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8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88화(188/273)
최현석 일행은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보며 멈춰 섰다.
마리어트 왕국의 수도, 스콜본이었다.
“일단 도착하긴 했는데, 어떻게 들어가지?”
스콜본에서 거하게 깽판을 친 이력이 있는지라 이대로는 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어떻게 몰래 도시로 들어갈까 고민하던 때에 사라 던피가 나섰다.
“저항하지 말고 마기를 받아들여라.”“뭘 하시려는 겁니까?”“가벼운 변장이지.”
그녀에게서 진득한 마기가 흘러나온다.
마기가 최현석과 아벨슨에게 닿자 이내 둘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최현석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됐고, 아벨슨은 앳돼 보이는 소녀로 변신했다.
사라 던피 또한 평범해 보이는 중년 여성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호오, 이거 신기하네요.”“어지간해서는 들킬 일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어딜 가든 있을 법한 부부와 딸로 변장을 끝낸 일행은 곧장 스콜본으로 향했다.
울티문 페스에서 만들어준 위장 신분패가 있었기에 더 준비할 건 없다.
“통과.”
스콜본에 들어가는 예상보다 훨씬 간단했다.
잠시 아벨슨을 쳐다본 경비가 별다른 검문 없이 통과시킨 것이다.
신분패도 의례적으로 소지만 확인할 뿐,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지난번이랑은 많이 다르네요. 원래 이렇게 쉽게 들여보내 줍니까?”“그러게요. 외부인을 이런 식으로 들여보내다니…”
미리 이런저런 준비를 해왔던 일행은 허탈한 마음을 안고 스콜본으로 입성했다.
그렇게 거리를 거닌 지 채 5분이 되지 않은 시점.
최현석은 신음을 흘리며 멈춰 섰다.
“음, 우리 제대로 온 게 맞습니까?”
오랜만에 다시 찾은 스콜본은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 있었다.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몇 달 만에 이렇게까지 변할 수가 있는 건가.”
일행이 스콜본에 방문한 건 불과 몇 개월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콜본은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오갔고, 가게마다 사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용사님. 우울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보이는 광경은 같은 도시라고 믿기 힘들 만큼 변해 있었다.
거리의 분위기는 우중충했고,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정말 이상하네요…”“그러게. 분위기는 이렇게 우울한데 묘하게 미녀가 많아. 이유가 뭐지?”“용사님! 눈치 좀 챙겨요!”
라헬이 최현석의 가슴팍을 힘껏 꼬집었다.
인상을 찌푸리던 최현석은 아벨슨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꾹 닫았다.
‘진짜 누구 하나 잡아먹을 기세네…’
아벨슨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잘못 말을 했다간 곧바로 머리통에 메이스가 날아올 것 같다.
“이곳이 왕국의 수도가 맞는가?”
사라 던피가 물었다.
아벨슨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가장 부유하고 풍족해야 할 수도가 이런 수준이라면 다른 곳은 볼 필요도 없겠구나.”
“…”
“그대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원래 이런 것은 아닌 것 같고. 그 가트렌이라는 집단의 짓인가?”“그런 것 같습니다.”
고개를 숙인 아벨슨 대신 최현석이 대답했다.
사라 던피는 오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흐음…”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녀 또한 이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원래 국왕이라 했으니까…’
사라 던피는 발링턴 왕국의 초대 국왕.
그녀가 집권하던 시절의 발링턴은 대륙의 어느 국가보다 부강했다.
마법뿐만 아니라 왕으로서의 자질 또한 갖춘 그녀였기에.
처참한 스콜본의 광경을 보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보게들! 곧 있으면 사형식이 시작된다는군!”
갑자기 거리 곳곳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형식이라는 말이 들려오자 일행도 귀를 쫑긋 세웠다.
“또 사형식인가? 이번 달에만 벌써 네 번째야.”“이번에는 달라! 무려 공작이 형을 받는다고 하네!”
“공작이라고!?”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 순간 아벨슨이 말릴 새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남성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방금 하신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네요.”
다짜고짜 찾아온 아벨슨을 본 남성들이 쓰게 웃었다.
“그쪽도 시골에서 올라온 처자인가?”“쯧쯧. 처지가 가여운 건 알겠다만. 에잉…”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 그들에게 아벨슨은 재차 물었다.
“아까 말한 사형식.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한 시간 후에 중앙 광장에서 사형식이 있네.”“맥스윈 고든 공작이 사형에 처할 예정이지.”“맥스윈 고든 공작…?”
아벨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쪽도 놀랐나?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청렴결백해 보이던 공작이 사실은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었다니 말이야.”“국고 횡령은 물론이고, 매일 여자를 불러 술판을 벌이는 것도 사실 그 자였다지?”“쯧쯧. 그동안 온갖 착한 척은 다 하더니 뒤에서 그런 마수를 뻗치고 있었을 줄 누가 알겠는가?”“그러게나 말이야. 이래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돼.”
남자들이 혀를 차며 맥스윈 고든의 악랄함을 욕하던 그때.
한 남자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아가씨. 시간이 괜찮다면 우리랑 같이 한잔하지 않겠나?”
현재 수도에는 국왕의 간택을 받기 위해 온 미녀들로 넘쳐난다.
궁핍한 삶에 지친 그들과 하룻밤을 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여성들 또한 수도에서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그런 남자들을 이용했기에 지저분한 관계가 성행했다.
“어라? 어디 갔지?”
하지만 사형식에 관해 묻던 소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자들은 그녀를 찾아 연신 주변을 둘러봤으나, 우중충한 거리만이 보일 뿐이었다.
***
“반드시 구해야 해요.”
아벨슨의 얼굴에서 각오가 엿보였다.
최현석은 뒤를 따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는 분입니까?”
“고든 경은 아버지가 가장 신임하던 신하였어요. 국가의 대소사에 모두 관여하는 분이시죠.”
“아하…”
“저는 어릴 적부터 고든 경을 봐왔어요. 그분은 절대 나쁜 짓을 하실 분이 아니에요.”
맥스윈 고든이 국고를 횡령하고 여성들과 술판을 벌이다니.
아벨슨의 상식에서는 결단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누군가 모함을 한 게 분명했다.
“잠시 기다리십쇼.”
그때 최현석이 아벨슨의 팔을 붙잡았다.
“일단 진정하세요.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가서 어쩔 생각입니까?”“시간이 없어요. 곧 있으면 사형식이 시작돼요.”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여기는 저한테 맡기시죠. 제가 그분을 구해오겠습니다.”“저도 같이 갈게요.”“그건 안 됩니다. 여러 명이 움직여 봤자 꼬리만 길어질 겁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사라 던피가 거들었다.
“그의 말이 옳다. 우리는 장소를 옮겨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구나.”
“…”
아벨슨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어깨가 잘게 떨린다.
‘무슨 기분인지 이해는 하겠다만…’
최현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분할 것이다.
가트렌에 의해 나라가 짓밟히고, 소중한 사람이 죽게 생겼으니.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지.’
그렇기에 아벨슨은 이번 작전에서 빠져야 한다.
이성을 잃은 그녀가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다.
“아벨슨 씨.”
최현석이 아벨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 용사 최현석입니다. 저 못 믿으십니까?”
아벨슨은 고개를 저었다.
“믿고 있어요…”
“그러면 맡겨주십쇼.”
최현석이 씨익 웃었다.
“오랜만에 정규 용사가 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
맥스윈 고든은 포박된 채로 단두대 앞에 섰다.
“죽어라! 쓰레기!”
“저 파렴치한을 당장 죽여!”
“와하하하!”
사람들이 온갖 쓰레기와 오물을 던진다.
고든은 묵묵히 그것을 맞았다.
퍽-!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가 그의 이마를 강타했다.
피부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으나, 그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이 깃들지 않았다.
‘믿을 수 없군…’
사실 맥스윈은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잘 분간되지 않았다.
마리어트 왕국에 수백 년 동안 헌신한 공작 가문의 가주.
전대 국왕이 가장 신임하던 신하.
그게 바로 맥스윈 고든이다.
그를 이런 식으로 처형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처형해라.”
하나, 추기경 빈센조는 가차 없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찍어 누르며 멋대로 일을 진행했다.
그가 이전부터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내쳐질 것이라 생각하긴 했으나, 이런 방식일 줄은 예상치 못했을 뿐.
‘라브룬… 그도 참 어지간하군.’
국왕 라브룬 마리어트.
그는 살기 위해 자신을 팔아넘겼다.
“네놈! 멋대로 국왕의 이름을 빌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진행하다니! 그 죄는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폐하! 이는 폐하께서 진행을 허가하신….”
문제가 된 것은 팔레인 영지.
영지에 기근이 심하게 들어 세율을 낮추고 국고를 풀어야 한다는 제안서를 올렸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정무를 귀찮아하는 라브룬 마리어트를 닦달해 겨우 정식 허가를 받았건만.
“닥쳐라! 뭣들 하느냐! 죄인을 연행하지 않고!”
라브룬 마리어트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국왕으로서 가져야 할 명예도, 자긍심도 모두 내다 버린 그 모습을 떠올리며 맥스윈 고든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지옥을 지켜볼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결국, 맥스윈 고든은 모든 걸 포기했다.
그가 단두대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지금부터 죄인 맥스윈 고든의 형을 집행하겠다.”
집행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시끄럽던 광장이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모두가 단두대가 떨어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피에 굶주린 마수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저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사람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삶에 지친 저들은 그저 분풀이할 대상이 필요할 뿐이다.
이곳은 굶주린 자들이 가득한 감옥.
가트렌은 그 안에 잘 요리된 고깃덩어리를 던져준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게지.’
애초에 저들이 굶주린 건 저들의 탓이 아니다.
그렇기에 맥스윈 고든은 오히려 가여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죄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부디 이 나라를 구원하소서…”
짧게 말을 끝낸 맥스윈 고든이 눈을 감았다.
“집행하라.”
이윽고, 형이 집행된다.
이제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고.
잘린 목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할 것이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마 벌써 죽은 건가?’
죽음을 인지조차 못 한 채로 생을 마감한 것인가 의심하던 그때.
소란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네놈은 뭐냐!?”
“용사님이시다.”
건장한 체구의 중년 남성이 사형장 위로 올라왔다.
그는 화가 난 듯 사나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뭘 하고 있나! 저 괴한을 끌어내라!”
집행관의 명령에 병사와 기사들이 남자를 둘러쌌다.
“하앗!”
기합과 함께 내질러지는 검.
기사의 검격은 일반인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대로라면 남자는 가슴팍이 꿰뚫린 채로 죽을 게 뻔하다.
이러한 맥스윈 고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파앙!
검이 부서진 것이다.
굉음과 함께 검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눈앞에서 지켜보았음에도, 맥스윈은 무슨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쯧. 기분 잡치네.”
주먹을 휘둘러 검을 박살을 낸 남자, 최현석이 혀를 찼다.
“그쪽이 맥스윈 고든?”
맥스윈 고든은 워낙 경황이 없어 대답하지 못했다.
최현석이 재차 물어왔다.
“맥스윈 고든 맞습니까?”
“그, 그렇다네.”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하지만, 이곳은 병사들이…”
맥스윈이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사형장 위에 있던 병사들은 물론이고, 기사까지 모조리 쓰러졌다.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잠시 실례합니다.”
“어, 어!?”
최현석이 맥스윈 고든을 둘러업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광장을 가로질러 사라진다.
“쪼, 쫓아라…!”
사형 집행관의 공허한 외침이 둘의 뒤를 쫓았으나, 결국 닿지 못하고 사라졌다.
***
최현석은 유유자적 도시를 벗어났다.
아무리 병사와 기사들을 많이 대동한다 해도, 이미 전설에 준할 정도로 강해진 최현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맥스윈은 계속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이토록 강한 남자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자신을 구해준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의문이 떠올랐으나, 곧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말을 아꼈다.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한 최현석이 맥스윈을 바닥에 내려뒀다.
그곳에는 익숙한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 공주님…?”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지만 확실하다.
마리어트 왕가를 상징하는 은색 눈동자와 은발.
눈앞의 여성은 아벨슨 마리어트였다.
“오랜만이에요. 고든 경.”“정말 공주님이시군요…!”
몇 달 전.
아벨슨 마리어트가 마족과 손을 잡고 왕궁을 습격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물론, 맥스윈 고든은 믿지 않았다.
아벨슨이 마족과 손을 잡은 것도 모자라 가족을 모두 죽이다니.
신성 제국이 꾸민 계략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벨슨이 왕자 레이스 마리어트를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는 병사들의 증언까지 잔뜩 나온 상황.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반역자로 지정하고 수배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나타난 것이다.
“역시… 공주님은 아니셨습니다…”
아벨슨을 마주한 순간 맥스윈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벨슨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여러 구설수는 모두 모함일 뿐이다.
“미안해요. 제가 너무 늦었네요.”“아닙니다… 이제라도 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맥스윈 고든이 고개를 숙였다.
“고든 경. 경황이 없겠지만, 지금 상황을 알고 싶어요.”
아벨슨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말해주세요. 수도… 아니, 왕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