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19)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19화(219/273)
새하얗게 도색된 판금 갑옷.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
화룡점정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까지.
아벨슨 마리어트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국왕 폐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저 성스러운 빛 좀 봐…”“폐하가 우리를 지켜주실 거야!”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벨슨을 바라봤다.
신성력 특유의 포근하면서도 고결한 기운이 더해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덕분에 암울하던 도시의 분위기가 단숨에 180도로 뒤집혔다.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는 상황이었으나, 어째서인지 아벨슨은 쓰게 웃었다.
‘이런 연출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게 안타깝지만… 이 또한 필요한 일이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건 단순히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입은 갑옷은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신성한 빛은 그저 신성력의 형태를 변환해 방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없는 에너지 낭비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연출로 가져올 수 있는 이득은 생각보다 크다.
시민들의 마음속 불안을 잠재워 도시가 안정을 되찾게 하고.
출진하는 병사의 사기를 올릴 수 있다.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이 아벨슨의 권위와 영향력 확대에 귀결된다.
“와아아아-!”
“국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그렇게 아벨슨과 왕국의 정예는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수도를 떠났다.
***
아벨슨과 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데드 무리와 맞닥뜨렸다.
사라 던피가 언데드 군단을 수도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킨 탓이다.
병사의 행군 피로도를 줄이기 위한 일족의 전략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병사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등장한 적에 당황했으나.
“마리어트 왕국을 위하여!”
아벨슨이 다시 한번 신성한 빛을 뿜어내고.
말을 탄 채 선두로 달려가자 힘찬 함성과 함께 뒤를 따랐다.
“돌격-!”
“와아아아-!”
곧이어 언데드와 왕국의 정예가 격돌했다.
그워어어-!
키에에!
언데드는 존재 자체로 인간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왕국의 병사들이 아무리 정예라 한들, 인간 내면에 잠재된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최선을 다해 적과 싸웠다.
지금은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언데드는 수도에 당도할 것이고.
그러면 수도는 끝이다.
수도에 있는 자신들의 가족, 지인들과 함께 말이다.
그러한 사실이 병사들의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죽어!”
“더러운 언데드 새끼들!”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후.
병사들은 점차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너무 쉬운데?”
“크하하! 이 뼈다귀들 완전 약해빠졌잖아!”
처음 언데드를 마주했을 땐, 혐오스러운 비주얼과 그 숫자에 압도됐다.
그런데 막상 싸우고 나니 놈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사라 던피가 가장 저급한 언데드만 일으켰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병사들은 생각했다.
“데우시스 교의 성기사도 별거 아니잖아?”“가트렌도 제국이라 해서 지레 겁먹었지, 사실 약한 거 아니야?”
데우시스 교와 가트렌은 약하다.
이렇게 손쉬운 적인 언데드에게 패배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의 사기가 한층 더 고무되고, 적을 격파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진격해라! 단 하나의 언데드도 남겨두지 마라!”
“와아아아-!”
왕국의 군대는 엄청난 속도로 언데드를 밀어붙였다.
애초에 숫자의 차이도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에 질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와아아아-!”
채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모든 언데드가 쓰러져 흙으로 돌아갔다.
왕국의 피해는 거의 전혀 없다 해도 좋을 정도.
압도적인 승리에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자연스레 이 전투를 지휘한 아벨슨 마리어트를 향한 충성심 또한 함께 상승했다.
“국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아벨슨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이겼네요.’
그녀는 교황 오르반 4세를 떠올렸다.
교황은 오래전부터 마리어트 왕국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또한, 차기 성녀로 지목된 아벨슨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뤄왔다.
지금까지는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상이 변화했거든요. 진짜 구원자가 등장했으니까요.’
최현석이 나타나고.
오랫동안 멈춰 있던 대륙의 정세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대륙의 운명은 둘 중 하나다.
신성 제국 가트렌이 완전히 대륙을 집어삼키든지.
아니면 가트렌이 공중분해 되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든지.
‘결과는… 신만이 아시겠죠.’
물론, 아벨슨은 후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피덴지오 경. 고초를 겪었다고 들었습니다.”“송구할 따름입니다. 성하.”
스콜본에서 도망친 추기경 피덴지오 피올라.
그는 교황 오르반 4세와 단독 면담을 가졌다.
“대업이 성공하기 직전이었습니다만… 갑자기 대규모 언데드 군단이 등장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피덴지오는 정말 억울했다.
마리어트 왕국을 삼키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갑자기 언데드가 등장하지만 않았다면 백 퍼센트 성공했으리라 확신했다.
‘이건 천재지변이었다.’
그곳에서 언데드가 등장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
심지어 제국의 정예를 쓸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었다.
“놈들은 보통 언데드가 아닙니다! 성하의 은총을 받은 추기경 둘, 제국의 정예 성기사 이천, 고위 사제 일천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만….”“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지요.”
“예…”
피덴지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내 역할을 모두 다 했어.’
피덴지오는 제 목숨을 건사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 강력한 언데드 군단을 상대로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살아남은 것만 해도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혹시 그거 알고 계십니까?”“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아벨슨 마리어트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언데드 군단을 격퇴했다는군요.”
“예…?”
“심지어 대승이라고 합니다. 병력의 피해는 거의 전무. 말 그대로 압도적으로 언데드를 무찔렀다고 합니다.”
교황의 말이 이어질수록 피덴지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직접 자신이 듣고 있으면서도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아벨슨 마리어트가. 군대를 이끌고 언데드를 무찔렀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압도적으로 승리를…?”
순간 교황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저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싫어합니다.”
“죄송합니다!”
실수를 깨달은 피덴지오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가득했다.
‘도대체 어떻게…?’
가트렌의 정예도 하지 못한 일이다.
한낱 소국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뜻이다.
피덴지오는 혼란스러웠으나, 그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교황이 새로운 제안을 꺼낸 것이다.
“저는 이번 일로 경을 탓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건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피덴지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일 뿐 답하지 않았다.
교황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경께 새로운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기회라 하심은…?”
“은총을 받을 기회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에 피덴지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이지요.”
“하지만 이전에 저는 은총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교황 오르반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믿음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지금 보니 경은 충분히 은총을 받을 자격을 갖췄습니다. 실제로 마리어트 왕국에서 경은 훌륭한 능력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피덴지오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직전이었다.
단지 천재지변에 의해 실패했을 뿐.
‘아니,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는 스콜본의 사제와 성기사를 살려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실제로는 본인이 살기 위해 스콜본에 파견된 인원을 끌고 나온 것뿐이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합리화가 끝난 상태였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요.”
교황이 신호하자 새하얀 수도복을 입은 이들이 들어왔다.
“저들을 따라가세요. 은총을 받는 시련이 주어질 겁니다.”“시련이라 하심은 어떤…?”“은총의 자격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경께서는 충분히 해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길.”“영광입니다! 성하!”
피덴지오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떠나갔다.
교황 오르반이 피곤한 얼굴로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추기경입니다. 신성력이 많으니 개조하면 제법 쓸만할 겁니다.”“지난번에 부적합자로 판명됐는데, 괜찮겠습니까? 부작용으로 미쳐버리거나 백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반문이 들려온다.
교황은 익숙한 일인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잘됐군요. 저런 멍청한 자는 머리를 쓸 일 없이 굴리는 게 더 났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순간 교황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번 일에 관련해서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고요?”“예.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가 없고 함께 파견된 기록관까지 모두 당했습니다.”
전투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상자만 무려 삼천 명이 넘는다.
거기에 더해 언데드의 사체까지.
이 모든 흔적을 깔끔하게 지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심지어 마력의 잔향조차도 남지 않아 이곳에서 무슨 마법을 썼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
“이런 수준으로 전장을 정리할 수 있는 곳은 대륙에 전체를 뒤져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용의자는 좁혀진다.
이렇게 뛰어난 수준으로 뒤처리를 할 수 있는 단체는 많지 않다.
“드라센이 움직인 것 같습니까?”“확신은 못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후우, 알겠습니다. 계속 조사하세요.”
교황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마리어트 왕국 외에 다른 곳의 일은 문제없겠지요?”“모두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그럼 피덴지오 경의 처리가 끝나면 다시 뵙도록 하지요.”
“예.”
그 말을 끝으로 교황은 눈을 감았다.
굳이 자세한 명령을 내리지 않더라도 나머지는 알아서 진행될 터.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사라 던피. 분명 이곳에도 관련돼 있다.’
지난번 조사로 알게 된 사라 던피의 정체.
발링턴 왕국의 초대 국왕.
언데드로 부활한 그녀가 언데드 군단을 일으킨 게 분명했다.
‘정황상 사라 던피는 마리어트 왕국과 함께하고 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아니다.
하지만, 교황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제거하려고 해도 몸을 꽁꽁 싸매고 숨어 있으니 찾을 수 없고…’
고민을 이어가던 교황의 머릿속에 무엇인가 번뜩였다.
‘잘만 하면 마리어트 왕국과 엮어서 함께 보낼 수도 있겠어…’
그렇지 않아도 마리어트 왕국은 마족과 내통한 혐의로 몇 차례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교황 오르반 4세의 머릿속에 새로운 계획이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