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1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18화(218/273)
전장에서 준비된 마법사만큼 두려운 존재는 없다.
언젠가 길을 오가며 들은 말이다.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갔는데, 직접 겪고 나니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뭐 내가 할 게 없네.”
최현석은 김이 샌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상보다 전투가 너무 손쉽게 끝난 것이다.
그가 한 일이라곤 추기경을 상대한 게 전부.
나머지는 드라센 제국의 마법 병단이 처리했고.
그나마 상대하던 추기경 중 하나도 드라센의 기사들이 처치했다.
‘분명 적이 약한 건 아니었어. 나와 사라 씨만 있었으면 이렇게 쉽게 이기지 못했을 거야.’
상대는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강한 축이었다.
고위 성기사와 고위 사제가 삼천.
무력이 준전설급인 추기경이 둘.
이건 결코 약한 전력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투가 이토록 손쉬웠던 이유.
그건 단지 이쪽의 무력을 더 강했기 때문일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뭐, 추기경이 생각보다 약하긴 했지만.’
최현석이 상대한 추기경은 신체 능력만 놓고 보면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완전히 전설이라 봐도 무방한 수준.
하나, 몸놀림이 지나치게 미숙했다.
오히려 이전에 싸운 추기경 빈센조가 더 잘 싸웠던 것 같다.
덕분에 전투는 시시하게 끝날 수밖에 없었고, 최현석은 경험치를 챙긴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쪽은 해결된 것 같구나.”
옆에서 들려오는 나긋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다가오는 사라 던피가 보였다.
“예. 딱히 어려울 건 없었습니다. 사라 씨는 별일 없었습니까?”“나야 언데드를 일으키는 것 말고는 한 게 없었으니, 별다른 일이랄 게 없지. 혹여나 도망치는 자가 있나 주시했다만, 모두 저 드라센 제국에서 잘 처리하더구나.”
“흐음, 그랬군요.”
최현석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저 드라센 제국. 확실히 만만히 볼 놈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동안 ‘신성 제국 가트렌’만 신경 썼는데 드라센 또한 가히 제국이라 불릴 만했다.
엄청난 수준의 마법 병단을 비롯해 뛰어난 실력의 기사단까지.
사라 던피도 그 생각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병단이 제법이야. 그 용사들처럼 세뇌를 통해 연계 마법을 쓰는 게 아니라 순수한 실력, 거듭한 훈련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더구나.”“기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설급 스펙을 가지고 있던 추기경이었는데, 그렇게 쉽게…”
최현석이 생각하기엔 마법 병단보다 기사단이 더 대단했다.
기사들의 평균 전투력은 4만 정도.
그에 비해 추기경의 전투력은 40만에 근접했다.
아무리 추기경의 실력이 떨어진다 해도 신체 능력에서 차이가 너무 극심하다.
거의 어린아이와 성인 남성의 차이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기사들은 별다른 피해 없이 추기경을 죽였다.
‘정확히는 사냥에 가까웠지.’
기사라기보다는 숙련된 사냥꾼에 가까운 움직임.
상대의 발을 묶는 동시에, 지속해서 체력을 갉아먹는다.
결국, 추기경이 제풀에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완벽한 연계를 보이며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에 한해서는, 지금껏 최현석이 보아온 어떠한 전투보다 훌륭했다.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를 돕지만 언제 태도가 돌변할지 몰라요.”
첫 만남에서 올라벤 그리미어 공작은 말했다.
드라센 제국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기에 이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현 상황이 유지되길 원할 뿐.
그렇기에 대륙을 제패하려는 신성 제국 가트렌을 막고자 한다.
최현석은 그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일이지.’
과연 가트렌이 사라지고, 드라센이 대륙 최고의 국가가 됐을 때도 같은 마음일까?
심지어 드라센 제국은 과거에 공포로 군림했던 전력이 있다.
이미 거나하게 피를 뒤집어쓴 전쟁광이란 뜻이다.
그런 자들이 이제는 평화주의자가 됐다고 한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최현석은 조소했다.
그의 경험상, 짙게 밴 피 냄새는 그리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수고하셨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올라벤 그리미어 공작이 다가왔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훌륭한 전략에 훌륭한 전투! 아주 완벽했소!”“그쪽도 좋았습니다.”
최현석은 웃는 낯으로 그를 맞이했다.
미래에 어떨지는 몰라도, 지금은 공동의 적을 둔 아군이다.
굳이 날을 세울 이유가 없었다.
“듣자 하니 아직 추기경 하나와 군대가 더 남았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오?”“그쪽은 우리 힘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굳이 거기까지 손을 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
올라벤 그리미어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나서지 않고 선을 지키려는 것 같았다.
“그럼 가서 볼일들 보시오. 이쪽의 뒤처리는 우리가 해 둘 터니.”
“뒤처리?”
“당신이나 제국의 마법 병단이 움직였다는 증거가 있어선 안 되니 말이오.”
올라벤 그리미어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능한 신성 제국 가트렌은 어디까지나 언데드 군단에게 패퇴한 것. 우리는 이 자리에 없었음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모르지. 그렇지 않소?”
그 말에 최현석의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갔다.
“물론입니다.”
***
스콜본에 남은 추기경 피덴지오 피올라.
그는 정신없이 움직이며 사제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도시를 떠야 한다! 어서!”
추기경 둘. 그리고 고위 성기사 사제로 이뤄진 삼천 명의 정예가 패퇴했다.
언데드 군대의 특성상 죽은 이들을 양분 삼아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즉, 이곳에 남은 전력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제길! 내게도 교황 성하의 은총이 있었더라면!’
먼저 신의 품으로 돌아간 두 추기경과 달리 피덴지오에게는 특별한 전투 능력이 없었다.
그저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신성력을 지녔을 뿐.
그렇기에 더욱 조급했다.
혹시나 일이 잘못됐을 때.
자기 몸 하나 건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60이 넘은 노구이건만, 생에 관한 그의 집착은 누구보다 대단했다.
“준비는 끝났느냐!”
“예. 성기사 102명. 사제 305명. 기타 수행인원 528명. 총 935명 출발 준비를 끝냈습니다.”
“바로 출발한다!”
지금 출발하는 이들은 원래 스콜본에 상주하던 인원들이다.
추기경 피덴지오와 함께 온 병력은 모두 언데드 밥이 됐기에 스콜본의 사제와 성기사를 데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사제님이다!”
피덴지오와 데우시스 교의 인원들이 신전을 나서자,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제님!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추기경님! 구원을!”“데우시스시여! 우리 마리어트 왕국을! 스콜본을 구해주세요!”
이미 먼저 나간 군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이 도시 전체에 퍼졌다.
스콜본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누군가는 당장 도시를 떠나야 한다며 움직였고.
어떤 이는 그나마 도시가 안전하다며 떠나는 이를 붙잡았다.
아비규환.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왕의 명으로 수도 방위군이 움직였다.
그들은 거리를 점거해 치안을 확립하고, 입구를 봉쇄해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게 했다.
결국, 모두 도시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사제들이 떠나면 스콜본에 희망은 없습니다!”“제발!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이제 시민들이 기댈 곳은 신전뿐이었다.
이미 데우시스 교가 한번 패배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상성 상 언데드를 잡는 데는 신성력이 최고였으니까.
썩은 동아줄이라고 해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놔라!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추기경 피덴지오가 악귀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지금은 선하고 신실한 신앙인 연기를 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성기사들을 무얼 하고 있나! 어서 길을 열어라!”
“예!”
수천 명이 몰려들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결국 무력을 동원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통 사람보다 압도적인 힘을 지닌 성기사.
그들에게 사제들의 축복이 내려지고 이내 강제로 사람들을 밀기 시작한다.
“커헉! 자, 잠시!”
“밀지 마! 여기 사람이 깔렸다고!”
“꺄아아악!”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는 다 죽어! 다, 다 죽는단 말이야!”
강제로 사람들을 밀어붙이다 보니 곳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다수의 인명 피해가 생겨난다.
피덴지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아갔다.
“저기다! 조금만 더 가면 성문이야!”
마침내 수도 서쪽에 위치한 입구에 도착한 추기경과 수행원들.
그들의 앞을 이번에는 수도 방위군이 막아섰다.
“너희는 뭐냐!”
“누구도 스콜본을 벗어날 수 없다는 국왕 폐하의 명….”
기사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찰싹-!
피덴지오가 거칠게 뺨을 후려친 것이다.
“나는 데우시스 교의 추기경이다!”
“…”
“여기 있는 자들 모두 데우시스 교의 소속! 신의 자식들이다! 국왕이라 해도 우릴 막을 순 없어!”
피덴지오가 노구에 걸맞지 않게 엄청난 목청으로 호통쳤다.
기사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이들은 정식으로 스콜본에 파견된 사제와 성기사들. 그리고 지금은 전시입니다.”“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냐!?”“규정상 파견된 사제 및 성기사는 전시에 해당 영지의 영주, 혹은 국왕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이놈이…!”
피덴지오는 쉬이 반박하지 못했다.
눈앞의 침착한 기사가 한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지금 피덴지오가 하는 건 규정을 어기는 일이었고.
추기경이라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아무리 규정이라 해도 그리 철저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힘의 논리로 찍어누르는 게 현실.
“국왕 폐하의 명이 있기 전에는 절대 스콜본을 떠나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융통성 없는 기사는 결코 현실과 타협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성기사들! 뭘 하고 있나!”
피덴지오가 명하자 성기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얼굴에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기서 제대로 된 전력은 성기사 백 명이 전부.
그에 비해 수도 방위군은 그 숫자만 해도 1만에 달한다.
거기에 수도에는 여러 기사단이 상주하는데, 그중에는 왕국 최고 전력인 왕실 기사단도 있다.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성기사는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것이다.
“성기사! 지금 신의 사도인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계속되는 피덴지오의 압박에 성기사들이 앞으로 나선다.
그러자 수도 방위군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들을 포위했다.
스릉-!
양측이 무기를 뽑는 소리.
구경하던 시민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한 병사가 달려오더니 성문을 지키던 기사에게 다가갔다.
“…시랍니다.”
병사가 무언가를 속삭이고.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크게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라!”
피덴지오는 금세 상황을 알아차렸다.
무력 충돌이 생기기 전에 국왕이 자신들을 보내주라 명한 게 분명했다.
“크하하하하!”
그가 허리까지 젖히며 광소했다.
“그래도 국왕께서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 다행이군! 어서 가자!”
뒷일을 생각한다면 자신들을 보내주는 게 옳다.
자칫하다간 데우시스 교와 가트렌의 분노를 받게 될 터이니.
이윽고, 피덴지오와 사제들이 성문을 통과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통곡이 흘러넘쳤다.
“안돼! 이렇게 떠나면 우리는 어떡하라고!”“사제님! 제발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아니면 제 아이만이라도!”“개같은 성직자 새끼들! 빌어 처먹을 개새끼들! 언데드보다 못한 새끼들!”
심지어 흥분한 몇몇 군중은 무기를 빼 들어 떠나는 사제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물론, 수도 방위군에게 제지당했지만.
그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얼마나 극심한지는 알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스콜본을 피바다로 만들 거니! 이딴 식으로 나와!?”“퉷! 두고 보자! 다시는 데우시스를 믿나 봐라!”“배신자! 양아치 같은 놈들!”
마침내 모든 사제와 성기사가 떠나고.
쿠웅…!
성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몇몇 사람들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땅바닥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짙은 절망이 수도 스콜본에 가득 들어찼다.
***
“그들은 떠났나요?”
“예. 수도의 모든 사제와 성기사. 그 수행원들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빠져나갔습니다.”
아벨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움직일 시간이네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는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
먼저 늘 입는 예복이 아닌 새하얀 판금 갑옷으로 전신을 가린 상태.
손에 쥔 메이스는 더없이 크고 화려했다.
이윽고, 왕성 밖으로 나선 그녀가 결연한 눈빛으로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 우리 손으로 이 나라를 구합니다.”
그에 화답하듯 대기하던 이들도 무기를 빼 들었다.
왕실 기사단과 왕궁 경비. 그리고 수도의 정예 부대였다.
화아아아아-!
아벨슨의 메이스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고.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전군. 출진.”
그녀는 이미 이 전쟁의 승패를 알고 있었다.
“언데드 따위. 아무것도 아니란 걸 보여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