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6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66화(266/273)
마족에는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세 개의 명가가 존재한다.
게드리컨, 솔드레, 파시크.
그중 게드리컨은 전前 제1군단장 도리투그스 배출한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이 세 가문은 구성원 하나하나가 고위 마족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수 또한 엄청나다.
이들의 영향권 아래에 놓인 마족만 해도 무려 전체의 20%에 달할 정도.
그렇기에 마족
대의원 중에서도 가장 큰 발언권을 지니고 있었다.
순혈주의, 선민의식은 이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러한 사상을 뒷받침할 힘도 충분했다.
이처럼 마족의 중추와도 같은 권력을 지닌 세 가문의 수장.
그들은 새로운 마왕 시드리엘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런 꼬맹이를 언제까지 마왕으로 떠받들어야 하나?”“도리투그스가 패배했으니 어쩔 수 없지.”“그거야말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도리투그스가 그 어린 마왕에게 패배하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분명 수작질이 있었을 거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관점에서, 시드리엘은 인간인지 마족인지 의심스러운 사상을 품고 있었다.
걸핏하면 마족의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거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용렬한 자가 마왕이라니, 이건 마족의 수치다.
게다가 은근히 그들의 세력을 적대시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세 가문은 사사건건 시드리엘의 행보에 딴죽을 걸어왔다.
“드디어 마왕께서 정신을 차렸군.”
하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다르다.
시드리엘이 마왕이 된 이래,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인간과 평화라니 애초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이렇게 뒤를 급습하는 건 불만이다만, 상대가 인간이니 괜찮겠지.”
인간을 섬멸하라는 명령.
정확히는 인간의 배후로 가서 급습을 가하는 것이었다.
작전 지역, 시간, 이동 경로까지 상세하게 짜주었기에 어려운 것도 없었다.
듣자 하니 요즘 인간 사이에서 거대한 내전이 일어났다던데 그 틈을 타 마족의 세력을 넓히려는 계획인 것 같았다.
“이번에도 그 미친놈들인가?”“인간인지 뭔지도 모를 것들. 제법 기세가 대단하긴 했지.”“흥, 그래 봤자 하찮은 놈들이었다. 신경 쓸 가치도 없지.”
사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몇 차례 인간의 군대와 마주쳤다.
하나 같이 정신이 나간 인간들.
인간 치곤 강하긴 했다만 그래 봤자 인간이다.
애초에 세 가문은 정예 마족만 15만을 이끌고 왔다.
숫자가 반의반도 되지 않는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다 식은 스튜를 먹는 것보다 쉬웠다.
“슬슬 도착한 것 같은데.”“이번엔 수가 제법 많다던데, 기대되는군.”“오랜만에 포식하겠어. 흐흐!”
세 가문의 수장이 흉한 미소를 흘리던 그때.
정찰을 나갔던 마족이 돌아왔다.
“피, 피르마 님! 큰일입니다!”
정찰병은 어째서인지 식은땀을 흘리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 덜떨어진 모습에 게드리컨 가문의 수장 피르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큰일이라니. 무슨 소리냐.”“… 적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입니다!”
“하?”
피르마가 코웃음을 쳤다.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은 그게 전부인가.”“피르마 님! 얕볼 수준이 아닙니다! 평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인간이 진격하고 있….”
“닥쳐라!”
피르마가 일갈했다.
이 정찰병은 게드리컨 가문의 일원.
다른 가문의 수장 앞에서 자신의 수하가 이런 추태를 보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쓸모없는 놈! 인간의 수가 조금 많다고 벌벌 떨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피르마의 일원이냐!”
“… 죄송합니다.”
“네놈도 머리가 있다면 생각이란 것을 해라! 인간이 많다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마음껏 죽이고 잡아먹을 수 있다. 아니면, 네놈은 설마 우리 세 가문이 고작 인간 따위에게 패배하리라 생각한 것이냐!?”
정찰병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억울했지만, 여기서 더 말을 했다간 정말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으니까.
그저 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너희가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조금 뒤에 적의 군세를 보고도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고 말이다.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두두두…!
미약한 진동과 함께 들리는 소음.
세 가문의 수장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한 방향을 바라봤다.
“드디어 오는가!”
“파티가 시작되겠군!”“살육의 시간이다!”
저 멀리, 평원의 언덕 끝에서 한 무리의 인간이 나타났다.
아직은 거리가 멀어 작은 개미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게 느껴질 만큼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두두두두두…!
“으음, 확실히 수가 많긴 하군.”“저 정도라면 적어도 20만은 되겠어.”
언덕 끝에 걸쳐 있던 인간은 어느새 언덕 절반을 뒤덮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세 가문의 수장은 알지 못했다.
저 숫자가 아주 극히, 일부 중의 일부라는 사실을.
두두두두두두두두…!
진동과 소음이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거대해졌다.
인간은 언덕을 모조리 뒤덮다 못해 평원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눈이 닿는 곳 어디든 인간이다.
새카맣게 모여서 우글거리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이냐.”“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오백만은 넘어 보이는군… 그리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쯤 되자 세 가문의 수장도 입술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이미 20배 정도 수 차이가 나는데, 그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 어떻게 할 생각인가.”“어떡하긴! 그래 봤자 상대는 인간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마족의 정예! 이런 전투야말로 우리의 진가를 보여줄 무대지!”“맞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어려운 것도 없지. 마족
하나가 인간 스물을 처리하면 승리하는 것 아닌가?”
게드리컨의 수장 피르마는 속으로 화를 삭였다.
명색이 가문의 수장이라는 작자들이 저딴 멍청한 소리를 하다니.
마족
하나가 스무 명의 인간을 처리하는 것과 집단이 맞붙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집단 대 집단이 몇 배는 더 힘들다.
게다가 적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어느새 평원을 빼곡히 채운 적의 숫자는 천만은 넘어 보였다.
아무리 정예 마족이라 한들, 저 무지막지한 수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
“피르마. 왜 그러지? 설마 도망칠 생각인 건 아니겠지.”“그럴 리가… 그저 잠시 고민 중이었다. 저 시체가 모두 썩으면 어떤 역병이 돌지 궁금해서 말이야.”“사령술로 언데드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신성력이 진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피르마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여기서 도망치는 자는 약자고 겁쟁이다.
그리고 마족
사회에서 약자와 겁쟁이는 남 위에 설 자격이 없으며 도태된 채로 죽어간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늘도 같은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마족의 유구한 전통에 따른 작전을 시작하도록 하지.”
피르마가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마기를 담에 쩌렁쩌렁하게 내보냈다.
“전군! 돌겨어억!!!”
“와아아아아-!”
***
무언가 잘못됐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했을 뿐.
“흐흐흐흐! 이단자! 마족도 이단자다!”“찢어라! 씹어라! 삼켜라!”“불신자에게 안식을!”“마족에게 안식을!”
“안식을! 인식으을!!!”
첫 대면부터 무언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이들은 인간의 군대가 아니다.
인간의 군대가 으레 착용하는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고,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모든 인원이 신성력을 풀풀 풍기는 것도 께름칙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들의 괴기스러운 정신 상태는 결코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내 팔이 잘렸다! 신이시여! 시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하하!”“히힛, 히히힛! 흐히히히!”“마족도 찢을 수 있다! 찢어진다 찢어져! 찢어져! 크히히!”
자신의 목숨을 등한시한 채, 오직 상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에만 몰두한다.
팔이 잘리든, 다리가 잘리든, 내장이 흘러내리든 신경 쓰지 않는다.
마족보다 더 공격적이고 광기 어린 인간.
그런 인간이 눈앞에 존재함에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 봤자 인간이다! 죽여라!”
“와아아아!”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다.
저들은 나약한 인간이고.
자신은 포식자다.
포식자가 어찌 먹잇감을 두고 도망친단 말인가.
그렇게 자존심을 세우고.
상대를 얕잡아보고.
진실을 외면했다.
그 대가는… 한낱 먹잇감이라 생각했던 인간에게 잡혀 산 채로 찢기는 것이었다.
“커허억…!”
“하, 하지 마! 하지 마! 제발, 끄아아아아!”“히히히! 잘랐다! 이단의 팔을 잘랐어!”“흐흣! 다리도 뜯었다!”“파티다! 파티이이!!!”
뜯긴 마족의 팔다리가 피를 흩뿌리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그 아래서 입이 찢어지도록 미소를 지은 광신도들이 피의 축제를 벌였다.
마족의 머리통을 번쩍 들고 신께 바치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자도 있었다.
그렇게 마족은 하나하나 죽어갔다.
분명 그들은 일당백의 전사로 많은 광신도를 죽였다.
하지만,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광신도는 점점 더 늘어날 뿐이었다.
“이, 이대로 가다간 전멸이다! 후퇴… 후퇴를…!”
게드리컨 가문의 수장 피르마.
그가 후퇴를 명령하며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히히히! 불신자는 도망칠 수 없다!”“이단은 이곳에서 죽는다!”
“평화와 안식을!”
“안식을! 안식을! 안식을!!!”
어디를 둘러봐도 기괴하게 웃는 인간뿐이다.
그 많던 마족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함께 싸우던 다른 가문의 수장들도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설마 먼저 도망치기라도 한 걸까.
“이런 비겁한 작자들이!”
피르마가 마기를 폭사시키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후퇴는 이미 늦었다.
자신이라도 살아야 한다.
마왕군 소속은 아니었으나, 피르마 또한 거의 군단장에 준하는 무력을 갖췄다.
이깟 버러지 같은 인간들.
수가 너무 많아 처리하는 건 무리였지만, 도망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기괴한 모습을 한 광신도 몇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기 전까진.
“어디를 가는가!”
“불신자. 도망칠 수 없다. 흐흐…!”
“죽음과 안식을.”
“죽음과 안식을!!!”
놈들은 한눈에 봐도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근육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기괴하게 부풀어 있다.
이목구비를 제외한 외견만 보면 인간보다 차라리 마족에 더 가까운 모습.
아니, 마족
중에서도 저런 비대한 근육을 지닌 종족은 드물었다.
게다가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막대한 신성력.
다른 인간보다 최소 수십 배는 더 많았다.
하나하나가 피르마 자신과 비교해서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피르마는 몰랐지만, 이들은 사실 데우시스 교의 추기경들이었다.
추기경들이 인체 개조와 더불어 제국의 헌신을 거치며 완전한 괴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네깟 놈들이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멋진 대사와는 달리, 피르마는 이미 도망칠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놈들은 다르다.
일대일이라면 몰라도, 열 명을 상대로 싸웠다간 잠시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 수모는 잊지 않겠다!”퍼어엉-!
피르마가 전방을 향해 마법을 날리면서 재빨리 뛰쳐나갔다.
놈들이 마법에 휩쓸린 틈을 타 거리를 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히히히! 불신자! 불신자를 잡아라!”“불신자를 잡아라!”
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수백만에 달하는 인간이 서로를 밟고 오르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벽이 만들어지고.
“너는 도망칠 수 없다.”“키킥! 안식을 받아들여!”
어느새 쫓아온 열 명의 추기경이 뒤를 막아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 보지만, 역시나 발동되지 않는다.
그제야 피르마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아, 이렇게 허무하게….”위이이이잉-! 파아앙!
수십만 개의 신성 마법이 날아오며 일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
이내 피르마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 네 시간.
전장에 남은 마지막 마족의 죽음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목표를 완수한 광신도 무리가 다시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