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32)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32화(232/273)
시드리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인간은 야비하다고?”“그래. 비슷한 말로 졸렬하다. 얍삽하다. 비겁하다. 비열하다 등등이 있지.”“으음, 모두 좋지 않은 단어들이다. 그게 어째서 인간이 강한 존재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인가?”
시드리엘은 의문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이길 수 있다니.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강하면 그냥 더 강한 것이다.
강한 존재가 승리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강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강해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아니면 그 강자가 노화 등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약해지거나.
어쨌거나 상대적으로 내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 간단하게 생각해보자고.”
최현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쓰지도 않는 펜을 꺼내 들었다.
시드리엘은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경청했다.
“너 원래는 도리투그스한테 가서 일대일로 승부를 보자고 할 생각이었지?”“정확히는 둘만 따로 만나서 조용하게 승부를 결정지으려 했다. 다른 마족에게 분란을 일으킬 만한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으니.”“그런 생각부터가 글러 먹었다는 거야!”
“으응…?”
갑작스러운 타박에 시드리엘은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자신은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낸 것인데, 도대체 어디가 글러 먹었다는 걸까.
최현석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그녀가 다시 설명을 이었다.
“최현석. 말했듯이 지금은 마왕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내전으로 번질 수도 있어.”
“그래서?”
“둘만 만나서 조용히 합의하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마족의 합의란 대게 결투로 이뤄지지.”“쯧쯧! 이렇게 마족이 순수해서야!”
최현석이 혀를 끌끌 찼다.
“시드리엘. 네가 그 도리투그스와 일대일로 붙어서 이길 수 있어?”“승산이 없지는 않다. 아주 조금이지만…”“아주 조금? 아주 조금의 승산에 네 목숨을 걸겠다는 거야? 그건 그냥 자살행위야.”“그럼 어떡해야 하는가?”“간단해. 승산을 올려야지.”
“어떻게?”
“싸움 전에 독이 든 음식을 줘서 빈사 상태로 만들든가 함정을 파서 위기에 빠뜨리든가. 그놈 몰래 지원군을 부르든가. 아니면 아예 싸울 일이 없도록 암살을 해도 좋지. 이것 말고도 방법은 무궁무진해.”
최현석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시드리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어, 어떻게 그런 짓을…!?”“어떻게는 무슨 어떻게야!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최현석은 되려 시드리엘에게 화를 냈다.
그는 이 답답하리만큼 고지식한 마왕의 생각을 뜯어고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이겨야 할 거 아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지!”“그건 맞지만… 그런 행동은 마족의 명예에 어긋난다…”“뭐? 명예? 명예에~?”
최현석이 잔뜩 일그러진 면상을 들이밀었다.
시드리엘은 자라처럼 움츠러들며 물러났다.
“왜, 왜 그러나 최현석… 좀 떨어져라.”“그깟 명예가 뭐가 중요해! 뒤지고 나면 누가 알아준대!?”“마족의 명예는 중요하다!”
시드리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는 생각한다.
최현석은 마족의 생리를 모르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명예가 없는 마족은 절대 높은 곳으로 갈 수 없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마족들이 따르지 않을 거다. 네가 말한 그런 행동을 하면 다른 마족들이 나를 마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그러니까. 비겁한 짓을 하는 걸 다른 놈들이 알게 되면 싫어한다?”
“그렇다!”
“그럼 안 들키면 그만이잖아.”
“으응…?”
“가서 도리투그스를 죽이고, 너는 명예롭게 싸웠다고 해. 이미 뒤진 도리투그스가 무슨 말을 하겠어?”“어, 어떻게 그런 짓을…”
최현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이길 생각이 있긴 한 거야?”
그의 물음에 시드리엘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지!”“그러기엔 마족의 명예가….”“그러니까! 다른 놈들 모르게 조지자는 거잖아! 거짓말도 들통나기 전까진 진실인 거라고!”
시드리엘의 눈알이 바쁘게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거짓말도 들통나기 전까진 진실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듯했다.
“나, 나는…”
“모든 준비는 내가 한다. 너는 그냥 도리투그스. 그놈한테 연락해서 조용히 따로 만나자고만 해. 둘이서 승부를 짓자고.”
잠시 눈치를 살피던 시드리엘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그거면 되는 건가?”“그래! 너는 딱 약속 장소로 그놈을 불러내기만 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최현석… 너무 비겁한 수는 쓰지 않는 게…”“괜찮아괜찮아!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맡겨!”“알겠다. 그럼 지금 당장 도리투그스에게 연락을 하겠다.”“좋아! 행동력 하나는 마음에 드네.”
최현석이 만족스럽게 웃고.
시드리엘이 떨리는 손으로 통신구를 집어 들었다.
***
제1군단장 도리투그스.
그는 뛰어난 카리스마로 제1군단에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그와 동시에 도리투그스는 대의원을 배출하는 마족
전통 명문 3가의 실질적인 리더이기도 했다.
제1군단과 3개의 명가.
두 집단의 힘은 마족
전체 전력의 20%에 달할 정도로 강대하다.
제1군단은 마왕군 최고 정예 군단이었고, 명문 3가는 구성원 대다수가 고위 마족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이들을 대표하는 도리투그스의 영향력은 굉장했다.
그가 당당하게 독립된 국가를 세우겠다 말한 데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었다.
“흐음.”
도리투그스는 여유롭게 잔을 들었다.
신선한 마수의 피가 든 잔이다.
마치 피를 음미하듯 천천히 향을 맡고 입술을 적신 그가 다시 잔을 내려놓고선 부관을 돌아봤다.
“아직 연락이 없나?”
“예.”
“고민 중인가 보군.”
도리투그스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아무리 고민해 봤자 그 어린 마족에게 선택권은 없다.”
지금 상황에서 시드리엘이 할 행동은 정해져 있다.
마왕의 자리를 내놓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승부를 걸어올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적다.
설사 그렇게 흘러간다 해도 도리투그스는 자신 있었다.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나에게는 손해 볼 것 없는 싸움이다.”
사실 이건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결국, 시드리엘은 물러나고 자신이 새로운 마왕으로 등극한다는 게 이 이야기의 끝이다.
“굳이 꼽자면 승부를 걸어올 가능성이 가장 크겠군. 마왕이 되고 얻은 힘에 심취해 있을 테니 말이야. 마족답게 결투를 하자고 할 게 뻔해.”
마왕으로 인정받는 마족은 그 힘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군단장급의 신체 능력을 갖췄던 시드리엘은 분명 엄청난 힘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수치적으로만 봤을 때, 어쩌면 자신과 비슷하거나 뛰어넘는 힘을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도리투그스는 상관없었다.
‘그래 봤자 애새끼야. 힘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모르는.’
평생 마왕성 지하에서 썩은 시드리엘.
명문 3가 역사를 통틀어 역대급 재능을 물려받았다 평가받으며, 삼백 년 가까이 전쟁터를 전전한 자신.
이건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몸풀기 정도로는 적당하겠군.’
도리투그스가 소파에 몸을 뉘며 다리를 꼬았다.
그는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서 시드리엘이 결단을 내려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그 어리고 건방진 마족이 짓밟히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밖에서 다른 부관이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군단장님. 마왕성에서 온 연락입니다.”
부관이 통신구를 내밀었다.
도리투그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통신구를 건네받았다.
그가 신호하자 모든 부관이 방을 나가고.
혼자 남게 된 도리투그스가 입을 열었다.
“결정했나?”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지?”-마족답게 승부를 보자… 너와 나… 단, 둘이서만…
통신구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시드리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도리투그스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알겠다. 시간과 장소를 말해라.”
시드리엘이 약속 장소와 시간을 고지하고, 도리투그스는 통신을 종료했다.
“그럼, 그때 보도록 하지.”-알겠다.
통신구에서 빛이 꺼짐과 동시에 도리투그스가 광소했다.
“크하하하하! 그럼 그렇지!”
자신의 예상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는 대화였다.
“어지간히도 긴장했나 보군. 목소리까지 떨리다니 말이야. 쯧쯧!”
저렇게 배포도 없는 주제에 건방지게 자신을 제치고 마왕의 자리를 꿰차다니.
도리투그스는 격의 차이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줄 생각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번이고 시드리엘을 죽였다.
어떤 시나리오를 쓰더라도 시드리엘이 승리한다는 경우의 수는 없다.
‘살아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시드리엘!’
***
통신이 종료되고.
최현석은 시드리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주 잘했어!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지?”
시드리엘은 여전히 굳어 있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당연히 잘하고 있지! 뭐든 처음은 어려운 법이야. 앞으로 차차 익숙해지자고.”“이런 일에 익숙해지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은데…”
계속 구시렁대는 시드리엘.
최현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마왕은 얼마나 순진하고 고지식한 건지.
그깟 거짓말을 하는데 긴장해서 목소리까지 덜덜 떨었다.
최현석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아니, 마족이었다.
‘무슨 마족이 이렇게 착해빠졌어.’
인간은 거짓말을 숨 쉬듯이 하는데, 이 마족의 왕이라는 작자는 그깟 거짓말 한 번에 얼굴까지 발갛게 달아오른다.
만약 도리투그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단번에 이상함을 눈치챘을 것이다.
“뭐, 어쨌거나 성공했으면 된 거지. 이제부터는 나한테 맡겨!”“어떡할 생각인가?”
“지원군을 불러야지.”“지원군? 다른 마족을 이 일에 끌어들일 수는 없다.”“그 정도는 나도 알아. 내가 말한 지원군은 마족이 아니라고.”
어차피 마족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유일하게 친분이 있는 레이드런은 눈앞의 마왕보다 열 배는 더 고지식하니, 반대할 게 분명하다.
헤미스는 연락 자체가 안 된다.
“그럼 지원군이 누구인가?”“일단 마리어트 왕국에 있는 동료들.”
아벨슨의 신성력은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라 던피는 말할 것도 없고.
박현아는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아 어떨지 미지수지만, 일단 물어는 볼 생각이었다.
“바로 연락해봐야겠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최현석은 곧장 통신구를 활성화했다.
잠시 후 통신구 너머로 아벨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현석 씨. 어쩐 일이세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 연락했습니다.”-부탁이요?
최현석은 현재 상황을 설명한 후 동료들에게 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 죄송해요. 지금은 다들 바빠서요.
“그렇군요.”
당연히 와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최현석은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국정으로 바쁘고… 사라 씨도 일이 생겼어요… 박현아 씨도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고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죄송해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쇼! 제가 어떻게든 해결하겠습니다.”
통신을 종료하고.
최현석은 어리둥절할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아벨슨 씨랑 누님이야 그렇다 쳐도. 사라 씨는 도대체 무슨 일로 바쁜 거야?”
사라 던피의 일정이라고는 틀어박혀서 마법 연구를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인지 도움을 요청하면 항상 가장 먼저 달려와 주었는데, 이번에는 안될 것 같았다.
“최현석. 혹시 큰일 난 건가?”
시드리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괜찮아. 아직 최후의 수단이 남았으니까.”
“최후의 수단?”
“어. 이건 좀 찝찝해서 쓰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지.
최현석은 이전과 다른 통신구를 활성화했다.
우웅…!
빛이 뿜어지기 무섭게 통신구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최현석 경 아닌가?
“오랜만입니다. 공작님.”-어쩐 일로 연락을 주셨소?
“부탁을 하나 드리려 합니다.”
연락을 받은 아는 드라센 제국의 공작 올라벤 그리미어.
그에게 새로운 거래를 제안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