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6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65화(165/273)
“대충 이쯤에 설치해.”
“알겠습니다.”
박현아의 말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공간 이동 게이트를 설치하기 위한 전문 인력이었다.
‘더 안쪽에 만들면 좋긴 한데… 위험할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지.’
현재 박현아가 서 있는 곳은 이네모시트 초입.
최현석과 일행이 있는 곳은 그보다 좀 더 안쪽이다.
편의를 생각하면 안쪽에 공간 이동 게이트를 만드는 게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여러 위험이 따른다.
‘깊은 곳에는 내 마력을 느끼고도 덤비는 놈들이 나오니까.’
박현아의 마력을 뿌려두면 어지간한 마수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이네모시트 초입에서나 통하는 이야기.
이네모시트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그런 마력의 잔향을 무시하고 덤벼드는 마수가 나타난다.
최악의 경우, 강자의 냄새를 맡고 감당하기 힘든 놈들이 들러붙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조금 귀찮더라도 외곽에 게이트를 설치하는 게 옳았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요란해?”
박현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쪽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숲이 들썩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제법 먼 거리임에도 감지될 정도면 큰 소란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최현석과 아벨슨, 보보를 남겨둔 곳과 일치했다.
“이 새끼들. 무슨 사고 친 거 아니야?”
박현아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마침내 소란의 근원지에 도착하고.
박현아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 개판이야?”
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근방의 마수가 모조리 모였는지, 천 마리는 넘을 법한 마수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투력 10만이 넘는, 힘 좀 쓴다 하는 마수가 사방에 널려 있다.
심지어 전투력 20만이 넘는 까다로운 놈들도 종종 보였다.
그러나 가장 압권인 것은 그 모든 마수의 머리통을 깨고 있는 거대한 살덩어리다.
“오크? 저거 오크 맞지…?”
박현아가 거대 오크 카드락을 지그시 바라봤다.
“무슨 오크가 저렇게 커?”
보통 오크보다 두 배는 큰 체격에 살이 덕지덕지 붙어있으니 오우거가 아닌가 싶었으나, 아무리 봐도 오크가 맞았다.
박현아는 전투력 측정기로 카드락을 확인했다.
[ 전투력 : 336,200 ]무려 30만이 넘는 전투력.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저 정도면 군단장은 무리더라도 거의 전설이랑 맞먹는 수준인데…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지?”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의 전설은 전투력 30만에서 40만 사이.
마왕군 군단장은 40만에서 50만 정도다.
저 거대한 오크는 군단장급은 아니지만, 거의 전설에 준하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크에게 최현석 일행이 쫓기고 있었다.
“하아, 저 새끼는 또 뭘 한 거야.”
보보 위에 올라탄 채로 도망치는 일행을 보며 박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
“크라아아아!”
“캬아악!”
“이것들아! 그만 좀 따라붙어!”
최현석이 달려드는 마수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벌써 전투가 벌어진 지 1시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마수의 머리통이 깨졌으나, 숫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아아아!”
카드락은 여전히 미쳐 날뛰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게 처음보다 더 기세가 흉포해진 것 같았다.
‘마수가 온 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마수는 일행보다 카드락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놈은 몸에 과육이 잔뜩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카드락의 속도가 늦춰져 이렇게나마 도망치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진작 육포가 됐을지도 몰랐다.
“아벨슨 씨!”
“네!? 과일을 찾았나요!?”
아벨슨은 여전히 과일에 눈이 뒤집혀 있었다.
최현석이 아벨슨의 뺨을 후렸다.
찰싹-
뺨을 맞은 아벨슨의 눈동자에 점차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아벨슨 씨! 정신 차리십쇼!”
“어, 어…?”
“이러다 다 죽게 생겼습니다!”
“아…!”
그제야 아벨슨이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제가 왜 이러고 있죠…?”“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 돼지 오크를 어떻게든 떨쳐내야 합니다!”
현재 일행은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다.
보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일행이 보보 위에서 떨어지면 그 순간 죽음 확정이다.
“신성력으로 날려버릴게요!”“신성력은 안 됩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커요.”
“어째서죠?”
“신성력에 마수는 물러나겠지만, 저 돼지는 끝까지 따라올 겁니다.”
“아…”
“마수가 사라지면 오히려 놈의 추격이 수월해져서 따라잡힐 수도….”
최현석이 말하던 그때.
앞쪽에서 보보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마수가 나타났다.
“뿌우우우우!”
기괴하게 울부짖은 놈이 달려오더니 몸통 박치기를 시전한다.
덕분에 보보 위에 올라타고 있던 일행은 하늘을 날았다.
“으아아아!”
“꺄아악!”
빠르게 날아간 최현석은 하필이면 딱딱한 바위에 부딪혔다.
“아오… 삭신이야.”
사실상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아무리 최현석이라 해도 뼈마디가 쑤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인간! 잡았다!”
“이런 썅…”
어느새 오크 카드락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3m는 될법한 키에 체격이 큰 놈이 앞에 서 있으니 거대한 벽이 가로막은 기분이다.
“보물 도둑! 죽어라!”
카드락이 몽둥이를 휘두른다.
피하기는 이미 늦은 상황.
최현석은 마기를 활성화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되든 안 되든 싸울 수밖에 없었다.
레이드런식 격투술
제1형 – 초전박살(初戰搏殺)
다가오는 몽둥이를 향해 주먹을 뻗는다.
주먹과 몽둥이가 격돌하고.
이내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이 덮쳐왔다.
“커헉!”
최현석이 피를 토하며 또다시 허공을 날았다.
‘이건 반칙 아니냐고…’
분명 투기로 상쇄했음에도 엄청난 충격이 몰아쳤다.
몽둥이와 정면으로 부딪친 오른팔은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인간. 제법이다. 하지만 죽인다.”
순식간에 쫓아온 카드락이 재차 몽둥이를 들었다.
하늘 높이 올라간 몽둥이를 보며 최현석이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든 피해야 돼…!’
마지막 순간, 극한의 집중력이 발휘됐다.
떨어지는 몽둥이가 슬로 모션처럼 느릿하게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는 그보다 더 느렸다.
몽둥이는 차근차근 가까워졌고.
최현석은 여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점차 가까워지는 죽음.
하는 수 없이 양팔을 교차해 방어 자세를 취한다.
“너 뭐하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포니테일로 머리를 질끈 묶은 여성이 앞에 서 있었다.
“죽어라!”
콰아앙!
카드락의 몽둥이가 떨어졌다.
***
팔을 뻗어 몽둥이를 막은 여성, 박현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발… 더럽게 세네.”
마력을 제외하고 단순 신체 스펙은 자신과 엇비슷한 것 같았다.
거기에 거대한 체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힘이 더해져 제법 큰 충격이 느껴졌다.
“인간 여자. 누구냐.”“전 군단장님이시다. 새꺄.”
박현아가 검을 휘두른다.
카드락은 순간적으로 몽둥이를 들어 막았다.
몽둥이 너머로 느껴지는, 예사롭지 않은 충격에 카드락이 눈을 빛냈다.
“인간. 강하다!”
“내가 좀 세긴 하지. 그런데 넌 누구냐?”“크응…! 알 거 없다!”
탐색전을 끝낸 박현아와 카드락이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콰앙! 쾅! 콰아아!
검과 몽둥이가 부딪칠 때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카드락은 신들린 것처럼 몽둥이를 휘둘렀고, 박현아는 그 모든 공격을 막고 피하며 빈틈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파앗, 팟!
카드락의 피부가 베이며 핏방울이 튄다.
하나, 두꺼운 지방 탓인지 별다른 타격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카드락의 화만 돋게 만든 것 같았다.
“크아아아! 보물! 너도 보물을 노린다! 죽인다!”“진짜 엿 같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새끼가 튀어나와서!”
박현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급히 물러났다.
“야. 돼지. 너 진짜 뭐야? 마왕군 소속이야?”
갑자기 카드락이 우뚝 멈춰 섰다.
“아, 아니다! 카드락! 마, 마왕군 아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누가 보더라도 마왕군임을 숨기고 싶어 하는 마족이다.
박현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왕군에 저런 놈이 있었다고?’
그녀가 카드락을 자세히 살폈다.
‘나이는 노령이야. 인간으로 치면 최소 80대 이상. 다 죽어가야 할 새끼가 왜 이렇게 팔팔해?’
아마 500살은 넘은 마족일 것이다.
박현아가 마왕군에 몸담은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어쩌면 과거에 군단장이나 부군단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
그 순간, 어째서인지 과거 헤미스와 나눴던 대화가 스쳐 갔다.
“멍청한 놈들만 있어서 피곤해 죽겠다니까~ 일을 믿고 맡길 놈이 없어.”
군단장 회의 시작 전.
언젠가 헤미스가 투정 부리듯 말한 적이 있었다.
박현아는 옳다구나 싶어 시비를 걸었다.
“멍청하기는! 나처럼 부군단장한테 전부 시키면 되잖아.”
“흐응~ 부군단장?”
“듣자 하니 꽤 오랫동안 공석이라던데… 아차차! 너는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거랬나?”
박현아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제3군단의 부군단장 자리가 아주 오랫동안 공석이었고.
무언가 사정이 있는지, 아무도 그 자리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었을 뿐이다.
“하긴 네 지랄 같은 성격을 누가 감당하겠냐. 부군단장을 하고 싶은 놈이 있을 리가 없지.”
순간 헤미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너는 모르겠지만, 나도 부군단장이 있었단다.”“풉! 굳이 없는데 지어낼 필요 없어.”“오호호! 정말이란다. 나중에 도망치긴 했지만…”“부군단장이 도망을 쳐?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헤미스는 대답 대신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봐도 웃는 모습이었으나, 박현아는 알 수 있었다.
헤미스의 미소 속에 분노가 담겨있다는 것을.
“언젠가 그 돼지가 잡히면 오크 고기로 풀코스 요리를 할 거야~”
“…”
“도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아직 살아있어야 할 텐데…”
혀로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리는 헤미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박현아의 회상이 끝났다.
“그 주둥이년!”
눈앞의 거대 오크가 도망친 헤미스의 부군단장이라면 앞뒤가 들어맞는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야. 돼지! 헤미스가 너 찾더라?”“헤, 헤, 헤미스 님이!?”
카드락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빙고.’
박현아가 씨익 웃었다.
“그래~ 그 주둥이 큰 년. 잘 알지? 옛날에 네 상관이었잖아.”“아, 아, 아, 아니다. 나 카드락은, 모, 모른다! 그런 괴물! 모른다!”
카드락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물러났다.
그럴수록 박현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왜 말을 더듬고 그래? 응? 헤미스가 찾는다니까? 같이 마왕군으로 돌아가야지.”“우, 우, 웃기지, 마라! 나, 나는… 나는…!”
카드락이 패닉에 빠졌다.
무려 200년이 흘렀어도 헤미스에 대한 공포는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카드락에 안에서 조금씩 그의 마음을 좀먹었다.
언제 헤미스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잡히는 순간 저녁 식사 거리가 될 거라는 공포는 그의 마음속에서 200년간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나, 나는, 나, 나는, 나, 나는…”
카드락이 고장 난 로봇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
박현아가 검을 들었다.
“햐, 주둥이 년한테 도움을 받는 날이 다 있네.”
헤미스 덕에 일이 쉽게 풀렸다.
이대로 카드락의 목을 베면 상황은 종료다.
박현아가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그아아아아아아아!”
돌연 카드락이 엄청난 포효를 내질렀다.
살 아래 파묻힌 놈의 근육이 흉포하게 부풀어 오르고, 거친 마기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카드락 죽지 않는다… 살고 싶다!”
카드락이 몽둥이를 들며 박현아를 또렷이 노려봤다.
“살기 위해서. 너 죽어야 한다. 헤미스 알면 큰일이다.”“어… 이게 아닌데…?”“인간. 여기서 죽어라.”
카드락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