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4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40화(240/273)
최현석은 전속력으로 달려서 전장을 벗어났다.
불과 몇 분 만에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장소까지 이동한 그는, 이내 추격이 없다고 판단하고 멈춰 섰다.
잠깐이지만 전력으로 달린 탓인지 이마에서 한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후, 간만에 달리기 제대로 했네.”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손등으로 땀을 훔친다.
어깨에 매달려있던 라헬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사님! 쥐새끼처럼 도망치다니! 왜 그런 거예요!?”“안 도망치면? 그 자리에서 전설 셋이랑 싸우다 뒤질까?”“그건 아니지만…”
우물쭈물하는 게 아직 불만이 남은 듯했다.
방금 전에 킨리를 놀리던 것에 과몰입한 게 분명했다.
최현석은 한숨과 함께 설명을 해주었다.
“애초부터 말했잖아. 이번 습격은 간 보기 같은 거라고.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리고 적이 얼마나 강한지 테스트하는 거지.”“으음, 그게 꼭 필요한 거예요?”“밖에 나온 지 워낙 오래됐으니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앞으로 몇 번 더 이런 과정을 거칠 거야.”
최현석은 지난 6개월 동안 아이실리우스 사막에 처박혀 있었다.
사라 던피가 남겨둔 힘을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사라 던피의 마기를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3개월.
흡수한 힘을 안정화하는 데 다시 2개월.
마지막 한 달은 최종 안정화를 하면서 동시에 성장한 신체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하는 데 보냈다.
“진짜 다시는 못 할 짓이야.”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진다.
몇 번이고 생사를 오가는 아슬한 줄타기.
옆에서 도와주는 라헬이 없었다면 정말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나니 자연스레 박현아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현아 누님은 괜찮으려나. 내가 떠날 때도 회복이 덜 된 상태였는데, 지금쯤은 끝났겠지?’
최현석이 힘을 얻는 과정은 박현아와 비슷했다.
단기간에 마력, 마나를 담는 그릇을 넓히고 안정화하는 것.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는 박현아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사라 던피의 도움이 없었다면 박현아는 죽었을 것이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이후로도 그녀는 새로운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최현석은 박현아보다 난이도가 훨씬 더 높다.
박현아처럼 자신의 마력이 아닌, 타인의 마기로 그릇을 변형시킨 터라 충격이 더 컸고.
옆에서 상세하게 조언해주는 사라 던피도 없었다.
그가 특수한 체질이 아니었다면 아마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용사님. 뭘 또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러세요. 결과적으로 잘 됐잖으면 된 거죠!”“뭐, 그렇긴 하지.”
어쨌든 최현석은 모든 시련을 통과하고 목표를 달성했다.
힘을 최대한 낭비 없이 흡수했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갑작스레 성장한 신체에 적응하는 훈련 또한 마쳤다.
그 결과 최현석의 전투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 있었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전설적인 용사
▫레벨 : 1249
·근력 : 486
·민첩 : 486
·체력 : 488
·마나 : 632
·카리스마 : 133
·투지 : 156
레벨은 그대로지만, 능력치가 전보다 크게 성장했다.
근력, 민첩, 체력이 각각 50포인트 이상 올랐고, 마나는 무려 100포인트 넘게 올랐다.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투지도 제법 올라서 어느새 카리스마를 뛰어넘어버렸다.
“지금 전투력이 얼마나 나오려나.”“글쎄요. 전에 확인했을 때 측정 불가였으니까. 적어도 60만 중반은 되지 않을까요?”
최현석이 가진 전투력 측정기의 측정 한계는 60만.
현재 최현석은 그 한계 전투력인 60만을 넘어서 측정 불가 상태다.
이후로도 계속 성장했으니, 정확히 얼마인지는 몰라도 전투력이 60만 중반은 됐을 것이라 짐작됐다.
“오랜만에 작정하고 뛰어서 그런가 피곤하네. 슬슬 야영 준비하자.”
“네~”
이후 최현석은 숲 안쪽으로 이동해서 작은 동굴을 찾았다.
이곳에서 불을 피우고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루 정도 잠을 자지 않아도 문제없지만, 휴식은 시간이 날 때마다 취해주는 게 좋다.
특히 지금처럼 육체의 컨디션이 100%가 아닌 상황에서는 더욱 휴식의 중요성이 커진다.
“우우움… 용사님. 이왕 숲에 온 거 사냥해서 고기를 먹어야지 왜 이런 걸 먹어요.”
라헬이 뚱한 표정으로 도시락을 뒤적거렸다.
지난 6개월 동안 식사를 책임진 용사 상점표 도시락이다.
그녀는 다른 게 먹고 싶은 눈치였으나, 어림도 없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 불만이면 직접 고기를 구해오던가.”
“쳇.”
“그리고 이것도 나름대로 맛이 있다고.”
굳이 비교하자면 지구의 편의점 도시락 정도의 퀄리티다.
그렇게 대단한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현석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용사님.”
“왜.”
“그 여우한테 안 돌아가요?”
한창 식사 도중, 라헬이 또 이상한 말을 걸어왔다.
여우라는 단어에 잠시 생각하던 최현석은 이내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벨슨 씨를 말하는 거야?”
“네.”
“글쎄… 굳이 돌아갈까 싶네.”“연락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용사님도 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최현석이 피식 웃었다.
라헬의 말대로다.
지금도 그의 앞에는 아벨슨과 연결된 통신구가 있다.
솔직한 심정은 당장 연락하고 싶다.
하지만,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난 반년간 시도 때도 없이 왔던 연락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이쪽에서 통신구를 활성화하면 금방 응답이 오겠지만, 그럴 생각이 없었다.
최현석은 지켜보던 통신구를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네가 그런 배려를 다 해주다니. 의외네.”“그냥 용사님답지 않다 싶어서요.”
“나다운 게 뭔데?”
“여자 찾는 거?”
“뒤질래?”
“진실은 언젠가 승리합니다.”
라헬이 슬그머니 동굴 한쪽으로 도망쳤다.
벌떡 일어나 쫓으려던 최현석은 귀찮음에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동굴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연락하고 싶지. 그런데 하지 않을 거야.”
“왜요?”
“연락하면 아벨슨 씨가 도와주려 할 테니까. 당연히 나도 더 보고 싶어질 거고.”“그럼 만나면 되죠.”
“안 돼.”
최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는 평소에 보기 힘든 진중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가트렌과 싸워야 해. 이런 상황에서 아벨슨 씨는 짐만 될 거야.”
짐이 된다.
일부로 더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마음이 더 단단해질 것 같아서.
“잘못하면 사라 씨 때랑 같은 전철을 밟을 수도 있어.”
결국, 최현석의 본심은 이것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또다시 마리어트 왕국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아벨슨과 공조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생활에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고, 정보를 얻는 측면에서도 힘들어지겠지만, 괜찮다.
정 필요하면 드라센 제국의 올라벤 그리미어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니까.
“앞으로는 철저하게 소수 정예,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가트렌을 괴롭힌다.”
당하기만 하는 건 이제 끝이다.
이제 이쪽에서 괴롭혀줄 차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킬 게 없어야 했다.
미래를 그리는 놈은 결코 오늘만 사는 미친놈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니까.
***
신성 제국 가트렌의 수도 그라티암.
교황 오르반 4세는 긴급 보고라는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긴급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상 십중팔구 좋지 않은 소식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으음…”
보고 내용은 역시나 최악이었다.
그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곤란하군요. 박현아만 해도 골칫거리인데 최현석까지 나타나다니.”
최현석이 돌아왔다.
전설 킨리 퓨셀과 짧은 전투를 치렀으며, 그 여파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추정되는 무력은 킨리와 동급.
혹은 그 이상.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황은 제법 초기부터 최현석을 주시해 왔다.
용사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일반적인 용사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는 최현석이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당시에는 손 한번 휘두르면 죽을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교황은 늘 과잉 전력을 투입해서라도 최현석을 없애고자 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쓴다고 했던가.
부하들이 불만을 가질 게 분명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최현석을 그냥 둘 수는 없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그를 처치하고자 했다.
“그랬는데… 후우.”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최현석을 죽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들은 모두 관뚜껑조차 덮어보지 못하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들을 양분 삼아 성장한 최현석은 이제 교황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성장해버렸다.
“최악입니다. 최악…”
교황이 눈을 감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어쩌면 사라 던피 또한 살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현석이 돌아왔다면 사라 던피가 살아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둘은 원래 동료였으니 함께 몸을 숨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에 함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정도.
“아무튼, 박현아에 최현석에 사라 던피까지. 큰일입니다… 큰일…”
교황이 슬며시 눈을 떴다.
입으로는 앓는 소리를 하고 있었으나, 그의 눈동자에서는 푸른 귀기가 일고 있었다.
“지금부터 전 군에 상시 전투태세를 갖출 것을 명합니다. 또한 전설, 추기경들의 단독 행동을 금합니다. 앞으로는 최소 3인 이상으로 함께 움직이라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겠습니다.”“만일의 경우라 하심은…?”
교황의 명령을 기록하던 추기경이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교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제국의 헌신입니다. 준비 작업은 몇 년 전에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까?”
“마, 맞습니다…”
“그럼 언제든지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세요.”
추기경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모습.
교황의 눈이 더욱 날카롭게 찢어졌다.
“제 말이 들리지 않습니까?”“아, 죄송합니다! 성하!”“제국의 헌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했습니다.”
“예!”
“그럼 가보세요.”
추기경이 고개를 숙이고 다급히 물러난다.
그의 머릿속에서 교황의 마지막 명령 ‘제국의 헌신’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래선 안 돼… 이건…’
이것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교황의 명이라고 해도 따를 수 없는 것.
그는 조용히 덮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교황 성하께서도 그저 말씀만 저리하실 뿐이다… 그래. 그런 게 분명해.’
교황도 그 금단의 계획을 실행에 옮길 생각은 아니리라.
그저 분을 이기지 못해 저런 말을 내뱉은 것뿐이다.
그래. 저 명령은 실언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추기경이 알지 못하는 게 있었다.
작전 입안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제국의 헌신’은 사실 교황 오르반 4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처음부터 그 모든 준비와 계획을 완성한 것 또한 그라는 사실을.
당연하게도 교황은 사용하지도 않을 계획을 만들고 준비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흐음.”
떠나가는 추기경을 보며 교황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브리엘 경.”
“예.”
사냥개의 단장 쿠안 오브리엘.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사냥개는 사실상 제국 내부를 관리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께서 직접 움직여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눈칫밥을 30년 넘게 먹어온 쿠안 오브리엘이다.
교황이 내리는 명령은 눈동자만 봐도 이해할 수 있다.
그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제국의 헌신. 언제든 발동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를 마쳐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