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5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56화(156/273)
최현석은 순식간에 복면인을 정리했다.
놈들이 지닌 마력은 제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전투 실력이 많이 떨어졌다.
“으음, 얼굴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
쓰러진 놈의 복면을 걷어내자 흔히 볼 수 있는 백인의 얼굴이 보였다.
놈들은 죽는 순간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따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용사님용사님!”
그때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라헬이 어깨에 내려앉았다.
“뜬금없긴 한데, 꼬마 명탐정이 생각나네요.”
“꼬마 명탐정?”
“네! 어딜 가든 사건이 끊이질 않잖아요. 그 꼬마 명탐정처럼 사건을 몰고 다니는 타입이랄까.”“헛소리하지 말고 보보나 들어.”
최현석이 들고 있던 보보를 던졌다.
라헬은 화들짝 놀라며 보보를 붙잡았다.
“꺄아악! 무거워어!”“보보 어디 안 가게 꽉 붙잡고 있어야 한다.”
“으그그극…!”
“헦! 헦!”
라헬은 보보의 목덜미를 잡고 연신 날개를 파닥거렸다.
아무리 작아져도 라헬보다 몇 배는 큰 덩치인지라 붙잡고 하늘을 나는 게 쉽지 않았다.
보보는 허공에 떠 있는 게 기분 좋은지 혀를 내밀며 웃었다.
“비행 마법 쓴다고 마력 가져가면 죽는다.”“아, 안 그러거든요!”
순간 비행 마법을 사용하려던 라헬이 급하게 멈추었다.
“아벨슨 씨. 일단은 아버지, 국왕이 계신 곳으로 갑시다. 왕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니 놈들도 국왕을 노릴 겁니다.”“하지만,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 수 없어요. 아버지가 주동자면 어떡하죠…?”
아벨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혼란스러워하고 보였다.
“어쩌면 저 요정분이 한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무슨 말입니까?”
“사건을 몰고 다닌다는 것.”
아벨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왕궁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정신 차리십쇼!”
최현석이 아벨슨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아벨슨은 화들짝 놀라며 뺨을 붙잡았다.
“사건을 몰고 다닌다 해도 그건 사건을 터뜨린 놈 잘못이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건 우리를 노리는 공격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게 무슨…?”
“왕궁 전체가 휘말렸습니다. 우리만 노릴 거였으면 굳이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이지는 않았겠죠.”
오직 최현석과 아벨슨을 처치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기에는 규모가 너무 컸다.
게다가 아벨슨에게 고작 이 정도의 인원만 보낼 리도 없다.
“아마 왕궁 전체를 뒤집는 게 목적일 겁니다. 목표는 당연히 국왕일 테고요.”
“그래서…”
“예. 빨리 국왕님께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최현석의 충격 요법에 아벨슨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빠르게 국왕의 침소로 향했다.
‘언제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최현석이 침음을 삼켰다.
정원은 물론이고 건물 내부의 복도까지 무수히 많은 사체가 쌓여있었다.
모두 왕궁의 경비병과 시종, 하인들의 사체였다.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결국, 왕실 기사단이 나간 게 화근이야.’
아무리 사령술이 위험하다 해도 왕실 기사단을 성급하게 내보내서는 안 됐다.
놈들이 이런 상황을 의도했는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아 타이밍이 맞았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왕실 기사단이 있었다면 이렇게 무력하게 방비가 뚫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최현석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마족?’
바닥에 널브러진 사체 중 인간의 것이 아닌 게 섞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니 마족이 분명했다.
‘마족이 왜 여기에 있어…?’
한 번 눈에 들어오자 곳곳에서 마족의 사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마족이 이곳에 있는 걸까.
지금 상황에 마족은 너무 뜬금없다.
애초에 최현석은 마기를 느끼지도 못했다.
이만한 숫자의 마족이라면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해도 마기를 느꼈어야 정상이다.
콰아앙!
그때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아벨슨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버지의 침소 방향이에요!”
최현석은 마족에 관한 생각을 접었다.
‘일단은 국왕을 구한다.’
한가하게 고민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선은 국왕을 구하고 다음을 생각한다.
“전력으로 달리겠습니다!”
최현석은 아벨슨을 안고 땅을 박찼다.
콰직, 쿠웅!
엄청난 각력에 지면이 부서지며 최현석의 몸이 쏘아지듯 날아갔다.
뒤에서 쫓아오던 라헬이 악을 썼다.
“이이익…! 나도 데려가 달라고오!”
라헬이 연신 날개를 파닥이며 뒤를 쫓았다.
“헦! 헦!”
매달린 보보는 그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즐거웠다.
***
콰앙! 쾅!
폭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린다.
국왕의 침소 안에 숨은 이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제길…”
왕실 기사단장, 카르디널 발다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곳곳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국왕 발테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발다 경. 괜찮소?”
“저는 괜찮습니다만, 송구할 따름입니다. 폐하께서 이런 수모를 겪으시게 하다니.”“신경 쓰지 마시오. 조금만 기다리면 수도 경비대와 스콜본 기사단이 올 것이오. 그때까지만 버팁시다.”
발다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시간이 부족해…’
왕궁은 수도 스콜본 안에 위치하고 있다.
당연히 왕실 기사단과 왕궁 수비대를 제외하고도, 수도를 지키는 수많은 병사와 기사가 존재한다.
문제는 그들이 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마법은 이미 부서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어.’
국왕의 침소는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적들의 기세가 워낙 흉흉해 그리 오래 버틸 것 같지 않았다.
앞으로 길어야 1분 정도일까.
발다가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비겁한 수에 당하지만 않았더라도…!’
카르디널 발다는 영웅 중에서도 최상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무력하게 당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독에 중독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습격이 있기 전.
발다에게 왕궁 수비대 소속 병사들이 보고할 게 있다며 다가왔다.
“기사단장님.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병사들은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내밀었다.
발다가 천을 걷자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크윽, 이게 무슨…!”
발다가 눈을 감으며 당황하는 사이.
푸슈슈슉!
병사들이 날카로운 무언가를 찔러 넣었다.
그는 다급히 마력을 둘러 육체를 보호했다.
덕분에 얕은 자상에 그쳤으나, 문제는 날 끝에 독이 발려 있었다는 것.
이후로 마력의 흐름이 급격하게 느려졌다.
싸울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상태로 투기를 사용하는 건 무리다.
“이런 비겁한 놈들!”
이후 습격이 시작됐고.
강력한 적을 상대로 마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발다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만 제대로 움직였다면 저깟 별것도 아닌 놈들이건만…’
검은 후드에 복면을 쓴 적들은 강했다.
하나하나가 왕실 기사단과 비견될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것은 신체 능력과 마력뿐.
그들의 전투 실력은 그리 대단할 게 없었다.
발다의 상태가 온전했다면 혼자서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독에 당한 자신의 안일함을 탓하며 가슴을 두드렸다.
“쳐라!”
채앵-!
“끄아아악!”
문밖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전투가 벌어지는지 함성과 함께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
잠시 후.
주위가 조용해지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넷째 레이스 마리어트의 목소리였다.
“레이스냐!”
“예. 여기는 정리됐습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문이 열리고, 레이스와 함께 몇몇 기사들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기사였다.
발다가 경계 자세를 취하자 레이스가 막아섰다.
“안심하십시오. 이들은 제 개인 수행원들입니다.”
레이스의 말에 발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국왕 발테어가 달려와 레이스를 끌어안았다.
“레이스. 살아있었구나!”“예. 아버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습격이 있고 곧장 호그 형님을 찾으러 갔습니다만, 형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구나…”
아들이 죽었다는 말에 발테어의 눈이 크게 떠졌다.
떨리는 주먹을 억지로 꽉 쥔다.
위급한 상황이라 감정의 동요를 애써 참으려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놈들이 이곳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포위망이 좁혀지기 전에 벗어나야 합니다.”“그, 그래. 어서 나가자꾸나.”
그때 이야기를 듣던 발다가 다가왔다.
“지금 나가는 건 위험합니다. 곧 있으면 수도 경비대가 올 테니 버티는 게 맞습니다.
“그전에 방어 마법이 뚫릴 겁니다.”“나간다면 사방을 막아야 합니다. 저희는 수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으음, 그래. 발다 경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일단은 이곳에서 버텨보자.”“후우… 아버님과 발다 경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발다의 양쪽에서 검이 날아들었다.
쐐액- 챙!
발다는 순간적으로 반응해 검을 쳐냈으나, 뒤에서 날아드는 검까지는 막아내지 못했다.
푸슉-!
등을 찌른 검이 심장을 관통해 튀어나왔다.
발다는 부릅뜬 눈으로 자신을 찌른 이를 바라봤다.
입을 잔뜩 벌린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쯧. 이런 것도 내 손으로 직접 하게 만들다니. 한심한 놈들.”
“죄송합니다.”
레이스의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검을 뽑아내며 피를 털어냈다.
“이 자도 괴물은 괴물이군. 마력이 굳어버리는 독을 맞고도 여전히 움직이다니. 시간을 더 끌었으면 위험했겠어.”
심지어 발다는 억지로 마력을 움직여 해독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서 독 기운이 날아가면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을 게 분명했다.
“레, 레이스… 이게 무슨 짓이냐…”
국왕 발테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들고 무심하게 국왕을 바라봤다.
“대답해라!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인 것이야!”“저야말로 묻고 싶군요.”
마침내 레이스 마리어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째서 가트렌의 요청을 거절한 겁니까?”
“뭐라…?”
“반역자 아벨슨 마리어트와 용사 최현석. 그들을 넘겨줬으면 다 해결될 문제였습니다.”“네가 그걸 어떻게…”
사실 아벨슨과 최현석이 도착하기 전, 신성 제국 가트렌이 비밀리에 접선해 왔다.
아벨슨과 최현석은 마족과 결탁한 배신자니 넘겨달라는 요청이었다.
국왕 발테어는 거절하고, 그 사실을 비밀에 부쳤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아버지가 그 제안을 거절했고, 가트렌을, 교황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
“차후 대륙은 가트렌이 지배하게 될 겁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 멍청한 마족도, 오만한 드라센 제국도, 똘똘 뭉친 왕국 연합도 모두 가트렌 앞에 무릎 꿇게 된다는 말입니다.”
순간 레이스 마리어트의 눈에 노기가 어렸다.
“앞장서서 가트렌의 개가 돼도 모자랄 판에, 요청을 거절을 하다니. 생각이 있긴 한 겁니까?”“아벨슨은 가족이다! 네 누이란 말이다!”“하아, 그러니까 우리 마리어트가 이런 군소 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뭐라…?”
“고작 혈연 따위에 연연하는 한심한 작자가 국왕 자리에 앉아있으니,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레이스는 그동안 묵혀왔던 것을 모두 토해내는 것처럼 소리쳤다.
국왕 발테어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한심한 놈! 외세를 끌어들인다 한들 미래가 있을 것 같으냐. 이건 반역이다. 정당성이 없는 자가 왕위에 앉는 건 용납되지 않아!”“걱정하지 마시죠. 우리 마리어트 왕국은 배신자 아벨슨과 결탁한 마족의 습격을 받은 것뿐이니까요.”
“마, 마족…?”
“저 레이스 마리어트가 마족의 계획을 저지하고 배신자의 목을 베어내면서 상황은 종료될 겁니다.”
“…”
“그러니 정당성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왕국은 제가 번창시킬 테니 아버지는 편히 눈감으시죠.”“네놈이 뚫린 입이라고…!”
더는 듣기 싫었던 레이스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국왕 발테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후우, 드디어 정리가 끝났군.”
그가 홀가분한 얼굴로 검에 묻은 피를 털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까지 모두 끝났으니… 남은 건 그 배신자뿐인가.”
이제 아벨슨 마리어트만 처리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