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1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16화(216/273)
도시는 비릿한 혈향으로 가득했다.
거기에 방치된 시체에서 나온 썩은 내가 섞이며 기이한 악취를 만들어 냈다.
“컹, 컹!”
“까아악-!”
들개, 쥐, 까마귀 따위가 골목골목을 돌며 시체를 처리했지만.
그보다 새로운 시체가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단 색출이 시작되고 일주일.
스콜본에는 죽음이 만연했다.
무려 오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모두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끔찍한 학살극을 벌인 장본인.
세 명의 추기경은 데우시스 교의 신전에서 한가롭게 티타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의외입니다. 아벨슨 국왕이 상황을 방치하다니. 처음 분위기만 봤을 때는 보아 군사를 동원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요.”
추기경 피덴지오가 말했다.
이에 베니그소 추기경이 말을 받았다.
“어리긴 하나 현명한 자입니다. 우리를 막아섰다간 왕국의 미래가 끝난다는 걸 아는 게지요.”“아쉽습니다. 치기 어린 마음에 일을 저질러주길 바랐는데…”
추기경 피덴지오가 입맛을 다셨다.
아벨슨이 군대를 동원하면 왕실을 이단으로 낙인찍고 왕국 전체를 삼키려 했건만.
예상보다 그녀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이대로 마리어트 왕국에서의 영향력만 확대해도 충분히 이득입니다.”“맞습니다. 이제 데우시스를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깨달았으니, 이곳 국민은 왕실보다는 교를 우선시하고 따를 것입니다.”“결국, 시간의 차이일 뿐. 마리어트 왕국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다른 추기경들의 말에 피덴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이 짧았군요. 조급함을 버리고 편안하게 기다려야겠습니다.”“무슨 일이든 조급함은 독이지요!”“맞습니다. 하하하!”
이후로도 추기경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저들끼리 웃고 떠들기가 한창이던 때에.
쾅-!
갑자기 예배당의 문이 열리며 한 사제가 들이닥쳤다.
“무슨 일입니까? 신성한 예배 시간을 방해하다니!”
추기경 피덴지오가 자못 엄한 표정을 지으며 호통을 쳤다.
헐레벌떡 뛰어온 사제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사안인지라…!”“후, 말씀해보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언데드입니다!”
“예?”
“스콜본 인근에 대규모 언데드가 집결했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이단 색출로 떠들썩하던 수도 스콜본이 다시 한번 뒤집혔다.
“소식 들었어? 바로 옆 데트론 숲에 언데드가 나타났다는군. 그 숫자만 해도 수만에 달한다던데…”“수만!? 그만한 언데드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진정들 하게. 어차피 수도에는 데우시스 교가 있어. 추기경이 무려 셋이나 계신 데 그깟 언데드가 무슨 걱정인가.”“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지.”“괜한 걱정하지 말고 다들 작업이나 하세.”
언데드 군단의 진격.
보통의 도시에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나, 스콜본은 달랐다.
현재 스콜본에는 데우시스 교의 대규모 군대가 파견된 상황.
언데드쯤이야 교에서 움직인다면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 라는 게 절대다수의 생각이었고.
이는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마기는 신성력에 약했고, 언데드는 특히나 더 그러했다.
그동안 데우시스 교는 대륙의 언데드를 토벌하며 이러한 관계성이 진실임을 입증했다.
그러니 도시 인근에 언데드 군단이 집결했다 해서 전혀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는 것이다.
“흠, 귀찮게 됐군요.”
추기경 피덴지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언데드 숫자가 일만이 넘어간다고 합니다.”“일만이라니. 그만한 수가 도대체 언제 모였단 말입니까?”“그건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언데드를 떠안게 생겼다는 겁니다.”
데우시스 교에서 언데드를 처리해야 한다.
이미 상황이 그렇게 깔려 있었다.
만약 여기서 언데드를 처단하지 않고 도망친다?
마리어트 왕국에서 지금껏 쌓아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게 뻔했다.
“일단은 국왕에게 말합시다.”“맞습니다. 수도의 방비는 마땅히 왕국이 나서야 할 일. 교에서 이들을 지켜줘야 할 이유는 없지요.”
추기경들은 곧바로 왕궁으로 직행했다.
사전에 약속하지 않고 국왕을 찾아가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으나, 누구도 그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국왕 아벨슨 마리어트는 흔쾌히 만남을 수락하고,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죠?”
“폐하. 사악한 마족의 수하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아, 언데드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아벨슨도 이미 언데드 집결 소식을 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언데드! 당장 그놈들을 처단해야 합니다.”“언데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규모와 질이 상승합니다. 벌써 일만이 넘는 군세가 모였습니다.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늦습니다!”“지금 당장 출발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토벌할 수 있을 겁니다!”
추기경들이 돌아가며 열변을 토해냈다.
쉽게 말하면 빨리 군대를 보내서 언데드를 토벌하라는 뜻이었다.
이들은 어째서 직접 나서지 않고 아벨슨을 움직이려 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언데드를 사냥해 봤자 별다른 득이 없다.’
마리어트 왕국을 잡아먹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언데드를 사냥하면 분명 사람들이 더 열광하긴 하겠지만, 딱히 사냥하지 않아도 계획에는 차질이 없다.
즉, 굳이 불필요한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다 못 해 국왕의 군대도 함께 움직이게 해야 해.’
그렇다고 언데드를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왕국의 군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교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채로 언데드를 막아내는 것이다.
“마리어트 왕국에는 그럴 여력이 없어요.”“역시 현명한 판단을…, 예?”
당연히 아벨슨이 군대를 보내리라 생각했던 추기경 피덴지오는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왕국에 여력이 없다니!?”“말 그대로죠. 마리어트 왕국은 군대를 보내 언데드를 토벌할 여력이 없어요. 우리는 이곳 스콜본에서 성벽을 두고 유리한 고지에서 언데드와 싸우겠어요.”“이, 이 무슨 멍…!”
무슨 멍청한 발언이냐 소리치려던 추기경 피덴지오가 필사적으로 말을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왕궁.
모두의 앞에서 국왕에게 지나친 무례는 범하는 것은 좋지 않다.
추기경 피덴지오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폐하. 언데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세가 커집니다.”“저도 알고 있어요.”“그걸 아시는 분께서 왜 숨는다는 판단을 내리시는 겁니까. 이미 적의 군세가 일만을 넘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마리어트 왕국 전체가 위기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폐하께서는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으십니까!?”
추기경 피덴지오가 처절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지금껏 수천에 달하는 사람을 학살한 인간이 국민 타령을 하다니.
아벨슨은 혐오와 함께 밀려오는 실소를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우린 일만이 넘는 언데드를 토벌할 여력이 없어요. 수도의 방어 시스템, 마법, 성벽을 믿고 이곳에서 수비합니다.”“안 됩니다! 그렇다면 교에서 나설 테니 하다못해 지원 병력이라도….”“아니요. 우리는 수도를 지킬 겁니다. 수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거예요.”
아벨슨은 단호했다.
세 추기경은 답답한 상황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으나, 이건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아벨슨이 그들의 이단 심문을 막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로.
수도의 방비 또한 아벨슨의 고유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볼일이 끝났다면 이만 가주시겠어요? 수도 방비에 관련해서 신경 쓸 게 많아서.”
아벨슨의 축객령에 세 추기경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왕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
왕궁을 나선 세 추기경은 분을 삼키지 못하고 씩씩댔다.
“저렇게 멍청할 수가! 이깟 도시의 방어 체계가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추기경 카이노가 소리쳤다.
추기경 피덴지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습니다. 시간을 두면 언데드가 얼마나 강해지는지 몰라서 저러는 게 분명합니다!”
두 추기경은 아벨슨이 얼마나 무능하고 멍청한지.
어째서 언데드를 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한껏 떠들어 댔다.
“아무것도 몰라요! 무지해도 너무 무지합니다!”
사실, 언데드에 관한 이들의 판단은 틀린 게 아니다.
오히려 매우 정확하다 할 수 있다.
신성 제국 가트렌, 데우시스 교는 누구보다 많은 언데드를 토벌했고.
그 결과 상당한 노하우가 축적된 상황이었다.
그런 노하우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언데드는 발견하자마자 달려가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추기경 베니그소가 말했다.
“아마 배짱을 부리는 겁니다.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버티는 게 분명해요.”
그는 아벨슨이 멍청하다기보다는 간교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볼모로 잡고 우리에게 협박하는 것이지요.”“그럼 더 문제 아닙니까?”“어쩔 수 없지요. 어차피 다 제국의 품으로 들어와야 할 것들. 그깟 언데드를 처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듣자 하니 언데드 군단은 숫자만 많을 뿐 대부분 저급 언데드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따로 지원 요청을 할 필요도 없다.
지금 있는 사제와 성기사만 움직여도 압도적으로 승리할 게 뻔했다.
“저와 카이노 경이 같이 움직이겠습니다. 피덴지오 경은 수도에 남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주십시오.”“후우, 알겠습니다.”
짧은 회의 결과.
추기경 베니그소와 추기경 카이노가 언데드 토벌을 위해 출진하기로 했다.
성기사 이천, 사제 천.
도합 삼천 명이 함께 움직일 것이다.
“당장 내일 새벽에 출발해서 저녁에 토벌을 끝내겠습니다. 다음 날 저녁까지 돌아오는 것으로 하지요.”
언데드가 모인 곳은 약 60km 떨어진 장소.
일반적인 병사들이라면 편도로 이동하는 데만 3일은 잡아야겠지만 이들은 다르다.
하루 정도면 충분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이단 색출에 박차를 가해야겠습니다.”“맞습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로 우리 교의 입지는 더 올라갈 테니 말입니다.”
관점을 바꿔보면 지금 상황이 그리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행히 언데드의 수준이 낮으니 큰 피해 없이 토벌이 가능할 것이고.
토벌 이후에는 마리어트 왕국의 민심이 더더욱 데우시스 교로 기울게 될 것이다.
그나마 이단 색출에 반발심을 가지던 목소리도 완전히 기어들어 갈 게 분명하다.
그렇게 밤이 흐르고, 이튿날 새벽.
예정대로 두 명의 추기경과 삼천 명의 사제와 성기사로 이뤄진 군대가 스콜본을 나섰다.
수도의 시민들은 그들을 영웅이라 추켜세웠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국왕이 버린 수도를 데우시스 교가 구원한다며 국왕 아벨슨 마리어트의 무책임함을 비난했다.
“이제 곧 도착입니다.”“예정보다 더 빨리 왔군요. 이러면 언데드를 사냥한 후에 저녁 식사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그렇습니다. 하하!”
군대가 출발하고 대략 12시간이 흐른 시점.
늦은 오후긴 했으나,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조만간 언데드 군단과 마주칠 예정이라 휴식 없이 곧바로 싸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밤이 되면 놈들과 싸우는 게 더 귀찮아지니 말입니다.”“그럼 바로 전투를 시작합시다.”
병사들이 조금 지치긴 했으나, 전투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신성 마법으로 지속적으로 체력을 보충한 덕분이다.
애초에 이들은 이런 강행군에 익숙한 정예이기도 했고.
처음부터 삼 일 치 식량만 가지고 움직이면 됐기에 짐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행군이 빠른 이유 중 하나였다.
“도착했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마침내 저 멀리 언데드 군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수가 많긴 합니다.”
추기경 카이노가 말했다.
숲을 가득 메운 놈들을 보니 과연 일만이 넘는다는 말이 이해됐다.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대부분이 스켈레톤이군요. 이 정도면 우리가 나설 것도 없이 손쉽게 끝나겠습니다.”
다행인 점은 보고대로 언데드의 질이 낮다는 것.
그래도 중간중간 고위 언데드가 끼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이런 수준의 언데드라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저녁 식사는 언데드를 처리한 후 하겠습니다.”
추기경 카이노가 씨익 웃었다.
“저 간악한 자들에게 신의 철퇴를 내립시다.”
***
같은 시각.
한 남자가 멀리서 언데드 군단과 성기사가 격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좋군.”
남자가 씨익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바닥에 엎드려 위장하고 있던 자들이 우르르 일어난다.
“제국 제3마법 마법 병단 아니힐라토.”
남자가 자못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오만한 광신도들에게 드라센 제국의 위엄을 깨닫게 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