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3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38화(238/273)
뜨거운 모래가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이실리우스 사막에 도착한 최현석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여기 어딘가에 사라 씨가…”
사라 던피와 대화를 나눈 이후.
최현석은 곧바로 아이실리우스 사막으로 향했다.
사라 던피가 이곳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왜 연락을 안 받았습니까!? 아니, 그보다 괜찮은 겁니까!? 가트렌은? 추격은 뿌리친 겁니까?”-너무 조급하구나. 마음을 가라앉히거라.
통신이 연결된 직후.
최현석은 다그치듯 질문을 쏟아냈다.
사라 던피는 모든 질문에 차근차근 답해주었다.
-통신구가, 부서진, 나중에 알았다. 이제 막 고친 참이지.
-나는, 괜찮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추격은 뿌리쳤다. 헤미스가 도와, 언제 다시 발각될지는 모른다.
통신구가 한 차례 부서진 탓인지, 수신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문제없었다.
-그래서 말이다만, 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
“어디 계십니까? 바로 가겠습니다.”-우리, 처음 만났던 장소. 그곳에서 기다리겠….
기다리겠다는 말조차 끝맺지 못하고, 통신이 끊어졌다.
이후 최현석은 몇 번이고 다시 연결을 시도했으나, 다시 통신이 연결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아이실리우스 사막으로 찾아온 것이다.
“처음 만났던 장소는 이 사막이니까. 분명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사라 던피와의 첫 만남.
솔직히 말하면,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와는 적으로 만났고.
당시 최현석과 함께 싸웠던 박현아는 정말 죽을 뻔했으니까.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묘하긴 했지.’
최현석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떠올렸다.
사막에서 언데드와 벌인 게릴라전.
마침내 치러진 최후의 전투.
마지막 전투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치열했다.
박현아가 엄청난 마법으로 언데드 대군을 물리쳤고.
사투 끝에 최고 전사 리암만 남겨둔 상황에서.
돌연 사라 던피가 나타나 휴전을 제안해 왔다.
“내가 휴전을 제안하는 건, 왕국의 최고 전사 리암을 구하기 위한 것. 절대 너희에게 패배할 것이 두려워 그런 게 아니다.”
당시에는 허세라고 생각했다.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최현석도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으니까.
최현석은 눈을 뜨고 선 채로 기절했을 만큼, 자신의 상태를 숨기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사라 던피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야. 굳이 휴전을 제안할 거 없이 나랑 현아 누님을 죽일 수 있었을 거야.’
최현석뿐만 아니라, 당시 일행 모두가 빈사 상태였다.
그리고 사라 던피는 그 사실을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 또한 그리 좋지 않았다곤 하나, 다 죽어가는 반 시체 몇을 치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으리라.
그런데도 사라 던피는 휴전을 제안해 왔다.
최고 전사 리암을 핑계로 대긴 했지만, 정말 그럴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야. 지금 이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최현석이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얼른 사라 씨를 찾아야 해.’
이 넓은 사막 어딘가에 있을 사라 던피를 찾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최현석이 속도를 높였다.
***
‘이상하다. 처음 만난 장소는 분명 여기였던 거 같은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최현석은 정말 미친 듯이 사막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사라 던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게릴라전을 한 탓에 워낙 많은 장소에서 맞닥뜨렸던지라 정확한 장소를 알기 어려웠다.
심지어 사이사이 박현아의 공간 이동 마법으로 장거리 이동을 했던 탓에 더 혼란이 가중됐다.
결국, 최현석은 오랫동안 드넓은 사막을 헤매어야만 했다.
‘어디야?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돌아다녀도 같은 장소가 반복되는 느낌이다.
라헬에게 물어도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들려올 뿐.
점차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사라 씨는 분명 처음 만났던 곳이라 했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
고민을 거듭한 끝에.
최현석은 마침내 한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일 수밖에 없어.’
수많은 격전지가 있지만, 사라 던피와 최현석이 만났다고 할 만한 장소는 한 곳뿐이다.
‘마지막 결전을 벌였던 이곳.’
마지막 결전의 날.
최현석은 처음으로 사라 던피를 코앞에서 마주했다.
짧지만, 대화도 나누었다.
그러니 사라 던피는 이 근방에 있는 게 분명했다.
“어디 있을까…”
높은 암벽에 올라선 최현석이 주변을 살폈다.
곳곳에 남은 전투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곳은 최현석이 가장 먼저 탐색한 장소 중 하나였다.
그때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서 금세 떠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뿐이라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후우…”
최현석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주 미세한 마기라도 감지하기 위해서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뚝- 뚝-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턱 끝에서 떨어진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끝에 최현석이 눈을 떴다.
“역시 아무것도 없어…”
마기를 탐지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이곳에 맞을 터인데.
어째서 사라 던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걸까.
답답함에 최현석이 주먹을 꽉 쥐던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도 찾아왔네.”
돌아서자 검은 드레스를 입은 헤미스가 보였다.
그녀가 답지 않게 담담한 표정으로 최현석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늦었네.”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버려진 사막.
공간 이동 게이트는 물론이고, 공간 좌표를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직접 두 다리로 달려서 왔다.
도착한 이후에도 사라 던피를 찾기 위해 끝없이 사막을 쏘다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제법 많이 흘렀을 것이다.
단순히 달리기만 했는데도 마나가 거의 바닥나버렸으니까.
“저기 끝에. 바위산 아래에 무너진 부분. 보이니?”
“예.”
“환영 마법이야. 가까이 가면 동굴이 있어.”
“아, 감사합니다!”
환영 마법으로 감춰져 있었기에 찾지 못했다.
어째서 감지하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서 사라 던피를 만나야 한다.
곧장 달려가려던 그 순간.
뒤에서 웃음기 섞인 헤미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가는 게 좋을 거야. 더 늦었다간 인사도 못 할 테니까.”“예? 그게 무슨…?”
최현석이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인사도 못 할 거라니.
하지만, 헤미스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밀려오는 불길함에 최현석은 서둘러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
“이 마기는…”
동굴로 들어선 최현석은 깜짝 놀랐다.
동굴 전체가 진득한 마기로 가득했다.
분명 입구에 왔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상상을 초월하는 마기가 밀려왔다.
최현석이 답답함을 느낄 정도니, 어지간한 사람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해질 것이다.
“사라 씨! 어디 계십니까!?”
최현석이 동굴을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안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마법진과 진득한 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감으로 느껴보려 해도 온통 마기뿐이라 탐색 자체가 불가능했다.
답답함에 발걸음만 빨라지던 그때.
“드디어 왔구나.”
사라 던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현석은 곧장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갔다.
“사라 씨!”
마침내 사라 던피와 마주한 최현석.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모습은…!”
사라 던피의 몸이 부서지고 있다.
아주 잘게 부서져 재처럼 흩날리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본 형체는 멀쩡했지만, 최현석은 알고 있다.
그녀의 육체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보이는 것은 그저 환영으로 만든 모습일 뿐이다.
이미 육체 대부분이 재로 흩어져 서 있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최현석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어떻게 된 겁니까.”“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순리에 따르는 것이지.”“그냥 죽는 거지 않습니까.”
사라 던피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죽었던 몸이다.”
그녀가 팔을 들어 올렸다.
쌓여 있던 재가 한꺼번에 흩날린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라 던피는 말했다.
“그대는 이게 인간의 죽음으로 보이는가?”
최현석은 고개를 숙였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사라 던피를 살리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사라 던피는 죽는다.
아니, 소멸한다.
아마 일반적인 언데드였다면 진작 재로 변해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나마 사라 던피였기에 이렇게까지 버티는 것이리라.
“작은 선물을 준비해뒀다. 내 마기를 흡수할 수 있게 장치를 마련했지. 긴 시간 고통을 견뎌야겠지만, 그대라면 충분히 해낼 것이다.”“저는 이런 걸 바란 게 아닙니다… 도대체 왜 이런…!”
소리치던 최현석이 입을 닫았다.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라 던피가 너무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도대체 왜 혼자서 가트렌과 싸운 건지.
왜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
다그치고, 묻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웃음을 마주하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웠다. 최현석. 덕분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가는구나.”
그녀는 여전히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슬슬 시간이 됐구나. 나는 이만 가봐야겠어.”“… 마지막으로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이더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왜 저와 동료들을 살려줬습니까? 마음먹었다면 전부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사라 던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모른다고 생각했다만, 알고 있었더냐.”“사실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에 눈치챘습니다.”“흐음, 왜 살려주었냐. 그 이유는 말이다…”
갑자기 사라 던피가 최현석을 끌어안았다.
“허업!?”
당황한 최현석이 숨을 들이켜던 그때.
귓가로 사라 던피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그대가….”
아주 작은 속삭임.
최현석의 눈동자가 커지고.
이내 사라 던피의 몸이 완전히 재로 변해 흩어졌다.
“…”
최현석은 멍하니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속삭이던 목소리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흩날리는 재만이 이곳에 사라 던피가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현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라 씨도… 금발에 하얀 피부를 좋아하던 이상형이 바뀔 만큼…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
죽음 이후 천년이 훨씬 지난 시대.
사라 던피는 또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대륙을 들썩이게 했다.
가트렌은 총력을 다해 사라 던피를 수색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너무 많은 힘을 쓴 건지, 이후 가트렌은 숨 고르기를 하듯 몸을 사렸다.
마리어트 왕국에 관한 조사도 흐지부지됐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났을 때쯤엔 사라 던피라는 이름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악몽이 떠올랐다.
박현아.
한때 신의 대적자로 불렸으며, 가트렌 역사상 손꼽히는 적.
그녀가 다시 활동하며 가트렌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하아, 그 쥐새끼 같은 년. 진짜 짜증 난다니까.”
가트렌의 전설 킨리 퓨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박현아를 쫓은 지도 어느덧 3개월.
어째서인지 전보다 훨씬 강해진 박현아의 힘은 전설급이 아니면 시간을 버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준비된 전장으로 끌어들인다면 죽일 가능성이 있겠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다.
박현아는 철저하게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을 유지하며 차곡차곡 제국에 피해를 쌓아갔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워서는…”
가트렌은 박현아를 추격하는 동시에, 주요 도시를 수비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도시 전체에 방어 마법을 두르느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으나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도시가 날아갈지 몰랐으니까.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한 마법을 날려대는 탓에 전투가 시작되고 방어 마법을 사용하면 그땐 이미 늦었다.
“교황의 압박도 점점 심해지고… 이제 진짜 성과를 내긴 해야 하는데.”
현재 킨리는 추격대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힘과 지위, 영향력이 워낙 대단했기에.
교황 또한 처음에는 전권을 맡기겠다며 그녀를 신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태도가 변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대화에서 교황은 대놓고 분노를 드러냈다.
“킨리 퓨셀 경. 나는 무능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설령 교황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게 킨리와 그 동료들이다.
이미 그들을 거쳐 간 교황만 해도 10명이 넘었다.
아무리 교행이라 해도 자신을 무시한다면 화를 냈겠으나, 킨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순간적으로 교황에게서 뿜어져 나왔던 무지막지한 기세.
짧은 순간이지만 킨리는 교황의 기세에 압도됐었다.
“하아, 진짜 생각할수록 짜증 나네.”
킨리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그녀는 수백 년을 살아오며 실패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세대는 실패를 벌써 두 번이나 했다.
사라 던피와 박현아.
연달아 계속되는 실패에 킨리의 신경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그쪽이 킨리?”
그때 뒤쪽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킨리는 깜짝 놀라 돌아섰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기묘한 외모를 한 남자가 씨익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