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0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06화(206/273)
시드리엘은 곧장 제3군단으로 갈 준비를 끝마쳤다.
“나는 언제든 갈 수 있다.”“잠시 시간을 주겠나.”
시드리엘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 던피와 최현석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대화를 나누었다.
“박현아의 치료는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니다.”“그럼 어떡합니까?”
“나와 박현아는 마리어트 왕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박현아의 회복을 위해서는 사라 던피가 꼭 함께해야 한다.
박현아는 단순히 고문, 몸을 혹사하는 행위라고 표현했지만, 실제 그릇을 유연하게 하는 것은 정밀하고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아는 건 사라 던피가 유일했다.
“거기에 수준 높은 치료사가 필요하니, 아벨슨 마리어트와 함께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
사라 던피는 마기를 사용하기에 박현아를 치료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아벨슨이나 라헬뿐인데, 라헬은 최현석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없으니 결국 아벨슨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금 박현아가 공간 이동을 하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흐음, 마법으로 날아서 가는 것도 무리일 겁니다. 한 달은 넘게 걸릴 테니까요.”
박현아는 하루라도 치료를 하지 않으면 마력을 담는 그릇이 부서지는 상황.
장기간의 이동도 무리였다.
“결국 남은 건 공간 이동 마법이네요.”“그녀가 공간 이동 마법을 버틸 수 있는지는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내 생각에는 3일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만.”
“3일이라…”
최현석이 말을 끌며 시선을 돌렸다.
그가 홀로 멀뚱멀뚱 서 있는 시드리엘의 눈치를 살피더니 작게 속삭였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기 저 친구. 상당히 의욕이 넘쳐 보이는데 괜찮을까요?”
시드리엘의 얼굴은 무표정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건 표정만 그러할 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연신 몸을 비틀면서 중간중간 이쪽을 흘깃거리는 게 언제 출발하는지 묻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저 소녀에겐 내가 말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사라 던피가 시드리엘을 향해 다가갔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둘.
그들을 보며 최현석은 사라 던피가 말한 ‘소녀’라는 단어를 되새겼다.
‘소녀라…’
90살 정도라지만, 인간의 나이로 환산하면 10대 중후반이라고 하니 소녀라는 표현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겉으로 봐선 곱상한 남성에 가까운 외모라 아직도 시드리엘이 여자라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까 확실히 이쁘긴 한데…”
전체적인 분위기를 제하고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시드리엘은 미인이었다.
머리를 기르고 분위기만 바꾸면 소녀라는 단어에서 오는 위화감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돌연 라헬의 한숨이 들려왔다.
“어휴~ 하여튼 여자라면 아주 그냥!”
순간 최현석의 이마에서 힘줄이 튀어나왔으나, 저들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참았다.
잠시 후.
이야기를 끝낸 사라 던피가 돌아왔다.
“알겠다고 하는구나.”
“다행이네요.”
시드리엘은 표정은 이전과 같이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묘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있는 게, 당장 떠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최현석은 다시 시선을 돌려 다시 사라 던피를 바라봤다.
“그럼 3일 뒤에 출발하는 겁니까?”“그때 가서 경과를 다시 봐야 하긴 하겠다만. 나는 거의 확신한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그대는 휴식을 취하면서 성장한 몸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면 되겠구나.”
“예.”
최현석은 마왕을 죽이며 여러 가지로 스펙업을 한 상태였다.
사라 던피의 말대로 적응을 위해 적당히 몸을 움직이며 시간을 보내면 될 거 같았다.
***
“끄으으, 으아아아-!”
박현아의 치료가 계속된다.
처절한 비명도 하루가 넘게 이어지니 이제는 익숙한 배경음이 되어버렸다.
최현석은 바위에 걸터앉은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 게 없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이건 의외로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사라 던피와 라헬은 박현아의 치료에 매달려 있는 상황.
말동무도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최현석은 심심했다.
“흐음…”
덕분에 최현석의 주된 일과는 시드리엘의 관찰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말동무가 될 가능성을 가진 시드리엘.
그녀 또한 최현석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최현석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석고상 같네.’
시드리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박현아의 치료 과정에 흥미가 있는 듯 잠깐 지켜보았으나, 그것도 잠시.
이내 조금 떨어진 곳의 바위에 걸터앉더니 그대로 망부석이 돼버렸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시간은 식사가 끝났을 때.
“잘 먹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다시 바위에 걸터앉아 망부석이 된다.
최현석은 그런 시드리엘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한동안 같이 움직여야 하니 이것저것 알아두면 좋을 거야.’
어차피 박현아의 치료가 끝나면 시드리엘과 둘이서만 움직여야 한다.
그 전에 서로에 대해 알아두면 여러모로 좋으리라.
최현석은 조심스럽게 시드리엘의 옆으로 이동했다.
시드리엘은 슬쩍 올려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 멍때리기 시작했다.
“크흠, 흠!”
최현석의 헛기침에 시드리엘이 다시 돌아본다.
무슨 볼일이 있냐고 묻는 눈빛.
“저…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심심한가?”
“익숙한 일이다.”
“그래도 너무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신다거나…”
“전혀.”
시드리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는 존재가 알려져선 안 됐다. 때문에 태어난 이래로 계속 마왕성 지하에 홀로 있어야 했지.”“계속? 평생 동안?”
“그래. 가끔 아버지가 오긴 했다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혼자였지.”
시드리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덤덤히 말했다.
“그러니 내게 고독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거의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홀로 보냈다는 말을 하면서도 무덤덤한 소녀.
최현석은 괜히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평생 혼자 살면서 유일하게 가끔 만나는 사람이 아버지…’
백 년을 외롭게 보내는 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심지어 유일한 말동무였던 아버지마저 자신이 죽여버렸다.
최현석도 인간인지라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어머니는?”
“비밀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나를 낳자마자 죽었다.”
“아…”
최현석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고, 눈알이 정신없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시발… 이게 아닌데…?’
말을 할수록 점점 심연으로 빠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시드리엘의 얼굴을 볼 때마다 우울해지고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사과를 하자!’
최현석은 우선 마왕을 죽인 일을 사과하기로 했다.
용사가 이런 사과를 한다는 게 우습긴 했지만.
지금은 이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마왕을 죽인 건, 그러니까…”“네가 아버지의 죽음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응?”
“어차피 아버지는 죽음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이미 너무 노쇠해 그대로 두었다 해도 얼마 못 가 죽었을 것이다.”
최현석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의 수단마저 실패했다.’
이젠 방법이 없다.
자신에겐 이 우울한 소녀를 구제할 능력이 없었다.
‘아니. 아직 하나 남았어.’
순간 최현석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그가 인벤토리를 열고는 구석진 곳에 모셔둔 무언가를 확인했다.
“흐흐흐…”
비장의 무기.
이것이라면 여기 마족
소녀의 우울함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저기, 잠시 따라올래?”
“무슨 일이지?”
“보여줄 게 있어서.”
시드리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현석은 그녀와 함께 숲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좋아. 이쯤이면 되겠다.”“보여줄 게 무엇인가?”
“이거.”
최현석이 인벤토리에서 노란색 덩어리를 하나 꺼냈다.
“이게 뭔가?”
“두세바리체.”
“두세바리체?”
“달콤한 탐욕이란 뜻이지.”
시드리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달콤한 탐욕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위험한 이름이구나.”“위험하다니?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최현석이 씨익 웃고는 주변을 마나로 감쌌다.
향이 새어나가지 않게 차단하는 것이었다.
“달콤한 탐욕… 이 노란색 덩어리가 귀한 것인가?”“물론. 이건 엄청 맛있는 과일이거든.”
과일이라는 말에 시드리엘이 아는 체를 했다.
“아, 이건 과일이었군. 과일이라면 아버지가 준 것을 먹어본 적이 있다.”
최현석은 검지를 내밀어 까딱였다.
“노우노우! 그런 흔하디흔한 과일이 아니야. 이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이라고!”
그가 평평한 바위를 하나 골라 먼지를 쓸어내고는 조심스럽게 과일을 올렸다.
“이거 진짜 귀한 거야. 나도 딱 다섯 개밖에 없다고.”“귀한 거라면 굳이 나에게 줄 필요는 없다. 나는 어차피 먹는 행위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됐으니까 앉아봐!”
최현석이 시드리엘의 어깨를 눌러 바닥에 앉혔다.
그 또한 엉덩이를 깔고 앉아 조심스럽게 과일을 붙잡았다.
“자, 가른다.”
최현석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마나를 미세하게 방출했다.
황금빛 과일이 절반으로 잘리고.
동시에 엄청난 향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 이건…?”
시드리엘의 얼굴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표정 생겨났다.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눈.
그녀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아찔한 향기에 경악하고 있었다.
“괘, 괘, 괘, 괘, 괜찮은 것인가?”
“뭐가?”
“이런 향기라니… 위험하다… 너무 자극적…. 우웁!”
최현석은 과일 한 조각을 그대로 시드리엘의 입에 밀어 넣었다.
당황도 잠시, 천천히 시드리엘의 턱이 움직이고.
꿀꺽-
이내 과일이 부드럽게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시드리엘은 멍한 눈으로 최현석을 바라봤다.
“어… 이건…”
“더 줄까?”
시드리엘이 대답하지 않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조각을 주자 말없이 입에 넣는다.
최현석도 한 조각을 들어 먹었다.
‘아아, 이거야…’
절로 눈이 감겨옴과 동시에 환희가 밀려온다.
“너… 최현석이라 했나…? 이곳이 어딘가…?”
어딘가 몽롱해진 목소리다.
최현석 또한 풀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여기는 천국이야.”
“그렇군… 이게 천국…”
시드리엘이 황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국. 최고다.”
“최고지.”
***
“후,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사라 던피의 말과 동시에 양옆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발… 진짜 못 해 먹겠네.”“끄응, 라헬은 지쳤어요. 그저 한 마리의 땡벌. 아니, 땡보였던 시절이 그립다구요…”
라헬이 바위에 늘어진 채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용사님은 어디 가셨죠?”“마왕의 딸도 보이지 않는군.”“무슨 일 생긴 거 아냐?”
셋은 주변을 살펴봤으나, 최현석과 시드리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음, 저쪽 방향에서 용사님이 느껴져요.”
라헬은 최현석과 이어져 있기에 아무리 그가 숨더라도 단숨에 위치를 알 수 있다.
“일단 가 보도록 하지.”
일행은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곧이어 한쪽에서 기괴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흐하하하하하…!”
“크헥, 헥, 크헤헤!”
일행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뭐지?”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속도를 올려라.”
달려갈수록 최현석의 기운이 가까워지고.
기괴한 소음 또한 커져 간다.
마침내 거대한 나무를 지나치자 둘의 모습이 드러났다.
“흐하하하! 최현석! 천국! 천국을 가야 한다!”“기다려! 당장 보내줄 테니까!”
그곳에는 표정이 풀린 채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두 남녀가 있었다.
바닥에는 노란색 껍질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박현아와 라헬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어라? 없네?”
인벤토리를 뒤적이던 최현석이 눈을 끔뻑였다.
두세바리체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상하다. 다섯 개나 있었는데 다 어디 갔지?”“최현석! 바닥에 있다! 바닥!”“오? 정말이잖아? 흐헤헤헤!”“너는 완전히 멍청이구나! 흐하하하하!”
바닥에 있는 과일 껍질을 보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둘은 한참이나 웃어댔다.
사라 던피는 심각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어찌 된 것이냐. 적의 정신 마법에 당한 건가?”
사라 던피는 두세바리체를 모른다.
때문에 최현석이 적의 정신 공격에 당한 것이라 오해한 것이다.
“이상하군. 마법의 흔적은 안 느껴지는데…”
박현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게 아니야. 저 과일에 들어있는 성분이 문제지.”
“성분?”
“그런 게 있어. 하여간 저 병신 새끼는…”
그 와중에 라헬은 분해하고 있었다.
“용사님! 치사해요!”
그녀가 최현석에게 날아가더니 가슴에 펀치를 날렸다.
“어? 라헬?”
“저랑 같이 몰래 먹기로 해놓구선!”“야야! 아직 잔뜩 남았어! 여기 봐!”“그건 껍질이잖아요!!!”
라헬이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과일의 잔해로 다가갔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그녀의 눈에 무언가 포착된다.
‘저건…’
과일 껍질에 조금 남은 과육.
최현석의 정신이 흐려지며 깔끔하게 껍질을 벗겨내지 못한 탓에 약간의 과육이 남아 있었다.
라헬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자존심이 있지!’
자신은 전담 요정이다.
명색이 신의 사도란 말이다.
절대로 과일 찌꺼기를 핥아먹는 한심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때 분노한 박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박현아가 뒤통수를 후려쳐도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 틈에 라헬은 조심스럽게 과일 껍질로 다가갔다.
‘모, 몰래 먹는 거야… 아무도 모르면 체면도 지킬 수 있어!’
그녀가 껍질에 붙은 과육을 핥아먹으려던 그 순간.
“어어! 왜 이러십니까~”
박현아의 주먹질에 밀려나던 최현석이 과육을 발로 밟았다.
콰직-!
터져 나가는 과육 찌꺼기.
라헬은 무릎을 꿇은 채로 절규했다.
“아, 안 돼애에-!”
마왕을 처치한 용사 덕분에 요정의 체면을 지킬 수 있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