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6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61화(261/273)
머리가 지끈거린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다.
의식은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었기에 그대로 의식의 끈을 놓으려 했으나, 최현석은 그럴 수 없었다.
“으이이이…! 죽는다아! 나 죽어!”
“오호호호!”
땍땍거림과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어 와서 뇌를 흔들어댔다.
“아아암~ 냠냠!”
“하지마! 하지마! 하지말라구요!”“간이 잘 배었네? 이대로 삼키면 되겠어.”
“으갸아아아!”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
궁금증과 짜증을 참지 못한 최현석이 슬며시 눈을 떴다.
눈에 들어온 광경은 예상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저게 뭐 하는 짓이지…?’
헤미스가 새하얀 손으로 라헬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다.
라헬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듯했으나, 상대가 누군가.
의미 없는 발악일 뿐이다.
“으에에에…!”
“냠!”
헤미스가 라헬을 삼키더니.
잠시 후 자신의 손을 입을 집어넣어 다시 라헬을 꺼낸다.
바닥에 축 늘어진 라헬이 부들부들 떨면서 손을 들었다.
“사, 살려줘…”
“어머, 그게 무슨 소리니? 누가 보면 해코지하는 거로 오해하겠어.”“지금 하는 게 바로 해코지야! 이 악마야!”“이건 유희, 놀이라는 거란다. 너도 같이 즐겨놓고 왜 그러니?”
“으아아아아!”
헤미스가 다시 라헬을 집어 들었다.
라헬이 주욱 찢어진 입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최현석이 입을 열었다.
“… 뭐하십니까?”
입안이 메마른 탓인지 목소리가 쩍쩍 갈라진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헤미스가 멈추고는 그를 돌아봤다.
“일어났니?”
“흐어엉! 용사니임! 살려주세요! 입술 괴물이 저를 잡아먹으려, 아니. 잡아먹고 있어요!”
머리가 더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 어이없는 상황 때문일까.
최현석은 후자의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확신했다.
“… 상황 설명이 필요합니다. 제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최현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교황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박현아가 도망치기 위한 시간 벌기였지만.
어쨌든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교황과 맞섰고.
의식을 잃었다.
죽음이 당연한 수순이었거늘, 어째서 헤미스와 함께 낯선 동굴에 누워 있는 걸까.
설마 여기는 사후 세계라도 된다는 말인가.
“내가 구했지.”
그녀가 구했다는 말에 최현석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 상황에서 나를 구했다고…?’
그곳에 얼마나 많은 적이 있었는지, 직접 싸운 최현석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교황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리 헤미스라 한들 살아나오기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전장 한가운데서 다 죽어가던 자신을 데리고 탈출했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
‘교황이 어떻게 해서든 나를 처리하려고 했을 텐데.’
자신 또한 라헬처럼 헤미스의 입에 들어간 덕분에 살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하는 최현석이었다.
“혼자 하신 겁니까?”“내 권속을 좀 동원하긴 했는데. 음, 사실상 혼자서 구한 건가?”
그녀의 권속은 그녀에 속한 힘이니 혼자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아무튼, 너를 데리고 여기로 도망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린 거지.”
“… 감사합니다.”
최현석은 묻고 싶은 게 많았으나, 차차 알아가기로 했다.
‘죽을 것 같다…’
일단은 지친 몸을 회복하는 게 먼저다.
눈알이 뽑힐 것 같고, 머리는 깨질 것 같아서 도저히 맨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저… 죄송하지만 조금 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편하게 쉬렴. 나는 이 요정이랑 놀고 있으면 되니까.”“요, 용사님! 무슨 개소리예요! 당장 일어나라구요! 용사니임!!!”“라헬… 입 좀 닥치게 부탁드립니다… 머리가 울려서…”
“그래.”
“끼아아아! 하지마아!”
다시 라헬을 집어삼키는 헤미스를 보는 걸 마지막으로 최현석이 눈을 감았다.
***
최현석이 다시 눈을 뜬 것은 하루가 더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한결 나아진 컨디션으로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진짜 죽다 살았네.”
일어나 보니 반쯤 실신한 라헬이 바닥에 슬라임처럼 눌어붙어 있는 게 보였다.
“뭐하냐?”
“말 걸지 마세요…”
“그래.”
최현석이 무시하고 동굴을 나가려 하자, 라헬이 벌떡 일어났다.
“진짜 가시면 어떡해요!?”“네가 말 걸지 말라면서.”“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용사님은 피도 눈물도 없어요!? 양심! 죄책감! 인정! 인류애란 게 없냐구요!”“헛소리할 거면 간다.”
“으이이이…!”
라헬은 서운함과 억울함에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이 지난 며칠간 어떤 고초를 겪으면서 곁을 지켰는데!
물론, 최현석을 낫게 하는 데 딱히 도움을 준 건 아니고.
고초를 겪은 것도 최현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개고생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저 냉혈한 용사는 그 마음을 몰라주고 찬밥이나 내어주니.
가슴이 아렸다.
“헤미스 님은 어디 갔어?”“흥! 몰라요! 어디 또 죄 없는 동물이나 잡아먹으러 갔겠죠! 야만인처럼!”“죄 없는 동물을 잡아서 구워 먹는 걸 좋아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알겠다.”
아마도 배를 채우러 간 것 같았다.
최현석은 자리에 주저앉아 헤미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점검할 필요가 있었으니.
“일단 용사 퀘스트부터.”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용사 퀘스트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퀘스트는 제국의 헌신을 저지하라는 것.
퀘스트 완수 여부를 보면 작전의 성공 여부 또한 알 수 있을 터였다.
[용사 퀘스트에 실패했습니다!] [제국의 헌신이 발동됩니다!]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실패 알림이었다.
최현석은 한숨과 함께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결국 이렇게 됐나.”
제국의 헌신을 막기 위해 그 고생을 해서 싸웠건만.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 대륙은 어떻게 됐을까.
이런저런 의문이 떠올랐으나, 일단 계속 메시지를 읽었다.
이후로도 계속 알림이 있었다.
“음?”
다음 메시지를 읽던 최현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메시지의 상태가 많이 이상했다.
아마 새로운 용사 퀘스트를 준다는 것 같았다.
여기까진 그나마 읽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이 다음.
★☆#☆ 용사 퀘@#트! ★%@☆
이런! 시간@# 없,
@#을 처,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세[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최현석은 눈을 끔뻑이다가 손으로 비볐다.
“뭐지?”
전혀 내용을 알아볼 수 없다.
마치 파일이 깨져서 읽을 수 없는 컴퓨터 문서처럼 글자가 모두 깨져 있었다.
최현석은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위해 한참 동안 메시지를 들여다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꺼버렸다.
‘첫 줄은 아마 시간이 없다고 한 것 같은데. 설마 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지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누님이라면 무슨 일인지 알고 있으려나.’
이런저런 지식에 해박한 박현아라면 뭔가를 알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아! 누님은 어떻게 됐지!?”
박현아는 과연 살아갔을까.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하긴 했는데, 정말 살아났을지는 모르겠다.
‘헤미스가 올 줄 알았으면 그런 무리는 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에 와선 의미 없는 생각이다.
최현석은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니까.
딱히 후회도 없다.
다만, 그 결과로 박현아가 살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했다.
‘제국의 헌신을 막는 건 실패했고. 시스템 메시지도 이상하고. 누님이 살았나 죽었나도 모르고. 여러모로 최악이네.’
심지어 자신이 얼마나 오래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최현석이 옆에 엎어져 있는 라헬을 불렀다.
“라헬.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어?”“대충 4일 정도? 5일이었나?”“생각보다 오래 뻗었구나.”
이렇게 장시간 의식을 잃은 것도 오랜만이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육체는 어지간해서는 망가지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마지막 전투에서 최현석이 무리했다는 방증이었다.
“일어났니?”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동굴 밖에서 걸어오는 헤미스가 보였다.
“예. 덕분에 몸도 많이 회복됐습니다. 감사합니다.”“딱히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나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 거니까.”
헤미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얼굴이 예뻐서 그런가.
늘 기괴하게만 느껴지던 웃음이 오늘따라 푸근해 보인다.
“그나저나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밖에 상황을 좀 알아보고 왔지.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했거든.”“아! 저도 좀 알려주십쇼!”
최현석이 반색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정보가 간절하다.
헤미스는 이상하게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잘 모으는 재주가 있으니 어쩌면 현 상황에 관해 잘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음~ 요약하면 대륙이 멸망하기 직전이다. 라고 할 수 있겠네.”“… 요약이 너무 많이 된 것 같습니다만.”“원한다면 자세히 설명해줄게.”
헤미스는 그동안 모은 정보를 축약해서 알려주었다.
제국의 헌신으로 인해 사람들이 광신도로 변했다는 것.
몇몇 왕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너졌고, 엄청난 수의 광신도가 지금도 대륙을 휘저으며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는 것까지.
“내가 보기엔 인간은 끝났어. 이건 절대로 인간이 막을 만한 재앙이 아니야.”“… 그 정도입니까?”“당연하지. 조금만 생각하면 멍청한 오크라도 알 수 있는 거란다.”
헤미스는 인간의 멸망을 확신하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력 차가 너무 심했다.
“지금 남은 인간의 군대를 모조리 모아도 백만을 겨우 넘기려나? 그런데 상대는 최소 오천만 이상. 어쩌면 억이 넘을 수도 있지.”
단순 숫자로 비교해도 전력이 오십 배에서 백배가 차이 난다.
그런데 광신도는 일반 병사를 뛰어넘는 무력을 지녔으니 실질적인 전력차는 더 크다고 봐야 했다.
“너나 내가 나서서 야금야금 수를 줄이면 언젠가는 다 없앨 수도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이 대륙에 남은 인간은 없을 거야.”
“으음…”
최현석은 미간을 잔뜩 좁히고는 고뇌에 빠져들었다.
당연히 상황이 좋지 않으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이대로라면 인간은 끝이다.
고민하던 그가 돌연 무언가를 떠올리곤 자리를 박찼다.
“헤미스 님. 혹시 마왕군과 연락이 닿습니까?”“모템한테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긴 하지.”“그럼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무슨 부탁?”
“지금 당장 마왕 시드리엘을 만나야겠습니다.”
***
“인간의 왕이라고?”
“예! 인근 숲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붙잡아왔습니다!”
레이드런은 팔짱을 낀 채 자신 앞에 있는 인간 여성을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미약하다.
나름 단련한 것 같긴 하지만, 레이드런의 가벼운 손짓 한 방이면 터져나갈 연약한 몸뚱이였다.
여기까진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마족과 달리 인간의 왕이 되는데 무력은 필요치 않으니.
문제는 왕이라고 주장하는 이 여성이 홀로 마왕성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셋 중 하나다.’
레이드런은 이 인간 여성에 관해 세 가지 가설을 세웠다.
목숨이 여러 개이거나.
마족을 우습게 봤거나.
아니면 그냥 미쳤거나.
개인적으로 레이드런은 마지막 설에 힘을 싣고 싶었다.
지금 눈앞에서 자신이 뿜어내는 기운을 마주하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인간은 어딘가 나사가 풀려 있는 게 분명했으니.
“인간의 왕이라고는 하나 이곳은 마족의 영역. 딱히 예를 갖출 생각은 없다.”
“뜻대로 하세요.”
“왜 이곳을 찾아왔지?”“마왕을 만나고 싶어서요.”“마왕님께선 그리 한가하신 분이 아니시다.”
레이드런의 말에 인간 여성, 이엔 넬 체르시는 고개를 저었다.
“한가하지 않아도 시간을 내야 할 거예요. 이건 마족의 생존과도 연관된 이야기니.”“그럴 수 없다. 정식으로 접견을 요청하고 찾아오도록.”
“…”
“이런 무례를 용서하는 건 이번뿐이다. 다음에는 경고 없이 목을 베겠다.”
마족과 인간은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족의 영역을 인간이 제집 안방처럼 돌아다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마왕을 만나고 싶다니.
아무리 상대가 한 왕국의 국왕이라 할지라도 이런 무례를 넘길 수는 없었다.
“돌아가라.”
“잠깐이면 돼요.”
“인간. 나는 돌아가라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레이드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량을 베풀어 줬음에도 이런 태도라니.
그의 몸에서 나오는 기세가 한층 더 강해졌다.
그러자 이엔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한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육체가 본능적으로 살기에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떨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고요했다.
“시간이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예요. 시기를 놓치면 제안에도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지금 만남을 거절하면 분명 후회할 거예요.”
레이드런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기운을 뿜어냈거늘.
눈앞의 여성은 여전히 또렷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별다른 마력도 없는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왕은 왕이라는 건가.’
나름 강단은 있는 것 같다만, 여기까지다.
이런 요청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다간 끝이 없다.
그렇다면 원리와 원칙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는 충분히 경고했다.”
레이드런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것이 내리쳐지는 순간 이 인간은 한 줌 핏물로 산화하리라.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레이드런을 또렷이 바라봤다.
“용기는 가상하다만, 이 세상엔 용기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지. 나를 원망하지 마라.”
붉은 주먹이 내리쳐지기 직전.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말고. 이야기는 들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레이드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남성을 바라봤다.
직전까지 뿜어대던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반가움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최현석!”
“오랜만입니다. 레이드런 님.”
최현석이 빙긋 웃으며 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