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1화(21/273)
피를 흠뻑 뒤집어쓴 최현석을 보며 쿨칸이 반갑게 인사했다.
“최현석! 살아있었군!”“쿨칸 님이 여긴 어떻게….”“도망치던 도중 동굴을 발견하고 들어왔다! 운이 좋았지!”
아무래도 쿨칸은 이곳이 탈라스의 둥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운이 좋기는 지랄…’
최현석이 헛웃음을 삼켰다.
이곳이 탈라스 둥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딘가?”
때마침 쿨칸이 물어왔다.
최현석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탈라스 둥지입니다.”“아하, 탈라스의 둥지였군…”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던 쿨칸이 눈을 부릅떴다.
“방금 뭐라고 했나!?”“탈라스의 둥지라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
“확실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탈라스 한 마리를 죽였으니까요.”
최현석이 바닥에 있는 탈라스 사체를 툭툭 걷어찼다.
“그리고 여기 보이는 동그란 것들은 탈라스의 알인 것 같습니다.”
“…”
쿨칸은 대답하지 않고 초점 풀린 눈으로 알을 바라봤다.
“쿨칸 님?”
“탈라스 둥지로 들어왔다라…”
“괜찮으십니까?”
쿨칸이 갑자기 해맑게 웃었다.
“이거 정말 대단하구만!”
“예?”
“이렇게 말랑말랑한 알은 최상급 식재료거든! 평생 이 맛을 보지 못하고 죽는 놈들이 대다수라고!”
쿨칸이 허겁지겁 알을 찢었다.
그리고는 알에 대가리를 처박고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푸하아! 신선하구만! 쩝쩝!”
“…”
“최현석. 너도 어서 먹어라! 자연산 알! 그것도 탈라스의 것은 고위 간부가 아니면 꿈도 못 꾸는 귀한 음식이야!”
쿨칸은 3일 동안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알을 처먹었다.
“허허…”
최현석은 너무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흐! 탱글탱글한 게 죽이는구먼! 뭐하나!? 어서 최후의 만찬을 즐겨야지!”
“…”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이게 정력에도 그렇게 좋아!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크하하!”
쿨칸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놈…’
최현석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와구와구와구!”
미친 듯이 알을 파먹는 쿨칸은 벌써 2번째 알을 찢고 있었다.
이미 배가 남산처럼 빵빵하게 부풀었음에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쿨칸 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탈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 탈출이라니?”
탈출이라는 말에 쿨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이네.”
“예?”
“벌써 나를 쫓던 놈들이 둥지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거야. 머지않아 이곳까지 들이닥치겠지.”
“…”
“자네도 여왕을 보지 않았나? 그건 절대 못 이겨. 장담하는데 사단장급 간부는 와야 처리할 수 있을 걸세.”
쿨칸이 알을 퍼먹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걸 보고 독 안에 든 쥐라고 하나? 아무튼, 이미 죽은 목숨이니 마지막 만찬이라도 즐기게! 하하하하!”
눈빛이 완전히 돌아버렸다.
최현석은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전 됐습니다… 쿨칸님이나 많이 쳐드십시오…”
저도 모르게 욕이 섞여서 나왔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건방진 태도.
하지만 이미 미쳐버린 쿨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알겠네! 와구와구!”
다시 정신없이 알을 파먹는 쿨칸.
최현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제 어떡하지.”
믿었던 쿨칸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식충이가 돼버렸다.
“라헬. 뭔가 방법이 없을까?”
최현석이 라헬을 향해 물었다.
“글쎄요… 진짜 막막한 상황이긴 하네요.”
라헬도 함께 고민해 봤으니 딱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이곳은 통로가 하나뿐인 막다른 방.
밖으로 나가면 수많은 탈라스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왕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라헬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지던 그때.
“최현석 이건 뭐지?”
어느새 다가온 쿨칸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라헬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 치한이야!”
최현석은 한숨을 내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냥 제 마법 같은 겁니다.”
어차피 죽을 마당에 아부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미쳐버린 놈에게 아부를 해봤자 소용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오호! 사역마 같은 건가?”“예예. 뭐 그렇죠.”
“먹어도 되나?”
“꺼지십쇼.”
최현석이 차가운 눈으로 쏘아붙였다.
쿨칸은 아쉬운 눈빛으로 라헬을 바라보다가 이내 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우걱우걱우걱!”
다시 게걸스럽게 알을 처먹는 쿨칸.
그 소리를 배경으로 라헬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십 년 감수했네. 못생긴 게 얼굴을 들이밀고 지랄이야!”“내버려 둬. 어차피 돌아버렸는데.”“제가 말했죠? 저 근육 돼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니까요?”
라헬이 쿨칸을 노려보며 툴툴댔다.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생각해봐. 뭐 방법 없어?”“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진짜 암울하네요. 저 근육 돼지가 돌아버린 게 이해가 될 정도예요.”
최현석의 물음에 라헬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으로 어떻게 안 돼?”
“무슨 마법이요?”
“뭐, 텔레포트를 한다거나! 아니면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탈출한다거나… 그런 거 안 돼?”“1서클 마법사가 드래곤 마법 쓰는 소리 하시네요.”“응? 그게 무슨 소리야?”“마력 50으로는 턱도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말라구요.”“그러면 뭐 비장의 기술 없어? 숨겨놓은 필살기 같은 게….”“없어요. 이건 우리끼리 어떻게 될 만한 상황이 아니라구요…”
라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을 거야? 뭐라도 해봐야지!”“그러니까 뭔가 할만한 상황….”
말을 하던 라헬이 덜컥 멈췄다.
그러더니 최현석의 어깨를 붙잡고는 소리쳤다.
“용사님!”
갑작스러운 기세에 최현석이 조금 당황했다.
“용사 상점에 들어가 보세요!”“갑자기 왜?
“얼른요! 들어가서 검색 기능으로 마수 백과사전 찾아봐요! 있어요?”
“어. 있네.”
라헬의 말대로 마수 백과사전이라는 아이템이 존재했다.
□ 알아두면 쓸모 있는 백과사전! – 마수편설명 : 거의 모든 마수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능력 : –
필요 용사 포인트 : 50
“그걸 사죠.”
“이게 왜 필요한데?”
전체적으로 뭔가 애매해 보이는 아이템이었다.
중요한 용사 포인트를 이런 데 투자해도 될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용사님 입으로 그랬잖아요! 이대로 죽을 거예요!?”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탈라스에 대한 정보라도 알아보죠. 뭔가 다른 수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으음, 일리가 있어.”
최현석은 금세 납득했다.
‘좋게 생각하자. 앞으로 계속 마수와 싸우려면 꼭 필요한 아이템이기도 해.’
생각해보면 지금껏 용사 상점에서 산 아이템이 실망을 안겨준 적은 없었다.
대형견이 좋아하는 대형 뼈다귀.
MSG가 듬뿍 첨가된 맛소금.
각각 30포인트와 20포인트를 주고 구매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최현석은 굉장히 만족했다.
“좋아. 지른다.”
어차피 이대로 죽으면 사용하지도 못할 포인트다.
최현석은 눈을 딱 감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책 한 권이 툭 하고 떨어졌다.
“두께 한번 살벌하네.”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백과사전을 보며 최현석이 혀를 내둘렀다.
“뭐해요!? 빨리 찾아봐요. 일분일초가 급하다고요!”
“알겠어.”
최현석은 재빨리 사전을 살폈다.
원하는 것은 탈라스의 정보.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페이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탈라스가 성체로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년…”“여왕의 몸길이는 4m 내외, 다리 포함 길이는 15m가 넘는…”“가장 단단한 부위는 다리다. 탈라스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몸통, 특히 머리 부위를 공략하면… 아! 그래서 내가 잡을 수 있었구나.”
처음에는 기초적인 정보뿐이었다.
크기가 어떠며 어떤 특징이 있고 위협적인 무기는 무엇이며 약점은 무엇인지 등등.
사냥할 때는 굉장히 유용하겠지만, 지금 필요한 정보는 아니다.
최현석은 빠르게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탈라스는 지반이 약한 곳을 파서 거대한 동굴을 만든다. 마력이 담긴 타액으로 연약한 지반을 강화하고…”
책에는 어째서 탈라스가 이런 거대한 동굴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그렇게 탈라스에 관련한 모든 설명을 독파하고.
최현석이 책을 덮었다.
“뭔가 방법이 나왔어요?”
“애매하네…”
머릿속에 어떤 계획이 그려지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은, 빈틈투성이의 허술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예 희망이 없는 건 아니야.”
최현석이 쿨칸에게 다가갔다.
“쿨칸 님.”
“와구와구!”
최현석이 불러도 쿨칸은 연신 알을 파먹기 바빴다.
“쿨칸 님.”
“와구와구와구!”
“야.”
“쩌업, 쩝!”
“야 인마!”
최현석이 쿨칸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불시에 뺨을 맞은 쿨칸의 눈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눈에 형형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쿠, 쿨칸 님! 정신이 드십니까!?”
“응…?”
“사악한 마법에 당한 듯하여 제가 깨워드렸습니다!”
“아… 그런가…”
쿨칸은 쉽게 납득했다.
역시 아직 정신을 차린 건 아닌 것 같았다.
한 번 더 뺨을 후리려던 최현석이 멈칫했다.
‘더 치는 건 위험하겠지.’
일단은 이 상황에서 설득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쿨칸 님. 혹시 불마법 같은 거 쓰실 줄 아십니까?”
“불마법?”
“예. 불꽃을 쏘는 마법 말입니다.”“으음… 단순히 불꽃을 쏘아내는 것 정도라면 가능하지.”
“오오오!”
예상외로 쿨칸은 마법도 사용한 것 같았다.
‘이놈 진짜 정체가 뭐야?’
다른 중대장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전투력.
가만 보면 멍청해 보이지만, 어떨 때는 유식해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마법까지 사용한다니.
‘일단 접어두자. 중요한 건 탈출하는 거니까.’
최현석은 쿨칸에 대한 생각을 치우고 말을 이었다.
“밖으로 나갈 방법이 있습니다.”“최현석. 탈라스의 표피는 불에 강해. 내 마법으로는 탈라스를 죽이는 건 힘들다. 특히 여왕한테는 따끈한 찜질 수준이겠지.”
“상관없습니다.”
“응?”
“불은 탈라스를 태우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최현석의 말에 쿨칸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머리가 돌아버린 건가?”
“크흐음!”
최현석은 순간 열이 뻗쳤지만, 참아내는 데 성공했다.
“일단 제 계획을 듣고 판단해 보시죠.”
최현석은 최대한 간략히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설명했다.
언제 놈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이런 겁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쿨칸이 생각에 잠겼다.
멍청이 쿨칸이 아닌, 진중한 모습의 쿨칸이었다.
“가능성이 너무 낮아. 지극히 위험하기도 하고. 사실 계획이라 하기도 뭣한 수준이군.”“하지만 0퍼센트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대로 죽을 바엔 시도라도 해봐야죠.”“그건 그렇지만…”
쿨칸은 망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현석이 말한 작전은 너무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
그때 최현석이 쿨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쿨칸 님! 앞으로도 맛있는 걸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어떻게든 살아야 합니다!”
맛있는 거!
마법의 주문에 쿨칸이 눈을 부릅떴다.
“좋다.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긴 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전투력 삼만오천의 남자, 쿨칸이 벌떡 일어났다.
‘크다…!’
최현석은 눈을 부릅떴다.
수많은 알을 먹어 치워 잔뜩 부풀어 오른 쿨칸의 복부가 산처럼 거대했기 때문이다.
‘딱 처먹은 만큼만 활약해줬으면 좋겠는데…’
최현석이 불안해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입구에서 조리병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조, 조리장님이다! 살았어!”
아무래도 살아남은 생존자가 이곳까지 흘러든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며 최현석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계획에 부족했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때마침 손이 부족하던 차에 좋은 인력이 나타나 줬다.
‘이 지옥에서 살아남아 보는 거야.’
목숨을 건 최후의 작전을 시작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