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23)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23화(223/273)
라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곳에 마왕을 부르겠다니?
“용사님. 농담하시는 거죠?”“아니, 농담 아닌데.”
농담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최현석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라헬. 잘 생각해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의 핵심이 뭐야?”“가트렌을 물리치는 거죠!”“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무력으로 해결하기가 힘든 상황이잖아.”
“네.”
“그러니까 가트렌을 물리치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져오는 데 집중해야 해. 그러면 자연스럽게 가트렌의 계획도 실패할 테니까.”
강경파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것인가.
이게 최현석이 생각하는 핵심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지켜본 결과.
강경파가 문제 삼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마족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이러한 강경파의 생각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500년이 넘도록 치고받은 사이가 하루아침에 나아질 수 없으니.
기나긴 세월만큼 감정의 골은 깊을 수밖에 없었고.
불신이 싹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가트렌과 데우시스 교 또한 그런 점을 파고들어 사람들을 선동했다.
“하지만, 마왕이 직접 찾아와서 약속한다면?”
마왕이 직접 인간의 영역을 찾아와 평화를 약속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하면 분명 상황은 바뀐다.
그것으로 불신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대세를 바꿀 만한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물어보자.”
최현석이 인벤토리에서 통신구를 꺼냈다.
그가 어디론가 다급히 연락하기 시작했다.
***
“마왕님. 제3군단장이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라 해.”
시드리엘의 대답과 동시에 문이 열린다.
들어서는 것은 근육질의 소머리 마족, 레이드런.
그가 고개를 숙였다.
“마왕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지?”
“최현석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시드리엘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최현석?”
반가운 이름이다.
자신이 마왕이 되도록 도운 인간.
한때는 마왕군이었으나, 지금은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다.
“최현석이 왜?”
“그게…”
잠시 말을 끌던 레이드런이 이내 결심한 듯 설명을 시작했다.
“…해서 마왕님께서 직접 인간 왕국의 수도로 와달라는 요청입니다.”“아… 농담은 아니겠지?”
시드리엘이 확인차 다시 물었다.
레이드런은 정색하며 답했다.
“아닙니다.”
그렇다.
저 소머리 마족이 농담 따위를 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최현석이 정말 그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했다는 뜻이다.
“마왕에게 인간 왕국으로 넘어가서 평화 선언을 해달라니.”
“죄송합니다.”
레이드런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도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했습니다만, 어쨌든 마왕님께서 직접 판단하시는 게 옳다고 생각되어 말씀드립니다.”“신경 쓰지 마라. 잘 말했다.”
시드리엘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레이드런.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저는 반대입니다. 마왕님께서 직접 움직이는 건 위험이 너무 큽니다.”
이건 시드리엘이 마왕성에서 평화를 외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여태껏 마왕은 단 한 번도 마족의 영역을 벗어난 적이 없다.
아니, 마왕성에서 나가는 일조차도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런 마왕이 인간의 영역에서 평화를 외친다?
관점에 따라 누군가는 인간에게 완전히 고개를 숙이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마족
내부에서 말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군단장과 대의원들이 반발하게 되면 머리가 아파진다.
그렇지 않아도 왕권이 위태로운 시드리엘에게 이건 지나친 도박이었다.
“게다가 최현석이 배신을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이중 함정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그렇지. 누군가 최현석을 속여서 일을 꾸밀 수도 있으니.”“이 외에도 인간의 영역에는 마왕님을 위협할 만한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만…”
레이드런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그렇지.”
“성전의 군대와 싸우기 바쁜 이때 마왕님이 자리를 비웠다가는 자칫 전선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마족과 성전의 군대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드리엘이 마왕으로 집권한 이후.
마족은 다시 뭉쳤으나, 성전의 군대를 몰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조금씩 더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놈들의 진격을 막는 게 겨우.
만약 시드리엘이 간다면 그녀와 호위를 위해 군단장 하나 정도는 움직여야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 그만한 강자가 둘이나 빠지면 전력에 너무 큰 공백이 생긴다.
자칫하면 전선이 우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군. 그 또한 맞는 말이다.”
시드리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드런. 하나만 묻겠다.”
“예.”
“이대로 전쟁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객관적으로 말해라.”
순간 레이드런의 얼굴이 당혹이 떠올랐다.
그러나 금세 원래의 표정을 되찾고는 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30% 이하입니다.”“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적을 흔들기 위해 평화 선언이라는 수를 썼지만, 생각보다 잘 먹혀들지 않았지.”
시드리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는 이게 기회라고 생각한다.”“… 기회인 겁니까?”“그래. 단번에 전세를 뒤집을 기회지. 성공하기만 하면 인간의 여론이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성전의 군대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거다.”
시드리엘의 눈에 점차 생기게 돌기 시작했다.
말을 할수록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됐다.
“나는 사실상 패배가 확정된 전쟁을 계속하며 발악하기보다는, 기회를 붙잡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레이드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
결국, 모든 결정은 마왕이 내리는 것이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며칠 후.
최현석은 자신의 요청에 달려와서 고생해준 사라 던피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 고마워할 것 없다. 간단한 일이었으니.”
사라 던피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현재 그녀는 최현석의 요청으로 체르시 왕국의 수도 체르실톤에 와 있었다.
몇 가지 마법적인 장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정말 마왕을 여기로 불러올 생각인 것이냐.”“예. 이미 약속했고, 조만간 도착할 겁니다.”
“그대는 정말…”
말을 하던 사라 던피가 실소했다.
“대단하구나.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할 발상을 했어.”
마왕을 인간 왕국의 수도로 불러들인다.
이 세계의 상식을 공부한 사라 던피는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한 나라의 국왕이 전쟁 중인 다른 왕국의 수도를 방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어? 잠시만요.”
그때 최현석의 통신구가 빛나기 시작했다.
레이드런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최현석. 도착했다.
“예. 금방 그리로 가겠습니다.”
최현석은 통신을 종료했다.
그가 사라 던피를 보며 물었다.
“바로 인근입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그러지. 어차피 결국은 모여야 하니.”
최현석과 사라 던피는 곧장 수도 체르실톤을 벗어났다.
약속한 장소로 이동하자 기다리고 있는 시드리엘과 레이드런이 보였다.
“오랜만이다. 최현석!”“잘 지내고 있었나.”
시드리엘이 손을 흔들고 레이드런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최현석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 또한 마왕군의 상황이 어떤지 들어 알고 있다.
그들이 이곳에 오기 위해 어떤 결심을 내려야 했는지도.
“네가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마족에게 이득이 될 일이기에 온 것일 뿐. 오히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너에게 감사한다.”
시드리엘의 말에 최현석이 콧잔등을 쓱쓱 문질렀다.
‘우리 라헬이 이 마왕의 반만 따라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던가.
같은 말이라도 저렇게 예쁘게 하니 호감도가 절로 상승했다.
‘아니야. 정신 차리자. 나한테는 이엔이 있잖아.’
순간적으로 신부 후보에 들어왔던 시드리엘을 다시 밀어내고.
최현석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
***
“죽어! 이 광신도!”
“이 마족
숭배자가!”
오늘도 평화로운 체르실톤.
슬슬 지칠 법도 했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양 파벌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며 둘의 대치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한다.
“마족
숭배자!? 말 다 했냐! 이 광신도 자식이!”“치려고? 어디 한번 쳐봐! 당장 네 목을 비틀어 주지!”
두 남자가 서로 멱살을 쥐고 소리치던 그때.
꽈르르르르릉-!
굉음이 울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소음.
싸우던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저기 좀 봐!”
하늘에서 검은빛이 쏟아진다.
흔히 빛내림이라 부르는 현상.
마치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처럼, 검은빛은 수도 체르실톤 정중앙을 향해 내리꽂혔다.
사람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검은빛을 바라봤다.
“저기! 빛 안에 누군가 있어!”
“사람 같은데?”
“사람이라기엔 뭔가…”
모두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빛을 바라보던 그때.
시드리엘의 목소리가 수도에 울려 퍼졌다.
-나는 마왕 시드리엘.
마왕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마, 마왕!?”
“마족이다! 아니, 마왕이다! 마왕이 나타났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시드리엘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놀라지 마라. 나는 너희와 평화를 약속하러 온 것이니.
마침내 시드리엘이 완전히 지상에 내려왔다.
어느새 주변에는 수천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사람들은 시드리엘과 레이드런을 보며 수군거렸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 무려 마왕이라고…!”“그러니까!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수도 경비는 뭘 하는 거지?”“저 붉은 괴물이 마왕인가? 확실히 위압감이 엄청나!”
마지막은 시드리엘 뒤에 있는 레이드런을 보고 한 말이었다.
겉모습만 봤을 때 시드리엘은 작은 체구의 소녀였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마왕일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순간 시드리엘에게서 엄청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해가 있는 듯하군. 내가 마왕 시드리엘이다.”
“헉…!”
사람들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딱히 위협을 가한 게 아니다.
그저 기운을 방출했음에도 수도 전역에 진득한 마기가 깔렸다.
원래도 군단장급의 마기를 지니고 있던 시드리엘이다.
그런데 정식 마왕으로 인정받으며 마기가 한층 더 짙어진 지금은, 이전보다 1.5배 가까이 마기가 진해져 있었다.
압도적인 마기에 사람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아, 안 돼! 전부 죽을 거야!”“정신 차려. 평화 협정을 맺으러 왔다잖아!”“마족의 말을 어떻게 믿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누군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야 했으나, 아무도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런 데는 레이드런의 살벌한 외형도 한몫했다.
“흐음.”
시드리엘 뒤에 서 있는 레이드런.
보통 사람의 눈에 그는 완전히 괴물이었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체구.
전신의 근육과 붉은 피부.
소를 닮은 머리에 달린 거대한 뿔에서는 끊임없이 불길이 치솟는다.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오줌을 지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거기에 시드리엘의 진득한 마기가 더해진 상황이니.
정신이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때였다.
한 남자가 무리에서 뛰쳐나왔다.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데우시스 교의 사제였다.
“마족의 말을 믿을 것 같으냐!”“믿든 말든 사실이다. 나는 평화를 위해 이 자리에 섰다.”“네놈! 간악한 혀를 놀리다니! 신께서 너를 벌하실 것이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사제가 시드리엘을 향해 달려든다.
이미 공포 때문에 전신을 떨면서도, 사제는 눈을 까뒤집은 채 달렸다.
“죽어라!”
레이드런이 움직이려 했으나, 시드리엘이 손을 들려 만류했다.
이내 시드리엘 코앞까지 다가온 사제가 지팡이를 휘두른다.
화아아아-!
지팡이에서 새하얀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고.
곧이어 시드리엘의 머리를 강타한다.
퍼억!
묵직한 소음.
사제는 손아귀에 힘이 풀린 것인지 지팡이를 놓쳐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
모두 눈을 부릅뜬 채로 사제와 시드리엘을 바라봤다.
“음.”
시드리엘의 머리에서 한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신성력에 맞은 피부가 찢긴 것이다.
시드리엘이 손을 뻗었다.
“히익…!”
“괜찮다.”
잔뜩 겁을 먹은 사제가 움츠러들었으나, 시드리엘은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를 주어 사제에게 돌려주었다.
사제는 혼이 나간 얼굴로 자신의 지팡이를 돌려받았다.
“너희의 왕은 어디 있나? 나는 왕을 만나고자 한다.”
“…”
“나를 국왕에게 안내해줄 용기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