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9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96화(196/273)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최현석과 박현아는 오두막을 나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그쪽 일은 잘 해결됐다면서?”
“예.”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벨슨 씨가 국왕이 됐고, 왕국은 안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잘됐네. 일 처리하면서 네 레벨도 좀 오른 것 같고.”“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렇게 많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놀란 최현석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척하면 척이지. 새꺄.”
레벨이 올랐다곤 해도 정말 조금이었다.
1000레벨이 넘어가며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최현석은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정규 용사
▫레벨 : 1104
·근력 : 365
·민첩 : 365
·체력 : 365
·마나 : 500
·카리스마 : 115
·투지 : 103
현재 그의 레벨은 1104.
이전에 박현아와 헤어졌을 때 1096레벨이었으니 8레벨이 오른 것이다.
‘그나마 빈센조 추기경을 안 잡았으면 이것도 올리지 못했겠지.’
추기경 빈센조를 죽이며 6레벨이 올랐다.
만약 그와의 전투마저 없었다면 거의 레벨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추기경에 관해서 아직 못 물어봤네.’
최현석은 생각이 난 김에 묻기로 했다.
어째서 추기경이 그런 무력을 지니고 있는가.
박현아라면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누님. 혹시 그거 아셨습니까?”
“뭐?”
“추기경 엄청나게 강하던데요.”
추기경이 강하다는 말에 박현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추기경이 강하다니.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박현아도 마리어트 왕국의 일이 해결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다.
최현석은 추기경 빈센조와 싸웠던 것과, 이후 그가 교황의 무력에 대해 암시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해서 혹시 누님은 뭐 아시는 게 있나 물어봤죠.”“으음, 딱히? 추기경은 전부 다 그냥 늙은이들인 줄 알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박현아 또한 아는 게 없는 듯했다.
신성 제국 가트렌과 몇 년간 싸워온 박현아도 알지 못했다니.
떠올려 보면 당시 함께 싸웠던 성기사들도 추기경의 무력에 관해서는 모르는 눈치였다.
박현아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 골치 아프게 됐네. 추기경이랑 교황이 그런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지금 데우시스 교에 추기경이 얼마나 있습니까?”“아마 오십이 좀 넘을 거야.”
추기경의 숫자가 50명이 넘는다.
그 말에 최현석이 화들짝 놀랐다.
“오십이라니! 벌써 게임 끝난 거 아닙니까!?”“당연히 그놈들 전부가 빈센조 같은 무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 거야. 만약 그랬으면 눈치 볼 거 없이 이미 대륙을 집어삼켰지 않겠냐.”
“아, 그러네요.”
빈센조의 무력은 전설 초입.
순수 육체 능력만 놓고 보면 여타 전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 강자의 수가 오십이 넘었다면 이미 대륙은 가트렌이 지배했을 것이다.
“많아도 열 명이 넘지는 않을 거야. 그것만 해도 골치 아프긴 하지만.”
돌연 박현아가 기지개를 크게 켰다.
“아~ 시이발.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자꾸 일이 꼬이네.”“그러고 보니 이쪽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많이 안 좋다면서요?”
최현석이 물었다.
편지에는 이곳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적혀 있었을 뿐.
구체적인 것까지는 나와 있지 않았기에 자세한 정황이 궁금했다.
“대충 설명하자면 후퇴만 반복하는 개같은 상황이지.”
“후퇴요?”
“어. 지금 내가 혼자 있는 것도 잠깐 사이에 전선이 더 뒤로 밀려나서 그런 거야.”
최현석이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짓자, 박현아가 설명을 이었다.
“너한테 좌표 보낸 이후로 또 전선이 후퇴한 거야. 어쩔 수 없이 다른 놈들은 먼저 갔고, 나는 혼자 남아서 너 기다린 거고.”
이곳은 격전지다.
최현석이 공간 이동을 하려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계속해서 전선이 물러난 탓에 울티문 페스 또한 함께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박현아만 남아서 최현석을 기다린 것이다.
“그럼 여기는 적진이라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그러면 저기 나무 위에 있는 놈들도 적이겠네요?”
“응?”
최현석이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박현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저게 뭐야?”
“사람 같은데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저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최현석 또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은 남부럽지 않았음에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그저 정말 운이 좋게 시선을 옮기던 도중 발견했을 뿐이다.
“일단 족칠까?”
“그러죠.”
최현석과 박현아가 땅을 박차고.
둘의 신형이 쏘아지듯 앞으로 날아갔다.
***
“이놈도 꽝이네요.”
최현석이 손을 탁탁 털었다.
그의 발치에는 위장복을 입은 병사가 엎어져 있었다.
병사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는데, 최현석이 손을 쓴 것은 아니고 자결한 것이었다.
“하, 이래서 가트렌 새끼들이 짜증 난다니까.”
박현아가 신경질적으로 흙을 걷어찼다.
반복되는 추격에도 얻은 게 없자 화가 난 것이다.
“그나저나 마력을 이렇게 완벽하게 감추는 마도구라니. 이거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적은 마력을 감추는 마도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둘의 감지에도 걸려들지 않은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기운을 감추는 마도구는 생각보다 흔해. 용사 상점에도 팔잖아?”
“그건 그렇죠.”
“뭐, 마도구 자체가 굉장히 귀한 건 맞는데. 가트렌 정도 되면 이런 건 발에 챌 정도로 많겠지.”
지금껏 발견한 정찰병은 모두 열다섯.
그중 일곱이 마력을 감추는 마도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놈들은 박현아와 최현석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끈덕지게 들러붙었는데, 정작 정체가 발각되고 나서는 이런 식으로 자결했다.
적의 살벌한 결단력에 최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이 맞긴 한 건가…”
모든 생명은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결하다니.
도대체 어떤 교육을 거쳐야 이런 정신 상태가 되는지 궁금했다.
“일단은 움직이자. 놈들이 이곳에 대기하고 있었다는 건 우리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뜻이야.”
박현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놈들한테 뭔가를 캐내는 건 무리니까. 속도를 높여서 추격을 뿌리치기라도 해야지.”
“알겠습니다.”
최현석과 박현아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설급에 이른 그들이 작정하고 달리면 비슷한 수준이 아니고서야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숲 전체에 포진해 있던 추격자들은 결국 추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사냥개 단장 쿠안 오브리엘.
그가 교황 오르반 4세를 찾았다.
긴급히 보고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현석이 전선에 나타났다고요?”“예. 소드리카 성 인근에서 박현아와 함께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교황 오르반 4세가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렇다면 마리어트 왕국에서 빠져나갔다는 이야기인데…”“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처리할까요?”“아니요. 마리어트 왕국은 그대로 두세요.”
교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마기와 사령술을 사용하는 적에 관한 정보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확실해질 때까지는 섣부른 행동은 삼가세요.”
“예.”
“흐음… 그나저나 일이 귀찮게 됐군요.”
교황의 미간이 좁혀진다.
“최근 최현석의 무력이 전설급에 들어섰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쯧. 이 땅에 온 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전설이라니…”
지나치게 상식 밖의 성장 속도다.
일반적으로 전설의 경지에 들어서는 나이는 100살 전후.
역사상 손꼽는 재능이 지닌 자라 해도 4, 50년은 걸린다.
물론, 최현석이 용사이기에 이곳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하지만, 용사임을 감안해도 그의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그래서 제가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늦기 전에 그를 죽여야 한다고.”
교황은 누구보다 용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최현석은 그런 용사 중에서도 굉장히 특출난 특이 케이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강해진 그는 이미 대업에 걸림돌이 될 만큼 성장했다.
“지금 속도라면 조만간 손을 쓰기 힘들 만큼 강해질 수도 있겠군요.”“그렇게 되기 전에 처리하겠습니다.”
쿠안 오브리엘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처리할 수나 있고요?”“현재 최현석의 대인 전투 능력은 박현아보다 한 단계 아래로 판단됩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지금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놈의 성장 속도를 생각하셨습니까?”
교황의 눈에 불신의 빛이 어렸다.
당연한 반응이다.
여태껏 최현석을 사냥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이들이 하나같이 실패했으니까.
“오브리엘 경.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토대로 봤을 때, 놈의 대인 전투 능력은 수개월 내로 박현아를 넘어설 겁니다.”
“맞습니다…”
“종합 전투 능력 또한 길어도 1년 안에는 완전히 박현아를 따라잡겠지요. 그때가 되면 사냥은 더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교황의 말은 허황된 게 아니었다.
지금의 추측조차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은 것.
최현석의 가장 무서운 점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 속도다.
당장 최현석의 무력이 전설 초입이라곤 하나, 언제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년 안에는 전설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자리 잡을 것이고, 일 년이 흐르면 제국에서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강해져 있을 겁니다.”
교황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냥개 단장, 쿠안 오브리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더 늦기 전에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믿어도 되겠습니까?”“제 목을 걸겠습니다.”
목을 걸겠다.
죽음을 각오하겠단 말에 돌연 교황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브리엘 경은 제국의 소중한 인재입니다. 함부로 목숨을 걸어선 안 되지요.”
쿠안 오브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숙일 뿐.
지금 교황이 하는 말이 입에 발린 거짓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가 없어지면 누구든 단번에 내치는 작자다.’
쿠안 오브리엘은 무려 20년 넘게 교황 오르반 4세를 모셨다.
그 세월 동안 교황을 옆에서 버틴 측근이 얼마나 될까.
단언컨대 한 손에 꼽는다.
아무리 날고 기는 능력자라도 채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렇기에 쿠안은 항상 한 발 떨어져서 교황을 모시고 싶었으나…
결국 그의 차례가 오고 말았다.
“성하께서 만족하실만한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최선? 노력? 과정?
모두 필요 없다.
교황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최고의 결과일 뿐.
그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교황이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오브리엘 경.”
***
다음 날 아침.
최현석과 박현아는 울티문 페스가 대기 중인 장소에 도착했다.
원래라면 더 일찍 도착했겠지만, 혹시 모를 추격에 혼선을 주기 위해 길을 돌아오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어서 오게! 다시 보니 반갑군.”
울티문 페스의 수장, 케어베 코웰이 인사했다.
최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회의 중이었습니까?”
임시로 만들어진 막사.
그 안에는 설리번을 비롯한 몇몇 간부가 모여 있었다.
지난번에 만난 드라센 제국의 공작 올라벤 그리미어도 함께였다.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네. 자네들도 괜찮다면 같이 하지.”
케어베 코웰이 말했다.
최현석과 박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흙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먼저 지도를 보면서 현재 전황을 확인할게요.”
회의 진행은 설리번이 맡았다.
그녀가 마법으로 거대한 지도를 띄우고는 말을 이었다.
“보시는 것처럼 전선이 계속해서 남하 중이에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죠. 이대로라면 이 주 안에 적이 마왕성에 도달할 거예요.”“이 주라… 너무 빠르군.”
시작부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성전이 시작되고 아직 두 달도 흐르지 않은 시점.
이미 성전의 군대는 마족의 영역 중심부에 도달해 있었다.
“어쩔 수 없어요. 전투다운 전투 없이 마왕군을 밀어붙이고 있으니까요. 사실상 행군이나 다름없죠.”“역시… 우리의 예상이 맞다고 봐야겠지?”
케어베 코웰의 말에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상? 무슨 예상을 말하는 거지?’
맥락을 알 수 없는 대화에 최현석이 질문을 하려던 찰나.
“네. 아무래도 그것밖에 없죠.”
설리번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마왕군이 의도적으로 길을 열어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