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43)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43화(243/273)
“용사님… 속이 울렁거려요…”
어깨에 축 늘어진 라헬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현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라헬을 집어 들었다.
“토할 거면 다른 데 가서 해라.”“안 해요. 저를 뭘로 보시고… 우웁…!”“야야! 저리 가서 하라고!”
“우웨엑-!”
라헬이 기어이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말았다.
기겁한 최현석은 필사적으로 라헬을 떨어뜨렸다.
“야! 손가락에 튀잖아!”
“우웨엑!”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야!”
시원하게 속을 게워내는 전담 요정과 질색팔색하는 용사.
박현아는 한껏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을 바라봤다.
“몇 번이나 돌았다고 그걸 못 참냐.”
가트렌의 마수를 떨쳐낸 이후.
박현아는 곧장 은신처로 이동하지 않았다.
마력의 잔향을 따라 좌표가 추적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추적을 떨치기 위해서는 최대한 목적지를 교란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장소를 계속 돌아다니고.
심지어는 같은 장소에 3번이나 공간 이동을 하기도 했다.
지금쯤 추적자들은 머리를 싸매며 골머리를 앓고 있으리라.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입니까?”“예전에 가트렌이랑 싸울 때 만들어 둔 은신처.”
라헬을 구석에 대충 던져두고.
최현석은 겨우 도착한 은신처를 둘러봤다.
대륙 어딘가에 위치한 숲.
덩그러니 있는 오두막은 어쩐지 낯이 익었다.
“전에 왔었나? 낯이 익은데.”“여기는 처음이고. 아마 이거랑 비슷한 은신처겠지.”“이런 은신처가 많나 보네요.”“몇백 개는 있었지. 지금은 얼마 안 남았지만.”
말을 하며 박현아가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제 방해꾼이 없으니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최현석도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반년 동안 뭐 하다 왔냐? 보니까 놀고 있었던 것 같진 않고…”
잠시 최현석을 빤히 바라보던 박현아가 말을 이었다.
“사라 던피가 뭘 한 거야?”“눈치채신 겁니까?”
“확신하진 못하겠는데, 그 언데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박현아는 이미 사라 던피가 힘을 건네준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최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했다.
“사라 씨께서 마기를 남겨줬습니다. 그동안 그걸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움직일 수 없었고요.”“잠깐만, 마기를 ‘남겨’줬다고? 넘겨준 게 아니라 남겨줬단 건…”“예. 그날 사라 씨는 소멸했습니다. 외딴 동굴에 특이한 마법을 준비해 둔 채로요. 저는 계속 그 동굴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머리가 복잡해지고,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마기를 동굴에 남겨두고 그걸 지속해서 흡수하게 하다니.
지나치게 상식 밖의 일이었다.
“끄응…”
한참 동안 고민하던 박현아는 결국 항복했다.
“모르겠다! 그 언데드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사라 던피의 마법적 지식은 지금 시대와 궤를 달리한다.
박현아도 나름 대륙에서 손꼽히는 마법 지식을 갖췄다고 자부하지만, 사라 던피와는 비교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수준 차이가 심했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을 사용했다고 해도…
그 대상이 사라 던피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은… 어땠냐.”
박현아가 턱을 괴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가셨습니다.”
“다행이네.”
밖을 바라보는 박현아의 눈동자는 담담했다.
숲의 풍경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나간 과거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누님은 어떻게 지냈습니까?”“나야 뭐 개같이 지냈지.”
박현아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지난 육 개월 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마리어트 왕국을 박차고 나와서 몸을 회복하고, 이후 가트렌과 싸운 것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말로 설명하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벨슨 씨나 마리어트 왕국은 무사한 거군요.”“시발… 남자 새끼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더니. 고생은 이 누님이 다 했는데 제자라는 새끼는 그저~ 여자. 여자 생각이 전부네.”
최현석이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누님은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죠.”“됐다. 됐어. 내 서러워서! 늙은이는 빨리 뒤지든가 해야지.”
박현아가 등받이에 기대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 순간 최현석이 돌연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누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놀라라 시발! 그냥 묻지 면상은 왜 들이밀고 지랄이야!?”
최현석의 인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갑자기 정색하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박현아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도, 최현석은 계속 마이페이스로 심각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뭐, 뭔데…”
“진짜 나이가 몇 살입니까?”
기습적인 나이 질문에 박현아가 표정을 와락 구겼다.
“뒤질래? 숙녀 나이를 그렇게 막 물어보게 돼 있냐?”“설마… 막 100살이 넘고 그런 겁니까?”“미친놈이 뭐라는 거야!?”“아니, 전설은 회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누님도 그런가 싶어서…”
이전에도 박현아의 나이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박현아는 너보다는 훨씬 많다면서 얼버무렸는데, 본인이 스스로 늙은이라 칭하니 정확히 몇 살인지 궁금했다.
‘분명 액면가는 나보다 어린데.’
외형만 봤을 땐 박현아가 최현석보다 어려 보였다.
최현석이 다부진 체격이나 얼굴 탓에 나이 들어 보이는 편이긴 했지만.
그걸 차치하고서, 순전히 박현아의 외모만 놓고 봤을 때도 그렇다.
아무리 많아도 20대 후반.
20대 중반이라 해도 믿을 만한 외모였다.
“백 살 아니다. 새끼가 사람을 무슨 할망구로 아네.”
“아래라는 거죠?”
“그럼 위겠냐!?”
“으음, 그럼 칠십인가? 육십?”
“아니야!”
돌연 박현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할 기운 있으면 출발 준비나 해.”
“어디 가십니까?”
“너도 왔겠다. 이제 좀 더 공격적으로 움직여야지.”
갑자기 움직이겠다니.
대화 화제를 돌리고 싶어 하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최현석은 그걸 알면서도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한 번에 너무 밀어붙이면 반발이 강할 수 있으니 조금씩 캐물을 생각이었다.
‘꼭 알아내고 만다.’
인간이란 생물이 원래 그렇다.
감출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법.
예전에는 입을 잘못 놀렸다가 죽을 수도 있었기에 참았으나, 이젠 아니었다.
언젠가는 박현아의 나이를 밝혀내고 말리라!
이러한 속내를 숨기고 최현석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어차피 나이 이야기를 회피하려고 던진 주제.
딱히 중요한 게 있을까 싶었으나, 박현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추기경 조지러 가자.”
***
추기경.
데우시스 교에서 교황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선 존재.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륙 모두가 알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어지간한 왕국의 국왕보다 더 강한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으니까.
“추기경은 귀하신 분 티를 팍팍 내는 새끼들이라 마주치기 힘들어. 대부분 신전 안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거든.”
추기경은 여러모로 비밀스러운 존재였다.
애초에 신전 밖으로 나오는 일 자체가 드물었으니.
가트렌과 오랫동안 싸워온 박현아조차도 추기경과 부딪힌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 어떡합니까?”
“나오지 않으니 찾아가서 조져야지.”“어디 있는 줄 알고요?”“가트렌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면 지역마다 왕처럼 군림하는 추기경이 있어. 일단은 그놈들부터 족친다.”
박현아는 곧바로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은신처에 와서 쉬게 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웠던 라헬은 절대 갈 수 없다고 징징거렸지만, 어쩌겠는가.
용사가 가는 길에 전담 요정은 따를 수밖에.
“우에에엑…!”
잠시 후.
숲 한쪽에서 속을 게워내는 라헬을 내버려 두고.
최현석은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바라봤다.
“저기입니까?”
“어. 카르튼 영지의 수도 카르테시아. 저기에 추기경 마우리지오라는 놈이 있다.”“제법 소란스러워 보이네요.”
최현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도시의 부산스러움이 느껴졌다.
밤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오늘 추기경 손녀딸 생일이거든. 그래서 파티를 하는 거야.”
“예?”
최현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추기경 손녀딸의 생일?
추기경도 결혼을 할 수 있나?
아니, 그보다 어디 영주나 국왕도 아니고 추기경의 손녀딸 생일이라고 파티를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종교인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어떤 추기경은 왕이나 다름없다고. 이 나라 국민은 국왕보다 추기경 말 한마디에 더 벌벌 떨어. 윗대가리는 추기경 비위 맞추기에 바쁘고.”“이해하기 힘드네요.”“뭐, 깊게 고민할 필요 없어. 어차피 아랫것들 고혈 짜 먹는 새끼들끼리 짝짜꿍하면서 노는 거라서. 그냥 다 쓰레기라 생각하면 돼.”
박현아가 다소 시니컬하게 말했다.
그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혀를 차던 최현석은 돌연 좋은 생각이 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누님. 연회라면 신전에서 열리는 겁니까?”
“그렇겠지.”
“그럼 마법으로 신전을 통째로 날려버리면 안 됩니까?”
박현아가 고개를 저었다.
“마법 공격은 안 돼.”
“왜요?”
“방비가 너무 잘 돼 있어.”
추기경은 주로 왕국이나 거대 영지의 수도에 머문다.
지금 보이는 카르테시아처럼.
저런 대도시에는 당연하게도 엄청난 방비가 되어있다.
“기습적으로 마법을 날려도 1차적으로 도시 방어막에 막히고, 이후 도시 내에 있는 사제와 추기경이 방어막을 펼칠 거야. 그건 아무리 나라 해도 못 뚫어.”
그동안 박현아가 추기경을 처리하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추기경은 막대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고, 그와 함께 사제들이 펼치는 보호 마법은 무슨 수를 써도 뚫기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신성력이라는 것 자체가 방어에 특화돼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법으로 못 뚫으면 놈들을 밖으로 꺼내야겠네요.”“그것도 무리야. 추기경은 무슨 수를 써도 안 나올 거야. 특히나 우리 같은 놈들이 깽판 치는 요즘 같은 때는 더 그렇지.”“그럼 어떡합니까?”
방어 마법을 뚫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시 밖으로 추기경을 빼내는 것도 무리다.
그럼 공략할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예전에 나 혼자였다면 답이 없는 상황인데, 지금은 다르지.”“뭔가 계획이 있나 보네요.”
“당연하지.”
박현아의 당당한 표정에서 자신감이 엿보인다.
최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난공불락의 도시!
그 안에 숨어든 추기경을 사냥할 계획이란 무엇일까!?
“그 계획이 뭡니까?”
최현석의 물음에 박현아가 씨익 웃었다.
“뭐긴 뭐야. 그냥 쳐들어가서 족치는 거지.”
“예?”
***
기사 제이콥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정말 끝도 없이 밀려오는군.”
늘어선 마차 행렬.
모두 추기경 마우리지오에게 진상될 물품이었다.
오늘은 추기경 손녀딸의 생일.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왕국 전역에서 진상품과 함께 손님이 몰려든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기사 제이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오늘 연회의 목적은 단순히 손녀딸의 생일을 축하하는 게 아니다.
그건 단지 구실 뿐.
실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연회의 연장 선상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신전 안에서 높은 귀족과 사제가 모여 향락에 흠뻑 젖는 연회를 연다고 한다.
여기 있는 진상품 중에서는 술은 물론이고,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약물이 잔뜩 들어있을 것이다.
“머리가 아프군…”
눈앞에서 부정부패의 온상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한 명의 기사로서 정의를 행하고 싶었으나, 그는 무력하다.
앞서 말했듯 그는 한 명의 기사일 뿐이었으니까.
아무리 부패했다 한들, 맹세에 따라 충성을 바치는 게 기사라는 존재다.
그렇기에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혼란한 세상에서 그를 기사로 남게 하는 유일한 신념이었다.
“음…?”
기사 제이콥이 눈을 찌푸렸다.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두 남녀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지. 신분을 밝히십시오.”
제이콥의 말에 남녀가 멈춰 섰다.
앞서 걷던 여성은 제이콥을 바라보더니 태연하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추기경 손녀딸 생일 파티 맞지?”“예.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십니까?”“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비록 행색은 초라해도 제이콥은 이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대기줄을 무시하고 온 점.
그리고 당당한 태도를 보아하니, 높은 귀족인 게 분명했다.
기사 제이콥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례지만 신분패와 초대장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없는데.”
“예?”
“없다고.”
“그럼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왜?”
“신분이 증명되지 않은 자를 도시로 들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래도?”
여성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밀었다.
번쩍이는 금화였다.
기사 제이콥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통행료.”
“당신 지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야야. 알겠어. 그래.”
여성이 다 이해한다는 듯 손을 휘적이더니 품에서 금화를 하나 더 꺼냈다.
“이 정도면 되지?”
“이 사람이! 나는 기사입니다! 기사를 뭐로 보고….”“하, 새끼가 비싸게 구네.”
여성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주머니를 통째로 내밀었다.
안을 슬쩍 보니 금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제이콥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번쩍이는 금화를 멍하니 바라봤다.
‘저게 다 얼마야…’
기사로 평생 일해도 모을까 말까 한 돈.
당장 카르테시아에서 대저택을 마련할 만한 돈이었다.
“그럼 들어간다.”
여성이 기사 제이콥에게 강제로 주머니를 떠맡겼다.
“어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얼떨결에 주머니를 받은 기사 제이콥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진짜 안 되는데…’
자신은 기사다.
비록 이런 세상일지라도 기사의 본분을…
‘황홀하군.’
금화의 번쩍임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돌아보니 여성과 함께 온 남성은 이미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떠나가는 둘을 보며 기사 제이콥은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살펴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