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3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35화(235/273)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어느덧 2주가 흘러 결투 당일.
도리투그스는 혼자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어떠한 불안감이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표정.
움직임은 여유 그 자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도리투그스는 전혀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시드리엘은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다. 이번 일을 도울 마족은 없을뿐더러, 설사 누군가 돕는다고 해도 그 순간 시드리엘은 명예를 잃게 된다.’
만약 시드리엘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다 해도 상관없다.
어떤 함정이든 돌파하고 도망칠 자신이 있었으니까.
적을 두고 도망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저쪽에서 먼저 규칙을 어겼다면 상관없다.
이미 정당한 싸움이 아닌데 이쪽에서 응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일단 들이받고 보는 멍청이가 마족의 태반이긴 했지만.
적어도 도리투그스는 그런 멍청이가 아니었다.
“시드리엘. 혼자인가 보군.”
이윽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홀로 기다리고 있는 시드리엘이 보였다.
시드리엘이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도리투그스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도망치지 않고 나온 건 칭찬해 주마. 그래도 마왕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나 보군.”
가벼운 도발.
시드리엘은 대응하지 않고 그저 도리투그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듣자 하니 2주 동안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다던데. 특별 훈련이라도 하고 왔나?”
“…”
“대답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도리투그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쪽에서 대화를 원하지 않는데,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다.”
도리투그스가 자세를 잡으며 서늘한 눈으로 시드리엘을 바라봤다.
“유언은?”
시드리엘은 대답 대신 땅을 박차며 달려왔다.
도리투그스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대답이다!”
***
도리투그스는 생각했다.
이 싸움이 시시하게 끝날 것이라고.
신체 스펙이 비슷하긴 했으나, 둘 사이에는 압도적인 경험의 차이가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전투는 박빙으로 흘러갔다.
둘은 마법전과 육탄전을 오가며 치열하게 싸웠다.
‘제법이야.’
도리투그스는 내심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시드리엘의 공격은 잔혹하고 집요했으며, 감각은 마치 전투에 닳고 닳은 용병처럼 날카로웠다.
도저히 마왕성 지하에 처박혀서 살아온 온실 속의 화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투그스는 인정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군. 나름 쓸만한 재목이야.’
어리다고 무시할 게 아니다.
역시 마왕의 혈통이란 걸까.
핏줄에서 나오는 힘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뿐이다.
예상보다는 강했지만, 자신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다.
‘그래 봤자 결국 애새끼라는 건 변함없지.’
도리투그스가 마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마기가 폭풍처럼 쏘아져 나갔다.
게드리컨 멸실 검술
제9형 – 제왕을 멸하는 검
게드리컨 멸실 검술.
도리투그스가 소속된 게드리컨 가문에 내려오는 투기 중 가장 강한 위력을 지녔다.
그중에서도 ‘제9형 – 제왕을 멸하는 검’은 멸실 검술 내에서도 최강의 위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쐐애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가는 마기.
그 끝에는 숨을 헐떡이는 시드리엘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모든 마기를 쥐어짜며 맞받아쳤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공기가 떨리고.
충격으로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검의 파편과 함께 시드리엘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허어억…! 허억…!”
피투성이가 된 시드리엘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공격에서 폐를 다친 건지 그녀의 호흡은 당장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이번엔 정말 죽일 생각이었는데, 용케 살아남았군.”
“커허헉…! 헉!”
“솔직히 인정하마. 너는 강하다. 백 년. 아니, 오십 년만 더 흐른 시점에서 싸웠다면 결과는 달랐겠지.”
진심이었다.
시드리엘은 결코 무력하게 당하지 않았다.
그녀와 싸우느라 도리투그스는 마기를 절반 가까이 사용했고, 몸 곳곳에 상처를 입었다.
시간이 흘러 시드리엘이 지금보다 더 강했더라면.
조금 더 완숙된 실력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싸움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뭐, 아쉽게도 그런 시간은 오지 않겠지만.”“나, 나는…! 허억! 아직…!”“숨을 쉬기 힘들어 보이는군. 이제 그만 편하게 해주도록 하지.”
도리투그스가 검을 들어 올렸다.
이대로 시드리엘의 목을 내리쳐 단숨에 끝낼 생각이었다.
그 순간.
“오케이. 거기까지.”
갑자기 나타난 괴한이 주먹을 날렸다.
도리투그스는 재빨리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쿠웅!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물러나는 도리투그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공격을 한 괴한은 도리투그스도 아는 자였다.
“최현석?”
한때 헤미스의 밑에서 굴러다니던 인간.
얼마 전, 마족
대회의 때도 나타나서 훼방을 놓은 놈이다.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거냐.”“딱 보면 몰라? 너 처리하려고 온 거잖아.”
최현석이 건들거리며 말했다.
그 대답에 도리투그스는 실소했다.
“크큭… 큭…”
작게 새어 나오던 웃음은 이내 폭발하듯 터진다.
“크하하하하!”
그의 웃음과 함께 강대한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우습구나. 너무 우스워! 시드리엘. 명색이 마왕이라는 자가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게다가 뭐? 나를 처리해? 하하하! 올해 들은 농담 중 가장 재미있군!”
도리투그스가 양팔을 활짝 펼쳤다.
“나는 제1군단장 도리투그스다. 감히 인간 혼자서 나를 상대하겠다니. 자신감 하나는 인정해주마. 아니, 이쯤 되면 자신감이 아니라 만용이라 봐야겠군.”“뭐라는 거야. 내가 언제 혼자서 상대한대?”
“음…?”
최현석이 씨익 웃으며 마나를 쏘아 올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도리투그스의 얼굴이 단숨에 사색이 됐다.
“네놈 설마…!?”
“당연히 친구를 잔뜩 불렀지. 어디 제1군단장님께서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고.”“이 비겁한 놈들이!”
도리투그스는 재빨리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상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
자신은 처음부터 입을 벌리는 마수의 아가리로 들어간 것이다.
이제라도 도망쳐야 한다.
‘역장!?’
하지만, 공간 이동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적이 역장을 펼쳐 막아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지면이 빛나며, 미리 준비된 마법진이 발동됐다.
우우우웅-!
일대를 둘러싸는 거대한 결계.
도리투그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완전히 틀어막은 것이다.
“제길!”
도리투그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최현석을 노려봤다.
주변을 둘러싼 마력이 최현석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일종의 강화 마법인가.’
한두 개가 아니다.
수십 개의 강화 마법이 중첩돼서 최현석에게 스며들었다.
저건 굉장히 위험한, 자칫하면 몸이 터져나갈지도 모르는 방법.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굉장히 여유롭게 마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이런다고 네놈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아까는 여유만만하더니.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됐나 봐?”“닥쳐라! 네놈에게 격의 차이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도리투그스가 마기를 끌어올렸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건 정면 돌파뿐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긴 하나, 자신이 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강화 마법을 중첩해서 받았다 한들 놈은 한낱 인간.
자신은 마족의 정점에 선 존재다.
“나는 날 때부터 포식자다. 인간인 너는 그저 먹잇감에 불과하지. 그 차이를 알려주마!”“떠벌떠벌 말 존나 많네. 덤비기나 해.”
최현석이 손가락을 까딱이고.
분노한 도리투그스가 강하게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
최현석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드라센 제국의 올라벤 그리미어는 하나의 전제 조건을 내걸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소. 만약 최현석 경이 패배한다면 우리는 곧바로 물러날 것이오.”
“그렇게 하죠.”
이번 일에 드라센 제국은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
마법 병단은 어디까지나 보조의 역할을 할 것이며, 실질적인 전투는 최현석 혼자서 해야 한다.
최현석은 흔쾌히 그 조건을 승낙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비록 보조라고는 하나 드라센 제국 마법 병단이 어떤 힘을 지녔는지 알고 있다.
그들이 돕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죽어라!”
하늘로 날아오른 도리투그스.
그가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사방에서 속박 마법이 날아들었다.
“이놈들이…!”
도리투그스는 검을 비틀어 날아오는 마법을 벨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한 방.”
그사이 다가온 최현석이 주먹을 뻗어왔다.
자세가 흩뜨려져 있던 도리투그스는 다급히 팔을 들어서 막아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퍼지고.
도리투그스가 물러난다.
둘의 사이가 멀어지기 무섭게 또다시 사방에서 속박 마법이 날아들었다.
“으아아아!”
도리투그스가 마기를 끌어올리며 투기를 사용했다.
게드리컨 멸실 검술
제3형 – 대군을 멸하는 검
검기가 파도치며 사방으로 짓쳐 든다.
날아오는 마법은 물론이고.
최현석이 있던 자리까지 검기의 파도가 휩쓸었다.
그 위력은 단숨에 지형을 바꿔버릴 만한 수준이었다.
명색이 군단장인 만큼 압도적인 힘이다.
‘막을 수밖에 없겠어.’
피하기에는 공격 범위가 너무 넓다.
최현석은 방어 투기를 사용했다.
노빌레이스
제6형 – 신성왕권
보라색 마나가 펼쳐지며 날아오는 검기의 파도를 집어삼킨다.
동시에 최현석이 앞으로 치고 달려 나갔다.
도리투그스는 검을 휘두르며 대응했으나, 최현석은 예상했다는 듯 손쉽게 피하고는 손을 뻗었다.
손바닥이 도리투그스의 가슴에 닿고.
이내 보라색 섬광이 터졌다.
노빌레이스
제8형 – 역적의 죽음
침투한 마나가 도리투그스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예상치 못한 공격 방식에 도리투그스는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커헉…!”
단순히 주먹을 뻗어 공격했다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리투그스의 강인한 마기는 어떤 공격이든 막아냈을 테니까.
하지만, 최현석은 자연스럽게 마나를 흘려보내 내부에서 폭발하는 방식으로 확실하게 타격을 주었다.
‘다음에 사용할 때는 재미를 보기 힘들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이 투기는 알고 있으면 대응이 쉬운 기술이다.
그래서 수준이 높은 적에게는 한 번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 한 번이면 충분했다.
계속해서 각혈을 토해내는 걸로 보아 도리투그스는 큰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네놈…!”
도리투그스는 분노할 새도 없었다.
최현석과 거리가 멀어지는 순간.
또다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속박 마법이 날아들었다.
검으로 마법을 베어냈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아 몇 개의 마법에 적중되고 말았다.
“이까짓 마법…!”
몸이 물에 젖은 것처럼 무겁다.
누군가 팔다리를 붙들어 잡고 놓아주지 않는 느낌.
도리투그스는 재빨리 마기를 방출해 마법을 떨쳐냈다.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온 몸.
그는 자세를 바로잡고 전투를 이어가려 했으나.
이미 최현석은 그 앞에 도달해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노빌레이스
제5형 – 왕위 찬탈
바로 옆에서 날아드는 돌려차기.
이번에는 반응이 늦어 막지 못했다.
도리투그스의 관자놀이에 정확하게 발등이 꽂혔다.
콰직! 콰직! 콰직! 콰아아아아-!
날아간 도리투그스는 거대한 나무를 몇 개나 박살 낸 후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
“허억…! 헉…!”
도저히 공격할 타이밍이 나오지 않는다.
도리투그스는 생각한다.
주변에서 속박 마법을 날리는 마법사.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놈들부터 처리해야 한다.
“모조리 죽여주지!”
도리투그스가 마기를 있는 대로 뽑아냈다.
일대를 모조리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이렇게 대규모 마법을 사용하면 후유증이 크지만 어쩔 수 없다.
“누가 사용하게 해준대?”
어느새 다가온 최현석이 투기를 사용했다.
노빌레이스
제10형 – 절대적 군세
현재까지 나온 노빌레이스의 마지막 형.
보통 한두 가지 동작으로 이뤄진 형과 달리 제10형은 수십 개의 연계 동작이다.
콰직- 쾅! 콰앙!
주먹과 발이 매섭게 날아든다.
연계가 진행될수록 최현석은 보라색 잔상을 늘어뜨리며 점차 가속했다.
덕분에 마법이 취소된 도리투그스는 역류하는 마기를 억누르며 수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꽈앙! 쾅-!
점차 강해지는 최현석의 공격.
도리투그스는 자신이 한계에 달했음을 깨달았다.
계속해서 공격을 막고 있다 생각했지만, 아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두 팔을 늘어뜨린 채로 무방비하게 얻어맞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정신이 점차 아득해져 갔다.
‘이렇게 진다고…?’
분명 최현석은 강하다.
하지만, 자신이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대일로 승부를 봤다면.
하다못해 만전의 상태에서 싸웠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결과는 절대 납득할 수 없다.
“후우…”
어느새 최현석의 투기가 끝나고.
피투성이가 된 도리투그스가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마왕이 될…”
최현석은 굳이 뒷말을 듣지 않았다.
“그 꿈은 다음 생에 이루라고.”
여지없이 주먹이 꽂히고.
더는 막을 힘이 없던 도리투그스의 머리가 무참히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