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2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20화(220/273)
수도 스콜본에서 대규모 축제가 열렸다.
언데드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아벨슨은 국고를 풀어 술과 고기를 베풀었다.
그리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으나, 지금처럼 민심을 얻기 좋은 타이밍은 자주 오는 게 아니다.
완전히 흐름을 가져오기 위해 조금 무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역시 국왕 폐하야!”“폐하만 믿고 따르면 마리어트 왕국의 앞날은 창창하다고! 하하!”
다행히도 전략은 보기 좋게 먹혔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아벨슨을 칭송하며 완전히 믿고 따르게 됐다.
늦은 새벽까지 축제가 이어지고.
동이 틀 무렵.
최현석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눈을 떴다.
“아직도 시끄럽네.”
전날 축제와 관계없이 이른 시간에 잠을 청했는데, 자고 일어나도 축제는 계속되고 있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움… 용사님. 어디 가세요?”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며 라헬이 다가왔다.
“훈련 가려고.”
“훈련이요?”
“어. 괜히 따라와서 방해하지 말고 그냥 잠이나 더 자.”“아니요… 저도 갈래요…”
라헬이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더니 최현석의 어깨 위로 축 늘어졌다.
“자… 출바알…”
모양새가 영 마음에 안 들었으나, 따라온다는 데 두고 가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하는 수 없이 라헬을 데리고 연병장으로 나선 최현석.
여전히 왕궁 밖에서는 축제의 소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이런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오늘 최현석은 아무런 일정이 없다.
그래서 오랜만에 개인 훈련을 할 생각이었다.
흔치 않은 휴일이라 하루쯤은 마음 편히 쉴 법도 했건만, 그는 오히려 쉬는 게 더 불편했다.
‘죽을 때 돼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해.’
자신은 여전히 약하다.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전히 자신보다 강한 이가 존재했으니까.
그 누구보다도 강해졌을 때.
지구에서처럼 세계 최강이 되면 그때는 마음 편히 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 갔다.
“하암~ 용사님. 새벽부터 웬 난리예요. 그동안 열심히 했는데 이런 날은 하루쯤 쉬시라구요.”
어깨에 축 늘어져 있던 라헬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최현석은 그녀를 집어 허공에 대충 던졌다.
“꺅-! 왜 숙녀를 던져요!?”“내가 방해할 거면 따라오지 말라 했지. 잠이나 퍼질러 자지 뭐하러 와서 징징거려.”
최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혼자서 조용히 훈련한다고 했음에도 억지로 따라와 놓고선 저런 망언을 하다니.
라헬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박했다.
“그건 안 되죠! 우리는 바늘과 실! 패트와 매트! 용사와 전담 요정! 영혼의 듀오라구요!”“영혼의 듀오는 무슨. 그리고 우리는 패트와 매트가 아니라 톰과 제리에 가까워 보이는데.”“뭐, 보는 시각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딱히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최현석은 더 첨언하지 않고 설전을 끝냈다.
하지만, 잠이 깬 라헬은 최현석 주변을 돌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훈련 하시게요?”
“일단은 투기.”
“투기요?”
“아직 노빌레이스 숙련도가 많이 부족하잖아.”
마력과 마기를 마나로 합친 이후.
자연스레 여러 종류로 나뉘어 있던 투기 또한 새롭게 정립했다.
그것이 바로 노빌레이스.
이전에 레이드런과 함께 만든 것을 토대로 박현아와 사라 던피가 함께 개량한 것이다.
이들은 미완성이던 노빌레이스를 총 10개의 형으로 완성했다.
“실전에서 막힘없이 쓰려면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그러고 보니 실전에서는 아직 제5형 다음을 쓴 적이 없었네요.”“맞아. 제6형부터는 연습량이 너무 부족했거든.”
존재하는 형의 절반밖에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 서둘러 숙련도를 높여야 했다.
“그리고 플로모트도 개량해야 하는데… 이건 시간이 나면 해봐야지. 누님한테 부탁하든지.”
플로모트를 개량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플로모트는 최현석이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한 수.
조커 카드와도 같다.
그런데 마기를 기반으로 하기에 지금은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
마나를 이용해서 플로모트를 쓸 수 있도록 대대적인 수정을 해야 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새로 투기를 만드는 작업과 맞먹을지도 몰랐다.
최현석이 고개를 저어 플로모트에 관한 생각을 떨쳐냈다.
“플로모트는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은 노빌레이스나 연습하자.”
아무도 없는 연병장.
홀로 선 최현석이 자세를 잡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했다.
***
훈련이 시작되고 한나절이 흘렀다.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최현석은 식당에 들렀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훈련할 생각이었다.
“여기도 슬슬 익숙해지네.”
식당은 왕궁을 방문한 귀빈이 식사하는 장소인 탓에 굉장히 화려했다.
태생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맞지 않았던 최현석은 이 장소가 굉장히 불편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목이 메어왔을 정도.
그래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지, 처음처럼 심하게 불편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음…?”
최현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식당에 익숙한 남자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올라프?”
“올라벤이오.”
“아.”
드라센 제국의 공작 올라벤 그리미어.
그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니, 그보다 이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도 되는 겁니까?”
표면적으로 마리어트 왕국과 드라센 제국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상황이다.
굳이 둘이 연합하는 모습을 보여 가트렌을 비롯한 인근 국가의 경각심을 키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가트렌의 추기경 둘과 성기사, 사제를 잔뜩 처리한 시점이라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생각했건만.
“으음, 소문대로 마리어트 왕궁의 음식 맛이 제법이군. 드라센의 것보다는 못하지만.”
올라벤 그리미어는 태연하게 고기를 썰고 있었다.
한때 연합군의 사령관이자 현 드라센 제국의 공작.
즉, 대륙에서 손꼽히는 권력자다.
그런 인물이 호위나 시종 하나 두지 않고 홀로 식사를 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는 최현석을 돌아봤다.
“오늘은 공적으로 방문한 것이오. 대외적으로는 마리어트 왕국과 새로운 교역을 위한 교섭을 진행하기 위해 온 것이지.”
“그럼 실제로는?”
“최현석 경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소.”
그가 최현석에게 자리를 권했다.
“최현석 경도 식사를 하러 온 것 같은데, 일단 앉지 않겠소?”
누가 보면 이 식당의 주인이라도 된 듯한 행세다.
하지만, 그게 또 묘하게 잘 어울려서 최현석은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다.
그의 앞에 하나둘 요리가 놓이고.
식사 준비를 마친 시종들이 식당을 나가자 올라벤이 본론을 꺼냈다.
“이번 마리어트 왕국에서의 일은 아주 성공적이었소. 우리 드라센과 마리어트. 양국 모두에게 큰 이득이었지.”“확실히. 손 안 대고 코 푼 느낌이긴 하죠.”
최현석이 고기를 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추기경 방문 때 드라센 제국이 돕지 않았다면 일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수도 안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을지도 모르고.
만약 그렇게 됐다면 인명 피해나 자산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겨도 문제였지.’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끝이 아니다.
명분을 가져간 가트렌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마리어트 왕국이 무너지거나,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드라센의 도움 덕에 편하게 가트렌을 몰아낼 수 있었으니.
서로 윈윈이라고 해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경에게 하나 부탁을 하고자 하오.”“무슨 부탁입니까?”
“혹시 체르시 왕국을 알고 있소?”
최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며 여러 상식이 늘었지만, 아직 대륙의 모든 국가를 알지는 못했다.
올라벤 그리미어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는 건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마리어트 왕국과 드라센 제국 사이에 있는 왕국이오. 국토와 국력이 마리어트 왕궁의 절반 정도인 소국이지.”
마리어트 왕국도 그리 큰 나라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저 그런 군소 왕국 중 하나였는데, 체르시는 그보다도 훨씬 작은 국가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체르시 왕국은 갑자기 왜 말하는 겁니까?”“현재 가트렌은 대륙의 중소 국가를 삼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소.”
이쯤 되자 최현석도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가트렌이 체르시 왕국에 찝쩍대지 못하게 해달라?”
“그렇소.”
올라벤은 멋들어진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드라센이 대외적으로 나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오.”
“흠…”
“그래서 이 일에 최현석 경만큼 적임자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오. 전설급의 무력을 갖췄고, 유일하게 가트렌의 마수를 떨쳐낸 경험이 있으니.”
올라벤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해했다.
자신이 적임자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최현석은 고민됐다.
올라벤은 쉽게 말했지만, 이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일이다.
수십, 수백만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뜻이다.
무턱대고 받아들이기에는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최현석의 고민이 깊어지는 듯해 보이자, 올라벤이 덧붙여 말했다.
“이건 마리어트 왕국, 체르시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오.”
“어째서입니까?”
“가트렌이 군소 왕국을 삼켜 덩치가 커진다. 이는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오.”
충분히 강해졌다고 판단한 가트렌은 대륙 정벌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때 발생하는 피해는 아마 지금껏 있었던 그 어떤 전쟁보다 클지도 몰랐다.
그 순간.
띠링!
익숙한 알람음과 함께 용사 퀘스트가 발생했다.
★☆★☆ 용사 퀘스트! ★☆★☆
체르시 왕국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설적인 용사로서 그들을 모른 척할 수 없죠!
사악한 가트렌의 마수를 떨쳐내 체르시 왕국을 구원하세요!
· 목표 : 체르시 왕국에서 가트렌의 세력을 몰아낼 것·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및 용사 포인트 3,000
용사 퀘스트를 본 최현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는 대놓고 악의 세력 취급이구만.’
신성 제국 가트렌과 데우시스 교.
표면적으로는 신을 따르는 이들이다.
그런데 정작 신이나 다름없는 용사 시스템은 그들을 악이라 칭하고 있다.
“무슨 일 있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개를 저은 최현석이 말을 이었다.
“뭐, 도움받은 것도 있는데 입 닦고 모른 척할 수는 없죠. 까짓것 합시다.”
올라벤 그리미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최현석에게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현재 체르시 왕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요약한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자료를 살펴보시오. 가능하면 외부에서 볼 수 없게 모두 외운 넣은 후 불태우는 걸 추천하겠소.”“음, 그건 힘든데…”
이만한 자료를 통째로 머리에 넣으라니.
일주일을 줘도 무리였다.
고민 끝에 최현석은 서류를 곧바로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렇게 해두면 남이 볼 수 없으니 괜찮을 겁니다.”
“으흠… 확실히.”
올라벤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럼, 나는 이만. 새로운 교역을 위해 국왕 폐하와 나눌 말이 있어서 가 보겠소.”
“다음에 또 보죠.”
“걱정하지 마시오. 머지않아 보게 될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올라벤 그리미어가 식당을 나섰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최현석이 피식 웃었다.
“신출귀몰한 양반이야. 완전히 홍길동이라니까.”“그러게요. 제국의 고위 귀족들은 다 저런가? 신기해요.”
라헬의 말에 최현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라헬. 너 고위 귀족을 한 번도 못 만나봤어?”“당연하죠! 용사님이랑 다니면서 처음으로 봤어요!”“예전에 나 말고도 전담 요정 일 했다면서.”“네. 제 손을 거쳐 간 용사님이 10명은 된다구요!”
라헬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최현석의 의문은 더 깊어졌다.
“그동안 고위 귀족을 한 번도 못 만났어?”
“네!”
“왜?”
“어… 그러게요…?”
라헬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째서 용사를 10명이나 모셨음에도 고위 귀족을 만나지 못했는가.
라헬 본인이 생각해도 조금 이상했다.
“2년 동안 용사님을 10명이나 모셨는데, 높은 귀족은 한 번도 못 만났네요. 왜일까요?”“2년 동안 10명이라니…”
최현석이 마른세수를 했다.
2년에 10명.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용사를 받아들였다 해도 용사의 평균 생존 기간이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이 정도면 ‘요정’이라기 보다는 ‘죽음의 사신’에 가깝지 않을까.
‘요정 일을 졸업한 게 아니라 그냥 잘린 거였어…’
라헬이 툭하면 전담 요정 딱지를 뗀 지 오래됐다며 자랑스레 말했는데, 그건 자랑이 아니었다.
아마 용사의 생존을 위해서 전담 요정에서 용사 스카웃으로 보직이 변경된 게 분명했다.
최현석이 라헬을 슬그머니 밀어냈다.
“라헬. 좀 떨어져 있어.”
“네?”
“앞으로 나랑 너무 가깝게 붙어있지 말라고.”
“왜요?”
“그냥 떨어지라면 떨어져!”
이런 최악의 사신과 2년을 버텨낸 자신이 자랑스럽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거기를 두고 싶었다.
물론, 그냥 물러날 라헬이 아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떨어지라는 말에 라헬은 더 바짝 엉겨 붙었다.
찰거머리처럼 착 달라붙는 라헬.
최현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괜찮겠지.”
이제 와서 이 작은 사신을 밀어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어쨌거나 라헬은 예쁘고 귀여우니까.’
그래. 지금은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