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5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55화(255/273)
태산 같은 기세를 뿜어내는 두 전설.
최현석과 박현아는 고고하게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상과 하늘 모두 사람이 빼곡하다.
온 시야가 적으로 가득했음에도 둘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굳건하기만 했다.
“누님. 포션 남은 거 있습니까.”
최현석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입술만 살짝 입술을 달싹였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였다.
박현아는 콧방귀를 뀌었다.
“있겠냐.”
“저는 하나 남았습니다.”“어쩌라고. 자랑하냐?”
“예.”
“이 새끼가… 살아 나가면 보자.”
최현석과 박현아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전방을 응시했다.
한 명은 웃음이 나왔고, 다른 한 명은 화가 났지만.
지금은 둘 다 무게를 잡아야 할 때였다.
“저놈들 쫀 것 같죠?”
“그러네.”
“잘하면 이대로 시간 끌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대충 5분 정도.”
“잘도 여기까지 버텼네요.”
30분이 흘렀을 때.
최현석과 박현아는 마력을 거의 다 소진했다.
원래라면 그때부터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20분을 넘게 버텼다.
이것은 미리 준비한 포션 덕분이었다.
□ 최상급 치유 포션
설명 : 치유 포션의 최고봉! 다 죽어가는 사람도 이 포션 한 병이면 살아날지도!?
능력 : 상처를 치유하고, 마력을 소량 회복한다.
필요 용사 포인트 : 5,000
한 병에 무려 5,000 용사 포인트나 하는 최상급 치유 포션.
원래는 상처를 회복하는 게 주목적인 이 포션에는 약간의 마력도 포함하고 있었다.
한 병 마시면 0.5%가 찰까 말까 한 극소량이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용사 상점에는 왜 마력 포션이 없을까요. 그것만 있었으면 일이 이렇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난들 알겠냐.”
“그나저나 누님. 저 마력(마나)이 10% 정도 찼습니다.”
“뭐라고?”
순간 박현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력을 10%나 회복하다니.
고작 10%로 무슨 호들갑이냐 할 수 있겠지만 모르는 소리다.
최현석과 박현아는 마력 양 자체가 압도적이라 10%라 해도 어지간한 영웅급이 지닌 마력보다 더 많다.
그러니 ‘고작’이 아닌 ‘무려’ 10%라 하는 게 맞겠다.
“어떻게 했냐. 너 한참 전에 바닥까지 다 긁었잖아.”
최현석은 이미 마력을 다 썼다.
박현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확실하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전투를 치르면서 어떻게 마력을 10%나 회복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중간부터 마력을 안 쓰고 몸으로 때웠습니다.”
“뭐?”
“포션 마시면 0.5% 정도 차지 않습니까? 그걸 안 쓰고 계속 모았죠.”
최현석이 마력을 회복한 방법은 간단했다.
일단 마력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 아무리 최현석이라 한들 순식간에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정말 죽을 것 같을 때가 되면 최상급 치유 포션을 마신다.
그때 체력과 함께 아주 극소량이지만 마력이 회복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던가.
그런 방식으로 모으다 보니 어느새 마력이 10%나 회복됐다.
분명 대단 일이었으나, 박현아의 반응은 냉담했다.
“미친 새끼.”
전설과 십만이 넘는 정예병을 상대하는데 몸으로 때울 생각을 하다니.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다.
최상급 포션이라 해도 단번에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포션으로 회복하기에는 너무 성장해버렸으니.’
게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여기 H.P.(Hit point) 10을 회복하는 포션이 있다.
만약 최대 HP가 20이라면 포션을 마시는 순간 절반의 HP를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최대 HP가 200이라면?
그보다 더 높은 2,000이라면?
고작 10을 회복해 봤자 전투에 그리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최상급 치유 포션은 그나마 효과가 좀 나오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죽을 위기를 벗어난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야.’
즉, 최현석과 박현아에게 포션 회복은 만능이 아닌, 잠깐의 시간 벌기 같은 것이다.
마력 없이 포션만으로 버틴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전투에 통달한 최현석이라 가능한 묘기.
만약 박현아가 같은 방법으로 버티려 했다면 진작 저 바닥의 시체 사이에 사이좋게 눕게 됐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면 성공한 거 아닙니까? 앞으로 5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1시간을 버틴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야. 작전 성공하는 데 필요한 최소 시간이 1시간인 거지.”
이번 작전에서 1시간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판가름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1시간도 버티지 못하면 작전은 실패한다.
그러니 최소 1시간은 버텨라.
이런 뜻이다.
“다행인 건 놈들이 아직 대신전이 공격받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야.”
지금까지 상황은 나쁘지 않다.
적의 전력은 여전히 이곳에 붙들려 있고, 시간은 거의 1시간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작전 성공 확률은 계속 올라가니, 좋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저놈들이 계속 쫄아서 안 들어오면 무조건 성공하는 거네요.”“그만 나불거려. 가오 떨어진다.”
“옙.”
“지금 우린 가오 떨어지면 끝이야. 눈깔에 힘 빡 주고. 발가락 하나 까딱하면 조진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려보란 말이야.”
“흡!”
최현석과 박현아가 두 눈을 더욱 사납게 치켜떴다.
동네 불량배가 하면 우습지도 않은 위협이겠지만, 전설급 강자가 작정하고 살기를 내뿜으면 이런 위협도 훌륭한 압박 수단이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전투가 시작된 지 1시간에 가까워지던 순간.
콰아아아아아-!
돌연 수도 그라티암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마력이 형상화돼서 기둥처럼 솟아난 것이다.
“저건 뭡니까?”
“나도 몰라.”
그라티암에서 솟구치는 마력.
박현아는 단번에 그게 한 개인의 마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양은 자신과 동급이거나 이상.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적을 노려보고 있었으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저런 마력을 가진 놈을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뭐지?”
박현아의 마력은 전설급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단순히 마력(마기)의 ‘양’만 놓고 보면 과거 전성기 시절의 헤미스와 견줄 수 있을 정도.
당연히 인간 중에는 비슷한 수준은커녕 근처에 오는 놈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마족
중에서도 전대 마왕을 제외하면 저만한 마력을 지닌 존재는 없다.
“저기. 해머녀 옆에 나타난 저놈 같습니다.”
“맞네.”
데우시스 교의 새하얀 의복을 입은 젊은 남성.
기척도 없이 나타난 그는 킨리 퓨셀과 대화를 나누었다.
“일단 아군은 아닌 것 같네요.”“가트렌 비밀 병기라도 되는 건가.”
적들이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킨리 퓨셀과 겔링 무스탄.
전설 둘을 비롯해 최정예 기사단이 뒤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누님. 저 새끼들 튀는데요?”
“막아!”
대신전이 공격받는 걸 눈치채고 지원하러 가는 게 분명했다.
최현석과 박현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뛰쳐나갔다.
다행히 약속된 1시간을 버티긴 했지만, 아직 임무를 완수했는지는 모른다.
조금이라도 더 놈들을 붙잡아둬야 했다.
파아앙!
호기롭게 달려 나간 둘은 동시에 튕겨져 나왔다.
어느새 나타난 남자가 지팡이를 휘두른 것이다.
“어딜 가는 겁니까.”
남자는 날카롭게 찢어진 눈으로 둘을 응시했다.
“떨어뜨려 놓는 건 힘들겠는데요.”“하… 너 혹시 도시에서 공간 이동 게이트 부숴 놨냐?”“싸우면서 세 개쯤 부수긴 했는데, 대신전으로 이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쯧, 글렀네.”
박현아가 혀를 찼다.
저 거대한 도시 안에는 못해도 수십 개의 공간 이동 게이트가 있을 터.
그중 우연히 부순 세 개가 목적지인 대신전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이미 시간은 끌만큼 끌었고, 그냥 합공으로 빨리 이놈 처리하죠. 그게 더 이득일 겁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한 후, 박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석의 말이 옳다.
여기서 어쭙잖게 적을 추격하겠다고 나서다가는 이도 저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눈앞에 있는 남자를 쓰러뜨리는 데 집중하는 게 옳았다.
“신성 제국에 노답 트리오 말고 전설이 또 남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최현석이 말하며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체력과 마력이 완전히 바닥난 박현아보다는 그나마 자신의 상태가 나았기 때문이다.
“이런,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까? 최현석.”
“나를 알아?”
“불과 30분 전에 대화를 나눴지 않습니까.”
“어…?”
최현석이 눈을 끔뻑였다.
30분 전이라니.
자신이 30분 전에 대화를 나눈 사람이라곤 교황뿐이다.
“설마… 교황?”
“뭔 헛소리야. 교황은 다 늙어빠진 늙은이잖아.”
남성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늙어빠진 늙은이’라는 단어가 왜인지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았다.
박현아는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력도 아니야. 예전에 교황을 봤었는데 마력을 감춘 낌새는 없었어. 신성력이야 적당히…”
박현아가 덜컥 말을 멈췄다.
남성에게는 마력과 신성력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둘 다 인간의 힘이기에 두 힘을 동시에 가지는 게 그리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박현아가 정말 놀란 건 남성에게서 느껴지는 신성력의 성질 때문이었다.
“비슷한데…?”
마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추기경급 정도는 되는 신성력.
그 성질은 딱 한 번 본 교황 오르반 4세에게서 느낀 신성력과 일치했다.
“너. 진짜 교황이야?”
남자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박현아와 최현석의 얼굴에 깃든 경악이 한층 짙어졌다.
“뭐지? 인간이 갑자기 젊어질 수 있는 건가?”“마법으로 늙은이 행세를 한 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지금까지 들키지 않았을 리가 없지.”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는 데도 한계가 있다.
지금 교황이 즉위한 지 어언 수십 년.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마법을 해제하지 않고, 간파당하지 않았다?
불가능하다.
그보다 애초부터 교황에게는 그런 마법을 사용할 마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신성력만 많은 늙은이에 불과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교황의 술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교황은 특유의 인자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십니까?”
“응.”
“이제 곧 죽을 텐데 굳이 알아서 뭐 하겠습니까?”
묵직한 마력이 담긴 지팡이가 휘둘러졌다.
최현석과 박현아는 동시에 뛰쳐나갔다.
“시발…! 족쳐!”
***
킨리 퓨셀.
그녀는 빠르게 대신전으로 향하며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교황 오르반 4세입니다.”
자신을 교황이라 밝힌 젊은 남성.
킨리는 당연히 믿지 않았었다.
“웃기지 마. 네가 교황이라니. 교황은 다 늙어빠진 늙은이라고.”“늙어빠진 늙은이라니… 무례하군요. 내가 정말 교황이라면 어쩌려고 그런 망언을 하는 겁니까.”“됐고. 정체를 밝혀. 교황이 숨겨 둔 다른 카드인가? 아니면….”
“그만.”
남자가 지팡이를 내밀었다.
동시에 킨리의 눈이 부릅떠진다.
엄청난 마력이 마치 질량을 가진 것처럼 사방에서 옥죄어왔다.
“끄으윽… 너…!”
“지금은 경과 말다툼할 시간이 없습니다. 대신전이 공격받고 있어요.”
남자는 자신의 품에서 명령서를 꺼냈다.
쿠안 오브리엘에게 인장을 넘기기 전 마지막으로 작성한 명령서였다.
“킨리 퓨셀 경. 겔링 무스탄 경. 지금 당장 기사들을 이끌고 명령서에 적힌 대신전으로 달려가세요. 1분 1초가 급한 사안입니다.”
그제야 킨리를 압박하던 마력이 사라지고.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명령서를 받았다.
확인해보니 교황의 명령서가 확실했다.
“뭐하십니까? 어서 가지 않고.”
“… 제길!”
킨리는 곧장 대신전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놈. 정말 교황인가?’
잠깐이지만, 남자가 보여준 무력은 엄청났다.
자신이 아무리 지친 상태라곤 해도,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다니.
‘만약 정상적인 상태였다 해도…’
설령 최상의 상태였다 해도 승리는 불가능하다.
솔직히 말하면 버티는 것조차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남자의 힘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최현석과 박현아. 그 연놈들도 다시는 볼 수 없겠군.’
어쨌거나 지긋지긋한 악연도 이젠 끝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니, 자신보다 훨씬 더 지친 둘.
그들은 절대로 그 남성을 상대로 이기지 못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킨리는 눈앞에 보이는 대신전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