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5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58화(158/273)
사냥개 키아란은 환호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자신 앞에 있는 최현석과 아벨슨.
저 둘을 사로잡기 위해 키아란은 정말 갖은 고생을 했다.
“최현석. 네놈은 특히 짜증 났어.”
키아란이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최현석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인기스타의 삶이란 피곤해. 별의별 시답잖은 놈들까지 따라다니고.”“아직 여유가 넘쳐 보이는군. 너희에게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하나?”
희망이라는 단어에 최현석이 쓰게 웃었다.
희망이라.
솔직히 말하면 없다.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그런 ‘척’을 하고 있을 뿐.
최현석은 여느 때보다도 절망하고 있었다.
‘도저히 답이 없어.’
뚫을 수 없는 결계에 갇혔다.
주변에는 검은 복면인이 최소 오백은 넘게 둘러싸고 있었다.
전투력 측정기로 확인하니 평균 전투력이 7~8만은 되는 것 같았다.
‘시발… 적당히 해야지.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전투력 7만은 그리 흔하지 않다.
어디를 가든 고명한 기사 대우를 받으며 떵떵거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 수준의 강자가 무슨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처럼 널려 있다니.
경외심마저 들 지경이다.
신성 제국은 뭘 하는 집단이길래 저런 전력을 갖추고 있고.
그만한 전력을 고작 자신과 아벨슨을 잡는 데 투입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용사님… 어떡해요…”
최현석의 품에 숨어있던 라헬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항복할까?”
“항복하면 살려줄까요?”“그건 모르지. 네가 한번 물어봐.”
한창 토론이 이어지던 그때, 키아란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찢어 죽이고 싶지만,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주지.”
“자비?”
“항복해라.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마.”
최현석이 양손을 번쩍 들었다.
“항복!”
“…”
“항복한다! 목숨만 살려주십쇼!”
평원에 최현석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진심인가요?”
아벨슨이 그를 돌아보고.
“용사님.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음… 아니에요. 말을 아낄게요.”
라헬은 혀를 찼다.
“크왕!”
보보도 최현석을 보고 짖었다.
“크흠! 그렇게 쉽게 항복하다니. 조금 의외군.”
키아란 또한 헛기침을 하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항복하면 어떻게 됩니까?”“제국의 수도 그라티암으로 간다.”
“그리고?”
“그리고는…”
키아란은 잠시 고민했다.
‘놈들이 반항해서 손해를 입는 것보다, 안전하게 포획해 이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고민 끝에 그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항복했을 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다.
어중간하게 감언이설로 꾀어내는 것보다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다.
“아벨슨 마리어트는 평생 특수한 장치를 달고 살 거다. 신성력을 뽑아내는 장비지. 불편하긴 하지만, 딱히 고통스럽진 않을 거다.”“저는 어떻게 됩니까?”“너는 장기간에 걸쳐 세뇌 마법을 받게 된다.”
“세뇌라면…”
“진정으로 제국에 충성하는 용사가 되는 거지.”
키아란이 주변에 포진한 복면인을 보며 말했다.
“이만한 수준의 병사를 대규모로 육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만, 제국은 해냈다. 이놈들은 극히 일부일 뿐. 훨씬 많은 수의 병사들이 제국 안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지. 이게 어떻게 가능할 것 같나?”
“용사…”
“그래. 이들은 모두 용사다.”
키아란가 한 복면인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한때는 이들 또한 너와 같이 불경한 생각을 가졌었지. 하나, 지금은 모두 신의 은총으로 제국의 신민이 되었다.”
“…”
“너 또한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몇 년이 걸릴진 모르지만, 세뇌가 끝나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지.”
키아란이 팔을 활짝 벌렸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너희 같은 반역자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유까지 보장해 주다니!”
“…”
“구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살고 싶은가? 그럼 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해라. 구원을 원한다고!”
최현석이 아벨슨을 바라봤다.
아벨슨 또한 최현석을 본다.
“…”
말없이 서로의 응시하는 둘.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던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털썩-
최현석이 먼저 무릎을 꿇고, 아벨슨이 뒤를 이었다.
무릎을 꿇은 둘을 보며 키아란이 광소했다.
“크하하하하! 좋아! 드디어 교황님께서도 내 능력을 인정하시겠군!”
최근 며칠간 얼마나 마음 졸였던가.
언제 내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던 키아란이다.
이제 최현석과 아벨슨을 생포해 간다면 교황의 태도가 180도 바뀌리라.
그동안의 실수가 덮어지는 건 물론이고, 큰 포상이 내려올지도 몰랐다.
“포박해라.”
키아란의 명령에 몇몇 복면인들이 다가왔다.
손에는 마력을 억제하는 포박 마도구를 든 채였다.
“…”
최현석은 무릎을 꿇은 채로 눈을 감았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의식을 집중한다.
후우웅-!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사각, 사각-!
적이 다가오며 풀을 밟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으이잉…!”
품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바들바들 떠는 라헬의 존재를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아벨슨의 호흡.
보보의 침이 떨어지는 소리.
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는 키아란의 시선까지.
전장의 모든 게 그의 감각 안으로 들어왔다.
“후우…”
숨을 내뱉으며 의식을 더욱 날카롭게 벼린다.
보지 않아도 복면인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최현석이 나직이 중얼거리고.
허공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화아아아-!
한순간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밝은 빛이었다.
미리 눈을 감고 있던 최현석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아-!”
앞을 가로막은 복면인을 뒤로 밀치며 달려갔다.
동시에 아벨슨과 보보가 뛰쳐나왔다.
콰직-!
휘청거리는 적의 머리에 메이스가 꽂히고.
“크와왕!”
바닥에 엎어진 놈은 보보의 입속으로 직행했다.
최현석은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려갔다.
“멍청한 놈들! 결국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키아란이 힘겹게 눈을 뜨며 소리쳤다.
그에 반응한 수백의 복면인이 뛰쳐나온다.
최현석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달려 나갔다.
그의 시선은 오직 키아란에게 고정된 상태였다.
‘유일한 희망은 지휘관의 목을 치는 것뿐이야.’
최현석이 복면인, 정확히는 세뇌된 용사와 마주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마수의 땅 이네모시트에서 이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기계 같은 놈들이었지. 감정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최현석은 생각했다.
정말 이들이 기계와 같다면.
그래서 명령받은 일만 수행하는 것이라면.
명령권자를 죽이면 되지 않을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없으면 모두 작동을 멈추지 않을까?
물론, 이는 최현석의 생각일 뿐이다.
키아란이 놈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키아란이 죽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를 이어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도해볼 수밖에 없다.
‘세상에 백 퍼센트는 없어. 뭐든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야.’
최현석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 이곳에 걸어보기로 했다.
노빌레이스
제1형 – 왕의 걸음
보라색 잔상이 생기며 속도가 빨라진다.
복면인들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무기를 휘둘러왔다.
‘기회는 한 번뿐! 집중해라!’
최현석의 눈이 번뜩였다.
적이 당황하고 있고, 아직 시야가 완벽히 돌아오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후웅-!
누군가 휘두른 검을 피하며 빈 공간으로 몸을 날린다.
뒤이어 찔러오는 창을 쳐내며 적을 방패 삼아 부드럽게 몸을 돌렸다.
‘가장 최적의 경로…!’
매 순간,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든다.
하나하나가 치명적일 만큼 강한 힘을 담고 있어 무시할 수도 없다.
이런 최악 속에서 최현석은 최고를 찾아야 했다.
단 한 순간도 저지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를.
쐐애애액-!
최현석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복면인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지나가며 단숨에 앞으로 치고 나간다.
마침내 그의 눈에 당황한 키아란이 보이기 시작했다.
“큭…!”
최현석이 이를 꽉 깨물었다.
빠르게 적을 돌파하기 위해 무리를 한 탓일까.
관절이 삐걱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직이야!’
마력과 마기를 있는 대로 끌어모은다.
한가하게 둘을 나눠 쓸 때가 아니었다.
되든 안 되든 해내야만 한다.
후에 벌어질 육체의 부하 따위를 고려하는 건 사치다.
그저 단 일격.
일격에 모든 걸 쏟는다.
파지지직-!
마력과 마기가 무리하게 융화되며 보랏빛 스파크가 튀었다.
‘최고의 한 방을 위해!’
마력과 마기의 절반이 뭉텅 사라졌다.
최현석이 힘겹게 입을 뗐다.
“레이드런식 격투술…”
지금껏 수도 없이 사용한 투기 레이드런식 격투술.
그 첫 번째 형(形).
“초전박살.”
뻗어나간 주먹 끝에서 보라색 폭풍이 몰아쳤다.
콰아아아아아-!
앞을 가로막은 복면인의 육체가 찢겨나간다.
복면인들은 몸을 던지며 폭풍을 막아섰으나 역부족이다.
그저 의미 없이 찢겨나갈 뿐이었다.
다가오는 폭풍을 보며 키아란은 직감했다.
‘막을 수 없다.’
그 또한 영웅에 준하는 수준임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저걸 막으려 했다간 죽는다.
그렇다고 도망치기에는 폭풍의 범위가 너무도 넓었다.
“제길…!”
이러나저러나 살기 위해서는 도망쳐야 한다.
키아란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발을 놀렸다.
가트렌 신성 검술
제4형 – 거룩한 발걸음
‘거룩한 발걸음’은 그가 사용할 수 있는 투기 중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키아란은 폭풍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
보라색 죽음이 모든 것을 뒤덮었다.
***
키아란이 신음을 삼켰다.
“끄윽…!”
그는 정말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마지막 순간 몸을 던졌으나, 폭풍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런 개 같은 새끼가!”
그의 다리가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양쪽 다리의 무릎까지 날아간 상태였다.
“으아아아!”
키아란이 분노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잘려 나간 다리가 완전히 소멸했기에 치료할 수도 없다.
마도 공학으로 의족을 달 수는 있겠지만, 아직 진짜 신체와 비교하면 한참이나 부족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위력의 투기가 나오는 거냐!’
분노하는 와중에도 키아란은 의문이었다.
이 황당한 위력은 뭐란 말인가.
위력만 놓고 보면 전설이 사용한 투기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무리 단발성이라도 상식을 벗어난 힘이다.
“크와왕!”
“최현석 씨! 괜찮으세요!?”
그의 눈에 전투를 벌이는 아벨슨과 보보가 보였다.
그들은 탈진한 최현석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죽여! 죽이란 말이다!”
키아란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저깟 놈에게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다니!”
키아란이 다리에 회복 마법을 걸면서 연신 이를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다 잡은 쥐에게 물려 두 다리가 날아가는 건 대가가 너무 컸다.
자칫해서 자신이 죽기라도 했으면, 통제되지 않은 용사들로 인해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후우… 저 최현석이라는 놈만은 어떻게든 살려라. 사지를 잘라도 상관없으니 목숨만 붙여놓으면 돼.”
그냥 죽이는 걸로는 안된다.
감히 자신의 다리를 날려버린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곧 끝나겠군.”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키아란이 전황을 지켜봤다.
아군의 숫자가 워낙 압도적이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최현석은 아까의 공격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있었고.
예상외로 아벨슨이 분전하긴 했으나, 그래 봤자 이 많은 수를 감당하긴 힘들다.
‘저 마수는 정보가 없었는데… 하여튼 정보부 놈들은 똑바로 하는 게 없어.’
유일한 걱정거리는 거대한 마수다.
벌써 마수에게 스물이 넘는 부하가 당했으나, 위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수에게도 상처가 쌓이고 있으니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더운 거냐.”
키아란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하게 주변의 온도가 올라간 느낌이다.
처음에는 전투의 열기 때문인 줄 알았으나, 그렇다기엔 온도가 너무 올라갔다.
문득 고개를 들어 올린 키아란은 깜짝 놀랐다.
“태양이 두 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었다.
자세히 그것을 보던 키아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건 태양이 아니야. 저건…”
마법이다.
하늘에서 태양과도 같은 마법이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