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69)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69화(169/273)
최현석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간 이동 게이트를 통해 오드리아 도시 국가 연합에 왔다.
이까진 좋다.
오드리아 연합 근방에서 사령술로 대규모 언데드 군단이 나타났고, 그걸 패퇴시키는 게 목적이니까.
“여기서 갑자기 돈을 뜯는다니. 전혀 연결이 안 되는데요?”“너 아까 내가 한 말 뭐로 들었냐?”
“예?”
“오드리아 연합은 상인의 나라. 모든 게 돈으로 굴러가는 곳이야. 심지어 왕이나 다름없는 시장 자리도 돈으로 사고파는 미친놈들이라고.”“아무리 그래도 돈으로 국가 수장을 사고파는 건…”
믿기 힘든 말이었다.
국가의 수장 자리를 거래한다니.
물론, 시민 의식이나 문화가 중세 수준인 이곳에서 민주주의나 투표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왕 자리를 돈으로 거래한다는 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거짓말 같냐? 시장만 그런 게 아니야. 12개의 도시 국가 연합장 자리. 5년마다 투표로 선출하는데, 그것도 결국 이권 싸움이라서 돈의 흐름으로 결정돼.”
박현아가 저 멀리 황금탑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즉, 이 나라에선 돈이 곧 권력이고, 명예고, 모든 것이다. 그만큼 돈이 중요하고 넘쳐나는 나라라는 거지.”
***
“그래. 나를 만나고 싶다 했다고?”
델로스의 시장 포크만.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포크만 상단을 운영하는 대상인이다.
그는 박현아의 말대로 돈으로 델로스 시장에 앉은 인물이었고, 현재는 오드리아 도시 국가 연합의 수장까지 겸하고 있었다.
“듣자 하니 요즘 언데드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던데.”
박현아가 운을 띄우자 포크만이 덤덤한 표정으로 받았다.
“안타까운 일이야. 지옥에서 돌아온 시체들로 인해 대륙 전체가 고통받고 있지.”“그래그래. 정말 안타까워. 그런데 오드리아 연합이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않아? 상황이 급박할 텐데.”“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에이~ 숨길 거 없어. 우리 연합의 자랑! 전설 케일드 벨! 님께서 엊그제 개털리시고 병상 신세잖아.”
박현아의 어투가 다소 공격적이다.
최현석은 슬슬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한 나라의 수장이나 마찬가지인데,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닌가…’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기사와 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뛰쳐나갈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기한 상태.
박현아가 아무리 전설적인 강자라 해도, 그녀를 구속할만한 수많은 마법진과 마도구, 실력자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포크만의 손짓 한 번이면.
아니, 포크만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뒤틀리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발동돼 일행을 구속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좀 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현석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리긴 뭘 사려?”
“이세계에 온 후로 제 인생 모토가 뭔지 아십니까?”
“뭔데?”
“강약약강입니다…!”“존나 멋진 모토네.”
박현아가 씨익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는 ‘약’이 아니야. 오히려 ‘강’이지.”
그때 앞에서 지켜보던 포크만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아, 잠시 내 조수가 보고할 게 있다고 해서.”
박현아가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며 말을 이었다.
“연합장님. 우리 까놓고 이야기하자고. 너희 전설 깨졌잖아?”“벨 경은 잠시 몸을 추스르고 있을 뿐. 아직 패배한 게 아니다.”“그래그래. 그렇다고 치자. 어쨌든 그 해골 새끼들 처리하기 껄끄러운 건 사실 아냐?”“으흠, 그건 그렇지.”
포크만이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러니까! 내가 처리해준다니까? 나 몰라? 신의 적대자! 혼자서 몇 년 동안 그 신성 제국 가트렌을 피똥 싸게 만든 년이라고.”
“…”
“내가 나서면 뼈다귀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 이거야.”
마침내 포크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일천 골드.”
“일천 골드라… 적당하군. 연합 전체 회의를 해서 결정하도록 하지. 델로스 혼자서 낼 수는 없으니 말이야.”
“무슨 소리야?”
박현아의 고개가 45도로 기울었다.
“연합에 소속된 도시 국가는 총 12개. 도시 하나당 일천 골드니까 총 일만 이천 골드지.”
“뭐, 뭣이라!?”
일만 이천 골드라는 말에 포크만이 벌떡 일어났다.
“장난하는 건가? 일만 이천 골드가 얼마나 많은 돈인 줄 알고!”“일만 이천 골드가 커?”
박현아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오드리아 연합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내 생각엔 일억 골드는 넘을 것 같은데, 그걸 일만 골드로 지킬 수 있다면 거저 아니야?”“그게 무슨 괴변이냐! 뭐라 떠든다 한들 일만 골드가 넘는 돈을 낼 수는 없다!”“아니, 누가 혼자 내래? 도시 하나당 일천 골드라고. 이 정도는 솔직히 낼 만하잖아? 너희가 세금으로 버는 돈이 얼마인데.”“필요 없다. 정 위험하면 가트렌에 도움을 요청하면 그만이다!”“호~ 우리 신성 제국 놈들께 도움을 요청한다. 좋지. 그럼 그렇게 해.”
박현아가 미련 없이 돌아서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가볼 테니 대단하신 제국 놈들 도움으로 잘 먹고 잘살라고!”
박현아가 최현석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걸어 나갔다.
키가 큰 최현석은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며 그녀를 따랐다.
“이대로 나가는 겁니까?”“그럴 리가 있냐 새꺄. 그냥 액션 취하는 거지. 가는척하면 마지못해 붙잡을 거야. 이 바닥이 원래 그래.”
“안 붙잡으면요?”
“… 좀 찌질해 보이긴 한데, 반으로 해서 육천 골드만 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박현아와 최현석이 속닥이며 알현실을 떠나기 직전.
“자, 잠깐! 그런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지 않나?”
포크만이 다급히 소리쳤다.
박현아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냐? – 그녀가 작게 속삭이고는 다시 정색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무슨 소리야? 우리 위대한 신성 제국 놈들한테 도와달라 할 거라며?”“후우… 귀찮은 기싸움은 그만두도록 하지.”
포크만이 피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의 거대한 체구를 감당하는 의자가 삐걱대며 비명을 토해냈다.
“연합 전체에서 일만 골드를 내도록 하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콜!”
박현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포크만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우선 연합 전체 회의를 거친 후에 정식으로… 는 안 되겠군. 비공식적으로 전달해 주지.”
박현아는 한때 신의 적대자라 불렸으며 아직도 가트렌에서 이를 갈며 쫓는 중이다.
그런 그녀와 무언가 교류가 있었다는 걸 가트렌 측에서 알게 되면 괜한 시빗거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게 포크만의 설명이었다.
“다 좋은데, 비공식이라면 너희가 입 싹 닦으면 끝 아니야?”“이래 봬도 오드리아의 연합장이다. 내뱉은 말은 지켜.”“뭐, 좋아.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온다.”
“그리해라.”
포크만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박현아와 만나기 전만 해도 세상 태평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
“그럼 간다! 일만 골드야! 내일 가서 딴소리하기 없기!”“알겠으니 그만 꺼져라!”
***
포크만 시장과 협상이 끝나고.
일행은 남은 하루 동안 델로스를 돌며 관광을 하기로 했다.
“델로스는 대륙에서 손꼽히는 관광 명소지. 규모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왕국의 수도보다 커.”“누님. 이렇게 탱자탱자 놀러 다녀도 됩니까?”
“그럼 뭘 하는데?”
“음… 내일 받을 돈에 관해서 의논하거나, 언데드 잡기 위한 작전 회의라거나. 이것저것 할 게 많지 않겠습니까?”“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네. 필요한 게 있으면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놀기나 하세요~ 이런 날이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
박현아가 손을 대충 휘저으며 앞서 걸어갔다.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관광을 즐길 생각인 것 같았다.
“맞아요! 용사님이 머리 굴려봤자 뭐 되는 것도 없는데 왜 걱정을 사서 하는…. 케, 켁! 수, 숨 막혀…”
라헬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최현석이 돌연 눈을 크게 떴다.
앞서 걸어가고 있던 박현아에게 훤칠한 남성 둘이 다가간 것이다.
그들은 담배로 보이는 것을 입에 문 채로 말을 걸어왔다.
“안녕. 혼자 왔나?”
“아가씨. 이국적으로 생긴 게 완전 내 스타일….”콰직-! 콰앙!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뻗어나간 주먹.
돌아보니 두 남자가 사이좋게 쓰레기 더미 위에 엎어져 있었다.
“죽은 겁니까?”
“살아 있어.”
“그럼 다행이긴 한데, 조금 너무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 좀 걸었다고 그렇게 패버리시면…”“시간 아깝잖아. 저런 놈들 끈질기다고.”
“…”
“됐고, 가자! 델로스 음식이 얼마나 유명한지 아냐!? 하루 만에 다 먹어보려면 시간이 촉박해!”
“옙!”
최현석이 잽싸게 따라붙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자신도 저기 쓰레기 더미 위의 남자들과 같은 꼴이 될 것 같았다.
‘그래. 어떻게 보면 이 세계에 와서 하는 첫 관광이잖아.’
무려 1년 동안 미친 듯이 구르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하는 관광이다.
최현석은 긴장을 풀고 가볍게 즐기기로 했다.
“누님. 여기 혹시 국밥은 안 팝니까?”“새끼가 델로스를 뭐로 보고! 당연히 팔지!”
“오오오!”
“국밥? 국밥이 뭔데요!?”“너랑은 정반대인 아주 든든~한 친구지.”“용사님! 그거 욕이죠? 그렇죠!?”
“크왕!”
“보보도 알아들은 걸 못 알아듣다니. 너도 어지간하다.”
왁자지껄 떠들며 길을 걷는 일행.
그 뒤를 따르는 아벨슨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다음날.
다시 황금탑으로 간 일행은 시장이자 연합장인 포크만으로부터 확답을 받았다.
“오드리아 연합에서 일만 골드를 내기로 하지. 조건은 언데드의 완전한 사멸이다. 기한은 일주일이다.”
“좋아!”
“가능하면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 피해가 가기 전에 처리해줬으면 좋겠군.”“빨리 처리하면 보너스 있나?”
“상황에 따라서.”
“쳇. 됐고 정보나 줘.”
언데드 무리와 관련된 정보를 받고.
일행은 곧장 길을 나섰다.
“누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언데드 처리했는데, 놈들이 입 싹 닦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번 일은 비공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문서 따위는 전혀 남겨 놓지 않았다.
언데드를 처리하고 나서 오드리아 연합이 ‘누가 돈을 준다 했나?’하고 발뺌해버리면 곤란해지는 것이다.
“간단하지. 엎어버리면 돼.”
“아…”
최현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질문을 이었다.
“혹시 이거 그 희망인가 뭔가 하는 수호 단체에서도 아는 겁니까?”“아니. 이건 내 부업인데. 뭐하러 말해. 말하는 순간 자기들도 나눠달라 할걸.”
“아아…”
최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나지만 이 인간도 참…’
악은 아니다.
그렇다고 선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은 철저하게 챙기는.
박현아는 그런 인물이었다.
“잠깐 집중해.”
돌연 박현아가 손뼉을 치며 이목을 모았다.
“적 정보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두 번 하기 귀찮으니까 한 번에 잘 들어.”
“옙.”
“일단 대략적인 규모는 오만. 지금도 세를 불리고 있고, 놈들의 수장은 마법을 전문으로 하는 리치다.”“오, 오만이요…? 그거 막을 수 있는 겁니까?”“어차피 지배 개체만 날리면 다 뒤질 놈들이야. 너도 싸워봤으니 잘 알 거 아냐?”“그건 그렇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오만이라니.
얼마나 많은 수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그만한 수를 뚫고 리치에게 도달할 수나 있을까?
그때 박현아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애초에 원래 숫자는 훨씬 더 많았어. 엊그제 전설 한 놈이 깽판 쳐서 거의 3분의 1이 날아간 숫자가 지금 오만이야.”
“아…”
“오드리아 연합에 케일드 벨이라는 놈이 있거든. 8년 전인가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나름 전설에서 중간치기는 하는 놈이야.”
박현아가 씨익 웃었다.
“물론, 지금은 내 밑이지만.”
“아, 예…”
“아무튼, 그놈이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리치 본인의 무력은 강하지 않은 것 같다. 일대일 승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네. 문제는…”
박현아가 턱에 손을 대며 인상을 찌푸렸다.
“쫄다구가 너무 강해. 호위하는 놈들 중에 영웅급만 거의 백은 되는 것 같더라고. 준전설급도 몇 있고.”
최현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영웅 백에 준전설 다수.
역시 이건 무리다.
절대 무리였다.
“역시 지금이라도 지원을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지원 같은 소리 하네. 우리가 그 지원군인데 더 지원 요청할 곳이 어디 있어?”“그 마지막 희망 어쩌고 단체에 연락하면…”“걔들 바쁘다. 그리고 인마. 네가 무슨 성인군자야?”
“예?”
갑자기 박현아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개꿀 경험치 이벤트가 떴는데 뭘 자꾸 나눌 생각을 해? 우리가 다 빨아먹어야지!”
용사로서 정점에 다가간 박현아.
“이런 빅 이벤트! 흔치 않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언데드 무리는 이미 경험치 무리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