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1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11화(211/273)
시드리엘은 잠조차 자지 못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사흘.
마족의 땅 전역에 흩어진 대의원을 찾아가기엔 촉박한 시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오즈게스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다.
의장으로서 각각의 의원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던 그는 시드리엘과 함께 공간 이동 마법으로 움직이며 의원들을 찾아다녔다.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가.”
시작은 오크 대족장 마투크였다.
그는 마왕군의 핵심 전력,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오크의 우두머리였다.
“며칠 뒤에 열릴 대회의에서 나를 지지해 달라.”
시드리엘의 요청에 마투크는 고개를 저었다.
“나 마투크는 더 강한 자를 따를 뿐이다.”
시드리엘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으나, 마투크는 요지부동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후우, 알겠다.”
결국 시드리엘은 포기하고 다른 의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크륵! 이거 재미있군.”
다음으로 만난 이는 고블린 마스터 레를록이었다.
그는 그리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진 않았지만, 모든 고블린이 존경하며 따르는 마족이었다.
전체 마족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고블린.
그 모두를 통솔하는 레를록의 영향력은 분명 적지 않았다.
“크륵! 나와 우리 고블린에게 무얼 해줄 수 있지?”
“원하는 게 뭔가.”
“영구적인 군단장 자리를 원한다.”
“그건 불가능해.”
시드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레를록을 군단장으로 임명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군단장 임명은 오직 마왕의 권한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왕군에서 강함은 절대적.
고블린 마스터 레를록은 사단장급의 무력밖에 갖추지 못했다.
그에게 군단장의 자리를 준다 해도 금세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영구적인 자리를 원한다 말한 것이겠지만…’
그런 특혜를 줬다간 당장 다른 마족들이 들고일어날 게 뻔한 상황.
“미안하다. 거짓된 약속을 할 수는 없다.”
“알겠다.”
이후로 만난 대의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거절한다. 우리는 이미 도리투그스를 지지하기로 약속했다.”
가장 강대한 세 개의 귀족
가문.
그들은 도리투그스와 함께할 것이라 말했다.
“대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하지.”
다크 엘프의 수장, 케크나 크레수사 또한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
“흠, 확실히 기품이 있어 보이긴 하구나.”
오직 뱀파이어 로드, 레흐시스카만이 호감을 내비쳤다.
“최종 결정은 회의장에서 결정하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지.”
“고맙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데 사흘이 모두 지나갔다.
늦은 밤.
거처로 돌아온 시드리엘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마수 누비모그렐은 만나지조차 못했군.”“원래 그는 밖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회의장에 나타날지도 의문입니다만, 나타난다 해도 무조건 기권표를 던질 겁니다.”
“그런가.”
회의는 내일 정오.
시드리엘은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남은 것은 운명에 맡길 뿐이었다.
***
다음날 정오.
제4군단 본부 브리드 보즈라에서 대회의가 열렸다.
원래는 마왕성에서 진행해야 했으나, 마왕이 죽고 성전의 군대가 마왕성을 점령했기에 불가피하게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 같은 약골과 마주 앉다니. 불쾌하다.”“크륵! 멍청한 오크의 악취가 여기까지 풍기는군.”“네놈! 그 삐쩍 곯은 척추가 뽑히기 싫다면 닥쳐라!”
아직 회의가 시작되기 전.
오크 대족장 마투크와 고블린 마스터 레를록이 신경전을 펼쳤다.
침까지 튀겨가며 떠드는 둘을 보며 뱀파이어 로드 레흐시스카가 한숨을 내뱉었다.
“저런 열등한 놈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회의에 올 때마다 왜 진작 영면에 들지 못했는지 후회된다니까.”“계집 뭐라고 했나. 오크는 열등하지 않다!”“일개 소수 민족
주제에 감히 대부족인 고블린을 무시하다니!”“호오, 지금 쓸데없이 식량만 축낸다는 걸 자랑이라고 말하는 거야?”
레흐시스카까지 설전에 참여하며,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회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무산될지도 지경이었다.
‘후우, 벌써 어지럽군.’
결국, 의장 오즈게스가 중재에 나서려던 그때.
“시드리엘 님 들어가십니다.”
안내음과 함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쿠구구구-!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문이 열리고.
이내 작은 체구의 마족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대의원과 군단장 모두 시드리엘을 빤히 바라봤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공격적인 마기를 보내기도 했다.
“…”
시드리엘은 아무렇지 않게 그 기운을 받아넘기며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저게 테그라드의 딸인가.’
시드리엘을 처음 보는 도리투그스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순간 시드리엘과 그의 눈이 마주친다.
“…”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둘.
회의장에 기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흠흠, 의결권자가 모두 모였습니다.”
오즈게스가 말했다.
이대로 있는 것보다는 빠르게 회의를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직 누비모그렐이 오지 않았다.”“누비모그렐은 기권표를 던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군.”
마수 누비모그렐.
그는 오즈게스의 예상대로 기권표를 던졌다.
이로써 회의 참석자는 총 열하나.
군단장 셋에 대의원 여덟이다.
이중 오즈게스는 군단장이자 대의원으로 중복 투표가 가능했기에 총 표 수는 열둘이었다.
“지금부터 다음 마왕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오즈게스의 말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두 오즈게스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먼저 간단히 두 마족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첫 번째 후보는 테그라드의 딸 시드리엘 입니다.”
시드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드리엘이다. 마왕의 자리는 응당 나의 것. 마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내가 마왕이 되는 게 옳다.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믿겠다.”
짧은 소개를 끝낸 시드리엘이 자리에 앉았다.
오즈게스가 다음 후보를 소개했다.
“다음은 제1군단장 도리투그스입니다.”
도리투그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의결권자들을 둘러봤다.
“이 자리에서 나보다 강한 마족이 있는가?”
예고도 없이 튀어나온 무례함.
하지만, 대회의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그럼 더 말할 것도 없겠군. 마왕은 강자가 되는 법.”
“…”
“이 자리에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마족에게 미래를 맡길 멍청이는 없다고 믿는다.”
도리투그스의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오즈게스는 회의를 계속 이어갔다.
“지금부터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자유롭게 의결권을 행사해 주십시오.”
오즈게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리투그스가 손을 들었다.
“나부터 하지.”
“제1군단장. 말씀하십시오.”“나는 나 자신. 도리투그스를 추천하겠다.”
오즈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투그스 한 표.”
뒤이어 세 명의 마족이 줄줄이 손을 들었다.
“나도 도리투그스를 뽑도록 하지.”
“도리투그스.”
“마찬가지다.”
모두 도리투그스를 지지하는 귀족
가문들이었다.
이로써 도리투그스는 총 네 표를 가지게 됐다.
‘여기까지는 예상한바.’
오즈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름을 바꿔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가 손을 들었다.
“저는 제4군단장이자 카우든 일족의 수장, 대의원으로서 시드리엘 님을 지지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드리엘 또한 손을 들었다.
“나 시드리엘 또한 나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지.”
이로써 시드리엘도 세 표를 가져가게 됐다.
지금까지 투표 결과는 4대3총 12표 중 7표가 나왔으니 남은 것은 5표다.
각각 다크 엘프 수장, 고블린 마스터, 오크 대족장, 뱀파이어 로드, 제4군단장이었다.
그때 다크 엘프의 수장 케크나 크레수사가 손을 들었다.
“다크 엘프는 도리투그스를 원한다.”“고블린 또한 도리투그스를 지지한다.”
순식간에 도리투그스에게 2표가 추가됐다.
시드리엘의 표정에 점차 초조함이 드러났다.
“나는 저 소녀를 뽑도록 하겠어. 도리투그스보다는 기품이 있어 보여.”
뱀파이어 로드 레흐시스카가 말했다.
이로써 6대4.
남은 것은 오크 대족장 마투크와 제4군단장 오닉스뿐이다.
도리투그스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끝났군.’
만약 여기서 저 둘이 모두 시드리엘을 지지한다면 동률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사전에 모든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나 오크 대족장 마투크는….”
오크 대족장이 발언하려던 그 순간.
쿠웅-!
“제3군단장 헤미스 님 입장하십니다.”
문이 열리며 안내음이 들려왔다.
“어머~ 내가 좀 늦었지?”
그녀를 본 대의원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헤미스. 살아있었나…?”“죽었다고 들었는데.”
아직 헤미스의 생존을 모르는 대의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리투그스는 담담히 그녀를 바라봤다.
“너는 오지 않을 거라 했던 것 같은데.”“생각해 보니 나도 마왕이 인정한 제3군단장이지 않니?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게 좋아 보여서. 문제는 없겠지?”
헤미스의 물음에 오즈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회의 도중에 참여해서 안 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좋아. 그럼 나는 시드리엘을 지지하겠어.”
순간 도리투그스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미스! 뭐 하는 짓이냐!? 그때와 말이 다르지 않은가!”
헤미스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어머, 나는 다음 마왕이 선출되는 걸 돕는다고 했지. 그게 너란 말은 안 했는데?”
얄미운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도리투그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헤미스가 의결권을 행사한 상황.
도중에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디 보자…”
헤미스가 자리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그녀가 기괴한 웃음과 함께 대의원들을 훑어봤다.
“남은 친구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 믿어. 무슨 말인지 알지?”
명백한 위협, 협박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입을 꾹 다물 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도리투그스에게 표를 행사한 고블린 마스터 레를록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호, 혹시 바꿀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끄으…”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하는 레를록.
그를 무시하고 회의는 계속해서 진행됐다.
“자, 그럼 다음은 누구지?”
그녀의 말에 오크 대족장 마투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나, 마투크는….”
마투크가 발언하려던 그때.
돌연 헤미스가 입을 열었다.
“아~ 요즘 몸이 영 허해서 그런가 고기가 먹고 싶네.”
“…”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고기를 먹고 싶은데 말이야~”
은근한 시선으로 마투크를 바라보며 말하는 헤미스.
혀로 입술을 핥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오크 대족장 마투크의 등 뒤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뭐하니? 그냥 혼잣말이었어. 계속하렴.”“나 마투크는… 시드리엘을 지지하겠다.”
헤미스가 씨익 웃고.
도리투그스가 벌떡 일어났다.
“이건 말도 안 돼! 명백한 협박이지 않은가!”“어머, 협박하면 안 되는 거였어? 대회의에 그런 규칙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즈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곳은 마족이 치르는 대회의다.
그 과정에서 회유, 협박, 밀약 등.
어떤 방식을 쓰던 자유였다.
도리투그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협박해서 표를 가져가는 것은 처음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쳇…”
도리투그스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딱 절반인가.’
현재까지 나온 표는 6 대 6.
남은 표는 제4군단장 오닉스뿐이다.
‘오닉스. 이제 와서 말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오닉스는 이미 도리투그스와 함께하기로 한 상태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은 그가 이미 마왕을 배신한 전력이 있다는 것.
강자에게 붙는 그의 성정상 다시 나타난 헤미스를 보고 저쪽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존재했다.
“제4군단장 오닉스다. 나는…”
오닉스가 손을 들고 발언하던 그때.
“들어갈 수 없습니다.”“시발. 뭐라는 거야?”
회의장 밖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전부 막아!”
“비켜 찌꺼기 새끼들아!”퍼억-! 퍽!
점차 커지는 소란.
모두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때.
무언가를 눈치챈 도리투그스가 벌떡 일어났다.
“오닉스! 어서 말해라! 너는 누구를 지지하겠…!”콰아앙-!
굉음과 함께 회의장 문이 폭발하고.
한 무리가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오, 다행히 아직 안 끝났나 보네.”
난데없이 찾아온 불청객, 박현아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진짜 제4군단장 등장하셨다. 짜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