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34)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34화(234/273)
성녀 모리얼과 전설 일당은 다급히 마리어트 왕국을 떠났다.
사라 던피가 신성 제국의 도시 세이크리움을 습격 중이라니.
조사대의 표면상 목적이 사라 던피였던 만큼 당연히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라 던피가 어째서 세이크리움을 습격하는 거지?”“우리 때문이겠지. 아벨슨 마리어트가 내린 명령이 분명하다.”“그런 낌새는 느끼지 못했는데.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둔 건가.”
세 명의 전설. 겔링, 아스문드, 킨리가 돌아가며 말했다.
“사라 던피가 왜 나타났는가는 상관없어요. 이미 일어난 사건.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성녀 모리얼이 그들의 말을 이어받았다.
“상황만 놓고 보면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에요. 사라 던피가 계속 밖을 돌았으면 우리도 오래 마리어트 왕궁에 눌러있기 부담스러웠을 텐데. 이렇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겠어요.”
마리어트 왕궁에 눌러앉아 있다 한들 언데드의 증거를 잡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성녀 모리얼은 마기의 잔향조차 느끼지 못했으니까.
만약 아벨슨이 끝까지 버텼으면 여러모로 일이 귀찮아졌으리라.
그런데 사라 던피가 날뛰어주니 자연스레 명분이 공고해진다.
이제 사라 던피를 처리하고,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 ‘언데드와 무슨 관계냐’ -라며 아벨슨을 추궁하면 모든 게 완벽했다.
“저곳이군.”
성녀 모리얼 일행은 채 20분이 흐르기도 전에 문제의 도시, 세이크리움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도시 상공을 부유하는 진득한 마기가 느껴졌다.
“마기만 놓고 봤을 때 최소 군단장급이군.”“보통 군단장이 아니야. 이 정도 마기면 제1군단장 도리투그스 수준이다.”“상관없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설령 괴식가가 온다 해도 처리할 수 있어.”
“바로 돌입하죠.”
그들이 마기의 진원지를 향해 움직이려던 찰나.
머리 위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늦었구나.”
성녀 일당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저게 사라 던피인가.”“언제부터 저기 있었지?”“언데드라고 알고 오지 않았으면 곤란했겠군. 전혀 구별할 수 없어.”
구릿빛 피부에 휘황찬란하게 황금과 보석을 걸친 여성.
외형만 봤을 때는 언데드가 아닌 인간처럼 보였다.
그녀의 옆에는 거대한 대검을 든 전사도 서 있었는데, 그 또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런 전사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전사도 최소 준전설급의 무력을 갖췄을 것으로 보인다.
전설 중 하나인 킨리가 얼굴을 구겼다.
“생각보다 더 귀찮아지겠어.”
다른 의미는 없다.
내뱉은 그대로 귀찮아지는 상황이 짜증 나서 킨리는 인상을 구겼다.
어차피 이들의 실력은 전설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준전설이 하나 끼어든다 해서 어려울 건 전혀 없다.
다만, 조금 더 귀찮아지는 것뿐.
그게 전부였다.
그때 성녀 모리얼이 대표로 나서 물었다.
“당신이 사라 던피인가요?”
“그래.”
“왜 여기 있는 거죠? 도시를 습격하는 게 아니었나요?”“도시를 습격하진 않았다. 그런 척을 했을 뿐.”
이곳에서 사라 던피가 한 행위는 마기를 흩뿌리는 것뿐이다.
보기에는 무섭겠지만, 실질적으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알렸을 뿐.
목적은 당연히 자신을 붙잡으러 온 성녀 일당을 불러내기 위함이었다.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했다는 건가요?”
“정답이다.”
사라 던피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성녀 모리얼 또한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재미있네요. 설마 당신이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그대들의 수준이 높긴 하구나. 그래도 충분히 해볼 만할 것 같아.”
“오만하네요.”
사라 던피가 어깨를 으쓱였다.
“언제까지 입으로 싸울 생각이지?”
사라 던피의 마기가 뻗어나가고, 곳곳에서 언데드가 나타났다.
하나같이 강력한 개체인 고위 언데드.
그 숫자만 해도 무려 수 백이다.
사라 던피를 제외하고, 이곳의 언데드만 움직여도 작은 나라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성녀 모리얼이 있다.
언데드 한정으로는 인류 최강이라 해도 좋을 만큼, 성녀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고작 이런 잡졸들로 그런 자신감을 보인 건 아니리라 생각해요.”
성녀 모리얼에게서 뻗어나간 막대한 신성력이 하늘에서 폭발했다.
최고위 신성 마법
멸악의 세례(Baptism of Destruction)
이윽고,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비가 대지를 뒤덮었다.
그아아아아-!
어지간한 언데드는 단숨에 녹여버릴 신성력의 비.
사라 던피가 내보낸 언데드는 모두 고위 언데드라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문제였다.
이대로라면 채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사라질 것이다.
“호오, 확실히 제법이구나.”
사라 던피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만한 수준의 신성 마법은 처음 보는 것이라 절로 호기심이 생겼다.
“단순하게 강한 위력을 내는 방식은 나쁘지 않지. 어중간하게 꼬는 것보다는 효율적이야.”
하지만, 지금은 전투 상황.
한가하게 마법을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
“알고 있나? 이런 류의 마법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사라 던피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뻗어나간 마기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단순한 만큼 쉽게 휩쓸리고 말지. 이런 식으로 말이야.”
성녀 모리얼이 경악 어린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어떻게…!?”
쏴아아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신성력이 담긴 비가 아니었다.
사라 던피의 마기가 담긴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워어어…!
신성력에 젖어 쓰러지던 언데드들이 다시 일어서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강화됐다.
성녀 모리얼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기는 신성력에 약하다. 하물며 상대는 그중 최악의 상성이라는 언데드. 그런데 어떻게 신성력을 집어삼킨 거지!?’
심지어 사라 던피는 마법을 변형시켰다.
기존의 신성 마법을 부서뜨린 게 아니라 속성을 마기로 변환한 것이다.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묘기에 성녀 모리얼이 당황하던 그때.
전설 삼인방이 나섰다.
“모리얼. 보조해라. 우리가 처리하지.”
“… 알겠어요.”
성녀 모리얼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물러났다.
전설 킨리가 대표로 명령을 내렸다.
“아스문드. 너는 잡졸을 처리해. 겔링은 기사를 맡아라. 사라 던피는 내가 직접 상대하지.”
“알겠다.”
간단하게 역할이 분배되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려던 찰나.
“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어.”
“뭐…?”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사라 던피가 손을 휘젓자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쳤다.
성녀 모리얼 일당이 당황하며 마기를 걷어내는 사이.
“도망친다!”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사라 던피가 보였다.
킨리가 얼굴을 와락 구기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아앙-!
충격파로 소용돌이치던 마기가 모두 흩어진다.
킨리가 서둘러 땅을 박찼다.
“저 잡것들이 사람을 우습게 알고 있어!”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감히 자신을 가지고 놀다니.
당장 붙잡아 전신의 뼈를 으스러뜨려 버릴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갑작스레 시작된 이 추격전이 보름 가까이 이어질 줄은.
***
사라 던피를 쫓기 시작하고, 처음 하루가 지났을 시점.
성녀 일당은 생각했다.
예상보다 추격전이 길어졌구나.
적이 도망치는 솜씨가 제법이다.
그러다 이틀이 지나고.
삼 일이 지났을 때는 모두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
“한계야. 잠을 조금 자야겠어.”“돌아가면서 한 명씩 수면을 취한다. 나머지는 계속 추격을 이어가야 해. 이제 와서 놓칠 수는 없으니.”
적도 분명 지쳤을 것이다.
제아무리 언데드라 해도 마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분명 이 추격전도 머지않아 끝나리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일주일이 흘렀을 시점에는 그들도 항복했다.
“지원을 요청해.”
“본국에 연락하면 군대를 보내줄 거다.”“단순 군대로는 안돼. 기사단도 동원해야 한다.”“저는 교에 말해서 사제들을 지원받도록 하죠.”
자신들만으로는 사라 던피를 잡을 수 없음을 순순히 인정했다.
여기서 포기하는 것보다는 이제라도 지원을 요청해서 확실하게 잡는 게 나았다.
“지원만 오면 그땐 끝이다.”“더는 도망치지 못하게 사방을 틀어막아 주지.”
신성 제국 가트렌과 데우시스 교에서 대규모 병력이 움직였다.
이제 사라 던피를 붙잡는 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했건만.
사라 던피는 여전히 붙잡히지 않았다.
성녀 모리얼과 전설 3인방은 점점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지긋지긋하다…”
“… 수백 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지친 적은 처음이야.”
도망자는 그저 도망치면 끝이지만, 추격자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역장을 펼쳐야 했고.
어떻게든 움직이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사방으로 펼쳐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사실은 사라 던피가 24시간 내내 잠도 자지 않고 도망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인 이상 수면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라 던피의 속도가 워낙 빨라 다른 이에게 추격을 맡기면 놓칠 수 있는 상황.
결국, 성녀 모리얼과 전설 3인방이 돌아가며 쪽잠을 자는 것으로 대신 추격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대충 보름은 쫓은 것 같군.”“13일째다. 정확히는 12일 하고 14시간 16분째 추격전을 이어가고 있지.”
“그렇군…”
오늘로 사라 던피와 추격전을 시작한 지 13일째.
그들의 눈은 벌겋게 충혈된 채였고,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탓에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잡고 말겠다…!”
전설 킨리가 벌게진 눈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는 자존심의 문제다.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이 얼마인가.
이렇게 일을 벌여놓고 사라 던피를 놓친다면 앞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조금만 더 힘내요. 포위망이 거의 완성됐어요. 그러면 아무리 잘난 사라 던피라 해도 더는 도망치지 못할 거예요.”
성녀 모리얼이 말했다.
“제국의 미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는 강적입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죠.”
마리어트 왕국의 일은 이미 잊었다.
마리어트 왕국 따위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니다.
사라 던피의 위험성을 제대로 깨달은 이상.
이들의 모든 신경은 사라 던피에게 집중돼 있었다.
기다리던 소식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사라 던피가 함정에 걸렸습니다!”
“드디어!”
마침내 사라 던피가 함정에 걸렸다.
강력한 신성 결계.
이번에는 아무리 사라 던피라 해도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
사라 던피가 주변을 둘러봤다.
강대한 신성력이 돔 형태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흐음, 이번 결계는 조금 다르구나.”
그동안 추격전을 이어가며 사라 던피는 몇 번이나 결계에 갇혔었다.
그때마다 손쉽게 결계를 부수고 도망쳤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이건 아주 오랫동안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견고한 결계다.
아무리 사라 던피라 해도 이만한 결계를 부수려면 제법 시간이 걸렸다.
도망자에게 그런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니, 결국 이곳에서 최후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아쉽구나. 최현석이 돌아올 때까지는 버텨보려 했거늘.’
그녀가 속으로 혀를 찼다.
마지막으로 최현석을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상황은 벌어진 것.
그녀가 찝찝한 마음을 털어내려는 듯 크게 기지개를 켰다.
“리암. 몸은 괜찮으냐?”“예. 이럴 때는 언데드라는 것에 감사해지는군요.”
13일에 걸친 추격전.
인간인 이상 아무리 전설이라 한들 지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리암과 사라 던피는 정신이 피로한 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언데드의 체력은 무한하기에.
마기만 충분하다면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싸울 수도 있었다.
물론, 정신이 버티는 것은 다른 문제였지만.
아무튼, 리암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전투에 임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리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돌연 사라 던피가 진지한 표정으로 리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비록 적의 포위가 단단하긴 하다만. 너 하나를 살려 보내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다.”
적들이 몰려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적어도 만 단위.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하나같이 강한 신성력을 품고 있는 놈들이다.
그럼에도 사라 던피는 리암을 살려 보낼 자신이 있었다.
리암은 고개를 젓고는 사라 던피를 마주 봤다.
“주군. 지난 이 주 동안 주군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한 말?”
“예. 제게 물으셨지 않습니까. 존재의 의의에 관해서.”
“아아, 그랬지.”
이 추격전이 시작되기 전.
사라 던피는 리암에게 물었다.
“존재의 의의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그때 리암은 대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2주 가까이 도망치며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생각해 보니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존재의 의의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사라 던피의 물음에 리암이 씨익 웃었다.
“그건 바로 주군이십니다.”
“…”
“주군이 없는 세상은 제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사라 던피가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이렇게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저는 진지합니다. 주군.”“알겠으니 그만하거라.”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적은 어느새 사방을 에워싼 채로 둘을 향해 검과 창을 겨누고 있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발링턴을 세우기 전. 너와 나. 이렇게 단둘이서 대군을 맞이했던 적이 있었지. 기억하느냐?”
“물론입니다.”
대륙에 사라 던피라는 이름을 떨치게 한 결정적인 전투.
그 전투에서 승리한 덕에 발링턴 왕국이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라 던피는 어째서인지 그때의 전투와 지금이 닮았다고 느꼈다.
“뜻하지 않게 이 시대에서도 이름을 떨치게 되겠어.”“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마법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세계를 가득 메우는 형형색색의 마법.
사라 던피는 작게 감탄했다.
‘아름답구나.’
어째서일까.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할 마법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가보자꾸나.”
“예.”
사라 던피와 리암은 미소를 지으며 마법 속에 몸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