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37)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37화(237/273)
대륙 북부, 오드리아 연합 인근에는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
아이실리우스.
누구도 찾지 않는 버려진 사막이다.
뜨거운 모래바람만이 가득한 이곳에 사라 던피가 찾아왔다.
모래 언덕 꼭대기에 선 그녀가 메마른 사막을 내려다봤다.
“썩 괜찮은 풍경이구나.”
어딜 봐도 모래뿐인 황량한 사막이었으나, 그녀의 눈에는 달리 보인다.
그녀가 세운 마법 국가 발링턴.
이곳에 꽃 피웠던 찬란한 문명이 그림처럼 모래 위로 그려졌다.
“취미가 독특하네. 이게 괜찮은 풍경이라니.”
고혹적인 목소리의 여성이 딴지를 걸어왔다.
사라 던피는 돌아보지 않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어디를 봐도 사막뿐인걸?”“하하하. 그래. 이건 과거의 망령에게만 보이는 풍경이겠구나.”“과거의 망령이라…”
고혹적인 목소리의 주인공, 헤미스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과거의 망령이란 단어가 어째서인지 그녀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그대에게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사라 던피가 돌아서며 말했다.
신성 제국 가트렌과 벌인 최후의 결전.
사라 던피는 그 자리에서 죽을 생각이었다.
애초에 살아갈 희망도 보이지 않았고.
“왕이시여… 불충한 신하가 먼저 떠나는 걸 용서하십시오…”“걱정할 필요 없다. 나 또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내세에서 다시 만나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최고 전사 리암이 먼저 흙으로 돌아갔다.
마기.
특히나 언데드의 마기는 신성력에 너무 취약해서 어쩔 수 없었다.
사라 던피 또한 체념하고 최후를 맞이하려던 순간.
전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응~ 재미있어 보이네?”
돌연 나타난 헤미스.
당연히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괴, 괴식가가 어떻게…!?”“괴식가는 죽었다고 했잖아! 아사헬 발드 경이 목숨을 걸고 해치운 게 아니었냐고!?”“성녀! 뭐라고 말 좀 해보시오!”
하늘을 가득 채운 마기.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던 틈을 타 헤미스가 움직였다.
“오랜만에 배를 채워볼까?”쩌어어어어억-!
거대한 균열이 단숨에 수천의 병사를 집어삼킨다.
믿지 못할 참상에 모두가 석상처럼 굳었다.
그사이 헤미스는 사라 던피를 데리고 도망쳤다.
처음부터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리 쉽게 당하지 않았겠지만, 혼란에 빠져 있던 가트렌은 결국 둘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헤미스는 사라 던피를 데리고 그녀가 원했던, 아이실리우스 사막으로 이동했다.
“딱히 나한테 고마울 게 있니? 어차피 죽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보이던데.”
헤미스가 말했다.
속내를 들켜 민망해진 사라 던피가 볼을 긁적였다.
“그럼에도 고마운 건 사실이다. 아직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거든. 그대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이다.”“흐응~ 그 꼴로 뭔가를 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사라 던피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헤미스의 말처럼 뭔가 큰일을 할 만한 상태는 절대 아니었다.
서서히 붕괴하는 육체.
피부가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재로 변하며 흩날렸다.
“이 정도면 아슬하게 버틸 수 있을 거다.”“어떻게 확신하지?”
“느낄 수 있다. 머지않아 최현석이 이곳에 올 거야.”
사라 던피가 모래 언덕을 내려왔다.
그리곤 미리 봐 둔 암석 동굴로 향했다.
“그가 올 때까지 준비하려면 빠듯하겠군.”
“무슨 준비?”
“내 마기를 최현석에게 넘겨줄 생각이다.”
“호오~”
헤미스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기를 넘긴다.
혹은 계승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최현석이 인간이라곤 하나, 마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인데.’
헤미스가 새하얀 손으로 턱을 쓸었다.
자신의 마기를 남에게 주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애초에 개인이 담을 수 있는 마기의 그릇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리하게 늘리면 육체는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아주 조금씩, 장기간에 걸쳐 전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마저도 효율이 높지 않아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게 마기 계승이다.
‘이 언데드는 시간이 없어. 이대로면 길어야 사흘. 그 안에 육체가 완전히 소멸할 거야.’
지금 당장 마기를 전수해도 사흘이다.
준비 과정과 최현석이 오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실제로 전달에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하루 이틀 정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마기를 전수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마나로 체질이 바뀐 최현석의 신체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 부작용만 생길 수도 있었다.
‘이걸 모를 것 같지는 않고…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마법적 지식에 해박한 헤미스조차 사라 던피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재미있네.’
헤미스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한때 ‘마법의 어머니’라 불렸던 이 언데드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궁금했다.
“구경해도 되겠니?”
“물론이다. 그대는 나의 은인이니.”
사라 던피는 동굴 안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움직일 때마다 육체가 붕괴하며 조금씩 재가 흩날렸으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마법진을 그리는 데 모든 집중력을 쏟아부었다.
헤미스 또한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에 서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작업을 지켜봤다.
“하나 궁금한 게 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돌연, 사라 던피가 입을 열었다.
“그대의 목적은 무엇인가?”
“내 목적은 왜?”
“처음 그대를 본 순간 흥미가 동해서 이런저런 조사를 했다. 다행히 기록이 제법 있더군.”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건지 사라 던피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녀가 헤미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 고위 마족은 500년 전후를 산다. 간혹 1,000년 가까이 사는 경우도 있지만, 예외적이지.”
“맞아.”
“그런데 그대가 얼마나 긴 시간을 살았는지 누구도 모르더구나. 인간도. 마족도.”“그럴 수밖에. 나도 내가 얼마나 살았는지 잊었으니까.”“그렇군… 여기서 더 이상한 점은 최소 1,000년 이상 살았다고 추정되는 그대가 여전히 강성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아무리 조사하고 생각해도 알 수 없더군.”
어째서 천 년 이상 살아왔으면서 노쇠하지 않는가.
모든 생명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 빗나가는 것인가.
헤미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진실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이것과 관련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는 모른다.
사라 던피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더군. 그대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 걸까. 목적이 무엇이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그대의 행동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너무나 많았다.”
사라 던피가 덤덤히 헤미스를 바라본다.
헤미스는 웃고 있지 않았다.
그녀 또한 차분한 눈동자로 사라 던피를 마주 봤다.
“글쎄…”
한동안 닫혀 있던 헤미스의 입술이 떨어졌다.
“나도 잘 모르겠네~ 분명 뭔가 목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서서히 헤미스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네 말대로 너무 오래 살아서 잊어버렸나 봐.”
“그런가.”
사라 던피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이런 걸 보면 너무 오래 사는 게 좋은 건 아니야.”“나 또한 공감한다.”
인간으로 400년이 넘는, 거의 500년에 달하는 시간을 견딘 사라 던피.
마족으로 1,0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살아온 헤미스.
둘 다 절대자의 위치에 있었으며 공포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길을 걸어왔기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둘은 서로에게서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후우, 다시 시작해야겠어. 마무리하려면 하루 정도는 더 걸릴 테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사라 던피가 다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하고.
헤미스는 한쪽에 서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말없이 지켜봤다.
***
최현석은 곧장 마리어트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마중 나와 있던 아벨슨을 향해 최현석은 다짜고짜 소리쳤다.
“아벨슨 씨! 어떻게 된 겁니까!?”
주어가 빠진 질문이지만, 이해하는 데는 문제 없었다.
사라 던피를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아벨슨은 고개를 떨궜다.
“미안해요… 모두 내 잘못이에요…”“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설명해 주십쇼!”
올라벤 그리미어에게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들었지만, 그도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그저 가트렌 제국이 강력한 언데드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정도.
정황상 그 언데드는 사라 던피가 분명했고, 이는 아벨슨의 반응으로 확실해졌다.
“처음 시작은 데우시스 교에서 조사대를 파견하면서부터예요…”
아벨슨은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마리어트 왕국과 언데드가 결탁했다는 의혹으로 데우시스 교에서 조사대를 파견했다는 것.
그 소식을 들은 사라 던피가 단독 행동을 결심했고.
가트렌을 습격해 적들을 유인했다는 것까지.
덕분에 마리어트 왕국은 안전해졌으나, 사라 던피는 2주 내내 지독한 추격전을 벌여야 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최현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왜 저한테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미안해요…”
‘사라 던피가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뒤에 숨은 덕에 마리어트 왕국이 살아남았기에.
그 사실이 죄스럽고 미안했던 아벨슨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최현석은 대략적인 상황을 눈치챘다.
“누님은 뭐라 하셨습니까?”“처음 소식을 듣고는… 화를 내시곤 왕궁을 떠나셨어요. 그 뒤로는 저도 모르고요.”
설상가상으로 박현아 또한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
최현석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라 던피와 박현아 둘 다 사라진 상황.
사라 던피는 가트렌에게 실시간으로 쫓기는 중이고, 박현아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전투가 불가능하다.
‘빡쳐서 무작정 들이받은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그럴 리는 없지만, 열이 뻗친 박현아가 가트렌에 쳐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아냐. 사라 씨부터 생각하자.’
최현석은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은 가트렌에 쫓기는 사라 던피를 구하는 게 먼저다.
“혹시 사라 씨에 관해서 들은 게 있습니까? 전투 상황이라든지. 거처라든지.”“가트렌에서 움직이는 병력이 계속 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알려진 것만 해도 성녀와 전설 셋, 성기사와 사제 일만. 정예 병사 오만 정도를 동원했다고…”“사라 씨를 잡겠다고 그만한 병력이 움직였다는 말입니까…?”
육만이 넘는 정예 병력.
개인을 잡기 위해서 움직였다기엔 지나치게 규모가 거대했다.
“처음부터 이만한 수가 움직인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트렌에서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아벨슨의 예상은 정확했다.
애초에 사라 던피에 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가트렌은 실제로 그녀의 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쫓아도 잡을 수 없는 존재.
그들은 점차 괴식가의 악몽이 떠올리기 시작했다.
과거 괴식가 하나에게 인류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던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기회가 왔을 때 뿌리 뽑기 위해 가트렌은 근방의 병력을 모조리 동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이틀 전. 엄청난 전투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요?”
“전투 막바지에 갑자기 헤미스 씨가 나타나서 사라 씨를 데리고 사라졌다고 해요…”“예? 헤미스가 나타났다고요?”“소문이라 정확하진 않아요. 가트렌 내부에서도 쉬쉬하는 분위기고.”
“으음…”
최현석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일단 사라 씨가 살아있다는 거니까… 그거면 됐어.’
헤미스가 어째서 나타난 건진 몰라도, 그녀가 도와줬다면 다행이다.
그 괴물 같은 무력을 생각하면 가트렌의 포위망을 뚫고 어떻게든 도망쳤으리라.
“그래서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 겁니까?”“네. 저도 수소문해 봤지만 전혀… 가트렌에서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끄응…”
이 넓은 대륙에서 어떻게 사라 던피를 찾아야 할까.
‘통신구라도 작동하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 되고.’
최현석에게는 과거 사라 던피가 주었던 통신구가 있다.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연락해 봤지만, 상대편에서 연락을 받지 않았다.
사라 던피가 통신에 응답하지 않거나, 혹은 통신구가 부서졌다는 뜻이다.
‘어떡하지…”
최현석은 아쉬운 마음에 사라 던피가 주었던 통신구를 쓰다듬었다.
“최현석 씨. 그건…?”“사라 씨가 주신 겁니다. 계속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답이 없어서…”“한 번만 더 해보죠.”“벌써 수십 번은 했습니다.”“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한 번만 더 해봐요.”
“… 알겠습니다.”
최현석은 마지못해 통신구를 활성화했다.
우웅…!
진동하며 밝은 빛을 뿜어내는 통신구.
이 상태에서 연락을 받으면 진동이 멈추고 빛이 약해진다.
우웅…! 우웅…!
최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되는….”
-최현석. 일은 잘 해결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