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63)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63화(163/273)
같은 시각.
최현석과 아벨슨, 보보는 은신처인 동굴에 모여 있었다.
“지금 뭘 하시는 거죠…?”“잠시만 기다리십쇼.”
최현석은 뜬금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동굴 한쪽 구석에 무른 흙이 있었는데, 마치 개가 빙의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그곳을 팠다.
“후우… 찾았다.”
한참을 파 내려간 최현석이 마침내 허리를 폈다.
그가 꺼낸 것은 처음 보는 노란색 과일.
최현석은 그 과일을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가져왔다.
“아벨슨 씨. 이게 뭔 줄 아십니까?”
“아니요.”
아벨슨은 최대한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한심하다는 표정이 드러날 것 같았다.
‘마수와 싸우다 미친 건 아니겠지…?’
최현석은 세계를 구할 용사다.
그런 용사의 정신이 나가버리는 것은 그녀에게 크나큰 문제였다.
“흐흐흐… 이게 말입니다! 아주 기가 막힙니다!”
최현석이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과일을 쓰다듬을 때였다.
옆에 있던 라헬이 과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내놔!”
“이게 미쳤나! 어디서 침을 바르려고!”
최현석이 벼락같이 손을 휘둘러 라헬을 패대기쳤다.
동굴 벽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처박힌 라헬.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과일에 꽂혀 있었다.
“요, 용사님… 한 입만…”“기다려 줄 테니까.”“시키는 건 뭐든 할게요…”“그럼 숨을 참아. 대충 1시간 정도만 참으면 줄게.”
“넵…”
라헬이 손으로 코를 움켜잡는다.
아벨슨은 멍하니 둘의 모습을 지켜봤다.
‘미쳤어. 쌍으로 미친 게 분명해.’
아무래도 최현석과 라헬이 같이 미쳐버린 것 같았다.
그때 최현석이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크흠, 이 과일로 말할 것 같으면, 잠시 예전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네?”
“여기 온 지 딱 1주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최현석은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고기도 못 구워 먹고… 먹을 거 더럽게 없네.”
매일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마수와 사투를 벌이던 최현석.
그는 우연히 한 나무 꼭대기에 달린 노란색 덩어리를 발견한다.
“라헬. 저게 뭐 같아?”“글쎄요. 과일 아닐까요?”
“가져와 봐.”
“네.”
호기롭게 날아간 라헬은 자신의 몸통만 한 과일을 낑낑대며 날랐다.
“끄응… 더럽게 무겁… 으악!?”
부들부들 떨며 날개를 펄럭이던 라헬이 실수로 과일을 놓치고.
퍽!
바닥에 떨어진 과일은 하필이면 바위에 부딪혀 껍질이 깨졌다.
그 순간, 세상 달콤한 향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용사님… 엄청 달달한 향이 나요…”
최현석과 라헬은 홀린 듯이 과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과일이 모두 뱃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제가 살면서 먹어본 과일 중에. 아니! 먹어본 모든 음식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최현석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맞아요! 아주 미친 맛이라구요!”
라헬도 눈을 부릅뜨며 거들었다.
아벨슨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이게 그 과일이란 거죠?”“예! 하지만, 이 과일에는 한 가지 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아벨슨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예의상 물었다.
“그건 제가 처음 과일을 발견하고 다시 열흘 정도가 흘렀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최현석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
“흐흐… 라헬! 찾았어! 찾았다고!”
처음 노란색 과일을 먹은 이후.
최현석과 라헬은 매일매일 과일을 찾기 위해 온 숲을 헤집었다.
그 결과, 열흘 만에 다시 과일을 찾을 수 있었다.
“끼히힛! 용사님. 이건 아껴먹어요! 저번엔 홀랑 다 먹어버려서 맛도 제대로 못 느꼈다고요!”“그래. 매일 조금씩 아껴먹자!”
전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으나, 둘에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둘은 오직 과일을 찾았다는 기쁨에 순수하게 웃었다.
최현석과 라헬이 과일을 먹을 생각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던 그때.
“야. 좋은 거 들고 있네?”
뜬금없이 박현아가 나타났다.
“이거 마수들도 노리는 거라 쉽게 찾기 힘들 텐데, 어디서 찾았냐?”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더니 과일을 낚아챘다.
아그작!
단숨에 과일을 베어 물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으음~ 이 맛이지.”
순식간에 과일을 먹어 치운 박현아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야. 다음에 또 구하면 말해라.”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바닥에는 과일의 껍질만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최현석과 라헬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시발… 시바알! 내가 그걸 어떻게 찾았는데!”“용사님. 죽일까요? 아니! 그냥 죽이죠! 배를 갈라서 과일을 꺼내요! 아직 소화가 덜됐을지도 몰라요!”
불행히도 박현아의 귀는 어디에나 있었다.
“방금 뭐라 했냐? 지금 배를 갈라 달라고?”“아핫! 노, 농담입니다… 헤헤…”
이곳은 약육강식의 세계.
마수의 땅 이네모시트.
강하지 못하면 과일도 지킬 수 없었다.
“저는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립니다…!”
“저도예요!”
이야기를 끝낸 최현석이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었다.
라헬 또한 옆에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호응했다.
“그 여자! 다음에 만나면 가만 두지 않을 거라구요!”“아, 네… 힘드셨겠네요…”
위로의 말과는 달리 아벨슨의 얼굴은 한심하다는 감정을 한껏 표출하고 있었다.
그것과 더불어 그녀의 시선에는 약간의 혐오감도 깃들어 있었다.
‘회생불능이야.’
이미 돌이키기엔 늦어버린 게 아닐까.
둘은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
갑자기 최현석이 소리를 질렀다.
“우연히 이걸 다시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은신처로 돌아와 땅을 파고 숨겼죠!”
손짓, 발짓을 동원해 어제의 상황을 설명한 그가 사랑스러운 얼굴로 과일을 쓰다듬었다.
라헬 또한 과일 옆으로 다가와 얼굴을 비볐다.
“후우,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이에요. 이것마저 뺏겼다면… 라헬은 죽어버렸을지도 몰라요!”“아, 네… 다행이네요…”
아벨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서, 과일 이야기는 전부 끝났나요?”“아니요. 아직 남았습니다.”
“또…?”
아벨슨이 대놓고 지루하다는 얼굴을 했으나, 최현석은 마이페이스로 이야기를 밀어붙였다.
“제가 어제 이걸 구하면서 뭘 봤는지 아십니까?”“딱히 알고 싶지 않네요…”“이거랑 비슷한 과일이 무려 열 개! 열 개나 달려 있었습니다!”“와… 대단하네요…”“그렇죠! 하지만, 더 가져올 수는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무시무시한 마수가 지키고 있어서…”
최현석이 말을 하며 은근히 아벨슨의 눈치를 살폈다.
아벨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지금 그 과일을 구하러 가자고 말하려는 건….”
“바로 그겁니다!”
최현석이 벌떡 일어났다.
“박현아가 없는 지금!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당장 과일을 구해서 이곳에 숨겨야 합니다!”“최현석 씨. 일단 진정하세요. 고작 과일에 목숨을 거는 건 미련한 짓이에요.”
“크왕!”
보보 또한 아벨슨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힘차게 짖으며 주둥이를 끄덕였다.
“고작 과일이라니! 아닙니다!”
최현석이 자리에 다시 앉아 조심스럽게 과일을 내밀었다.
“이걸 맛보시면 아벨슨 씨와 보보의 생각이 바뀔 겁니다.”“아무리 그래도…”
아벨슨은 의문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 해도 사람이 저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는 걸까.
‘과일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다고.’
그러면서도 내심 호기심이 생기기는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저렇게까지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조심히…”
최현석이 마력으로 조심스럽게 과일을 갈랐다.
그 순간.
화아아아~
동굴 전체에 달콤한 향기가 퍼졌다.
아벨슨과 보보가 눈을 부릅뜨고 과일을 바라봤다.
“어허! 안됩니다. 공평하게 분배할 테니 기다리세요.”
최현석은 과일을 정확히 네 조각으로 나누고, 보보와 아벨슨에게 한 조각씩 주었다.
그리고는 남은 두 조각 중 하나를 크게 한입 베어 물더니 라헬에게 건넸다.
절반만 남은 과일을 건네받은 라헬이 도끼눈을 떴다.
“왜 나만 작은 거 줘요!”“너는 체구가 작잖아. 똑같이 나누면 불공평하지!”“개소리하지 마요! 저도 공평하게 달라구요!”“어허, 찡찡대지 마.”“저도 똑같이 나눠 달라구요! 저도 똑같이 나눠 달라구요! 저도 똑같이 나눠 달라구요!”“자꾸 그러면 남은 것도 뺏어 먹는다.”
“히잉…”
라헬이 눈물을 찔끔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있던 그녀가 과일을 한입 먹더니 활짝 웃었다.
“끼히힛… 너무 맛있어!”
가장 작은 조각을 받았다는 서러움 따위는 순식간에 잊히는, 말 그대로 천하일미!
최현석 또한 자신의 과일을 베어 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이거야…”
“용사님. 이 과일이 있다면 마카롱
따위 평생 먹지 않아도 좋아요.”“비교할 걸 비교해라.”“그렇죠? 제가 실수했네요. 히힛!”
한심한 소리를 진지하게 지껄이는 둘을 보며 아벨슨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 나도…’
아벨슨이 슬며시 입을 벌린다.
그리고는 노란색에 선홍빛이 섞인 과일의 속살을 한입 베어 물었다.
“이건…!”
그녀는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쿠르르르릉!
아니, 정말 벼락이 치고 있다!
뇌 안쪽에서 저릿저릿한 느낌에 아벨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과일이 사라지고 없었다.
“…”
아벨슨과 보보가 서로를 바라봤다.
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출발하죠.”
노란색 과일 수집 원정대가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
“작전은 이렇습니다.”
과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최현석이 작전을 설명했다.
“저와 보보가 마수의 시간을 끌 테니 그사이 아벨슨 씨와 라헬이 과일을 따서 도망치는 겁니다.”“그냥 마수를 사냥하면 안 되나요? 셋이라면 어지간한 마수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벨슨의 제안은 일견 합당해 보인다.
일행은 모두 이네모시트의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각자의 역할을 할 만큼 강해져 있었으니까.
하나, 최현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무리입니다.”
“어째서죠?”
“감입니다.”
“감…?”
“그 마수한테서 느껴지는 마기가 보보를 가뿐하게 뛰어넘었습니다. 아무리 셋이 모여도 정면 승부로는 힘들 겁니다.”“으음… 알겠어요.”
유일하게 마수를 직접 목격한 최현석의 말이다.
게다가 강자의 냄새만큼은 귀신같이 맡는 그였기에 더욱 신뢰가 갔다.
“먼저 놈의 외형을 설명하겠습니다.”
최현석이 나뭇가지를 들고 흙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전반적으로 살찐 오크 같은 느낌입니다. 체구가 훨씬 크긴 하지만.”“오크라면 마수가 아니라 마족
아닌가요?”“으음, 하지만 마족이 여기 살고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오크라기엔 체격이 너무 컸습니다. 근육이 없이 뚱뚱하다는 것도 이상하고. 원래 오크는 엄청 근육질이거든요.”
“아…”
“아무튼, 외형은 살이 뒤룩뒤룩 찐 오크를 닮았다는 것 외에 특별할 게 없고. 능력은…”
최현석이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내 생각 정리가 끝난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은 모릅니다.”
“네…?”
“놈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딱히 능력이랄 게 없었습니다.”
“…”
“그냥 몽둥이로 후려 패서 죽이는 게 다입니다.”
최현석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농담처럼 들리시겠지만, 저는 지금 진지합니다. 그놈이 몽둥이를 휘두르는 장면을 아벨슨 씨가 봤어야 하는 건데…”“맞아요! 한 대 맞으면 쥐포 되기 딱 좋다구요!”
옆에 있던 라헬이 거들었다.
“혹시라도 놈이 아벨슨 씨를 따라오면 상대할 생각 하지 말고 도망가십쇼.”
“네…”
“정말입니다. 그때는 과일이고 뭐고 다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튀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 후로 이동을 하면서도 최현석은 계속해서 다짐을 받았다.
“꼭! 꼭 도망쳐야 합니다! 꼭!”
계속되는 경고에 아벨슨의 짜증이 극에 달할 때쯤.
“쉿! 이 앞입니다.”
최현석이 멈춰서더니 자세를 낮췄다.
“저기 저 두 갈래로 나뉜 나무 보이십니까?”
“네.”
“저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과일이 보일 겁니다.”
“알겠어요.”
“저와 보보가 먼저 움직일 테니 아벨슨 씨랑 라헬은 몸을 숨기고 이동하십쇼.”
아벨슨과 라헬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야흐로 과일 서리 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오크 카드락.
그는 과거 마왕군 제3군단의 부군단장이었다.
부군단장 카드락이 이네모시트에 눌러앉은 이유는 그의 상관 헤미스 때문이다.
“카드락.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라 했지?”“머, 멍청한 놈, 입니다.”“그래~ 멍청한 놈. 그런데 그 멍청이가 여기 있네? 오호호호!”
군 내 부조리.
헤미스는 카드락을 지독히도 괴롭혔다.
카드락을 홀로 최전방에 내보내 싸우게 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부대가 후퇴하는 도중 방패막이로 세워두기도 했다.
이건 사실상 카드락에게 죽으라 명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카드락은 아득바득 살아남았다.
어떻게든 부대로 돌아와 다시 헤미스 옆에서 욕을 들었다.
“너는 참 명줄이 질기구나~?”
“가, 감사합니다!”
“멍청해서 그런가? 오백 년은 거뜬히 살겠어! 오호호호!”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 불합리한 명령은 거부하면 안 되냐고.
불행히도 카드락에게는 ‘명령을 거부한다!’ -따위의 선택지가 없었다.
헤미스가 너무 두려웠으니까.
가장 옆에서 그녀의 무력을 지켜본 카드락은 차마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부조리에 시달렸다.
그러다 그가 결정적으로 군을 벗어나게 된 사건이 발생한다.
“헤, 헤미스님.”
“왜?”
“이, 이, 인간이 쳐, 쳐들어….”“카드락. 내가 말 더듬지 말라 했을 텐데?”
“죄, 죄송합니다.”
“흐응~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니? 그런 거지?”“그, 그, 그게 아니라…”
그날도 카드락은 욕을 먹었다.
사실 카드락도 말을 더듬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원래 말을 자주 더듬는 편이긴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헤미스 앞에만 서면 긴장됐던 터라 평소 말 더듬는 버릇이 더 심해진 것뿐이었다.
“오늘은 내 기분이 좋지 않아. 아침에 먹은 고기가 영 맛이 없었거든.”“죄, 죄송합니다…”
“혼자 나가서 막아. 못 막고 돌아오면 오늘 저녁은 너야.”
그 길로 카드락은 마왕군을 떠났다.
당시 쳐들어오던 인간은 무려 전설이 둘에 병사가 오만이 넘어가는 대군단이었다.
그런 대병력을 홀로 맞선다?
개죽음 확정이다.
그렇다고 못 하겠다 했다간 당장 저녁 거리가 되게 생겼으니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도망치는 수밖에.
“헤, 헤미스… 나쁜 년…”
그로부터 무려 200년이 넘게 흘렀건만.
여전히 헤미스를 생각하면 분노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내 보물… 나는 보물만 있으면 된다.”
아무튼, 이네모시트로 숨어든 카드락은 우연히 아주 맛난 노란색 과일에 대해 알게 되고.
이후 그 과일이 열리는 나무가 잔뜩 모여 있는 이곳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일대를 주름잡는 아주 강한 마수가 지키고 있었지만, 부군단장으로서 최전성기를 달리던 카드락은 목숨을 건 사투 끝에 놈을 죽일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보물이 열리는 나무를 지키는 것은 카드락의 삶이자 전부가 되어 있었다.
“내 보물… 건들면 죽인다…”
카드락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500살이 넘은 나이, 뚱뚱한 몸에 자글자글해진 피부.
하얗게 센 털이 듬성듬성 나 있었으나 그의 눈만은 여전히 서늘하게 빛났다.
“건들면…”
돌연 카드락이 두툼한 몽둥이를 내리쳤다.
“죽인다아아!”
콰직!
과일을 노리고 슬그머니 다가오던 마수의 머리통이 움푹 파였다.
‘슬리브라파’라는 이름을 지닌 마수는 숲의 약탈자라는 이명으로 불릴 만큼 약삭빠르고 잔혹한 마수였으나, 카드락의 몽둥이 앞에서는 한낱 똥개에 불과했다.
“달콤한 황금. 나만 먹는다.”
카드락이 과일을 한 움큼 베어 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순간.
“인간…? 인간 도둑!!!”
다른 나무에 접근하고 있는 마수와 그 위에 올라선 인간이 보였다.
과일을 따던 인간과 카드락의 눈이 마주치고.
“건들면… 죽인다아아!”
카드락의 신형이 빛처럼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