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3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36화(236/273)
도리투그스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벨업 알람이 정신없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몇 번 울리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는 알람.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했던 최현석은 잽싸게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전설적인 용사
▫레벨 : 1249
·근력 : 416
·민첩 : 416
·체력 : 416
·마나 : 522
·카리스마 : 133
·투지 : 127
·보너스 포인트 : 53
‘53레벨이나 올랐다고…?’
1,249레벨.
도리투그스와 싸우기 직전에 1,196레벨이었으니, 무려 53레벨이 오른 것이다.
한 번의 싸움으로 오른 레벨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높았다.
‘아무리 도리투그스가 강하다지만, 너무 많이 오르는데… 마왕을 죽이고 칭호가 바뀌어서 그런가.’
박현아의 말에 따르면 레벨 1,000이 넘은 이후에는 경험치 획득량이 급감한다.
그녀는 1레벨에서 1,000레벨이 되는 것보다 1,000레벨에서 1,500레벨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이 2배는 더 걸렸다고 했다.
그런데 최현석은 1,000레벨이 된 이후로도 정체 구간 없이 계속해서 빠르게 레벨이 오르고 있다.
여기에 관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설급의 강자들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인 것.
다른 하나는 마왕을 처치하고 얻은 ‘전설적인 용사’ 칭호다.
라헬의 말에 따르면 역대 용사 중 ‘전설적인 용사’ 칭호를 얻은 건 최현석이 유일하다.
마왕을 처치한 게 처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레벨이 쭉쭉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니까. 레벨업도 소홀히 하면 안 되겠어.’
마나를 다루고 능력이나 투기를 개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무슨 기술을 쓰든 속 빈 강정일 뿐이다.
사실 성장은 거의 끝났다는 생각에 반쯤 내려놓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레벨업에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사님.”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느라 바쁜 와중에 라헬이 말을 걸어왔다.
최현석은 무시하려 했으나, 라헬의 끈질김에 항복했다.
“용사니임!”
“왜?”
“저기 좀 보세요.”
라헬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시선을 옮기자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시드리엘이 있었다.
최현석은 떨떠름한 얼굴로 시드리엘을 살폈다.
“뭐야…? 무슨 일 있나?”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고개를 처박고 있는 시드리엘.
명색이 마왕인데, 지나치게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다.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분위기에 전염될 것 같았다.
“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어?”“용사님이 도토리 잡고 난 후로 계속 저 상태예요.”
“왜?”
“그거야 뻔하죠! 마왕인 자기는 아주 발렸는데, 용사님이 뚝딱하고 처리하니까 자괴감에 빠진 거죠.”
“아…”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2주간의 시간이라 하지만, 시드리엘은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 고생을 했는데, 결국 승패는 바뀌지 않았으니까. 상심에 빠질 만도 하지.”
최현석은 시드리엘에게 다가갔다.
내버려 두기보다는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던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시드리엘.”
“…”
불러도 대답이 없는 시드리엘.
최현석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야. 시드리엘.”
“…”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그때 시드리엘이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
자세히 보니 눈물 자국도 보인다.
“너… 우냐…?”
“나, 나는… 나는 마왕인데…!”
시드리엘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잔뜩 구겨진 찐빵처럼 생긴 얼굴은 툭 건들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최현석은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그래. 네가 마왕이지.”“그런데… 그런데 왜…!”“아, 알겠으니까 잠깐만! 왜 그래!? 우리가 이겼잖아. 그렇지?”
“나는… 나는!!!”
***
2주간의 특별 훈련.
시드리엘은 정말 노력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냐.
최현석의 ‘구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했다.
훈련 시작 전.
최현석은 말했다.
“너는 독기가 너무 부족해. 마왕 주제에 그런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으니까 약한 거 아냐.”
“그, 그런가…?”
“내가 네 정신을 철저하게 무장시켜 주겠어.”
정신을 무장시킨다.
그걸 핑계로 최현석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시드리엘을 때렸다.
훈련을 할 때도 때렸고.
밥을 먹을 때도 때렸고.
잠을 잘 때도 때렸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때렸다.
쓸데없이 신체 내구도와 회복 능력이 좋았던 탓에, 고통은 더욱 가중됐다.
최현석이 전력으로 후려쳐도 조금 있으면 멀쩡해졌으니까.
최현석은 그냥 샌드백을 때리듯이 계속 때렸다.
“이번엔 이렇게 투기를 써볼까. 아니야. 여기선 이런 식으로 하는 게.”“지, 지금 나한테 투기 연습을 하는 건가!?”“왜? 무슨 문제 있어?”
한번은 최현석이 새로운 투기를 연습한다며 때리려 했다.
당연히 시드리엘은 반발했다.
“나는 마왕이다!”
“그래서 뭐?”
“으응…?”
“내가 무슨 자선 사업가야? 2주 동안 네 훈련 봐주는데 나도 얻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렇지?”
“응…”
“그럼 네가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겸사겸사 너도 훈련하고 얼마나 좋아?”
“그런 건가…?”
“그런 거지.”
그날.
시드리엘은 다섯 번이나 기절했다.
아무리 그녀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정통으로 투기를 맞았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최현석은 자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하게 그녀를 때렸다.
“흐음, 역시 맞다 보면 계속 맷집이 느는구나.”
고통은 갈수록 심해져만 간다.
더 열 받는 것은 옆에서 시도 때도 없이 깐족거리는 요정이다.
“끼히힛! 용사님. 이 마왕 맞을 때마다 신기한 소리를 내요!”“마왕이 이렇게 두들겨 맞다니. 완전 웃겨요! 고블린이랑 오크도 이것보단 나을 듯!”“으음, 다음에는 그라운드 기술을 써보자구요! 이런 식으로! 이렇게! 요렇게!”
최현석은 죽을 때까지 때리고 싶었지만, 요정은 그냥 죽이고 싶었다.
24시간 반복되는 구타, 핍박, 조롱.
극한의 환경 속에서 시드리엘은 변해갔다.
최현석이 원하던 대로 독해졌고.
더 강해졌다.
비열한 수도 서슴지 않게 됐다.
최현석을 이기고 싶었으니까!
요정을 죽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드리엘은 처참히 무너졌다.
그에 반해 최현석은 무슨 식후 산책을 하듯이 가볍게 도리투그스를 무찔렀다.
시드리엘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복수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흐아아아앙!”
결국, 시드리엘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맞으면서 참고 견뎌온 서러움이 폭발하듯 몰려왔다.
“어어, 시드리엘…?”“용사님용사님! 마왕이 울보가 됐어요! 완전 웃기지 않아요!? 끼히힛!”“흐아아아아아아아앙-!”
“라헬! 입 닥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시드리엘.
그걸 보고 비웃는 라헬.
시드리엘을 달래며 라헬을 걷어차는 최현석.
마왕과 전담 요정. 그리고 전설적인 용사가 함께하는 흔한 풍경이었다.
***
시드리엘은 한참 후에나 진정했다.
사실 진정했다기보다는 제국의 올라벤 그리미어 공작이 나타나는 바람에 억지로 울음을 그쳤다는 게 맞겠다.
아무리 서러워도 낯선 인간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으니까.
“고생하셨소. 최현석 경!”
올라벤 그리미어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최현석 또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굳이 감사할 필요는 없소. 서로의 이해득실이 맞았으니 한 일이지. 우리 모두가 승리자 아니겠소! 하하!”“그렇죠. 하하하하!”
하하호호 즐겁게 웃던 최현석은 전투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번에도 느낀 건데, 제국의 마법 병단. 대단하네요. 마왕군 제1군단장을 상대로 이런 힘을 내다니.”
최현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게 준비된 마법사의 힘이라는 걸까.
압도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난 힘을 지닌 도리투그스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은 건 분명 마법 병단 덕분이었다.
하지만, 올라벤 그리미어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마법 병단이 대단하다기보다 최현석 경이 뛰어난 거겠지.”“저 혼자였으면 이런 결과는 못 냈을 겁니다.”“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오.”
올라벤 그리미어가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
“마법 병단은 대체할 수 있지만, 최현석 경은 대체할 수 없지. 솔직히 최현석 경이 처음 강화 마법을 받아들였을 때. 나는 눈을 의심했소.”“강화 마법을 거는 게 힘들지. 받는 건 그냥 받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기초적인 단계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그 누구도 최현석 경처럼 고위 강화 마법을 중첩해서 받을 수는 없소.”
강화 마법을 받는 데도 엄연히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그 한계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최현석은 일반적인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실제로 올라벤 그리미어는 강화 마법의 한계에 관한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장 많은 강화 마법을 받은 전설조차 오늘 최현석 경이 받은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그 당시 전설은 고통에 몸부림쳤으나, 최현석은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다.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올라벤 그리미어의 눈에 기이한 광기가 일렁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제국 연구소에 보내고 싶소만. 그래선 안 되겠지. 하하하하!”“에이~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시죠. 하하하!”
“나는 진심이오!”
“…”
최현석은 괜히 소름이 끼쳐서 침을 꿀꺽 삼켰다.
뛰어나고 명석한 두뇌를 지녔지만, 어딘가 나사가 풀려 있는 남자.
대륙에서 손꼽히는 힘과 권력을 지닌 이 공작은 정말로 그런 일을 벌일 것만 같았다.
“크흠흠! 그런데 말이오.”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올라벤 그리미어가 헛기침했다.
그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시드리엘을 바라봤다.
“여기 마왕께서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시던데. 괜찮은 거요?”
갑자기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오자 시드리엘이 주춤하며 물러났다.
“사, 상태가 좋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아까 보니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계시던데.”
올라벤 그리미어의 말이 이어질수록 시드리엘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보고 있었나…?”
“그렇소.”
“언제부터…?”
“처음부터.”
“흐윽…!”
시드리엘의 얼굴이 다시 찌그러진 찐빵처럼 변했다.
올라벤 그리미어가 그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을 하며 변명했다.
“미, 미안하오. 부하들과 함께 바로 오려 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잠시 지켜봤소.”
정리하면 시드리엘이 우는 걸 부하들과 함께 구경했다는 뜻이다.
계속 눈물을 참던 시드리엘이 돌연 돌아서다니 달리기 시작했다.
“야! 시드리엘 어디가!”
“흐아아앙-!”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
최현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아 보였다.
“음, 내가 실수한 건가?”
올라벤 그리미어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 같진 않고 진심으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신경 쓰지 마십쇼. 저러다 말 테니까.”
어쨌거나 목표는 완수했다.
이제 제국의 마법 병단이 이곳의 흔적을 모두 지울 것이다.
그럼 시드리엘은 정정당당하게 도리투그스를 이긴 게 된다.
마왕의 자리가 더욱더 굳건하게 될 테니 결국은 웃게 되리라.
“인간의 도움을 받은 게 당장은 서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마워할 겁니다.”
“그렇군.”
진짜 문제가 뭔지 파악하지 못하는 건 최현석도 마찬가지였다.
올라벤 그리미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거처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최현석 경은 바로 마리어트 왕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오?”“아직 모르겠네요. 딱히 할 건 없긴 한데… 당장 가야 하나?”
순간 올라벤 그리미어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이상하군. 지금 최현석 경의 동료들은 바쁘다고 알고 있소만. 아니었소?”“동료들이 바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신성 제국 가트렌이 거의 총력을 기울여서 싸우고 있지 않소. 그래서 우리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소만.”
“예…?”
최현석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끔뻑였다.
올라벤 그리미어의 이마에 주름이 한층 더 깊어진다.
“설마 모르고 계셨소?”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최현석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 자세히 좀 해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