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6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68화(268/273)
최현석을 비롯한 7명의 전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관이군.”
“… 눈은 아니겠죠. 해가 이렇게 쨍하니.”
신성 제국 가트렌의 수도 그라티암.
대륙에서 손꼽히는 거대 도시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정확히는 눈이 아니라 신성력이 모여 만들어진 일종의 결정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확실히 삼백 년을 살면서 한 번도 못 본 광경이긴 하군.”
따스한 날씨에 새하얀 도시를 바라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좀비처럼 도시를 거니는 광신도가 없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시시콜콜한 생각이 스쳤다.
“노닥거리는 건 여기까지 하지.”
박현아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 곧 드락셀에서 광신도 무리와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어쩌면 이미 시작했을 수도 있고.
시간을 허비하는 만큼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기에 한가하게 이야기나 나눌 시간은 없었다.
“미리 계획한 대로 그쪽 다섯이 적의 시선을 끈다.”
이들의 작전은 단순했다.
킨리 퓨셀을 포함한 각국의 전설 다섯.
그들이 먼저 그라티암으로 돌격해 적의 이목을 끈다.
그러다가 추기경이 나타나면 최대한 도망쳐서 시간을 버는 게 작전의 시작이다.
“신호를 주면 나랑 최현석이 황궁으로 숨어 들어갈 거야.”
최현석과 박현아는 멀리서 신호를 기다린다.
일정한 패턴의 마법이 하늘을 수놓으면 그때가 움직여야 할 때다.
둘은 곧바로 도시 중앙의 황궁으로 침입.
최대한 빠르게 교황을 처치해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낸다.
“아, 우리가 황궁으로 진입하고 나면 전술을 바꾸는 것도 잊지 마. 그때부턴 다른 놈들이 황궁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비에 전념해야 해.”
최종 전투가 시작하면 교황을 지키기 위해 적이 몰려들 것이다.
그러니 이쪽도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야 한다.
적이 싸움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황궁을 지키는 것에 사력을 다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의 입장이 반대로 바뀌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래 버틸 수는 없다. 마력을 미친 듯이 쏟아내야 하니… 기껏해야 30분 정도가 한계일 거야.”“걱정하지 마. 어차피 오래 끌 생각도 없어.”“알겠다. 그럼 먼저 출발하도록 하지.”
킨리 퓨셀과 전설들이 그라티암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콰아아앙-!
도시에서 폭음과 함께 먼지가 휘날렸다.
그 폭발을 시작으로 연달아 굉음이 들려온다.
쿠우웅! 콰앙!
“… 불신자…!”
“죽여, 히히히…!”
바람을 타고 광신도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최현석과 박현아는 날 선 표정으로 도시를 바라봤다.
“후우…”
“긴장되냐?”
“누님은 긴장 안 됩니까?”
“졸라 긴장되지.”
박현아가 씨익 웃었다.
어떻게 긴장이 안 되겠는가.
자신의 어깨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는데.
막중한 임무에서 오는 압박감에 당장에라도 질식할 것 같다.
‘뭐, 굳이 압박감이 아니더라도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이러한 책임감을 배제하더라도, 이 전투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
그녀는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개같으면 그건 개같은 일인 거야. 그러니까 마무리를 잘해야지.”“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들으면 아주 게거품을 물겠네요.”“게거품 물라고 하지 뭐.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주의자인데. 장담하는데 대가리가 꽃밭인 그 새끼들도 전쟁터에서 1년만 굴리면 나랑 똑같이 지껄일걸. 더할 수도 있고.”
전쟁터에서 꿈과 이상을 논하는 것만큼 정신 나간 일이 있을까.
혹시라도 그런 인간이 보인다면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머리에 나사가 뭉텅이로 풀린 인간일 게 분명했으니까.
박현아는 그런 인간을 발견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머리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광신도나 그 정신 나간 인간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을 테니.
어차피 하루에도 몇만 명의 머리를 날리는데, 거기에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콰아아앙-! 콰앙!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소음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도시를 뒤덮은 신성력 결정이 이리저리 흩날리면서 반짝였다.
“생각보다 늦네요. 슬슬 신호가 올 때가 됐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전투가 흐른 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신호가 없다.
예정대로라면 추기경의 이목을 끄는 순간 신호를 보내야 한다.
길어야 5분 안으로 신호가 오리라 생각했는데, 거의 10분이 흘렀음에도 감감무소식이다.
“으음…”
최현석과 박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 일이 날 수도 있다.
저 선발대가 의미 없이 죽으면 그땐 끝이었으니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합류하는….”
말을 하던 최현석이 멈칫했다.
파앙-! 팡! 팡!
마법이 폭발하며 형형색색으로 하늘을 물들였다.
기다리던 신호가 온 것이다.
“가자!”
최현석과 박현아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전속력으로 그라티암을 향해 나아갔다.
***
킨리 퓨셀을 필두로 한 다섯 명의 전설.
그들은 그라티암에 도착하자마자 미친 듯이 날뛰었다.
“어차피 단기 승부야! 마력을 아끼지 말고 전부 쏟아부어!”
검과 마법, 거대 해머가 휘둘러지면서 도시를 박살 낸다.
그러자 광신도 무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뭉친 그들은 거대한 해일을 만들며 다가왔다.
구구구구구구구…!
수백만 명이 모여 만들어진 인간 해일.
저기에 휩쓸리면 빈말로도 좋은 꼴은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다섯 명의 전설은 오연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걸 쏟아내는 전설은 고작 저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흐읍!”
킨리 퓨셀이 기합과 함께 해머를 돌리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부웅-
그녀의 몸을 축으로 빙글빙글 도는 해머의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
엄청난 속도의 회전으로 그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되었을 때.
마력이 하늘로 솟구쳤다.
제세격쇄기
제7형 – 강철 회오리
마법으로 만들어진 바람 따위가 아니다.
단단한 마력 그 자체가 거대한 토네이도를 형성하면서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콰아아아아아!
“히, 히힛! 구원이다! 구원!”“신이시여! 지금 갑니다!”
엄청난 수의 광신도가 토네이도에 휩쓸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회오리 속에서 저들끼리 부딪히면서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겨나간다.
“가능한 큰 기술을 사용해!”“모조리 부술 각오로 맞선다!”
다른 전설들도 각자의 투기, 마법으로 광신도 무리에 맞섰다.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고, 수천수만 명의 광신도가 낙엽처럼 휘날린다.
고작 다섯이서 내는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대한 파급력이다.
“불신자. 감히 신성한 땅을 어지럽히다니.”“불신자에게 죽음을.”
“죽음과 안식을!”
그렇게 얼마나 날뛰었을까.
마침내 기다리던 적이 등장했다.
여덟 명의 추기경이 전설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거대한 근육 덩어리 인간을 마주하며 킨리 퓨셀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 저것밖에 없지?”“아무래도 황궁을 지키는 추기경 중 일부만 빠져나온 것 같다.”“고작 저 정도로는 안 돼. 더 많은 추기경을 데려와야 한다.”“하나씩 죽이다 보면 저들도 어쩔 수 없이 전부 나올 거야!”
이곳 그라티암에는 대략 스물 정도의 추기경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고작 여덟 명의 시선을 끄는 정도로 신호를 보낼 수 없었다.
전설들은 재빨리 뭉치며 한 추기경에게 접근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놈부터 처리한다!”“마력 아낄 생각 말고 전력으로!”
추기경은 강하다.
평균 신체 스펙만 놓고 보면 오히려 전설들보다 우위에 있을 정도.
하지만, 이들이 전설이라 불리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초인적인 육체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세격쇄기
제2형 – 일점격쇄
드라센 제국 검술
제13형 – 제국의 그림자
수백 년 동안 갈고닦은 기술.
무수히 많은 전장을 전전하며 얻어낸 값진 경험.
이것들이야말로 전설을 전설로 있게 하는 핵심 요소다.
다섯 명의 전설은 마치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것처럼 완벽한 연계로 추기경에게 짓쳐들어갔다.
“흐흐! 불신자에게 죽음….”콰직-! 쾅! 서걱! 콰아앙!
목표가 된 추기경은 눈 깜짝할 새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몰골이 됐다.
털썩-
지상으로 추락한 놈은 잠시 경련하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불신자를 죽여라.”
“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남은 일곱 명의 추기경이 한데 모였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고 나름의 연계를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자네들의 동료를 더 불러야 하지 않겠나!?”“나머지 추기경은 어디 숨겼어!”
전설들은 계속해서 마력을 쏟아부으며 추기경을 몰아붙였다.
시간이 없다.
지금은 이들이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건 뒤가 없이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력이 바닥나는 순간 전설들은 버티지 못하고 하나하나 쓰러질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추기경을 더 끌어와야 했다.
“이대로는 안 돼! 직접 황궁을 타격한다!”
“뭐!?”
“안 나오면 나오게 만들어야지! 따라와!”
킨리 퓨셀이 앞장섰다.
여기서 흩어지는 건 위험했기에 하는 수 없이 다른 전설들도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버티는지 보자고.’
신성 제국 가트렌의 황궁.
거대한 건축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에게 경외심을 심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건물 전체가 새하얀 신성력 결정으로 뒤덮여 그 신비로움이 배가 된 상황.
저 안에서 신 행세를 하고 있을 교황을 생각하니 절로 열이 뻗쳤다.
킨리 퓨셀이 한쪽 입꼬리를 격하게 비틀었다.
“교황! 너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마력을 잔뜩 긁어모은다.
최현석에게는 한 수 접어주지만, 킨리 퓨셀 또한 굉장히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다.
다른 전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
그녀는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휘리리리리릭!
킨리 퓨셀이 허공에서 물레방아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황궁이랑 같이 날려버리겠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그녀에게서 마력이 폭사된다.
마치 불타는 수레바퀴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듯한 모습.
제세격쇄기
제10형 – 유성 파괴
킨리 퓨셀의 해머가 황궁에 떨어지기 직전.
황궁 안에서 열 개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신전을 지켜라!”
“불신자를 성역에 들여선 안 돼.”
열 명의 추기경이 함께 펼치는 방어막 위로 킨리 퓨셀의 해머가 내리쳐졌다.
꽈아아아앙-!
단숨에 보호막이 깨지며 추기경들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쿠웅, 쿵! 쿵!
황궁 이곳저곳에 처박힌 추기경들은 재빨리 일어서며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신체 곳곳이 부러진 듯했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몇 초 안에 회복될 만한 수준.
하지만, 킨리 퓨셀은 웃었다.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이놈들 끌고 간다!”
“이동해!”
처음에 나온 8명과 나중에 나온 10명.
총 18명의 추기경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전설들은 조심스럽게 황궁에서 거리를 벌렸다.
일단 놈들을 최대한 황궁에서 떨어뜨린 후 신호를 보내야 했으니까.
“지금!”
마침내 그라티암 외곽까지 이동한 전설들이 하늘로 마법을 날렸다.
파앙-! 팡! 팡!
마법이 폭발하며 약속된 패턴으로 하늘을 수놓는다.
살상력은 없지만, 소음이 크고 시각적으로 화려한 마법이다.
이는 축제 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현대의 폭죽과 비슷했다.
“이제 황궁을 지키는 건가?”“기다려. 놈들이 먼저 반응을 보일 거야.”
신호를 본 최현석과 박현아가 황궁으로 진입했을 것이다.
그걸 눈치챈 놈들이 다시 돌아가려 하면 막아설 것.
그게 이들의 다음 작전이었다.
“불신자가 성역으로 침입했다.”
“돌아간다.”
적당히 시간을 끌던 도중, 마침내 기다리던 반응이 왔다.
추기경들이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몸을 돌린 것이다.
“지금이다! 못 가게 막아!”
“황궁을 지켜!”
서로의 입장이 뒤바꼈다.
이제 황궁을 지키는 건 저들이 아닌 이쪽이다.
“황궁 안으로는 개미 새끼 하나 들이지 않는다!”
공격에서 방어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