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6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65화(265/273)
최현석이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렸다.
잠깐의 쉴 틈도 없이 몇 시간이나 싸운 걸까.
그가 서 있는 평원은 하나같이 머리가 없는 사체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커허억… 허억…”
옆에 선 킨리 퓨셀은 거의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도 전설이라고는 하나, 최현석과 비교해 체력이 약했고.
무거운 해머를 무기로 사용했기에 체력 소모가 더 심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신 차려. 바로 이동해야 해.”“아, 알고… 허억! 알고 있다!”
이제 겨우 한 무리를 처치했을 뿐이다.
오늘 안에 이만한 규모의 광신도 무리를 두 개는 더 처리해야 한다.
“후우… 그래도 마법 병단이 있어서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여기서 전부를 쏟아냈어야 했을 텐데.”
마법 병단의 지원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이 됐다.
그들은 마법으로 꾸준히 적의 수를 줄이고, 동시에 최현석을 상대 마법으로부터 보호했다.
중간중간 걸려오는 버프 마법 또한 큰 도움이 된다.
마나를 최대한 아껴야 해서 육체만으로 싸워야 하는데, 버프가 있으면 한결 더 편하게 머리를 날려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비교적 힘을 남겨둔 상태로 전투를 끝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중간에 있던 그 괴물 같은 놈들은 뭐야?”
다음 작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최현석이 물었다.
전투 도중 보였던 특이한 광신도를 떠올린 것이다.
그들은 인간임에도 기괴스러운 외형을 하고 있었는데, 그 힘이 보통 광신도보다 훨씬 강했다.
“아마 가트렌에서 연구 중이던 키메라. 실험체일 거다.”
“실험체?”
“인체 실험이지. 인간에 마수를 접목하거나, 장기를 마법 장치 따위로 바꿔서 더 강한 힘을 내게 한다거나. 나도 그런 실험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체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너희는 진짜 개 같은 짓만 골라서 했구나.”“… 할 말이 없군.”
신성 제국 가트렌과 데우시스 교.
대외적으로는 신을 모시며 평화를 추구한다는 집단이 하는 짓거리마다 인간 이하의 최악을 보여준다.
소수가 전체를 대변하진 않겠지만, 그 소수가 전체를 이끄는 지도자니 그저 개인의 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씁쓸하고 잔인한 현실이었다.
“하긴, 이런 짓거리를 해서 레벨이 오르는 이 용사라는 것도 개 같은 건 마찬가지인가.”
최현석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상태창을 확인하니 레벨이 잔뜩 올라 있었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전설적인 용사
▫레벨 : 1352
·근력 : 507
·민첩 : 508
·체력 : 506
·마나 : 632
·카리스마 : 153
·투지 : 166
·보너스 포인트 : 41
보너스 포인트 41.
즉, 이번 전투에서 41레벨이 올랐다는 뜻이다.
무려 몇만 명을 죽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으나, 그 대상이 같은 인간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래서야 용사인지 악당인지. 쯧.”
명분은 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싸우는 용사.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그 속을 뜯어보면 용사라는 직업은 기계에 가까웠다.
정의의 철퇴로 사람의 머리통을 부수는 살인 기계 말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포인트를 투자해서 강해질 때마다 더 성능 좋은 살인 기계가 된다는 찝찝한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상태창 한편을 차지한 ‘전설적인 용사’ 칭호가 무수히 많은 생명을 제물로 바쳐서 얻은 훈장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최현석 경. 곧 있으면 작전 지역입니다. 이번에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최대한 체력을 회복하는 데 전념해 주십시오.”
들려오는 마법 병단장의 목소리가 최현석을 질척대는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속았어.”
최현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 명예, 미녀를 독차지하는 행복한 이세계 모험!
사실 그딴 망상 판타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였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너무 늦은 일이었다.
***
싸움은 계속됐다.
최현석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광신도 무리와 맞서야 했다.
그렇게 닷새 동안 처리한 광신도만 해도 수십만.
비릿한 피 냄새가 더는 느껴지지 않게 됐을 때.
수도 드락셀에서 그를 호출했다.
정확히는 전선에 나가 있는 전설을 모두 불러모은 것이었다.
“여어, 다들 신수가 훤하네.”
사령부에 먼저 와있던 박현아가 들어서는 전설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하나같이 찌들어있는 모습을 보니 굳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서로가 비슷한 일을 겪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최현석은 씨익 웃으며 박현아의 어깨를 툭 쳤다.
“누님도 꼴이 아주 볼만합니다.”“시발… 며칠 내내 고기 굽는 냄새를 맡았더니 속이 다 뒤집어진다.”
박현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는 주특기가 화염 마법이다 보니 광신도를 상대할 때도 주로 광역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덕분에 그녀가 있는 전장은 항상 사람이 불타는 냄새로 가득했다.
함께 팀을 이뤘던 무소속의 전설은 이제 고기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스꺼워질 지경이라고 한다.
“왔는가. 최현석.”
“시드리엘. 너도 있었네?”“어제 막 내부 정리가 끝났다. 이제 슬슬 결전이 다가오고 있으니 나도 이곳에서 함께 의견을 교환하는 게 좋겠지.”
최현석은 시드리엘과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눴다.
그녀 또한 마족
대표로서 회의에 참석하게 된 듯했다.
잠시 후.
참석자가 모두 모이자 올라벤 그리미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현재 전황을 알리고 새로운 임무를 내리기 위해서요.”
전설들은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집중하느라 몰랐지만, 닷새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올라벤 그리미어는 중간 점검 겸, 앞으로 할 일을 알리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우선 광신도의 본대라고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무리. 놈들이 가트렌의 중앙을 통과했소.”
대륙 북쪽에 있는 아그로스 왕국을 침략했던 광신도 무리.
놈들은 기수를 돌려 남하한 지 불과 닷새 만에 절반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했다.
“이 속도라면 일주일 안에 적이 드라센 영토로 진입할 것이라는 게 제국 정보부의 판단이오.”“흐음, 현재 피난 진행 상황은?”“20% 정도. 규모가 규모인 만큼 더딜 수밖에 없소. 일주일 후에는 대략 절반 정도가 피난한 상태겠지.”“절반의 피난민이 남은 상황에서 적이 영토에 들어온다라…”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광신도 본대의 추정 숫자는 삼천만.
아무리 전설들이 모인다 한들 쉽게 저지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겠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간의 싸움으로 이들은 똑똑히 깨달았다.
광신도 무리가 얼마나 위험하고 강력한지.
그렇기에 더더욱 맞서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그들이 더 많은 광신도를 죽이는 것밖에 방도가 없었으니까.
“좋은 소식도 하나 있소. 아니, 이걸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는 게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올라벤 그리미어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더는 국경 지역에서 적과 싸울 필요가 없소.”“싸울 필요가 없다니?”“흩어져 있던 광신도 무리가 모두 물러났소. 당장은 피난민의 안전에 위협이 가해질 일이 없어졌지.”“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
말만 들어서는 전혀 나쁠 게 없는 일이다.
현재 피난민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소규모 광신도 무리.
놈들이 물러났다는 건 분명 호재다.
다만, 갑작스레 놈들이 후퇴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가트렌 안쪽에 새로운 거대 무리가 형성되고 있소. 놈들도 의미 없이 각개격파 당하는 것보다 모여서 싸우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이겠지.”
“아…”
“현재까지 모인 광신도만 대략 삼백만.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 속도라면 일주일 후에 천만은 가뿐히 넘길 것이라 예상되오.”
모두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가장 문제가 되는 본대만 해도 버겁다 못해 포기하고 싶은 수준인데, 또다시 새로운 거대 무리가 만들어진다니.
의욕이 떨어지다 못해 땅을 뚫고 처박힐 지경이다.
“후, 대충 상황은 알겠습니다. 그거 말고 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최현석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대로 좋지 않은 이야기만 하다가는 싸우기도 전에 퍼질 것 같았다.
“정신 지배를 풀 방법을 알아냈다거나, 아니면 광신도에 관한 새로운 파훼법을 찾았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정신 지배 부분은 무언가 실마리를 찾았소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오.”
“그것 말고는?”
“음… 대륙의 신성력 밀도가 다시 낮아지고 있소.”
제국의 헌신 이후.
대륙에는 기존보다 신성력 밀도가 다섯 배가량 높아졌다.
그런데 그 수치가 다시 가라앉고 있다 하니 모두의 표정에 흥미가 돋았다.
“혹시 사람들이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나? 아니면 하다못해 광신도가 약해진다거나.”“지금으로선 알 수 없소. 그 수치도 미미한 터라… 진행 속도로 봤을 때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오려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라는 게 분석 결과요.”
“반년이라…”
“이건 의미가 없다고 봐야겠네.”
반년이 지나서 적이 약해지거나, 원래대로 돌아온다 한들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적은 두 달 안에 대륙 전역을 집어삼킬 만한 기동력을 갖췄으니.
설사 반년 후에 광신도가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이 대륙에 남은 인간은 그들 뿐일 것이다.
짝-!
올라벤 그리미어가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겠지. 일단 당장 해야 할 일을 전달하겠소. 이제부터 여러분은 다시 두 팀으로 나뉘어서 움직일 것이오.”
“두 팀?”
“한 팀은 남하하는 적의 본대를 막아 발을 묶을 것이고, 나머지 한 팀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광신도 무리를 와해시키는 역할이오.”
기존에 3개의 팀으로 나뉘었던 구성을 2개의 팀으로 재편성한다.
최현석과 박현아, 킨리 퓨셀이 한 팀으로 적의 본대를 묶고.
나머지 전설들이 힘을 모아 새롭게 만들어지는 광신도 무리를 와해하기로 했다.
“전달할 사항은 여기까지요. 혹시 의문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씀하셔도 좋소.”
올라벤 그리미어의 말에 시드리엘이 손을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마족
측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군.”
모두의 시선이 시드리엘에게 모였다.
그녀는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현재 모든 마왕군이 이곳 드락셀로 집결 중이다. 거기에 추가 징집까지 해서 전체 규모는 대략 200만.”“오, 생각보다 많은데?”“모두 모이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소?”“주력을 포함해서 60%가 모이는 데 대략 이 주 정도.”“으음… 엄청난 속도인 건 맞지만 아쉽군.”
불과 이주 만에 백만 이상의 마족이 모인다.
이건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인간이었으면 한 달이 지나도 모이지 못할 숫자였으니까.
그나마 평균적인 육체 능력이 뛰어난 마족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보급을 모두 포기하고 달리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도 선발대가 따로 편성돼 있다.”
“선발대?”
“대략 15만. 하나하나가 강한 마족으로 구성돼 있으니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잠시, 그 말씀은 지금 선발대가 북쪽으로 향했단 것이오?”
올라벤 그리미어가 다급히 물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전력을 모아야 하는데, 강한 마족이 모인 선발대로 시간을 끌겠다니.
이건 좋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드리엘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가 굳이 선발대. 아니, 자살 특공대를 보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어차피 내 명령을 따르지 않아. 그래서 말했지. 인간을 잔뜩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시드리엘이 마왕이 되고 제법 시간이 흘렀으나, 그녀를 따르지 않는 세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제1군단장이었던 도리투그스를 주축으로 모였던 세력.
마족
전체의 20%가 넘어가는 막대한 세력은 도리투그스가 죽은 지금도 여전히 그녀를 따르지 않았다.
시드리엘은 이참이 그들을 완전히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원하는 대로 실컷 싸우다가 죽는 거니 그들도 불만은 없을 거다.”
시드리엘이 씨익 웃었다.
광신도의 정체도 모른 채.
마족의 유구한 전통대로 ‘전군 돌격!’을 외치며 죽어갈 멍청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