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7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78화(178/273)
다음 날 아침.
최현석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그토록 고대하던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나도 아벨슨 씨처럼 쑥쑥 성장하겠지?’
이네모시트에 온 이후로 얼마나 배가 아팠던가.
최현석은 24시간 내내 잠도 못 자고 폐인처럼 사냥만 했다.
그에 비해 아벨슨은 비교적 편안하게 훈련을 했음에도 전투력 상승이 자신과 비견될 정도로 엄청나다.
그녀의 전투력이 벌써 근 16만에 도달한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불공정하다.
만약 사라 던피가 이끄는 언데드 무리와 싸우며 엄청난 레벨업을 하지 않았다면 전투력이 따라 잡혔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아벨슨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그녀도 나름의 노력은 했겠지만, 이런 성장 속도는 정말 이상했다.
‘이게 다 누님 때문이야.’
아벨슨과 최현석의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다.
박현아의 교육 지도.
거기에 성장의 비결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제 자신도 박현아의 교육을 받게 되었으니 앞으로 폭풍 성장할 일만 남았다.
“그래서. 뭘 배우고 싶은 건데?”
박현아는 짝다리를 짚은 채로 팔짱을 끼고 있다.
그녀가 삐딱한 시선으로 최현석을 올려다봤다.
“예?”
최현석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훈련 시켜주시는 거 아닙니까?”“너한테는 딱히 가르쳐 줄 게 없는데.”“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순간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이 튀어 나갔다.
“개 뭐? 다시 말해봐.”
박현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실수를 깨달은 최현석의 얼굴에 당혹이 어렸으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아벨슨 씨가 누님한테 교육받으면서 전투력이 수식 상승하는 걸 제 눈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해주십쇼!”“하아… 이 무식한 새끼.”
박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쪽 세계 주민이랑 우리랑 같냐? 너는 절대로 아벨슨처럼 성장할 수 없어.”“그게 무슨 말입니까?”“여기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으며 성장한다. 보통 ‘벽’을 부순다고 표현하지.”
박현아가 상태창을 열었다.
“용사는 달라. 벽 따위는 없지. 우리는 그냥 레벨 올리고 능력치 찍으면 그만큼 강해지는 거야. 그래서 너보고 죽어라 사냥하라 한 거고.”
“으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아벨슨은 상태창이 없고 실력이 향상되면 그게 곧 전투력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최현석은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래 그렇게 다들 성장이 빠른 겁니까?”
아무리 성장 시스템이 다르다 해도 너무 압도적인 속도다.
이 세계 주민이 다들 아벨슨처럼 성장했으면 세상의 태반은 영웅과 전설이었을 것이다.
박현아가 그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아벨슨은 예외야. 가진 잠재력과 재능에 비해 본인의 능력이 전혀 발달되지 않은 상태였지. 그래서 빠르게 벽을 뚫을 수 있도록 조언을 좀 해준 거야.”“이해가 잘 안 됩니다만.”“쉽게 말하면 성장이라기보단 제자리를 찾은 거야. 앞으로는 지금까지처럼 빠르게 성장하긴 힘들 거야.”“아… 이해했습니다.”
최현석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뭘 배웁니까? 빠른 레벨업 비결? 성장 팁?”“사실 너한테는 딱히 알려줄 게 없어.”“하지만, 누님은 저보다 훨씬 강하지 않습니까?”“그건 그냥 오래 살아서 그런거고.”
박현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각해 봐. 내가 너한테 뭘 알려줄까. 마법? 전에 말했듯이 네가 배워봤자 효율이 안 좋아.”
“…”
“전투? 솔직히 자존심 상하는데, 신체 스펙 떼고 보면 너나 나나 비슷해. 오히려 네가 나은 부분도 많지.”
전투에서 나은 부분이 많다는 말에 최현석이 히죽 웃었다.
“근접전만 놓고 보면 제가 더 강하다. 이런 말입니까?”
박현아가 고개를 45도로 기울였다.
“당장 뒤지고 싶다고?”
그녀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 아닙니다.”
“적당히 나대.”
“옙.”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한 박현아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너한테 필요한 건 사실상 계속 레벨업 하는 거지 이런 훈련이 아니야.”“그럼 어제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니 뭐니 하면서…”
최현석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날 박현아는 말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너도 종잇장 몸뚱이는 탈출했으니 슬슬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해야지.”
당장 대단한 걸 알려줄 것처럼 해놓고 다음 날 이렇게 태도가 바뀌니 서운할 수밖에 없다.
그 말에 무언가 생각난 듯 박현아가 손뼉을 쳤다.
“아, 잊고 있었네. 사실 너한테 부족하면서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긴 해.”
“그게 뭡니까?”
“투기.”
“투기요?
“네 투기. 전부 반쪽짜리잖아.”“음, 플로모트 말고는 완성된 게 하나도 없긴 하죠.”“일단 그것부터 마무리 짓는다. 내가 또 그쪽 방면으로는 전문가거든.”
투기의 완성도를 올리는 것.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마무리 지을 때가 됐다.
***
설리번 캠벨 윌러.
미국 출신의 용사인 그녀는 ‘마지막 희망’이란 뜻을 지닌 ‘울티문 페스’ 소속이다.
최근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최현석의 신체 검진을 했는데,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흐음…”
최현석의 몸에서 손을 뗀 그녀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별다른 점은 찾을 수 없네요.”
“그렇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상태가 악화되거나 한 건 아니니까요. 지금 상태만 유지해도 딱히 문제는 없을 거예요.”
“예. 감사합니다.”
최현석이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주치의가 돼버린 설리번이 그를 바라봤다.
“바로 가시는 건가요?”“쉴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죠!”“어머, 미스터 최는 정말 멋진 남자네요.”“하하하! 별거 아닙니다! 그저 용사로서의 본분을 다할….”팍!
순간 누군가 최현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지랄하지 말고 나와. 바쁘다.”“쳇, 오랜만에 폼 좀 잡겠다는데…”
구시렁대는 최현석을 보며 설리번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최현석은 박현아를 따라 오두막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는 아벨슨과 보보가 보였다.
“이번에는 어디입니까?”
“아그로스 왕국.”
“아그로스? 그건 또 어디입니까?”“처음 언데드 사냥했던 오드리아 도시 국가 연합 바로 옆이야.”
언데드 사냥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흘렀다.
일행은 기본적으로 이네모시트에서 훈련을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데드를 사냥해 왔다.
이렇게 많은 경험치를 얻을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레벨 : 1053
덕분에 최현석은 많은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이네모시트에서는 온종일 사냥해도 1레벨을 올리기 힘들었지만.
언데드 사냥을 나오면 하루 만에 몇 레벨씩 올랐기에 제법 많은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처음 만났던 리치. 이름이 사라 던피였나? 그쪽처럼 경험치 잔뜩 주는 놈들이 나오면 좋겠습니다.”“그러다 뒤진다. 지금도 미친 듯이 빠르게 오르는 거니까 욕심내지 마.”“아쉬워서 그러죠. 아쉬워서…”
그동안 언데드를 사냥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사라 던피가 굉장히 특이 케이스란 것이다.
그녀 이후로 상대했던 언데드 중 사라 던피만큼 강한 놈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약한 건 아니지만, 박현아의 도움이 있다면 무난하게 잡을 수 있을 정도.
비교적 쉬운 만큼 경험치가 적은 건 당연했으나, 최현석은 아쉬웠다.
“한 번만 더 그런 놈들 만나면 1,100레벨도 금방 찍을 것 같은데…’
최현석이 기대 반 걱정 반 섞인 마음으로 중얼거릴 때였다.
“뭘 자꾸 쭝얼대? 빨리 가자.”
어느덧 공간 이동 게이트 앞에 도착한 박현아가 소리쳤다.
뒤처져 있던 최현석을 서둘러 달려갔다.
“갑니다! 가요!”
이번에는 더 강한 놈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최현석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정리 끝났냐?”
박현아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 있고, 상처를 입은 듯 곳곳에 피가 얼룩져 있었다.
“예. 저는 끝났는데, 누님은 괜찮으십니까?”“이 정도는 침 바르면 나아.”
박현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레벨은?”
“7레벨 올라서 1,060입니다.”“오, 많이 올랐네.”
아그로스 왕국을 침략한 언데드를 물리쳐서 7레벨이 올랐다.
하루 만에 제법 많은 레벨을 올린 것이었으나, 최현석의 표정은 여전히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좋기는 한데 좀 아쉽네요.”
“뭐가?”
“한 번에 팍팍 올랐으면 해서요.”“이 새끼가 또 배부른 소리 하네.”
박현아가 혀를 찼다.
“레벨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하는 소리냐? 원래 너 정도 레벨이면 1주일에 1레벨만 올라도 감사합니다 해야 돼 새꺄.”
“그런 겁니까?”
“당연하지! 하여튼 재능충 새끼들은 복에 겨운 줄 몰라요.”
그렇게 말하는 박현아도 남들이 보기엔 재능충이었으나, 어쨌든 그렇다.
뭐든 자기 떡보단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됐고. 슬슬 정리하자. 돌아가서 투기 완성해야지.”
지배 개체를 쓰러뜨려 모든 언데드가 사라졌다.
이곳에 더는 볼일이 없다.
투기를 완성하는 작업이 아직 많이 남았기에 서둘러 돌아가서 연구를 계속해야 했다.
“누님. 수금은 안 하십니까?”“아, 깜빡할 뻔했네.”
박현아가 잊고 있었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래. 가더라도 받을 건 받고 가야지.”
현재 일행이 있는 곳은 아그로스 왕국의 밀프턴 영지 인근이다.
박현아는 언데드 소탕 전 밀프턴의 영주와 거래를 했다.
언데드 소탕하면 이천 골드를 받기로 한 것이다.
거대 영지였던 밀프턴에게도 이천 골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으나, 밀프턴 영주는 영지가 망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역시 부업이 최고라니까.”
마법으로 간단하게 몸을 청소한 일행은 곧장 밀프턴 시로 향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돈 받고 돌아올 테니까.”
“예.”
일행은 밖에서 기다리고 박현아가 대표로 영주를 알현했다.
밀프턴의 영주 오시안 휴 밀프턴은 두 팔을 벌린 채로 그녀를 맞이했다.
“오! 벌써 놈들을 처리하신 게요!?”“예. 뭐. 딱히 어려울 건 없었습니다.”
영주의 말에 박현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빨리 돈이나 내놓으라는 아우라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영주는 귀족답게 마이페이스가 상당한 남자였다.
“대단해요! 대단해! 보고로는 언데드의 군세가 1만은 넘고 영웅급도 다수 있다고 들었는데, 고작 셋이서 하루 만에 소탕하다니!”“정확히는 준영웅 다섯, 영웅 셋, 준전설 하나. 나머지 잡졸이 대충 구천 정도?”“허어… 대단합니다.”
영주는 정말 감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상대는 밀프턴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 수성해도 막을 수 있을지 미지수인 거대 전력.
그런 전력을 고작 셋이서 하루 만에 별다른 피해도 없이 처리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확인 끝났으면 슬슬 가고 싶은데.”“아! 내 정신 좀 보게.”
영주가 손을 들어 올렸다.
“여봐라! 어서 금화를 가져오지 않고 뭘 하나!”
영주의 말에 시종들이 금화 2,000개가 든 자루를 들고 나타났다.
그 무게만 해도 거의 100kg에 가까웠기에 시종들은 낑낑대며 겨우 자루를 옮겨야 했다.
“뭐, 대영주님이시니 금액은 따로 확인하지 않겠습니다.”
박현아의 말에 밀프턴의 영주가 호쾌하게 웃었다.
“원래 예정돼 있던 2,000개보다 더 넉넉히 넣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소!”
영주의 말에 박현아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이 남자. 역시 대영주답게 통이 크다.
“그럼 이만. 다음에 또 일 있음 불러주십쇼~”
박현아는 인벤토리에 금화 자루를 수납하고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나려 할 때였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영주가 다급히 일어나며 달려왔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푹 쉬는 게 어떤가? 내 최고의 대접을 해드리지.”“아… 딱히 괜찮습니다.”
박현아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대놓고 귀찮아하는 모습.
대영주를 앞에 두고 보일 만한 태도는 아니었으나, 밀프턴의 영주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밀프턴을 구한 영웅을 어찌 이대로 보낸단 말인가! 그대가 이렇게 떠나면 내 체면이 서지 않네.”
박현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다.
영주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하루 정도는 남아야 하는 것이다.
“하아,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얼마든지 있고 싶은 만큼 있으시게! 우리 영지의 주방장은 솜씨가 뛰어나 국왕께서도 크게 칭찬했을 정도니 후회하지 않을 걸세! 하하!”
오만한 여느 대귀족과 달리 참 웃음이 많고 호쾌한 남자다.
순간 영주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물러났다.
“아, 내 정신 좀 보게. 방금 막 전투를 치른 용사를 너무 오래 붙잡았군. 일단 방으로 안내하지.”
영주는 박현아에게 시종을 붙여 주었다.
그녀가 시종과 함께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최현석이 다가왔다.
“일은 잘 처리됐습니까?”“어… 돈은 받았고, 여기서 하루 쉬게 됐다.”
“갑자기요?”
박현아가 최현석의 귓가에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영주가 하도 매달려서. 속이 뻔히 보이긴 한데, 어쩔 수 없어. 대충 어울려주다가 내일 아침에 떠난다.”
최현석은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는 일행을 자신의 밑으로 들이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이젠 그러려니 하는 일행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푹 쉬어. 듣자 하니 여기 주방장이 요리를 그렇게 잘한다더라.”“호오, 그거 기대되네요.”
시종을 따라 화려한 저택을 나온 일행은 잘 꾸며진 정원을 가로질렀다.
보통 손님은 별채에 머물기에 그런 것인데, 워낙 큰 대저택이라 별채까지 가는 길이 제법 멀었다.
‘나도 언젠가 이런 저택에 살아야지.’
저녁노을이 비치는 정원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런 정원이 있는 저택에서 귀족
영애와의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을 하면 얼마나 즐거울까.
최현석이 이런저런 망상이 끝없이 뻗어가던 때였다.
“호오,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대들이었나?”
정원 한쪽에서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박현아가 전투태세를 갖추며 이를 꽉 깨물었다.
“너는…!”
노을빛에 붉게 물든 정원의 안쪽.
“오랜만이구나.”
테이블에 앉아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여성, 사라 던피가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