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3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31화(231/273)
최현석이 마족의 영역으로 떠난 날 밤.
늦은 시각까지 업무를 보던 아벨슨 마리어트에게 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데우시스 교의 조사단…?”
왕국에 또다시 데우시스 교의 대규모 조사단이 파견된다는 것.
언데드와 내통했다는 혐의였다.
사라 던피를 겨냥한 게 분명한 상황.
아벨슨은 곧장 사라 던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간단하구나.”
이야기를 들은 사라 던피는 딱히 어려울 게 없다는 투로 말했다.
“내가 이 왕국을 떠나면 되는 것 아니더냐.”
“네…?”
“나도 대륙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마족과 화평을 맺었다지만, 왕국이 마족, 그것도 언데드와 엮여서 좋을 건 없어.”
전쟁은 끝났다.
마족과 평화 협정도 맺었다.
하지만, 이것이 마족과 동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전쟁의 상처가 아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특히나 언데드의 경우에는 그 상처가 더욱더 깊었다.
마족과의 전쟁은 마의 영역 부근에서 일어났기에 피해자는 대부분 군인, 병사다.
그에 반해 최근 발생한 언데드는 인간의 영역 내에서 일어난 일.
당연히 피해 규모가 압도적일 정도로 컸다.
심지어 지금도 곳곳에서 통제되지 않는 언데드 무리가 활개를 치는 상황이다.
즉, 언데드를 향한 대중의 증오는 현재 진행형이란 뜻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어트 왕국이 언데드와 엮이면 자칫 대륙의 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최현석과 박현아에게는 알리지 말거라. 그들의 불같은 성격을 생각하면 자칫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사라 던피는 이미 결정을 내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아벨슨은 사라 던피의 소매를 붙잡았다.
사라 던피는 의아함이 담긴 눈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왜 그러지?”
“그냥 이렇게 떠난다는 건가요?”“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사안이다. 굳이 더 생각할 필요가 없지. 고민을 깊게 하는 것이 늘 옳은 건 아니야.”“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대로 떠나면 당신은 분명 신성 제국에게 당할 거예요!”
아벨슨은 가트렌이 어떤 이들인지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사라 던피라 해도 가트렌의 추격을 뿌리치는 건 힘들 것이다.
그녀는 강력한 마기를 지닌 존재였으니까.
마족의 영역으로 도망치지 않는 이상, 언젠가 붙잡힐 수밖에 없다.
아니, 설사 마족의 영역으로 간다 해도 가트렌이라면 찾아낼 것이다.
“도망쳐도 결국 붙잡힐 거예요… 차라리 이곳에 남아서 같이 싸워요…”
사라 던피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아벨슨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벨슨 마리어트. 그대는 국왕이다. 모든 백성을 책임져야 할 그대가 그런 말을 해선 안 되느니라.”“하지만, 동료를 버릴 수는….”“버려라. 어차피 그대는 나를 지킬 수 없다.”
사라 던피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곳에 남는다면 기다리는 것은 파멸뿐이야. 내가 발각되는 순간 명분은 저들에게 주어진다. 주변국은 모두 그대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고, 그대의 백성들은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할 거다. 그게 그대가 원하는 결말인가?”
아벨슨 마리어트는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 반박하고 싶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라 던피의 말대로다.
아벨슨에게는 사라 던피를 지킬 힘이 없었다.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기에.
이대로 사라 던피를 떠나보내는 게 최선이다.
이러한 생각조차 자기 합리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벨슨은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아, 박현아에게는 조심하라고 전해주겠나? 그녀는 아직 싸울 수 없다. 하나, 그 성정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 길길이 날뛰며 신성 제국으로 쳐들어간다고 할지도 모른다.”
사라 던피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아벨슨. 그대가 잘 붙잡아주길 바란다.”
“저는…”
“이제 가봐야겠군. 이렇게라도 그대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어 다행이야.”
사라 던피가 아벨슨을 끌어안고는 토닥여 주었다.
아벨슨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라 씨…?”
아벨슨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사라 던피는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벨슨은 박현아에게 사라 던피가 떠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예상대로 박현아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언데드가 나갔다니!?”
박현아의 언성이 저도 모르게 높아졌다.
그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있던 년이 갑자기 왜 떠난 건데?”“어쩔 수 없었어요. 사라 던피 씨가 직접 결정한 일이에요.”
아벨슨은 의자에 앉은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신성 제국이 사라 던피 씨를 쫓고 있어요.”
“가트렌이…?”
“정확히 설명하면, 데우시스 교 차원에서 우리 마리어트 왕국에 조사대를 파견하겠다고 해요. 언데드와의 결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요.”“그게 무슨 상관인데! 어차피 마족이랑 전쟁도 끝났잖아!?”
박현아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 마족과 친분이 있다는 게 남들이 보기에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전쟁은 끝난 상황이 아닌가?
심지어 체르시 왕국에서는 마왕이 나타나 국왕과 직접 평화 조약을 맺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깟 마족과 결탁했다는 게 그리 대수야?”“정확히는 마족이 아니라 언데드와의 결탁이죠. 그래서 더 문제고요.”
“무슨 말이야?”
“최근 대륙에서 마족에게 피해를 본 사람이 많을까요? 아니면 언데드에게 피해를 본 사람이 많을까요?”
“그건…”
당연히 언데드에게 본 피해가 압도적으로 클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마족이나 언데드나 결국 그게 그거 아니야?”
박현아는 의문이었다.
결국, 언데드는 마족이 만든 산물이다.
그런데 그 둘을 나누어 구분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말씀하셨듯 마족과 화평을 맺은 상황이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평판이 좋지 않은 가트렌이 또다시 마족을 걸고넘어지는 건 부담됐을 거예요.”“그런데 언데드는 다르다?”“네. 언데드는 순수한 증오의 대상이에요. 대중이 그리는 언데드의 형상은 피에 미친 망자일 뿐이죠.”“어차피 그것도 마족이 만든 거잖아. 그럼 마족을 미워해야지.”“맞아요. 모순이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실제 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한 것을. 가트렌은 그런 대중들의 심리를 이용한 거예요.”
돌연 박현아가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헝클었다.
“으아아아! 다 집어치우고! 결국, 가트렌이 트집 하나 잡아서 쳐들어온다는 거잖아!”“핵심만 말하자면 그렇죠.”“그러면 사라 던피가 왜 여길 떠나야 하는 건데!? 맞서 싸워야지! 우리가 지켜줬어야지! 최소한 떠나기 전에 나랑 이야기 정도는 하는 게 도리 아니야!?”
첫 만남이 좋았던 건 아니다.
그녀는 언데드였고.
박현아는 최현석과 함께 그 언데드를 토벌하기 위해 찾아온 용사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라 던피는 달라졌다.
언데드라면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살육의 욕망.
그것을 억누르는 법을 개발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됐고.
이후로 동료로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실제로 최현석과 박현아의 목숨도 몇 번이나 구해주었다.
점차 마음속에서 사라 던피를 동료라고 인정했다.
울티문 페스가 와해되고.
그녀가 알던 모든 이들이 죽었기에.
지금 있는 동료만큼은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모든 건 사라 씨의 의지예요…”“그딴 걸 변명이라고 해!?”“저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순간 아벨슨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떨군다.
“저도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고요… 하지만 어떡해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아벨슨이 몸을 덜덜 떨었다.
그녀 또한 진심으로 슬펐다.
떠나는 사라 던피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그녀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짓누르고 있었다.
“하아… 시발!”
박현아가 욕을 내뱉고는 그대로 방을 떠나갔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다.
애초부터 이건 아벨슨에게 선택권이 없는 문제다.
아벨슨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진짜 개같네.’
박현아가 분노하는 이유는 그저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창피해서.
그런데도 아벨슨을 닦달하는 자신의 한심함에 화가 날 뿐이었다.
***
같은 시각.
최현석은 시드리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딕풍 드레스를 입은 시드리엘은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 뇌쇄적이었다.
최현석은 멍하니 그런 시드리엘을 바라봤다.
“전쟁이 끝나고 인간이 물러난 건 너도 알고 있을 거다.”
“어어? 그렇지.”
“왜 그러지?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은데.”“아니야. 듣고 있어. 계속 말해.”
시드리엘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로 바라봤다.
최현석은 조금 당황하며 물러났다.
“왜 그렇게 쳐다봐?”“혹시 문제가 있나 싶어서 봤다. 괜찮은 것 같군.”
시드리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도리투그스가 움직인 건 그 시점이었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자 자신의 세력을 모으기 시작하더군.”“그러고 곧장 독립을 선언했다?”“정확히 독립을 선언한 건 아니야. 완전히 세력을 결집한 시점에서 놈은 나에게 제안을 해왔다.”
“무슨 제안?”
순간 시드리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대로 마족이 갈라지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면 순순히 마왕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더군. 아니면 자신은 독립해서 새로운 왕국을 만들겠다고 했다.”“으흠… 그게 가능해? 너는 정식으로 새로운 마왕이 된 거잖아.”
최현석은 의문이었다.
시드리엘은 마족
대의원의 투표로 마왕에 선출됐다.
인간의 관점으로 봤을 때, 명분은 시드리엘에게 있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마족이라고 해서 상황이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 나는 마왕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리투구스는 죽이고 분란을 잠재우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나는… 아쉽게도 힘이 부족하다. 마왕으로 오르며 전보다 더 강해졌지만, 그런데도 도리투그스를 이길지는 알 수 없어.”
시드리엘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게,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녀석들한테 도와달라 하면 안 돼?”“그러면 자칫 내전으로 번질 수도 있다.”“내전이라니… 놈을 따르는 세력 규모가 얼마나 크길래?”“마족
전체 전력의 20% 수준. 심지어 그 세력은 놈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하고 있다. 그에 반해 나는…”
시드리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이라곤 하나, 내 편은 없다. 믿을 만한 수하도 없다.”
시드리엘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다.
마족
내에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대의원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군단장들 또한 그녀를 완전히 따르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 어렸고, 시험대에 올라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주도한 평화 협정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은 상황이다. 이런 일로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나를 따르던 자들도 마왕의 자격을 의심할 거다. 그래서…”
시드리엘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최현석을 바라봤다.
“염치없지만 최현석. 너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끄응…”
최현석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생각보다 머리 아픈 상황이네.’
자연스레 마족
대회의 당시 만났던 도리투그스를 떠올렸다.
여느 고위 마족처럼 잘생긴 외모에 큰 체격.
가진 마기 또한 굉장히 수준이 높았다.
그 자리에서 헤미스를 제외하면 가장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단숨에 알 수 있을 만큼.
‘시드리엘이 강해졌다곤 해도, 전투 경험이 늘어난 게 아니야. 싸워서 이기긴 힘들겠지.’
시드리엘의 가장 큰 문제는 실전 경험의 부족이다.
혼자서 수련만 한 그녀는 수백 년간 전쟁을 치러온 도리투그스와 비교해서 온실 속의 화초나 다름없었다.
“미안하다. 내가 부족한 탓에 너까지 힘들게 만들었군.”
돌연 시드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으면 이대로 떠나도 좋다. 여기까지 와서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 해도 나는 감사하다.”
“아니, 잠깐만.”
최현석이 떠나려는 시드리엘을 붙잡았다.
“어떡하려고?”
“그와 따로 만나 승부를 봐야겠지. 살아남는 자가 다음 마왕이 되는 거다.”“이길 가능성이 없잖아.”“그래도 할 수밖에 없다.”“아니. 기다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별수 없다.
최현석은 인간의 최대 장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시드리엘. 마족은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이길 수 없지만, 인간은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이길 수 있다. 왜 그런지 알아?”
시드리엘은 눈을 끔뻑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왜인가?”
순간 최현석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인간은 야비하거든.”
전설적인 용사의 머릿속에 인간다운 계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