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5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58화(258/273)
“작전에 실패했습니다.”
장내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두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그만큼 ‘작전 실패’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충격은 엄청났다.
“적의 전설과 추기경을 도저히 뚫어낼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올라벤 그리미어가 보고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수고했다.”
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모두가 흔들리는 이때.
사령관인 자신까지 낙담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부상자 치료에 전념하고, 제국 전체에 경계령을 내려라. 지금부터 가트렌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령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 침울하게 처져 있었냐는 듯이.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들은 드라센 제국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엘리트.
아무리 큰 충격을 받았다 한들, 자신의 임무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런 한심한 자는 애초부터 이 사령부에 발을 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최현석 경과 박현아 경은 어떻게 됐나.”“박현아 경은 대기하던 지원부대의 보호를 받으며 수도 드락셀로 복귀하는 중입니다. 상처가 위중하긴 하나, 생명에 지장은 없다는 게 현장의 판단입니다.”“불행 중 다행이군. 최현석 경은?”“… 최현석 경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미 한차례 보고된 내용이지만,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올라벤 그리미어의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전사(戰死)한 건가?”“박현아 경의 말에 따르면, 최현석 경 또한 상태가 위중하다 했습니다. 그 격전지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라 판단되지는 않습니다.”“그래… 그렇겠지.”
그곳에 있던 가트렌의 정예만 해도 십만이 훌쩍 넘었다.
그 모두와 전설, 그리고 교황을 상대로 최현석과 박현아는 한 시간을 버텨냈다.
마지막에 최현석이 자신을 희생해 박현아를 구했다고 했으니, 그가 살아남았을 확률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이후 마기가 관측되면서 다시 전투가 벌어지긴 했다만…’
군단장급의 마기가 관측되고, 수도 그라티암에서 몇 시간가량 더 전투가 이어졌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족
측에서 개입한 것 같았다.
어쩌면 마족이 최현석을 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으나, 이내 올라벤 그리미어가 고개를 저었다.
생존은 불가능하다.
이미 다 죽어가던 최현석이 격전지에서 몇 시간을 버텨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게다가 그 마기조차도 결국 사라지지 않았던가.
‘이제 전면전은 피할 수 없겠군.’
입 안이 쓰다.
‘제국의 헌신’이라는 희대의 미친 마법을 막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어쨌든 드라센은 기습적으로 가트렌을 공격했다.
명분은 가트렌에게 있었고, 드라센은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아니, 차라리 전쟁이 벌어지면 다행인가.’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 문제는 전쟁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가트렌이 제국의 헌신을 정말 사용해버리는 것.
그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건 가트렌과 데우시스 교를 포기하는 짓이다. 그리 쉽게 사용하진 않을 거야.’
교황이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 한들, 그 마법을 쉬이 사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정말 모든 걸 버리고 혼돈과 파괴만을 좇겠다는 선언이었으니까.
가진 게 많다는 건 잃을 게 많다는 것과 같다.
교황이 모든 걸 포기하고 수라의 길로 들어서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올라벤 그리미어가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이어갈 때였다.
구구구구구…!
돌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령부에 있던 사람들은 자세를 낮추며 상황을 파악했다.
“뭐지? 마법인가!?”
“근처에서 마력이나 마기는 감지되지 않습니다!”“그럼 자연재해인가?”“이게 지진이라고…?”
모두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누군가 소리쳤다.
“사령관님! 신성력입니다! 신성력 수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신성력? 신성 마법인가!?”“아닙니다. 단순히 신성력의 농도만 짙어지고 있습니다.”
신성력의 농도가 짙어진다.
자연적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특별히 보고할 정도면 그 수치가 비정상적이라는 것.
“기존 수치보다 2배에서 여전히 빠르게 상승 중! 지금 막 3배에 도달했습니다!”
진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올라벤 그리미어의 얼굴에 초조함이 깃들었다.
“신성력 수치가 상승하는 것은 이곳 드락셀뿐인가?”
제발 그래야만 한다.
지금 이 진동.
이것은 가트렌이 사제와 성기사를 보내 공격하는, 수도 드락셀을 향한 마법이어야만 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건…
“아닙니다! 드라센 영토 너머 대륙 각지에서 수치가 상승 중입니다! 이 정도면 대륙 규모의 마법이라 봐야 합니다!”
“제길…”
올라벤 그리미어가 눈을 감았다.
결국 우려하던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제국의 헌신이 발동된 것이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맡은 임무를 지속해라. 나는 황제 폐하를 뵈어야겠다.”
올라벤 그리미어가 황제를 만나기 위해 곧장 황궁을 향하던 그때.
“끄아아아아-!”
사령부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신성 제국 가트렌의 한 마을.
갑작스러운 지진에 사람들은 당황하며 혼비백산했다.
“아이구! 이게 무슨 일이야!?”“엄마! 무서워! 흐아앙-!”“신께서 노하셨다! 어서 기도를 드려!”
유례없는 대규모 지진에 놀라기도 잠시.
갑작스레 차오르는 따스한 기운에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았다.
“이건…?”
“신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셔!”“데우시스시여….!”
인간은 누구나 소량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데우시스 교를 신실하게 믿는다면 약간의 신성력 또한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다.
사제나 성기사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무의미할 정도로 작은 양을 지니고 있을 뿐이지만.
극소량의 신성력이면 충분하다.
그들의 내면에 잠재된 신성력은 순식간에 몸과 마음을 잠식해갔다.
“몸을 맡겨라. 신께서 인도하신다.”
제국의 헌신은 대상자를 강제하지 않는다.
그저 인도할 뿐이다.
신성력에 따라 몸을 맡기고 하나가 되어라.
그러면 모든 불안과 공포, 번뇌는 사라지고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을 신자는 없었다.
“아아…!”
정신이 한껏 고양된다.
따스함이 온몸을 가득 채우며 머리가 맑아졌다.
정확히는 맑아지는 게 아닌, 텅 비게 되는 것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더는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
영원히 행복에 젖을 수 있다.
“크흐흐, 흐흐흐!”
“후후… 훗!”
“하하! 하하하하!”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이내 온 마을을 가득 채웠다.
대륙의 인간 중 절반 이상이 데우시스 교를 믿는다.
신성 제국 가트렌은 인구의 99.9%가 데우시스 교를 믿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천만, 어쩌면 억이 넘어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따스한 신성력에 몸을 맡겼다.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마을 주민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기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행복에 미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 위치한 동굴.
라헬은 우물쭈물하며 눈을 흘깃거리고 있었다.
‘씨잉… 무서워…!’
그녀의 앞에는 다 죽어가는 최현석이 누워 있었다.
상태가 위중하긴 해도, 워낙 생명력이 질겨서 어찌어찌 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지금 라헬이 눈치를 보며 떠는 이유는 최현석 때문이 아니었다.
‘잡아먹는 건 아니겠지…?’
바로 옆에서 히죽 웃고 있는 헤미스.
통칭 ‘입술 괴물’이 라헬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하핫… 안녕하세요…”
라헬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조신하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본 헤미스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진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지?”“네…! 미, 미인이세요!”“오호호호! 고맙구나.”
뜬금없는 칭찬.
영혼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입바른 말에도 헤미스는 기분이 좋은 듯 특유의 하이톤으로 웃어주었다.
“…”
다시 이어지는 정적.
헤미스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라헬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저 눈빛과 표정.
묘하게 익숙하다.
자신이 새로운 마카롱을 보면서 무슨 맛일지 상상할 때 하는 얼굴과 똑같았다.
“라, 라헬은 맛이 없어요…!”
“그래~?”
“네네네! 맨날 마카롱만 먹어서 살도 뒤룩뒤룩 찌고! 씨, 씻지도 않아서 냄새도 엄청나요!”
라헬은 자신의 옷깃을 들어 킁킁대더니 과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우에엑! 이런 걸 먹으면 배탈이 나고 말 거야!”“나는 살면서 배탈이란 걸 겪어본 적이 없는데?”“아! 저 대신 여기 이 용사를 잡수세요! 명색이 용사인지라 운동을 열심히 해서 단백질도 듬뿍 들었어요! 아주 영양 만점이에요!”
라헬이 낑낑대며 최현석의 팔을 들어 올렸다.
작고 보잘것없는 본인 대신 이 토실토실한 팔을 먹으라는 듯이.
그녀가 떨리는 눈동자로 헤미스를 바라봤다.
“이 튼실한 팔! 어떠세요!? 아주 군침이 싹 도는….”“이걸 어쩌지? 나는 근육보다 부드러운 지방이 좋아~”
헤미스가 혀를 내밀어 붉은 입술을 핥았다.
라헬은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두려움에 벌벌 떨기도 잠시.
돌연 서러움이 밀려왔는지 그녀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라헬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어쩔까~?”
“살려만 주시면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흑흑!”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구구구구구…!
지면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라헬이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으갸갸갸갸갹!”
바들바들 몸을 떨면서 뒹굴거리는 것이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헤미스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호오, 이건 무슨 현상이지?”
그녀의 눈에는 보인다.
라헬에게 달린 두 개의 고리.
하나는 최현석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차원을 넘어 다른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
충격은 그 다른 차원에서 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남자가 제대로 저질러버렸나 보네.”
하늘에서 막대한 신성력이 내려온다.
정확히는 차원을 찢고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것.
대기에 분포된 신성력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으갸갸갸갸갸갸갹!”
“내가 도와줄까?”
라헬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다만, 그 눈빛은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흐음, 잘못하면 죽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나?”
“으갸갹!?”
헤미스가 새하얀 손을 내밀었다.
라헬은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으나, 그녀에겐 헤미스의 움직임을 막을 힘이 없었다.
쩌억-!
헤미스의 손가락 끝이 갈라지더니 사슬을 씹었다.
콰득!
라헬과 연결되어 있던 두 개의 고리 중 하나가 그대로 끊어졌다.
동시에 라헬이 움직임을 멈추고 털썩 쓰러졌다.
“죽었니?”
헤미스가 라헬의 등을 콕콕 찔렀다.
라헬은 정말 죽기라도 한 건지 미동도 없었다.
“어쩔 수 없네. 어차피 죽었으니 그냥 먹어야겠다.”“살았어요! 살았다구요!”
라헬이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자신의 신체 이곳저곳을 살폈다.
“하하하! 부활 완료…?”
고통에서 해방되어 웃기도 잠시.
라헬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흔들렸다.
무(無).
그녀의 앞에 거대한 공허가 펼쳐져 있었다.
쩌어어어억-!
그 끝을 알 수 없는 구덩이가 다가온다.
“아?”
콰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