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14)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14화(214/273)
마족
대회의 이후.
논의 끝에 일행은 둘로 갈라졌다.
먼저 박현아와 사라 던피는 마리어트 왕국 스콜본으로 돌아갔다.
아직 박현아가 회복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스콜본에 머물며 치료를 마무리해야 했다.
“이 주 후에 뵙겠습니다.”“적당히 놀다 와라.”“노는 거 아닙니다.”
최현석은 마왕군에 남았다.
레이드런과 함께 훈련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강해진 육체를 완벽하게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어.’
마왕 테그라드를 처치하면서 역대급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상승했다.
이전까지는 얼마나 강해지든 항상 완벽한 신체 통제 능력을 보여왔던 최현석이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가까워졌다.
슬슬 변화하는 육체가 그의 인지능력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아무리 최현석의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제대로 된 적응 훈련을 하지 않으면 온전히 힘을 끌어낼 수 없었다.
“좋다! 최현석, 네가 함께해준다면 언제든 환영이지!”
레이드런은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곧 성전의 군대와 크게 치고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어차피 그의 훈련은 멈추지 않는다.
거기에 최현석이 함께한다면 레이드런으로서도 이득이었다.
“최현석. 묻고 싶은 게 있다.”
며칠간의 훈련이 이어지던 도중.
돌연 레이드런이 제안을 하나 건네 왔다.
“혹시 마왕군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나?”
“마왕군에?”
“그래. 상황을 보니 딱히 오갈 데가 없는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 최현석은 딱히 거처라 할 만한 곳이 없다.
마리어트 왕국이 있긴 했지만, 아벨슨이 있다 뿐이지 최현석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곳은 아니었다.
“마왕군으로 온다면 군단장이 되도록 힘써보마.”“군단장이라니! 그게 정말입니까!?”“어차피 공석인 2군단장 자리에 합당한 인물을 올리는 것이니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야.”
“으음…”
“마왕군은 변화하고 있다. 시드리엘 님에게는 새로운 인재가 필요해.”
시드리엘이 마왕이 된 이후.
수백 년간 멈춰 있던 마왕군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복잡해진 군단장 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먼저 레이드런이 정식으로 제3군단장이 되고, 모템은 부군단장이 됐다.
모템은 마지막까지 부군단장이 되기 싫다고 버텼지만.
“흐응~ 나는 모템이 했으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헤미스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승낙했다.
군단장직에서 물러난 헤미스는 아직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별다른 직책을 맡지 않았다.
그리고 박현아 또한 군단장직에서 물러나고 공석이 된 제4군단장 자리에 정식으로 오닉스가 임명됐다.
사실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건 없었다.
어차피 레이드런과 오닉스는 군단장직을 수행하고 있었으니까.
변화한 것은 임시 딱지를 떼고 마왕에게 정식 군단장으로 임명받았다는 것 정도.
하나, 이런 사소한 게 중요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번 마족
대회의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것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강요는 아니다. 그저 원한다면 길이 열려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
레이드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딱히 최현석에게 부담을 지울 생각은 없는 듯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거면 됐다.”
이후로도 최현석과 레이드런은 계속해서 훈련을 이어갔다.
종종 레이드런이 전투하러 가는 날이면 최현석은 홀로 훈련했다.
아직 적응이 완벽하지 않았고, 전장에 합류해서 도움을 주기에는 그의 입장이 애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약속한 이 주가 흐른 날.
“가는 건가.”
레이드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현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또 볼 수 있을 겁니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신성 제국 가트렌은 여전히 강대하다.
대륙 제패라는 야욕 또한 버리지 않았다.
공동의 적을 둔 이상 언젠가 협력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히 계십쇼.”“살아서 또 보도록 하지.”
레이드런의 미소를 뒤로한 채.
최현석은 다시 마왕군을 떠났다.
***
마리어트 왕국의 수도 스콜본.
오랜만에 돌아온 스콜본은 분위기가 많이 변해 있었다.
“믿음을 져버리지 마라!”“데우시스의 이름으로 마족을 처단하라!”
거리 곳곳에서 고성이 들려온다.
하나같이 새하얀 옷을 입은 이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말했다.
“데우시스 교를 믿습니까?”“성전이 성공했습니다! 마왕이 죽었습니다! 지금이 대륙에서 마족을 몰아낼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반쯤 뒤집힌 눈으로 소리치는 남자.
옆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께름칙했다.
당연히도 눈앞에서 광신도를 마주한 사람들은 곤란한 표정으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몇몇 사람은 오히려 광신도의 얼굴에 침을 뱉거나 멱살을 잡았다.
“평화의 시대다! 언제까지 전쟁만 할 수는 없어!”“광신도! 전쟁광! 이제는 멈춰!”
이처럼 극심한 반발이 있을 때는 자연스레 분위기가 더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단자! 신벌을 내려주마!”“이런 광신도 새끼가!”
고성이 오가던 두 남자 사이에 손발이 오가고.
점차 격화되는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죽어라! 이단자!”
마침내 사제로 추정되는 이가 칼을 빼 들었다.
새하얀 로브 속에서 나온 단검.
그것이 상대편의 가슴을 찌르기 직전.
“오케이. 여기까지.”
돌연 나타난 거구의 남자가 칼을 잡았다.
“너는 누구…. 컥!”
최현석은 가볍게 사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사제는 그대로 의식을 잃으며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너무 걱정하진 마쇼. 가벼운 뇌진탕일 테니.”
최현석이 빼앗은 단검을 부러뜨리며 말했다.
그에 화답하듯 쓰러진 사제의 입에서 게거품이 부글부글 나왔다.
“어… 아니면 말고…”
가벼운 뇌진탕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떤가.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최현석은 왕궁으로 향했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떠날 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최현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가 떠나기 전의 스콜본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아벨슨이 통치하며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거리에서는 다시 웃음꽃이 피어나는 중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분명 예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으리라 생각했건만.
“이건 뭐 상태가 더 심해졌네.”
지금의 스콜본은 아벨슨의 오기 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떤 면에선 질이 더 안 좋아졌다고도 볼 수도 있었다.
“흐음,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여요.”
라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굶어서 빌빌대는 느낌은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할까… 겁에 질린 것처럼 보여요.”“그러게. 빨리 왕궁에 가봐야겠어.”
최현석이 발걸음 속도를 높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아벨슨을 직접 만나 묻는 게 빠를 듯했다.
***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나요.”“예. 저야 뭐 늘 좋죠.”
오랜만에 재회한 최현석과 아벨슨.
둘은 다과와 함께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님이랑 사라 씨는 아직인가 보네요.”“네. 한창 치료 중이죠. 듣기로는 한 달은 더 지나야 어느 정도 전투를 치를 몸이 된다고 해요.”
“아하.”
박현아는 여전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듯했다.
고생이 심한 듯했으나, 잘 치료되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테니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아벨슨 씨.”
“네?”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간 이후.
최현석은 수도에서 본 광경에 관해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하아, 보셨군요…”
아벨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먼저 말씀드릴 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마리어트 왕국뿐만이 아니라는 거예요.”“마르어트만이 아니라면?”“지금은 대륙 어디를 가든 이런 분위기예요.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죠.”
아벨슨이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대한 폭풍이 밀려오고 있어요.”
“폭풍…”
“이제까지처럼 마족과의 전쟁이 아닌, 인간 사이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죠. 지금 보이는 현상은 그 전초전이고요.”
인간이 인간과 벌이는 전쟁.
그 말은 즉, 가트렌이 본격적으로 대륙 정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생각이 깊어지자 최현석의 미간이 자연스레 좁혀졌다.
“가트렌이 움직이다니 이상하네요. 원래 마족을 먼저 처리하고 다음 단계를 밟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상황이 변했어요.”
“어떤 면에서?”
“혹시 마족이 한 평화 선언을 알고 있으신가요?”“아, 그거라면 저도 들었습니다.”
새로운 마왕 시드리엘의 평화 선언.
최현석 또한 레이드런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평화 선언 이후로도 마족과의 전쟁을 그만두지 않은 걸로 아는데요. 오히려 더 심해지지 않았습니까?”
평화 선언에도 성전의 군대는 물러나지 않았다.
애초에 마왕 테그라드 토벌이라는 목적을 달성했고.
새로운 마왕이 평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음에도, 그들의 진격은 계속됐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거세졌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마족을 이 땅에서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시드리엘의 평화 선언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오히려 반대예요. 새로운 마왕은 불씨를 던진 거죠. 인간의 갈등을 양분 삼아 덩치를 키우는 불씨를…”
최현석이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아벨슨이 설명을 이었다.
“먼저 움직인 건 드라센 제국이었어요. 그들은 마족이 사라지길 원하지 않았으니, 평화 협정은 좋은 빌미가 됐죠.”
그제야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최현석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민심을 뒤집으려 한 거군요.”“네. 사람들을 선동해서 전쟁을 멈추게 하려 한 거죠. 그게 의외로 잘 먹혔고, 당황한 가트렌은 똑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했어요. 이 기회에 대륙에서 마족을 지워야 한다는 식으로.”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거대한 여론전이 펼쳐진 것이다.
누가 더 사람들을 잘 선동해 민심을 잡는가.
여기서 승리한 자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가져갈 수 있기에 두 제국 모두 필사적이었다.
“그렇다면 성전의 군대가 더 다급해진 것도 이해가 가네요. 혹시나 여론전에서 밀렸을 때를 대비해서 지금 최대한 마족을 밟아둔다. 대충 이런 거겠죠.”“맞아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두 진영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어요. 전쟁이 격해지는 만큼 피해도 커지는 중이니까요.”“흐음… 골치 아프네요.”
최현석이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
이렇게 머리 쓰는 일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럴 때 보면 단순한 마족의 생리가 어떤 면에선 정말 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왕국은 평화 진영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요.”
아벨슨이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어쨌거나 우리도 드라센 제국과 마찬가지로 마족이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신성 제국 가트렌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마족은 남아 있어야 한다.
이대로 가트렌이 마족을 박멸하고 전쟁을 종식하면 더는 막을 길이 없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없습니까?”“최현석 씨에게는 딱히 부탁드릴 일이 없네요.”
아벨슨이 고개를 저었다.
“자칫하면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상황이 거대한 폭력 사태로 번지지 않는 이상은 저도 지켜보기만 할 상각이에요.”“흠, 잘 알겠습니다. 가능하면 그런 일이 없어야겠네요.”
“그렇죠…”
최현석과 아벨슨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이번 일은 대륙의 모든 인간이 직간접적으로 엮인 만큼, 자칫하면 전례 없는 규모의 폭력 사태로 번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고 했던가.
“그게 무슨 말이죠!? 고위 사제가 죽었다니!?”
최현석이 도착하고 불과 이틀 후.
스콜본에서 고위 사제가 집단 린치를 당해 죽는 사태가 벌어진다.
“경비는 뭘 했나요? 분명 일이 커지지 않게 단속하라 했을 텐데요.”“죄송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을 틈이 없었습니다.”
“하아…”
아벨슨의 한숨이 채 끝나기도 전.
“국왕 폐하! 급보입니다!”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다.
아벨슨이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또 뭔가요?”“이번에 발생한 고위 사제의 죽음과 관련해서 가트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사건이 발생한 지 고작 몇 시간 만에 연락이 오다니.
이쯤 되면 이런 일이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속도였다.
“가트렌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그게…”
보고하던 이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추기경단을 보내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