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64)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64화(264/273)
일곱 명의 전설은 총 세 팀으로 갈라졌다.
박현아와 무소속의 전설이 한 팀.
드라센 제국과 도미스 왕국의 전설이 한 팀.
마지막으로 최현석과 킨리 퓨셀이 모여 한 팀을 이뤘다.
이들이 한 번에 움직이지 않고 굳이 팀을 나눈 데는 이유가 있었다.
드라센 제국의 국경 지역으로 흘러오는 광신도 무리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적은 대륙 곳곳에 퍼져 있소. 피난민이 안전하게 물러나기 위해서는 국경 지역에 산재한 광신도 무리를 우선 적으로 처리해야 하오.”
안전하고 빠른 후퇴를 위해서는 걸리적거리는 잔챙이를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리 일은 아니다.
말이 잔챙이지, 규모가 작은 광신도 무리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머릿수가 일만을 넘겼다.
십만이 넘는 거대 군단도 종종 보였다.
일반적인 군대를 뛰어넘는 무력을 지닌 광신도 무리가 피난민과 맞닥뜨리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은 자명했다.
“도착했습니다.”
가트렌 신성 제국의 남서부.
드라센 제국과의 접경 지역.
최현석은 드라센 제국의 마법 병단 500명과 함께 작전 구역에 도착했다.
“대략 30분 후면 적이 이 근방을 지나갈 겁니다. 먼저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마법병단장이 보고하고는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회는 단 한 번.
500명이 함께 대규모 연계 마법을 성공해야 했기에 꼼꼼히 준비해야 했다.
최현석은 바위에 걸터앉아 마법 병단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봤다.
적이 올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작은 무리가 5만이라니. 전체 규모는 얼마나 큰 거야?”
이번에 맞서야 할 적은 대략 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정도면 작은 왕국에서 군인을 총동원해야 나올 만한 숫자다.
그런 무리가 이 근방에만 수십 개는 널려 있었다.
현재 가트렌 북부에서 내려오는 큰 무리는 무려 삼천만이 넘어간다고 하니, 전체 규모가 얼마나 거대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제국의 신민만 해도 오천만 명에 달한다. 거기에 더해 각 왕국에서 더해진 숫자까지 합치면 전체 규모는 그 두 배가 넘는다고 봐야겠지.”
킨리 퓨셀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천만의 두 배면 일억.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가늠이 안 되는데…”
실제로 사람이 만 명만 모여 있어도 그 숫자에 압도된다.
십만 명 정도 되면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며 인간이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다.
그런데 일억 명은 그 십만 명의 1,000배다.
머리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얼마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할지 상상할 수 없었다.
“정신 지배에 당한 사람을 전부 죽일 생각인가.”
돌연 킨리 퓨셀이 물어왔다.
최현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글쎄. 애초에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이긴 한데…”
적은 단순한 광신도가 아니다.
어지간한 군인을 뛰어넘는 전투력을 지녔고, 좀비나 다름없는 육체를 지닌 광신도다.
그런 자들이 일억이나 있다면 아무리 최현석이라 해도 이길 수 없다.
“뭐, 설사 가능하다 해도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렇지 않아도 드라센 제국에서 정신 지배를 풀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어.”
“그건 다행이군.”
“하지만, 만약 정신 지배를 푸는 게 불가능하다면. 영원히 그 사람들이 광신도로 살아야 한다면…”
최현석이 침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없애야겠지.”
전례 없는 규모의 대량 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역사는 자신을 희대의 살인마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것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최현석은 망설이지 않고 행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래야 남은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아니면 미래가 없잖아?”“그렇군… 맞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킨리 퓨셀의 얼굴에는 짙은 우울함이 깔려 있었다.
머리로는 최현석의 말을 이해한다.
그녀 또한 각오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을, 그것도 얼마 전까지 평범하게 살아가던 민간인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지옥에서도 혀를 내두르겠군. 지옥보다 더한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그곳이 내 마지막 자리일 테지…”“먼저 가서 맡아두라고. 나도 실컷 즐긴 뒤에 갈 테니까.”
최현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법 병단장의 보고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적이 옵니다! 조우까지 앞으로 5분!”“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다.
최현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털었다.
“그럼 지옥행 티켓을 끊으러 가볼까!”
***
두두두두두-!
5만 명이 평원을 질주한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거대한 먼지구름이 생겨날 정도였다.
“시작한다!”
제국의 마법 병단이 준비해둔 마법진을 향해 마력을 모았다.
마법진이 밝게 빛나면서 게걸스럽게 마력을 먹어 치운다.
우우웅…!
계속해서 빛과 소음을 발산하는 마법진.
적과의 거리가 불과 1km도 남지 않았을 시점.
마법진이 눈부시게 점멸하면서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우리를 용서하소서…”
마법 병단장이 자그맣게 중얼거리고.
이내 붉은 하늘이 뜨거운 화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르-!
거대한 평원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광신도는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머리나 심장을 파괴해야 하는데, 광역 마법으로는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불꽃으로 완전히 태워버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흐히히히! 뜨겁다! 뜨거워!”“키킥! 신의 시련이다! 신께서 시련을 내리셨다!”“멈추지 마라! 시련을 견디는 것이다! 크하하하!”
갑작스레 떨어진 불벼락.
당황할 법도 했건만, 광신도 무리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더 크게 웃으며, 더 빠른 속도로 평원을 질주했다.
신체가 녹아내리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다리가 사라지면, 두 팔로 기어서라도 움직인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순식간에 잿더미가 돼야 했지만, 그들의 끈질긴 재생력은 지옥의 불길 속에서도 끈질기게 목숨을 붙들었다.
“더 강인한 시련을!”“시련을 견디면 신께서도 우리를 인정하실 거야!”
돌연 광신도 무리가 손을 뻗으며 신성 마법을 사용했다.
근처에 물을 만들어 내는 하급 마법이었는데, 몇만 명이 사용하니 그 규모가 남달랐다.
촤아아아아!
사방으로 쏘아진 물줄기가 불꽃과 맞선다.
광신도를 삼키던 불길이 빠르게 시들어갔다.
회복력이 불타는 것을 추월해서 육체가 빠르게 복구되기 시작했다.
“이런 괴물 같은…!”
마법 병단장이 이를 갈았다.
예상보다 적의 피해가 적다.
원래라면 절반은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4분의 1도 없애지 못했다.
“다시 한번 마법을…!”“됐습니다. 그런다고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한가하게 마법을 사용할 시간도 없으니.”
광신도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다.
여기서 다시 마법을 사용하기엔 위험하다.
“원조나 잘 부탁합니다!”
“나도 가겠다!”
최현석과 킨리 퓨셀이 달려 나갔다.
마주 오는 둘을 본 광신도 무리가 눈을 빛냈다.
“히히히! 불신자다! 신의 가르침을 설파해야 해!”“크하하하! 안식을 위하여!”
“안식을 위하여!”
최현석은 마나를 끌어올려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중년 남성을 향해 내질렀다.
노빌레이스
제4형 – 권위적인 죽음
강력한 정권 지르기.
주먹을 내뻗자 보라색 폭풍이 휘몰아친다.
콰과과과광-!
단숨에 수백의 광신도가 휩쓸리며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보통 인간보다 단단하고 질기긴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할만해.’
아무리 좀비 같은 육체라 할지라도, 최현석이 사용하는 투기를 견딜 수는 없었다.
다만, 사용되는 마나에 비해 적의 피해가 너무 적었다.
이런 식이면 마나를 모두 사용하더라도 적의 절반조차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강하다! 이 또한 신의 시련이다!”“안식을! 안식을!!!”
당장 수백 명이 찢겨나가는 광경을 보고도 전혀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 광신도 무리.
놈들에게 후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육탄전으로 가야 하나.’
최현석은 마나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순수 육탄전으로 맞서기로 했다.
콰직! 쾅! 우드득!
무언가 주먹에 닿을 때마다 부서지고 터져나간다.
전설에 다다른 육체는 순수 육신의 힘만으로 강철을 찢어발길 수 있기에 연약한 인간의 몸이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흐흐흐! 팔이 부러졌어!”“나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이제 움직인다! 크하하하!”
문제는 적 또한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
숨통을 끊어놓지 않으면 어지간한 부상은 순식간에 회복했다.
최현석은 하는 수 없이 머리를 부수거나 심장을 파괴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파앙! 팡! 촤아아!
머리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터지고, 피와 뇌수, 두개골 조각 따위가 사방으로 튄다.
최현석의 주변에 짙은 피안개가 생겨났다.
그 속에서 희번덕하게 눈을 빛낸 광신도의 모습은 한층 더 기괴스러워졌다.
“불신자가 너무 단단해!”“이빨로 물어뜯어라!”“크힛! 마법! 마법! 마법을 써!”
광신도의 압박이 점점 심해진다.
손톱과 이빨을 내세워 달려드는 맹수와도 같은 움직임.
피아를 가리지 않고 날아드는 신성 마법.
하나를 없애도 둘이 그 자리를 메우고.
둘을 없애면 다섯이 동시에 덮쳐왔다.
“크히히! 사지를 찢어버려!”“짓눌러라! 신의 분노를 깨닫게 하는 거야!”
수백 명의 광신도가 최현석을 뒤덮었다.
사람에 사람이 짓눌려 최현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던 순간.
콰아앙-!
마나가 폭사되면서 최현석을 뒤덮던 광신도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최현석은 곧바로 땅을 박차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발… 이건 뭐 언데드랑 싸울 때보다 더하네.”
스켈레톤은 스치기만 해도 부서지는 놈들이니 딱히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광신도는 언데드보다 훨씬 더 수가 많으면서 하나하나가 스켈레톤보다도 강하니 순식간에 육체의 피로도가 상승했다.
“허억… 허억…”
킨리 퓨셀도 도망쳐 온 건지 하늘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게 보였다.
“괜찮냐.”
“이 정도는 문제없다…”“체력을 아껴. 아직 반의반도 처리하지 못했어.”
마법이 날아든 것은 그때였다.
위이잉! 위잉!
지상에서 수천 개의 신성 마법이 날아들었다.
광신도 무리가 하늘을 향해 마법을 난사한 것이다.
하나하나는 가려운 수준이지만, 그게 수백, 수천 번을 맞아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모기에 몇 번 물리면 가렵고 짜증 나지만, 수천 번 물리면 생명이 위험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떨어지면 안 되겠어! 다시 들어가야…!”
소리치던 최현석이 멈칫했다.
광신도 무리가 우르르 뭉치더니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놈들은 다른 이의 어깨와 머리를 짓밟으면서 거대한 인간 탑을 만들어 순식간에 접근해 왔다.
“히히히! 잡았다!”
가장 선두에 있는 광신도.
나이가 60은 넘었을 법한 노인이 기괴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왔다.
“아, 시발…”
구아아아아-!
수백 명의 인간이 모여 만든 엄청난 질량이 최현석을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