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59)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59화(159/273)
비틀거리던 최현석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어 투기가 지나간 자리를 확인한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키아란이 살아있었다.
모든 걸 내건 최후의 일격이 빗나간 것이다.
“용사님! 괜찮으세요!?”“꼼짝도 못 하겠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아직 절반 정도의 마력과 마기가 남아있음에도, 그의 육체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한꺼번에 너무 과한 출력을 사용한 탓이다.
일반적으로 투기를 사용할 때는 전체 마력의 3% 안팎을 사용한다.
그런데 최현석은 무려 절반을 때려 넣었다.
그것도 마기와 마력을 무리하게 융합한 상태로.
몸과 정신이 버틸 리가 없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는 것 같았고 온몸의 혈관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당장 치료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이 끊어질 것이다.
“최현석 씨! 정신 차리세요!”
“크와왕!”
아벨슨과 보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나도 싸워야 하는데…”
전투가 벌어졌다.
라헬은 연신 마법을 날렸고.
아벨슨은 최현석을 보호하는 마법을 사용하며 동시에 메이스를 휘둘러 적을 저지했다.
“크와앙!”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건 역시나 보보였다.
앞발을 휘두르고, 씹어 삼키고, 꼬리로 쳐서 날리는 등 온갖 수단으로 공격했다.
어차피 사방이 적이기에 휘두르면 그냥 맞았다.
하지만, 모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너무나 불리했다.
‘이대로는… 끝이다.’
적은 강했고, 압도적으로 많았다.
점차 일행의 몸에 상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다수를 상대하느라 빠르게 지쳐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크흑…!”
검에 찔린 아벨슨이 신음을 토해냈다.
동시에 최현석을 지켜주던 보호 마법이 사라진다.
“아벨슨 씨!”
“저는 괜찮아요! 안정을 취하세요!”
“크윽…!”
최현석이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싸워야 한다.
“끄아아아-!”
최현석이 악을 쓰며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후들거린다.
휘두르는 주먹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싸워야 한다.
안 되면 이빨로 적을 물어뜯어서라도 싸운다.
“으아아!”
기세는 좋았으나, 전투는 기백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최현석은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스걱-!
미처 피하지 못한 검이 피부를 베고 지나간다.
파앗!
날카로운 창이 다리를 꿰뚫으며 피가 튀었다.
콰직!
둔기가 어깨를 짓이겼다.
최현석은 산 채로 난도질이 되고 있었다.
그를 보며 라헬이 눈물을 글썽였다.
“이익…! 용사님한테서 떨어져!”
그 순간, 갑자기 적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으엉…?”
라헬이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있던 적뿐만이 아니라, 모든 적이 물러나고 있었다.
놈들은 키아란 근처에 모이더니 대형을 다시 갖추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시간을 벌었다.
일행이 최현석에게 모여들었다.
“으아아앙! 용사니임!”“최현석 씨! 괜찮으세요!?”
“예…”
“지금 치료해드릴게요.”“저보다 아벨슨 씨 먼저…”
아벨슨도 상처투성이였다.
입고 있던 옷은 찢기고 피로 물들어 옷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그러나 그녀는 최현석을 치료하기 위해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갑자기… 놈들이 왜… 물러났을까요…”
“말하지 마세요.”
최현석은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복면인들이 모여 대형을 형성하고, 마력을 모으는 게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무언가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뭐지? 우리를 마무리하려는 건가. 하지만, 굳이 저렇게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조금만 더 전투가 이어졌다면 일행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굳이 저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덥네…’
최현석은 문득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이 유독 밝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저게 뭐야…?”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거대한 불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다가오던 불덩이가 이내 결계와 부딪혔다.
콰과가가가각…!
기이한 소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잠시간 힘 싸움이 벌어지고.
채애앵-!
결계가 부서지며, 불덩이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적이 모여 있는 방향이었다.
그 순간 대형을 짜고 있던 용사들의 마법이 완성됐다.
팔각형 형태의 방어막 수백 개가 모여 만들어진 거대 마법.
그것과 불덩이가 충돌하며 굉음이 일었다.
콰아아아-!
결국, 힘이 다한 두 마법은 동시에 소멸하고 말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최현석은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야. 오랜만이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성, 박현아가 보였다.
“구, 군단장님…?”
“새끼가 군단장 비즈니스 접은 지가 언젠데.”
박현아가 씨익 웃었다.
“누나라고 불러.”
***
키아란이 눈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의 상태는 패닉 그 자체였다.
‘박현아… 박현아가 왜 여기 있냐는 말이다!’
몇 년 전. 단신으로 신성 제국 가트렌을 발칵 뒤집었던 용사.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우선 제거 대상 1순위에 올라있는 박현아다.
박현아가 마왕군으로 피신했을 당시, 교황과 마왕의 신경전이 격해져 백 년 넘게 이어오던 밀약이 깨질뻔하기도 했었다.
그 정도로 박현아의 존재감은 거대했다.
‘마왕군에 박혀있어야 할 년이 어째서 여기 있는 거야!? 도대체 왜!?’
발악해 봐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건 누가 보더라도 박현아였다.
키아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도망쳐야 한다. 아무리 용사가 모였다 해도 박현아를 이길 수는 없어.’
개개인의 무력만 놓고 봤을 때, 보통 마왕군 군단장은 인간의 전설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받는다.
박현아는 그런 마왕군 군단장에 오른 인물이다.
즉, 어지간한 전설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이곳에 아무리 대단한 병력이 모였다 한들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은 규격 외의 존재.
만반의 준비를 끝낸 전장으로 끌어들이거나, 아니면 같은 전설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
“제길!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키아란은 다 잡은 최현석을 놓쳐야 한다는 사실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때 박현아가 그를 돌아봤다.
“거기 다리 병신.”
“…”
“그대로 있어라. 너한테는 물어볼 게 좀 많거든.”
키아란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졌다.
그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쳐라! 쳐! 어떻게든 시간을 끌란 말이야!”
용사들이 달려 나간다.
그 사이 키아란은 남은 용사의 부축을 받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단 살아나간다. 어차피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천재지변이라고! 교황님께서도 용서해주실 거다. 일단 살아남기만 하면…!’
정신없이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뒤쪽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아아아앙!
폭발의 여파로 땅이 흔들리고,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으아아!”
키아란과 용사들이 형편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돌아본 키아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면에 지름 백 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크레이터 생긴 게 보였다.
“저게 무슨…”
저 크레이터 안에 용사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으리라.
“으아! 아직 몸이 덜 풀렸는데, 그래도 움직여야겠지?”
박현아가 한 차례 기지개를 켜고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학살이 벌어졌다.
촤아아악!
팔과 다리 따위의 신체 부위 수십 개가 하늘을 난다.
절단면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사방을 적셨다.
박현아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슬래셔 무비 뺨치는 살육의 향연으로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키아란은 멍하니 난무하는 피와 살점을 지켜봤다.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차 한잔 마실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모든 용사가 죽었다.
“이야! 이 새끼들 완전 이벤트 몹(MOB)이네! 무슨 경험치를 이렇게 많이 줘?”
박현아는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레벨이 오른 덕에 여간 신나는 게 아니었다.
“대충 주변 정리도 끝났겠다. 슬슬 이야기를 진행해 볼까?”
어느새 부하를 모두 죽이고 자신에 다가오는 박현아.
그녀를 보며 키아란은 입안에 숨겨뒀던 약을 깨물었다.
까득-!
약이 부서지며 그의 몸 안에 새겨진 술식이 발동한다.
“박현아…”
“야야! 무슨 짓이야!? 안 돼!”
다급히 달려온 박현아가 치료 마법을 걸었으나, 이미 늦었다.
한번 발동된 술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먼저, 가서… 기다리…”
키아란이 고개를 떨궜다.
심장이 완전히 멈춘 것이다.
“하아, 이래서 가트렌 새끼들이 싫다니까.”
박현아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녀는 인간의 모든 기득권 세력을 싫어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가트렌을 혐오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
박현아는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해 일행을 이동시켰다.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산에 위치한 통나무집.
이곳은 과거 그녀가 제국과 싸우던 시절에 이용하던 안전가옥 중 하나였다.
“후우… 감사합니다.”
아벨슨의 치료 덕에 몸을 회복한 최현석이 허리를 90도 숙였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박현아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인사는 됐어. 나도 네 덕에 살았으니까.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거지.”
“예?”
“네가 말했잖아. 머리 위와 발아래를 조심하라고.”
최현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솔직히 말하고 나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하니, 그제야 사령술 사건 이후 레이드런과 통신을 주고받은 게 기억났다.
“알고 보니 그 새끼들이 나 담그려고 준비 중이었더라고. 그런데 네가 알려준 덕에 급하게 계획을 실행한 거야.”
제4군단 본부 내에 박현아를 잡기 위한 계획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최현석이 레이드런을 통해 위기를 알렸고.
통신을 감청하고 있던 적은 하는 수 없이 다급하게 미완성된 계획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짜 조금만 더 늦었으면 꼼짝없이 뒤질뻔했다.”
만약 최현석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시간이 흘러 계획이 완전히 완성됐다면, 박현아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잠시만요. 그러면 레이드런 님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뭔 소리야?”
“통신을 감청했다면 놈들도 레이드런 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거 아닙니까!”
어쨌거나 박현아에게 최현석의 말을 전해준 건 레이드런이다.
계획을 방해한 죄로 레이드런을 해코지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박현아의 반응은 담담했다.
“안다고 쳐도 뭐 어쩔 건데.”
“예?”
“소대가리한테 무슨 죄목을 적용할 거냐고.”“그거야 어떻게든…”
박현아가 혀를 찼다.
“모르겠어? 애초에 뒤가 구린 건 마왕이야. 어쨌거나 나는 정식 군단장이었고. 마왕은 그런 군단장의 뒤통수를 치려 했던 거라고. 이게 밝혀지면 오히려 곤란해지는 건 마왕일걸?”“하지만… 레이드런 님이 저와 대화한 걸 알면 문제 되지 않겠습니까?”“이 새끼 은근히 자의식 과잉이네.”
박현아가 피식 웃었다.
“야. 너는 그냥 탈영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
“적이랑 내통한 것도 아니고, 사단장이 고작 탈영병 하나랑 연락했다고 뭘 어떡할 건데?”
“아…”
너무 오랫동안 쫓기다 보니 당연히 마왕군도 자신을 쫓을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신성 제국 말고는 최현석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소대가리 빽(back)이 좋잖아.”
“백이 뭡니까…?”
“뒷배가 든든하다고. 제5군단장 오즈게스도 소대가리거든. 걔가 아마 삼촌이었나? 아무튼, 둘이 엄청 친해.”
“아하.”
제5군단장과 레이드런이 친척 관계였다니.
그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아무튼, 소대가리 걱정은 안 해도 돼. 안 그래도 주둥이 년이랑 내가 빠져서 전력에 공백이 생겼어. 이런 때에 마왕이 더 분란을 만들 리는 없고, 그냥 조용히 덮겠지.”
사실 지금 이렇게 태연하게 말하는 박현아도 최현석과 비슷한 걱정을 했었다.
그녀가 레이드런이 있는 8사단을 떠나기 전.
자신을 보호해준 것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걱정하자 레이드런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소대가리 이야기는 됐고.”
박현아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너는 어떻게 지냈냐. 꼴을 보니 여전히 가는 곳마다 사건이 끊이질 않는 것 같은데.”“이야기가 좀 길어질 텐데 괜찮겠습니까?”“편하게 말해. 이제 남는 게 시간인데, 뭐.”
“알겠습니다.”
최현석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벨슨에 관한 것과 신성 제국 가트렌에 얽히게 된 이야기.
마왕군을 떠나고 사령술을 목격한 것.
가트렌에서 용사를 세뇌시켜 군대를 만드는 것까지.
그동안의 여정을 따라 하나하나 설명하다 보니 제법 시간이 흘렀다.
“흐음, 그동안 너무 처박혀서 지냈나…”
모든 이야기를 들은 박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그놈들이 용사라면 그 프로젝트는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나 보네. 그거 옛날부터 하던 거였거든.”
“그랬습니까?”
“어. 아직 가트렌이랑 싸우기 전인데, 그 새끼들이 나도 살살 구슬려서 그렇게 만들려 하더라고.”“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바로 눈치 까고 조졌지.”
“아…”
어떻게 보면 그 사건이 박현아와 신성 제국의 사이가 본격적으로 틀어진 계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너한테 진 빚은 이걸로 갚은 거다.”
박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려는 그 모습에 최현석이 당황하며 그녀를 불렀다.
“그… 박현아 씨…?”“이 새끼가 뒤질라고. 누나라 부르라 했지.”“나이는 제가 더 많아 보이는데요.”“아가야. 내가 이 좆같은 땅에서 구른 시간만 족히 십오 년은 넘었다.”“… 누님으로 타협하죠.”“쓰읍, 뭐 그러자.”
누님은 어쩐지 나이가 들어 보여서 별로였지만, 딱히 틀린 것도 아니기에 그러려니 했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외모는 20대 중반이지만, 실제 나이는 훨씬 많았으니까.
“저, 누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
최현석이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제 스승님이 되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응?”
박현아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