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4)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4화(24/273)
최현석을 포함해서 사냥을 떠난 조리병 총 105명.
그중 살아 돌아온 자는 6명.
나머지 조리장 쿨칸을 포함한 99명은 모두 죽었다.
“진짜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네.”
최현석이 말했다.
오늘따라 쓰다듬고 있는 보보의 머리가 유난히 부드러웠다.
“크왕!”
“오구오구! 너도 형 다시 봐서 좋지? 응?”
보보는 대답 대신 박치기를 날렸다.
“커헉!”
가벼운 충돌임에도 마치 자동차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장난치는 건 좋은데 조금만 살살해줄래…? 부탁이다. 보보야…”
최현석이 굽신거리며 말했다.
옆에 있던 라헬이 한숨을 내쉬었다.
“용사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고 이리 와보세요.”
“갑자기 왜?”
“결투 준비해야 할 거 아니에요.”“아, 이제 진짜 시간이 없긴 하지. 그런데 여기서 무슨 준비를 해?”
이곳은 보보의 집.
딱히 이곳에서 결투 준비를 할 만한 것이 없다.
‘괜히 연습한다면서 뛰어다니는 건 좋지 않은데.’
연습한다면서 뛰다가 보보의 흥이라도 돋우면 큰일이다.
자칫하면 눈먼 몸통 박치기에 뼈가 박살이 날 수도 있다.
또 보보가 뛰어놀면 배가 꺼진다는 문제도 있다.
‘안 그래도 이제 먹을 걸 어디서 구해야 하나 고민인데 말이야.’
한동안 조리병을 새로 뽑고 정비하느라 사냥을 나가지 않을 것이라 했다.
최현석이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사냥을 갈 정도는 아니다.
즉, 새로 고기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당장은 이번에 사냥한 탈라스가 워낙 많아 괜찮지만… 이게 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최현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어디서 보보의 고기를 구해야 할지 막막했다.
“갑자기 웬 한숨이에요? 빨리 와보라니까요?”
“알겠다 그래…”
최현석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무슨 준비를 하는 건데?”“이제 용사님이 제법 강해졌잖아요?”
라헬의 물음에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레벨도 딱 200을 찍었으니까.”
▫이름 : 최현석
▫칭호 : 예비 용사
▫레벨 : 200
·근력 : 80
·민첩 : 77
·체력 : 80
·마력 : 78
·카리스마 : 27
·보너스 포인트 : 0
▫용사 포인트 : 450
▫능력 : 곡괭이질(C), 통솔(E), 요리(F)
▫스킬 : –
라헬은 전투력 측정기로 최현석을 확인했다.
[전투력 : 3548]고글 너머로 보이는 숫자는 3548.
어제 1560이던 것을 생각하면 불과 하루 만에 전투력이 2배 넘게 상승한 것이었다.
“하루 만에 말도 안 되게 강해진 건 좋지만, 문제가 있어요.”
“문제?”
“그때 본 쿠르켄. 기억나죠?”
결투 상대인 쿠르켄.
최현석은 놈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지. 대충 전투력이 6600 정도 됐던 것 같은데.”“맞아요.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전투력 따위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
“그 오크는 마력을 다룰 줄 안다고요.”
“마력?”
“네. 정확히는 마기이긴 하지만. 아무튼! 생각해보세요. 염탐하러 갔을 때 놈이 뭘 하고 있었는지.”
최현석은 잠시 오크 쿠르켄을 떠올렸다.
“아마 쇠몽둥이를 휘둘러서 바위를 때려 부수고 있었지?”
상식을 초월하는 괴력이었다.
라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정답이에요! 여기서 질문. 용사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으세요?”“으음… 힘들지 않을까?”“만약 용사님 능력치가 더 올라서 전투력이 6000을 넘기면요?”
최현석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그래도 몽둥이로 바위를 때려 부수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그냥 부수는 게 아니다.
바위를 무슨 두부처럼 박살 내는 수준이다.
지금보다 능력치가 조금 더 강해진다고 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안 될 거 같은데.”
“잘 보셨어요. 안 돼요.”
“왜 그런 거야?”
“그렇게 무지막지한 괴력은 단순히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마력을 이용해야죠. 쉽게 설명하면 쇠몽둥이에 마력을 담아서 바위를 내려친 거랄까?”
“아!”
순간 어떤 장면이 최현석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으로 탈라스를 잡았을 때.’
아직 능력치가 상승하기 전.
최현석의 힘으로는 탈라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에 최현석은 주먹으로 탈라스의 머리통을 깨부수었다.
‘그때 느낀 감각이 착각이 아니었구나.’
주먹이 따뜻해지면서 빛이 뿜어져 나왔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는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저도 모르게 마력을 사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전에 말했죠? 전투력은 단순히 신체 능력, 마력 따위를 수치화한 것에 불과하다고요.”
“그렇지.”
“그러니까 전투력이 높아도 능력을 제대로 쓸 줄 모르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거죠.”
“아아…”
최현석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마력을 쓸 줄 알아야 된다는 거지?”“맞아요. 이제 용사님의 마력도 제법 강해졌으니까. 본격적으로 운용에 대해 배워도 될 것 같아요.”“라헬 네가 알려주는 거야?”
“당연하죠!”
“그럼 이때까지 안 알려줬어?”
최현석이 의문이 담긴 눈으로 물었다.
라헬은 조금 당황했다.
“효, 효율의 문제죠! 마력이 약하면 배우는 데 오래 걸리고, 배운다고 해도 별다른 능력 상승이 없거든요!”
“그래?”
최현석은 뭔가 찜찜했지만, 굳이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대충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이제 결투가 거의 다가왔는데.”“3일. 길어도 4일이면 충분해요.”
“좋아.”
마력 운용을 3일 안에 배운다.
누가 들으면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할 것이다.
원래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해도 몇 년은 걸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최현석은 역대급 재능을 가진 용사.
애초에 레벨업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200을 달성하는 것이 훨씬 더 말이 안 됐다.
“그럼 뭐부터… 응? 라헬?”
갑자기 라헬이 사라졌다.
최현석이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때.
“최현석.”
“레이드런 님?”
소대가리 레이드런이 방문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터라 최현석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따라와라. 같이 군단장님을 뵙도록 하지.”
“예!”
최현석은 이유도 묻지 않고 레이드런을 따랐다.
‘이놈도 진짜 괴물이었지.’
레이드런이 강하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강한 줄은 몰랐지만…’
다만, 여왕 탈라스를 압도적으로 찢어 죽일 만큼 강할 줄은 몰랐을 뿐이다.
[ 전투력 : 측정 불가 ]그래서 몰래 확인한 그의 전투력은 역시나 ‘측정 불가’.
‘절대로 까불지 말자.’
최현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드런의 뒤를 따랐다.
***
레이드런이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안쪽에서 아름다운 미성이 들려온다.
하지만 최현석은 알고 있다.
저 목소리의 정체가 끔찍한 입술 괴물이라는 것을.
끼익.
문이 열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집무실 풍경이 들어왔다.
텅 빈 공간에 놓여있는 업무용 책상 하나.
군단장 헤미스는 여느 때처럼 그곳에 걸터앉아 인사를 건네 왔다.
“레이드런. 무슨 일이야? 최현석까지 데려오고.”“군단장님께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은 요청이 있어서 왔습니다.”“오호? 뭘까? 레이드런의 요청이라니.”
헤미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지금 상황은 제법 흥미로웠다.
항상 사무적이고 예를 깍듯이 갖추는 레이드런이 ‘개인적인’이라는 단어를 쓴 건 처음이었으니까.
“제가 직접 최현석을 가르쳐도 되겠습니까?”
“흐응… 이유는?”
“어제 군단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쿠르켄이라는 소대장을 만났습니다.”
레이드런은 어제 막 부대로 복귀했다.
덕분에 최현석이 결투를 하게 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걱정과 동시에 호기심이 일었다.
레이드런은는 최현석의 첫 번째 결투 상대인 오크 쿠르켄을 직접 찾아갔다.
쿠르켄을 마주한 레이드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크 쿠르켄은 소대장이지만, 사실상 부중대장에 가까운 능력을 갖춘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레이드런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최현석이 단기간에 이렇게 성장한 것은 저 또한 놀랄만한 일입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 상태로 쿠르켄을 이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쿠르켄을 보자마자 레이드런은 깨달았다.
헤미스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골랐다는 것을.
‘나는 최현석의 미래를 더 보고 싶다.’
최현석은 실로 훌륭한 인재다.
마왕군에 부족한 지휘 능력,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 속도까지 갖췄다.
근 한 달 만에 최현석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분명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최현석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급 기사 수준의 무력을 갖추고 있다.’
오랜 시간 인간과 전쟁을 해온 레이드런은 알고 있다.
한 인간이 기사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동반해야 하는지…
아무리 수준이 낮은 기사라고 해도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수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 과정을 최현석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이뤄냈다.
솔직히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최현석은 뛰어난 인재입니다. 군단장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그를 제대로 단련시켜 보고 싶습니다.”
레이드런이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힘 있게 말했다.
헤미스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흐음…”
말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최현석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전개야?’
뜬금없이 레이드런이 불러서 왔더니 교육을 해주겠단다.
‘물론, 레이드런이 가르쳐준다면 고맙긴 한데. 문제는…’
헤미스가 과연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최현석은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녀에게 최현석과의 거래는 단순히 유흥을 위해서 만들어진 놀이판.
그 놀이판에 레이드런이 끼어드는 것을 과연 허락할까?
“…”
불편한 침묵이 계속됐다.
‘이거 괜히 잘못되는 거 아냐?’
최현석은 자신이 먼저 나서서 사양해야 되나 고민했다.
그 순간.
“좋아.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레이드런이 고개를 숙였다.
최현석도 눈치껏 고개를 숙였다.
“군단장님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볼일이 끝났으면 나가봐.”
최현석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
끼이익! 퉁.
조심스럽게 집무실 문이 닫히고.
홀로 남은 헤미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최현석… 그제 만났을 때보다 두 배는 강해졌네.”
불과 이틀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헤미스는 생각했다.
최현석의 성장 속도는 정말 빠른 편이라고.
그런데 지금은 단순히 ‘빠르다’라고 표현할 수준이 아니었다.
불과 하루 만에 최현석은 두 배나 강해져서 나타났다.
상식을 뛰어넘는 성장 속도였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이런 경우는 단언컨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것은 모든 것이 무덤덤해진 그녀에게 굉장히 신선한 자극이었다.
“재미있어… 분명 재미있는데 말이야…”
씨익 웃던 헤미스의 입가가 비틀렸다.
“기분이 좀 나쁘네?”
레이드런이 직접 최현석을 교육한다.
“남은 시간은 4일. 하지만 레이드런이라면 충분히 그 안에 최현석을 강하게 만들겠지.”
애초에 오크 쿠르켄은 이기라고 정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최현석에게 충분한 가능성이 생겨났다.
굳이 확률적으로 계산해보자면 20% 정도.
하지만 여기서 레이드런이 직접 교육까지 맡는다면…
“절반 이상.”
최현석이 이길 확률은 최소 50%가 넘어갈 것이다.
이건 헤미스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잠시 다녀와 볼까.”
헤미스는 오랜만에 집무실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목적지는 병사들이 머무는 막사.
“최현석에게 레이드런을 붙여 줬으니까… 쿠르켄한테도 뭔가를 주는 게 공평하겠지?”
오크 쿠르켄에게 좋은 선물을 안겨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