한 것이죠. 제가 가트렌에 매일같이 찾아가서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하하!”“웃기지 마라. 가트렌 제국은 절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아. 가질 수 없다면 불태워버리는 게 놈들이다. 그런데 그만한 규모의 금광을 포기해? 말도 안 되는….”
“그만.”
국왕 발테어가 손을 들었다.
“오랜만에 아벨슨이 함께하는 즐거운 식사 자리다. 호그. 분위기를 흐리지 마라.”
“죄송합니다.”
이후로 식사는 다시 활기를 띠었다.
주로 국왕 발테어와 넷째 레이스가 대화를 주도했고.
왕비 모레슨과 아벨슨도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둘째 호그의 얼굴이 좋지 않다는 것.
식사 내내 표정이 굳어 있던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좋지 않아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그래. 들어가서 쉬어라.”
“예.”
고개를 숙인 후 뒤돌아가는 호그의 뒷모습이 유독 어두워 보였다.
***
그날 밤.
아벨슨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다.
‘가슴이 왜 이렇게 두근대지…’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빨리 뛰었다.
무언가 불안한 기분.
왕궁에 와서 모든 위협이 사라졌고.
오랜만에 돌아온 가족의 품은 더없이 따뜻했다.
그런데도 이 불길한 기분은 무엇일까.
“꺄아아아아아-!”
그때였다.
문 밖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지고, 이내 소란으로 번졌다.
“누, 누구냐!”
“막아!”
“끄아아악!”
아벨슨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국왕이 선물해준 고급 메이스를 쥐고는 문을 노려본다.
‘적인가? 도대체 누가 왕궁에 침입을…’
고민하는 동안에도 소란은 점점 가까워져 갔다.
덜컥-!
문이 열리고, 피투성이가 된 시녀가 뛰쳐 들어왔다.
“공주님! 도망치셔야…. 커헉!”
어둡게 칠해진 검이 시녀의 배를 뚫고 나왔다.
시녀의 입에서 울컥 피가 토해져 나온다.
촤악-!
검이 다시 뽑혀 나오고.
누군가 시녀를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
뚜벅… 뚜벅…
나타난 이는 총 셋.
하나같이 검은 후드에 복면을 쓰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그들은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더니 검을 들어 올렸다.
대답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복면인들은 서로 거리를 벌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아벨슨은 더욱 강하게 메이스를 쥐었다.
‘포기하지 않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어.’
필사의 각오로 임하던 그 순간.
“이런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이 감히 누구한테!”
최현석이 엄청난 속도로 복도를 질주하며 나타난 주먹을 뻗었다.
복면인은 당황하지 않고 마주 검을 휘둘렀다.
그대로 주먹과 함께 최현석을 두 동강 낼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챙그랑!
주먹은 검을 박살 내며 그대로 복면인의 얼굴에 적중됐다.
한 방에 안면이 함몰된 놈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최현석은 쓰러진 놈의 머리통을 짓밟으며 남은 두 복면인을 노려봤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