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53)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53화(253/273)
가트렌 신성 제국의 수도 그라티암.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거대 도시가 허망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마력과 마나. 신성력이 뒤엉키며 폭발할 때마다 수십 채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이런…!”
최현석이 헛숨을 들이키며 팔을 들고, 거의 동시에 무지막지한 해머가 날아든다.
쿠웅! 쿠웅! 쿠웅! 콰아아-!
날아간 최현석은 벽돌로 만들어진 튼튼한 건물 세 채를 관통했다.
겨우 멈춰 서서 자세를 다잡기 무섭게 사방에서 마법이 날아든다.
최현석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날렸다.
“썅! 숨 고를 시간은 좀 줘라!”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사제와 성기사.
그들은 최현석이 홀로 떨어질 때마다 마법을 날려댔다.
겨우 마법을 피하고 정신을 수습하려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킨리를 비롯한 전설 삼인방이 압박해왔다.
제세격쇄기
제3형 – 산산조각
무스탄 검술
제5형 – 꿰뚫는 빛
킨리 퓨셀과 겔링 무스탄이 양쪽에서 투기를 날려댔다.
교묘하게 퇴로를 막아서는 공격인지라, 둘 다 피할 수는 없는 상황.
최현석은 겔링 쪽으로 돌진했다.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한 투기를 정면에서 돌파할 생각이었다.
쐐애액-!
찔러 들어오는 검은 최현석의 동체시력으로도 좇기 힘들 만큼 빨랐다.
최현석은 팔을 들어 검을 비껴냈다.
카가가가강-!
마나로 인해 극한까지 단단해진 피부에 검이 스치며 불똥이 튄다.
팔에 긴 자상이 생기고 피가 흘러내렸다.
최현석은 개의치 않고 발을 내질렀다.
“커헉!”
발바닥이 정확하게 복부를 가격하자, 겔링이 피를 토하며 날아간다.
여기서 더 몰아붙이면 마무리할 수도 있겠으나, 최현석은 물러나야만 했다.
어느새 다가온 전설 아스문드가 검을 휘두른 것이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진작 끝난 싸움인데…!’
전투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나를 마무리하려 하면 다른 적이 와서 방해한다.
그사이 공격을 받은 적은 몸을 회복하고 다시 전투에 뛰어든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적의 연계가 워낙 단단해서 도저히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내 체력이 먼저 빠질 거야.’
최현석은 지금 플로모트를 사용하고 있다.
마나로 개량하면서 지속성이 올랐기에 아직은 괜찮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투기인지라 체력과 마나를 상당히 잡아먹었다.
‘이제 와서 플로모트를 풀 수도 없고.’
체력소모가 심하다고 해서 플로모트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부작용은 차치하고서, 최현석이 지금까지 버틴 건 그나마 플로모트가 있기에 가능한 일.
만약 플로모트를 쓰지 않고 싸웠다면 적의 연계를 막지 못하고 이미 패배했을 것이다.
‘셋 중 하나만 없었더라도. 아니, 방해하는 사제와 성기사만 없었더라도 뭔가 활로가 보였을 텐데.’
너무나 불리한 싸움이었다.
애초에 전설 셋과 가트렌의 정예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버티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긴 했지만.
최현석은 버티는 게 아니라 승리하고 싶었다.
‘선택해야 한다. 플로모트 단계를 올려서 어떻게든 처리하든가 아니면 누님과 합류해야 해.’
이대로라면 예정된 1시간은 절대 버틸 수 없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적을 처리하든지 아니면 박현아와 합류해야 한다.
최현석의 선택은 후자였다.
‘일단은 시간을 끄는 게 가장 중요해. 누님과 합류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결정이 났다.
최현석은 곧장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박현아에게 달려가 합류할 것이다.
“이놈! 비겁하게 도망치는 거냐!”
뒤쪽에서 길길이 날뛰는 킨리 퓨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현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비겁!? 시발, 너희는 양심도 없냐!?”
단체로 한 명을 괴롭히고 있는 주제에 비겁을 논하다니.
역시 모든 악당은 내로남불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듯했다.
“쫓아!”
“거기 서라!”
“서란다고 설 거면 튀지도 않았어!”
한동안 지겹도록 이어졌던 술래잡기가 다시 시작됐다.
***
박현아는 마법 박람회에 온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마법을 모아서 한 번에 터뜨리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콰과과과과과-!
그녀가 가는 곳마다 수백 개의 마법이 들이닥쳤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가렵지도 않을 수준이지만,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이니 아무리 박현아라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끝이 없어! 끝이!”
사실 직접적인 공격 마법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정말 위험한 것은 디버프류의 마법.
체력이나 마력을 갉아먹는 것은 물론이고, 간혹 신체를 속박하는 마법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녀조차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흐읍!”
마력을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마법을 날릴 수 있지만, 문제는 잠깐의 지연이 생긴다는 것.
1초라도 행동에 제약이 생겨서 움직이지 못하면 그 순간 무수히 많은 공격에 직격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곡예사도 아니고, 시발! 이렇게 얼마나 버티라는 거야?’
끝이 없는 적.
그동안 처리한 병사만 해도 족히 1만은 넘을 텐데, 놈들은 죽여도 죽여도 어디선가 계속 나타났다.
숫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는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용사 부대를 박살 냈다는 건가.’
사실 박현아가 이렇게나마 버틸 수 있는 건 마틴 루스카 덕분이다.
멍청한 마틴 루스카는 용사 부대를 이끌고 먼저 들이닥쳤다.
자만한 것이다.
덕분에 박현아는 준비한 통신 단절기로 놈들의 허를 찔렀다.
지휘관인 마틴 루스카를 처리한 이후 용사의 숫자를 최대한 줄였다.
아직 전투 초반.
힘이 남아도는 상태였기에 그녀는 거의 용사를 짓뭉개버릴 수 있었다.
차단된 연계 마법.
역류하는 마력.
갑작스러운 지휘관의 죽음.
이 모든 게 맞물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용사의 수를 줄여놓지 않았더라면 결코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으리라.
‘집중하자. 한 시간! 한 시간만 버티면 돼!’
박현아가 다시금 마력을 갈무리했다.
다행히 격전 속에서도 마력은 제법 남아 있었다.
애초에 지닌 마력 양이 방대했기 때문이다.
‘남은 마력은 대략 3분의 1. 이 정도면 충분해.’
매 순간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는 느낌이지만, 그녀는 자신 있었다.
이 마력을 다 쓰기 전까지는 절대 쓰러지지 않으리라.
‘시간은 얼마나 흘렀지?’
박현아는 시계를 확인했다.
목표는 1시간을 버티는 것.
제법 오래 싸웠으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 라고 생각했거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30분!? 30분밖에 안 지났다고!?’
정확히는 30분도 아니었다.
시계는 작전이 시작된 지 이제 막 28분이 지났다고 알리고 있었다.
‘조졌다… 이 마력으로 어떻게 30분을 버텨!?’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든든했던 마력이 한없이 적게 느껴졌다.
예상보다 많이 남은 작전 시간.
이대로라면 1시간이 지나기 전에 마력이 바닥날 것이다.
“누님!”
최현석이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뭐야!? 왜 벌써 기어 나왔어!?”“도시 안에서 버티는 게 유리할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차라리 밖에서 같이 싸우는 게 났겠어요!”
최현석의 뒤에는 전설 삼인방이 꼬리처럼 붙어 있었다.
그들을 따라 그라티암 안에 있던 최정예 성기사와 사제가 쏟아져 나왔다.
“시발… 아주 줄줄이 땅콩이구나.”“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같이 버티죠.”
“교황은?”
“놓쳤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모한 계획이라 했잖아.”“그래도 성과가 없는 건 아닙니다. 교황 정보를 얻었거든요.”“일단 살아남아야 정보도 써먹지!”
죽고 나서 정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얻지 않느니만 못하다.
“할 수 있습니다!”
최현석이 날아오는 마법을 피하며 소리쳤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되지 않습니까?”“아직 30분 남았다.”
“예…?”
“정확히 31분 남았네.”
순간 최현석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그 또한 시간이 많이 흘렀으리라고 생각했던지라,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격렬하게 싸워서 시간 감각이 이상해졌나 봅니다.”“분석은 치우고. 그래서 버틸 수 있겠냐? 마나 얼마나 남았어?”
“25% 정도?”
“아껴 썼어야지 새꺄!”“그래도 전설 트리오도 많이 지쳤습니다. 기회를 노려서 하나만 처리하면 뒤는 해볼 만할 거예요.”
박현아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잘도 그런 기회가 나오겠다!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밀어 넣는다.
“그래. 시발! 해보자.”
이미 전투는 시작됐고.
어차피 사방이 결계로 막혀 도망칠 곳도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다.
“뒤질 땐 뒤지더라도…”“한 놈이라도 더 데려갑시다.”
두 용사가 빼곡히 들어찬 적 사이로 뛰어들었다.
***
드라센 제국의 사령부.
올라벤 그리미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현황을 지켜봤다.
“사령관님! 라디온 영지의 대신전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입니다!”“키르신 영지의 대신전도 파괴 직전입니다!”“키르신은 얼마나 걸리나!?”“10분 안에는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늦어! 무리를 해도 좋으니 더 빨리 파괴해야 한다!”
올라벤의 목소리에는 그답지 않게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항상 여유 넘치던 그조차도 다급해질 정도로 지금 작전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벌써 30분이 흘렀다. 그동안 파괴한 신전은 고작 하나.’
목표한 대신전은 총 여덟 곳.
그중 파괴한 신전은 하나뿐이다.
10분 안에 하나를 더 부순다고 해도 여전히 여섯 개가 남은 것이다.
‘대신전을 최소 다섯 개는 부숴야 제국의 헌신을 막을 수 있다.’
어떻게든 다섯 개의 대신전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번 작전에서 실패하면 뒤는 불 보듯 뻔했기에.
‘궁지에 몰린 가트렌은 그 혐오스러운 마법을 사용할 게 분명해.’
사실 ‘제국의 헌신’이라는 마법이 정확히 어떤 위력을 보일지는 모른다.
마법의 대략적인 효과만 알뿐, 세세한 것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어쩌면 생각한 것보다 보잘것없는 마법일 가능성도 존재했다.
걱정한 것과 달리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강해서 대륙이 박살 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단 1%라도 대륙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한, 그 마법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적의 지원은?”
“아직 본격적인 지원은 없습니다! 최현석 경과 박현아 경이 확실하게 시선을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언제 지원이 몰려와도 이상하지 않다. 신전을 파괴한 부대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추가 부대를 파견해!”
교황이 이쪽의 작전을 눈치채면 끝이다.
모두 대신전은 그라티암과 공간 이동 게이트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전의 습격이 알려지면, 그 순간 엄청난 지원이 들이닥칠 것이다.
물론, 드라센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신전을 파괴하기 전 공간 이동 게이트를 최우선 목표로 지정했다.
“적의 공간 이동 게이트는?”“아직 하나밖에 파괴하지 못했습니다!”
예상대로 게이트를 부수는 건 쉽지 않았다.
적 또한 게이트가 자신들의 구원줄이라는 걸 알기에 필사적으로 사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속도가 너무 늦다. 역시 추기경의 전력을 예상치 못한 게 커.’
작전의 진척이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그건 바로 추기경 때문이었다.
각 대신전에 있는 추기경.
단순히 신성력만 강한 노인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거의 전설에 준하는 무지막지한 힘을 냈다.
이쪽에서도 전설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껏 하나의 대신전조차 부수지 못했을 것이다.
‘제발…’
올라벤 그리미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무모한 요구라는 건 알고 있소. 하나,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주시오!’
최현석과 박현아.
그 둘이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어주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