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6화(16/273)
첫 사냥 이후, 3주가 흘렀다.
그동안 최현석은 하루도 쉬지 않고 조리병들과 함께 사냥했다.
첫날에만 무려 22레벨을 올렸던 최현석은 이후로도 쭉쭉 성장했다.
“하아… 진짜 힘들었다.”
물론, 사냥은 쉽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를 넘긴 것만 해도 수십 번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시간들.
최현석은 오직 살기 위해서 그 시간들을 견뎌왔다.
그 결과.
“드디어 100 레벨이네.”
최현석은 마침내 100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감회에 젖은 눈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예비 용사
▫레벨 : 100
·근력 : 54
·민첩 : 51
·체력 : 53
·마력 : 50
·카리스마 : 26
·보너스 포인트 : 0
▫용사 포인트 : 200
▫능력 : 곡괭이질(C), 통솔(E), 요리(F)
▫스킬 : –
전반적으로 눈에 띄게 상승한 능력치들이 보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최현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100 레벨을 달성하는 데 3주나 걸릴 줄은 몰랐다.
첫날 잠깐 싸운 것만으로 20 레벨이 넘게 올랐으니까.
단순 계산으로 치면 5일이면 도달할 수 있는 레벨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레벨이 오를수록 경험치 상승 폭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하루에 몇 레벨을 올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
“하아, 이렇게 개고생해서 레벨업 하는 용사가 나 말고 또 있을까?”“무슨 소리예요. 용사님 정도면 완전히 개꿀 빠는 거죠.”
“뭐…?”
최현석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내가 꿀을 빨아!?”
오늘만 해도 코끼리만 한 마수의 앞발이 눈썹을 훑고 지나갔다.
만약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으면 앞발은 눈썹이 아니라 머리를 훑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랬으면 지금쯤 조리병들이 춤을 추면서 내 시체로 수육을 삶고 있었겠지! 그런데 이게 개꿀이라고? 엉!? 뚫린 입이면 다냐!?”“흠흠! 듣고 보니 개꿀이라 하긴 좀 그렇네요… 그래도 성장 속도가 엄청난 건 사실이잖아요?”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말에 최현석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당연하죠! 사냥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벌써 레벨이 100이라구요. 이건 진짜 미친 속도예요.”
레벨업 속도라는 게 워낙 개인차가 크기에 딱 잘라서 일반적인 수준을 말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최현석의 성장 속도가 상식을 벗어났다는 것은 확실했다.
“보통 용사가 레벨 100이 되려면 적어도 반년은 부지런히 사냥해야 할걸요?”“그나마 위로가 되긴 하네.”
100 레벨에 반년이 걸린다니.
비록 늦게 레벨업을 시작했지만, 최현석은 이곳에 온 지 아직 2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굉장히 빠른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라헬. 이 정도 레벨이면 결투에서 이길 수 있을까?”“흐음… 글쎄요. 애초에 레벨이란 건 용사 전용이라서요. 강함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척도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죠.”“그래? 그럼 혹시 제일 강했던 용사의 레벨이 몇이야?”“제일 강했던 용사의 레벨이요?”“어. 그걸 알면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조금은 감이 잡힐까 해서.”
“으음… ”
잠시 생각하던 라헬이 말을 이었다.
“제 기억으로 마왕에게 도전했던 마지막 용사의 레벨이 대충 2000은 넘었을 거예요.”
“이천!?”
생각보다 높은 레벨에 최현석이 깜짝 놀랐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십 년 넘게 노력한 결과였으니까요.”“하아… 아무리 그래도 갈 길이 멀긴 하네.”“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용사님은 이제 시작이잖아요.”
라헬이 최현석을 위로할 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사육사 최현석.”
들어온 마왕군이 대뜸 최현석을 부른다.
보보의 등에 엎드려 있는 최현석은 벌떡 일어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군단장님의 호출이다.”
***
마왕군 제3군단의 군단장 헤미스.
최현석에게는 주로 입술 괴물로 불리는 고위 마족이다.
“군단장님. 최현석이 왔습니다.”
“들어와.”
여전히 목소리 하나만큼은 정말 아름다운 미성이었다.
안내한 마왕군과 함께 헤미스의 집무실로 들어선 최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갑자기 왜 부른 거지?’
오랜만에 찾아온 그녀의 집무실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넓은 공간에 덜렁 놓여있는 집무용 책상과 의자가 가구의 전부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책상 위에 요염하게 걸터앉은 헤미스가 입을 열었다.
“잘 왔어. 최현석. 얼굴이 전보다 좋아 보이네. 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나 봐?”“모두 하늘 같은 군단장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오호호!”
최현석의 습관성 아부에 헤미스가 웃었다.
“그래. 요즘 매일같이 조리병들이랑 사냥을 간다지?”“예! 보보 님께 신선한 마수 고기를 전해드리기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그 덕분인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제법 강해졌어. 마력량도 배 이상 늘어난 것 같고.”
헤미스는 단번에 최현석의 상태를 알아봤다.
최현석은 내심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수를 사냥하며 약간의 성취가 있기는 했습니다.”“그랬구나. 그래도 성장이 너무 빠른 편인 것 같은데. 역시 용사의 레벨업 덕분인가?”“예! 레벨업 덕분에 능력치를….”
최현석이 돌연 눈을 부릅떴다.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용사. 레벨업.
최현석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결코 헤미스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오호호!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마. 해코지하려고 부른 게 아니니까. 네가 용사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든.”
“예?”
처음부터 자신이 용사인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니.
깜짝 놀란 최현석이 저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과 싸워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정도는 기본이지.”
“죄송합니다.”
“오호호! 죄송할 것까지는 없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던 헤미스가 돌연 정색을 하더니 ‘나도 사실 그년 때문에 알게 된 거니까.’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최현석은 순간 의문이 들었다.
‘그년이 누구지…?’
헤미스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하는 것 같은 존재.
궁금증이 일었으나, 금세 머릿속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너를 왜 불렀을까?”
“그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최현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보보 님의 교육 때문입니까?”
헤미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제 결투 때문에…?”“정답! 우리의 약속이 뭔지 잊은 건 아니겠지?”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헤미스는 최현석을 보호한다.
대신 최현석은 헤미스가 지정한 상대와 매달 결투를 벌여야 한다.
만약 결투에서 패배한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아, 혹시라도 결투에서 패배한다면 편하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장담하는데 죽고 싶은 기분이 뭔지 뼈저리게 알게 될 거야.”
아마 이전에 헤미스가 했던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그래. 대충 일주일 정도 남았나? 너는 그 안에 오크 쿠르켄과 싸워서 이겨야 해.”
“예.”
“그런데 말이야…”
순간 헤미스의 혓바닥이 붉은 입술을 훑었다.
“너무 안일한 거 아냐?”
“예…?”
“경각심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말이야.”
최현석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제가 워낙 무지해서 군단장님의 혜안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내가 말했지? 네가 용사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런 내가 과연 용사의 비상식적인 성장 속도를 몰랐을까?”
“…”
최현석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최현석.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너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살아남았고, 빠르게 강해지고 있지. 여러모로 나를 즐겁게 해주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헤미스가 걸터앉은 책상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다가온 그녀가 얼굴을 바짝 들이민다.
내쉬는 숨결이 최현석의 귓가에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고작 이 정도가 네 전부라면 나는 실망할 거야… 그리고 너는 죽겠지.”
헤미스가 속삭이듯 말했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마력이 새어 나왔다.
“좀 더 발버둥 쳐줘. 나를 위해서. 알겠니?”
최현석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마치 비를 맞은 것처럼 온몸이 흠뻑 젖었다.
“명심…”
최현석이 최대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입을 뗐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단장님.”
***
헤미스와의 면담 이후.
보보의 집으로 돌아온 최현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헤미스와 나눴던 대화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갔다.
“헤미스는 내가 용사라는 걸 안다. 그리고 용사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지.”
“그렇죠.”
“그런데도 결투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줬어. 어째서일까?”“용사님이 강해져서 결투에서 이기길 바라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라헬의 말에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야. 나는 지금 헤미스에게 재미있는 장난감일 테니까. 더 살아남길 바라겠지.”“그러면 다행이네요!”“아니. 전혀 다행히 아니야. 오히려 위험하지.”
“왜요?”
“스포츠에서 제일 재미있는 상황이 뭔지 알아?”
최현석의 뜬금없는 물음에 라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일 재미있는 상황이요?”“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반전이 일어날 때가 제일 즐겁더라고.”
최현석은 프로 격투기 선수였다.
하지만, 프로 선수 이전에 열렬한 격투기 팬이기도 했다.
“매일매일 경기를 관람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질리는 시점이 와. 이건 어떤 스포츠든 마찬가지지.”
“왜요?”
“뻔하거든. 어차피 이기던 놈이 이기니까. 물론, 스타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즐겁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게 있어.”“그게 바로 반전이다?”“그래. 예상치 못한 전개. 언더독. 새로운 스타의 탄생.”“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라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러니까 뻔한 것보다는 신선한 게 재미있다는 거잖아요?”“쉽게 말하면 그렇지.”“그런데 그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관계예요?”“아까 말했지? 나는 헤미스한테 재미있는 장난감이라고.”
“네.”
“그럼 헤미스 입장에서 제일 재미있는 그림은 뭐라고 생각해?”
“그건…”
라헬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현석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가 질 수밖에 없는 경기에서 이기는 거겠지. 이건 바꿔 말하면.”“용사님이 질 수밖에 없는 판을 짠다.”“맞아. 애초에 헤미스는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강요할 거야.”
최현석은 확신했다.
헤미스 본인 입으로 말했으니까.
“내가 말했지? 네가 용사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런 내가 과연 용사의 비상식적인 성장 속도를 몰랐을까?”
헤미스는 용사의 성장 속도를 알면서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줬다.
어째서일까?
답은 간단하다.
애초에 한 달 성장한 정도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순적으로 헤미스는 최현석이 이기기를 바란다.
오직 재미를 위해서.
최현석이 예상을 깨고 경기에서 이기는 장면은 헤미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퍼즐이 맞아 들어가.”
지금껏 은연중에 가져왔던 의문들이 해결되는 느낌이다.
어째서 인간인 자신을 그리 쉽게 마왕군에 받아줬을까?
어째서 기껏 받아줘 놓고서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보보의 사육사로 배정했을까?
어째서 일개 인간에 불과한 자신의 행보에 그리 관심을 가질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이 보였다.
“그저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했던 거야.”
언제든지 망가져도 상관없는 장난감.
그것이 현재 최현석의 위치였다.
최현석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대로는 안 돼.”
“그럼 이제 어떡해요?”“일단은 계속 사냥하면서 성장해야지.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뭔데요?”
“정보 수집.”
최현석이 용사 상점을 열었다.
“단순히 레벨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안 돼. 상대인 쿠르켄이 어떤 놈인지. 얼마나 강한지. 어떤 기술을 쓰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최현석이 그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경기 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상대방에 대해 분석하는 거야.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잖아?”“용사님. 어쩐지 오늘은 조금 멋져 보이네요.”
“그래?”
“네! 처음으로 용사님이 똑똑한 사람처럼 느껴져요!”“그 말은 안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지…”“그래서 용사님! 어떻게 정보를 모으고 분석할 생각이에요?”“그건 생각해 둔 게 있어.”
최현석이 용사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이템’란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구매했다.
“이거야.”
“이게 뭐죠..?”
최현석이 구매한 아이템을 본 라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전투력 측정기.”
“예…? 전투력 측정기요…?”
최현석이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걸로 정보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