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04)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04화(204/273)
처음 느낀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혼자서 네 명의 사단장을 상대로 싸우겠다니.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어린 마족이라지만 이건 객기가 도를 넘어섰다.
“이런 건방진 놈이…!”
다음으로는 분노가 밀려왔다.
사단장이라는 직위가 얼마나 우스웠으면.
자신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저딴 망언을 내뱉는단 말인가.
제6사단장 카록시즈.
제3군단에서 헤미스 다음으로 강하다고 알려진 마족이었다.
그는 일대일 승부를 벌여도 5분 안에 레이드런을 박살 낼 자신이 있었다.
“한 번에 덤벼라.”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와 눈빛이 뇌리에 각인된다.
반복해서 재생되는 동영상처럼 레이드런이 한 말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카록시즈는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 이 건방진 마족을 죽일지도 모르겠다고.
“허억, 헉…”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카록시즈는 깨달았다.
레이드런은 오만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이미 세 명의 사단장 쓰러져 있었다.
제7사단장 브로그토단.
제9사단장 그림 보그몬.
제10사단장 줄 자주스.
모두 의식을 잃은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오직 카록시즈만이 힘겹게 땅에 발을 딛고 있었다.
“레이드런… 무슨 짓을 한 거냐…”
그가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불과 2년 전의 네놈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넌 군단장은커녕 사단장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어.”
카록시즈가 기억하는 레이드런은 그랬다.
재능은 있으나, 최고에는 이르지 못할 수준.
몇십 년이 더 흐르면 사단장에는 올랐겠지만, 그게 한계다.
레이드런은 절대 군단장이 될 재목이 아니다.
군단장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차원의, 거대한 벽을 넘어서야 한다.
선택받은 극소수의 마족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
자신은 그 벽에 가로막혀 수십 년째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2년 만에 그 벽을 넘었다고!? 고지식하게 주먹만 휘두를 줄 알던 네놈이!? 웃기지 마라!”
카록시즈가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헤미스가 무언가를 한 게지!? 그게 아니고선 말이 안 돼!”
“…”
“말해라! 어떤 수를 쓴 거냐! 헤미스에게 마기를 받았나!?”
레이드런은 묵묵부답이었다.
카록시즈가 한층 더 강하게 소리쳤다.
“말하란 말이다! 헤미스의 마기냐!? 아니면, 로타크가 연구하던 마도 공학 시술을 받기라도 한 거냐!?”
레이드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철벅, 철벅…
걸을 때마다 피가 질척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레이드런 또한 격한 전투로 정상이 아니었다.
붉은 악몽 레이드런.
그의 이명처럼 피처럼 붉은 피부 위로 검붉은 피가 점철돼 있다.
모두 레이드런 본인에게서 흘러나온 피였다.
겉으로 봤을 때는 카록시즈보다 오히려 레이드런의 부상이 더 심각해 보일 정도로,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대답해라!!! 레이드런!!!”
카록시즈가 절규했다.
어째서 새파랗게 어린, 자신보다 재능도 부족한 마족에게 패배해야 하는지.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카록시즈.”
그때 레이드런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최고가 되지 못한 것이다.”
“뭐…?”
레이드런이 돌연 주먹을 뻗었다.
“커헉!”
카록시즈는 속수무책으로 주먹에 맞았다.
싸우려고 해도 이미 의지가 꺾였다.
그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시에, 모순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레이드런에게 졌다는 것을.
“강해지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레이드런이 목을 움켜쥐자, 카록시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나는 자신이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
레이드런이 서서히 카록시즈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수백 킬로그램은 나갈 법한 거구의 카록시즈가 허공에 떠올랐다.
“다른 하나는 그 믿음을 행하는 것이다.”
레이드런이 그대로 카록시즈를 지면에 내리꽂았다.
쿠웅-!
카록시즈의 뒤통수가 닿으며 지면이 갈라지고 충격파가 퍼진다.
카록시즈는 눈을 까뒤집은 채 대(大)자로 쓰러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이다.
그를 보며 레이드런은 말했다.
“그게 전부다.”
이로써 모든 사단장이 쓰러졌다.
레이드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섰다.
연병장 한쪽에는 사단장의 수행원들과 더불어, 모템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템에게 다가간 레이드런이 한숨을 내뱉었다.
“조금 피곤하군요.”
“뒤는 내게 맡겨라.”“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레이드런 또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그를 보며 모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한계를 뛰어넘은 건가.”
이번 전투.
사실 무모한 일이었다.
아무리 레이드런이 강해졌다곤 하나, 사단장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특히 마지막까지 남은 제6사단장 카록시즈.
그는 신체 능력만 놓고 보면 레이드런과 동급. 아니, 레이드런보다 미세하게 우위였다.
일대일로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든 적을 상대로 단체전을 걸다니…
“그야말로 마족답군.”
투구 속, 모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
마왕성 중앙에 위치한 마왕의 침소.
최현석과 박현아가 떠나간 후, 이곳에는 목이 꺾인 채로 죽은 마왕의 사체만이 휑하게 남아 있었다.
싸늘한 적막이 감도는 공간.
영원할 것만 같던 정적은 의외로 빠르게 깨졌다.
누군가 찾아온 것이다.
구구구구…!
문이 열리고.
들어선 이는 젊은 마족이었다.
젊은 마족은 마왕의 주검 앞으로 가더니 멍하니 바라봤다.
“…”
그 눈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모든 근심을 끌어안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족은 한참이나 마왕의 사체를 바라봤다.
또각- 또각-
홀에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진 건 그때였다.
또 다른 방문자가 온 것이다.
먼저 왔던 젊은 마족은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해서 마왕을 바라보기만 할 뿐.
새로 나타난 방문자는 자연스럽게 젊은 마족과 나란히 섰다.
“흐응~”
새로운 방문자, 헤미스가 콧소리를 내더니 히죽 웃었다.
“마왕님이 이렇게 발칙한 생각을 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네요. 저한테 미리 언질을 주시지 그랬어요~ 오호호!”
헤미스가 하이톤으로 웃더니 옆으로 돌아섰다.
보이는 것은 여리여리한 체형의 미소년.
키는 대략 170cm.
짧은 머리에 선이 가늘어 중성적인 느낌을 풍겼다.
그제야 젊은 마족
또한 고개를 돌려 헤미스를 마주 봤다.
“…”
코앞에서 둘은 서로를 관찰하듯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젊은 마족이었다.
“당신이 헤미스인가. 죽었다고 들었는데.”
헤미스는 한걸음 물러나더니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전(前) 제3군단장. 헤미스입니다~ 염치없게 살고 말았네요~ 오호호!”“전이라는 건. 지금은 아니라는 뜻?”“지금은 아주 훌륭한 부하가 제 뒤를 잇는 중이랍니다.”
“그렇군.”
젊은 마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는 시드리엘.”
기묘한 눈동자 안에 웃고 있는 헤미스의 얼굴이 담겼다.
“마왕 테그라드의 뒤를 이을 자다.”
***
제1군단장 도리투그스.
오늘따라 그의 표정이 유독 좋지 않았다.
레이드런이 제3군단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변수인데.”
원래 제3군단은 마왕이 죽은 후 자연스럽게 흡수될 예정이었다.
제6사단장 카록시즈는 이미 도리투그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황.
실질적으로 제3군단 최강자인 그가 도리투그스 아래로 온다면 다른 사단장들도 자연스럽게 뒤를 이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새로운 군단장이 나타나다니.
심지어 그게 이제 막 사단장이 된 레이드런이라니.
도리투그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즈게스.”
그가 제5군단장 오즈게스를 불렀다.
“레이드런이라면 네 자식 아닌가.”“제 동생 우그소롤의 아들입니다.”“그런가. 아무튼, 레이드런이 이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도리투그스는 레이드런을 잘 알고 있다.
애초에 고위 간부 중 레이드런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
그 헤미스를 보좌하던 유일한 마족이었던지라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레이드런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다.
헤미스의 비서.
헤미스가 아니면 딱히 별 볼 일 없는 마족.
솔직히 사단장이 되었을 때도 내심 의아했는데, 군단장이라니.
“보고된 내용으로는 제6, 7, 9, 10 사단장을 모두 한꺼번에 상대해서 승리했다는군.”“어찌 된 일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아무튼, 이대로 레이드런이 제3군단을 이끌게 둘 수는 없다. 너도 알겠지만, 제3군단은 카록시즈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는 게 원래 시나리오야.”
도리투그스가 오즈게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우리 마족은 위기에 봉착했다. 인간의 공격은 여느 때보다도 거세고, 동시에 마왕이 죽으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중이지. 이런 때에 힘이 분산되면 마족은 끝이야.”
오즈게스가 눈을 감았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레이드런에게 전해라.”
도리투그스가 오즈게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새로운 흐름에 합류하든지. 아니면, 군단장의 자리를 내려놓든지.”
자신의 밑으로 올 게 아니면 군단장 자리를 버리고 떠나란 뜻이었다.
오즈게스는 고개를 저었다.
“뚝심이 있는 친구입니다.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진 않을 겁니다.”“그러면 어쩔 수 없지.”
도리투그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죽여서라도 군단장 자리를 가져올 수밖에.”
“그건…”
오즈게스의 표정이 일그러지던 찰나.
또각- 또각-
홀에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도리투그스와 오즈게스의 눈에 경악이 들어찼다.
이것이 누구의 발소리인지 알고 있었던 탓이다.
“헤미스…”
“헤미스님…!”
두 군단장이 상반되는 감정으로 들어서는 이를 바라봤다.
헤미스는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있었나.”“당연하지~ 아직 죽으려면 천 년은 이르단다. 오호호!”
하이톤으로 웃는 헤미스를 보며 도리투그스는 눈을 빛냈다.
‘약해졌다.’
오즈게스는 모르는 눈치였으나, 도리투그스는 느낄 수 있었다.
태연한 척하지만, 헤미스 안의 마기가 약해졌다는 것을.
‘지금까지 모습을 숨긴 건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나?’
아마 인간의 습격에 힘을 잃고, 회복 중이었던 듯했다.
도리투그스는 고민했다.
이 자리에서 헤미스를 처리해야 하나?
오즈게스가 돕는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도울까?
고민이 깊어지던 때에 헤미스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리 귀염둥이 레이드런을 죽이겠다니. 너무한 거 아니니?”“마왕군이 힘을 모아야 할 시기다. 반한다면 내칠 수밖에.”
“호오~”
헤미스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진다.
“그러니까 너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겠다?”“마왕은 곧 죽을 테니,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하지.”“마왕님이라면 이미 죽었어.”
“그런가.”
도리투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나, 헤미스가 허언할 자는 아니었다.
그녀가 죽었다고 말했으면 정말 죽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더욱더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하겠군.”“그게 위대하신 제1군단장 도리투그스고?”“그래. 나는 새로운 마왕이 되어 마족을 이끌 생각이다.”
도리투그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모든 마족에게 마왕으로 인정받는다면 막대한 힘을 얻게 되지. 혈통이라면 나도 전대 마왕에게 뒤지지 않아.”
“흐응~”
“어떤가. 헤미스. 나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게.”
도리투그스가 손을 내밀었다.
헤미스는 그 손을 맞잡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며 기이한 미소와 함께 도리투그스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그거 아니?”
“무얼 말이냐.”
손을 맞잡지 않고 되묻는 태도에 도리투그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 분노는 뒤이어지는 헤미스의 말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우리 마왕님. 자식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