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69)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69화(269/273)
최현석과 박현아는 곧장 황궁으로 진입했다.
당장 교황을 찾아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놈을 처치해야만 이 싸움이 끝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둘은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황궁 내부의 기묘한 모습이 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 하얀 얼음 같네요.”“그냥 신성력 덩어리야.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신성력이 모여야 이런 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닥, 벽면, 천장까지 모조리 새하얀 신성력 결정으로 덮여 있었다.
밖이 눈 덮인 도시 같았다면, 안쪽은 꽝꽝 언 얼음 동굴 같았다.
신성력 결정은 벽면을 감싸다 못해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꼭 들어오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
이 순백의 세계는 마치 인간이 발길을 거부하는 성역처럼 느껴졌다.
박현아가 최현석을 툭 치며 지나쳤다.
“지랄하네. 여기까지 와서 쫄았냐?”
그녀가 손을 뻗어 고드름 모양의 결정 덩어리를 잡았다.
혹시나 위험이 없는지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으으, 더럽게 단단하네.”
결정을 뜯어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최현석이 함께 붙잡자 그제야 투둑! 소리를 내며 결정이 떨어져 나왔다.
약 50cm 정도의 길이를 지닌 결정.
그 안에서 막대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이 한 덩이만 해도 추기경급 신성력이랑 맞먹어.”
지금 서 있는 복도만 봐도 이런 크기의 결정이 열 개는 넘었다.
황궁의 거대함을 생각하면 아마 수천 개, 어쩌면 그 이상의 결정 덩어리가 있으리라.
이 도시에, 그리고 황궁에 얼마나 많은 신성력이 응집된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거 보기보다 단단하네요. 이 정도면 자체적으로 건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겠어요.”“그러게. 어지간한 공격에는 흠집도 안 나겠어.”
황궁 전체가 단단한 신성력 결정으로 뒤덮여 있다.
둘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건물이 단단하다는 건 그만큼 외부의 적이 침입하기 힘들다는 뜻이었으니까.
“계속 이동하죠. 신성력이 너무 짙어서 애매하긴 한데 저쪽 방향으로 갈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최현석과 박현아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황궁 어디에 교황이 있는지 찾는 건 딱히 문제 되지 않았다.
신성력이 응집된 황궁에서도 유독 신성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황상 그곳에 교황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거의 다 왔다.”
신성력이 짙어지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이제는 기운만으로 육체가 짓눌리는 느낌이 들 정도.
신성력 결정도 점점 늘어나 건축물의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말 특이하게 생긴 천연 동굴이라 해도 믿을 정도.
오직 새하얀 결정만이 사방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까지다.”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작은 체구의 가녀린 여성과 거대한 근육 덩어리 스물이 서 있었다.
근육 덩어리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덩치를 하고 있어, 앞에 서 있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이 앞은 성역. 너희 불신자는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오랜만이네. 꼴이 아주 좋아 보여. 그렇게 신을 팔고 다니더니 결국 신벌이라도 받았나?”
박현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발을 날렸으나, 속으로는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녀와 최현석이 빠르게 눈짓을 주고받았다.
‘야. 엿 됐다.’
‘추기경은 전부 밖에서 싸우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았던 거지.’
이곳에 들어오기 전, 언뜻 확인했을 때 스물에 가까운 추기경이 킨리 퓨셀 일행과 전투 중이었다.
당연히 황궁 내부에는 추기경이 없거나, 많아도 다섯 이하일 것이라 예상했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또다시 스물의 추기경이 나타났다.
거기에 더해 가장 앞에 있는 여성.
성녀 모리얼인 게 분명했다.
‘저 여자. 조심해라.’
성녀 모리얼은 원래도 대륙에서 가장 많은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제국의 헌신 이후 어떤 괴물로 탈바꿈했을까.
일단 외형적으로 추기경처럼 몸이 비대하게 부풀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육체가 신성력 결정으로 뒤덮여 반들반들했으며 눈동자도 새하얗게 변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이라기보다는 그저 신성력 덩어리로 보였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박현아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시간은 부족하고.
적은 강하다.
이들을 내버려 두고 교황을 찾으러 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 애초에 이들을 이길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불신자. 너희는 이 자리에서….”
촉수가 날아온 것은 그때였다.
쐐애액!
복도 뒤쪽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촉수는 순식간에 최현석을 지나치고는 성녀 모리얼의 머리를 깨물었다.
콰드득-!
머리가 날아간 모리얼이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이건…?”
설마 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동시에 구두 굽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또각- 또각-
“흐응~ 미안한데 뭐라고 했지? 불신이 뭐?”
히죽 웃으며 나타난 헤미스.
그녀가 태연하게 성녀 모리얼의 등을 짓밟았다.
“다시 한번 지껄여 보렴.”
***
헤미스가 오연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어째서인지 제자리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추기경들.
머리가 사라진 채 엎어진 성녀 모리얼.
커진 눈동자에 당황이 그대로 드러나는 최현석과 박현아.
이러한 반응이 재미있었던 건지 헤미스의 입꼬리가 조금 더 짙어졌다.
“생각보다 늦었네?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니.
영문 모를 소리에 최현석은 눈을 끔뻑였다.
“그게 무슨….”
최현석은 질문을 끝마칠 수 없었다.
머리가 날아갔던 성녀 모리얼.
그녀가 벌떡 일어난 것이다.
“…”
목 위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성녀 모리얼은 머리가 없는 상태로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파스스스…
주변의 신성력 결정이 모이기 시작했다.
결정이 서서히 형상을 갖추더니 이내 사람의 얼굴 형태를 띠었다.
잘린 머리를 재생시킨 것이다.
“괴식가. 또 나타난 건가.”
성녀 모리얼은 이런 일 따위 딱히 대수로운 것도 없다는 듯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흐응~ 여전히 신기해. 봐도 봐도 원리를 모르겠단 말이지?”“너 또한 이곳을 지나갈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포기해라.”
사실 헤미스는 계속 이곳 그라티암에 있었다.
정확히는 교황을 처치하기 위해 홀로 황궁을 공격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성녀 모리얼과 추기경의 방어가 너무 굳건했다.
특히 성녀 모리얼은 어떤 상처든 순식간에 회복했기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최현석. 여기는 나와 박현아가 막을 테니 너는 안으로 가서 교황을 없애렴.”
돌연 헤미스가 웃음기를 지우고는 말했다.
“예?”
최현석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신 보고 교황을 없애라니.
물론 그녀의 말이 아니더라도 교황을 처리할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이들을 남겨두고 혼자 가는 게 맞는 것인가?
“차라리 다 같이 여기서 놈들을 처리하고 교황과 맞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아니. 함께 간다고 해도 우리는 도움이 안 돼.”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다.
헤미스와 박현아는 대륙 최강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전력이다.
그런 그녀들이 도움이 안 되면 도대체 누가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헤미스의 표정은 단호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제 생각을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오직 너만이 이길 수 있어. 이건 애초부터 그런 싸움이었던 거야.”“야. 지금은 주둥이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
박현아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기 잡것들은 우리가 막을 테니 너는 안으로 들어가.”“… 맡기고 가겠습니다.”
최현석이 지면을 박차며 쏘아지듯 튀어 나갔다.
솔직한 심정은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지금 타이밍에 헤미스가 나타났는지.
왜 그녀가 자신을 교황에게 보내려 하는지.
박현아는 헤미스의 무얼 믿고 따르라고 하는 건지.
어느 것 하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최현석은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결국, 교황만 죽이면 모든 게 해결돼.’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사실 한 가지.
그건 교황을 처치하면 이 싸움이 끝난다는 것이다.
놈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일단 만나야 한다.
그 목적에 부합한다면 다른 잡다한 의문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소용없다. 너희는 결코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추기경과 성녀 모리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대 최현석을 보낼 수 없다는 듯이.
그러나 두고 볼 헤미스가 아니었다.
촤아아아아!
헤미스의 입술이 찢어지며 무수히 많은 촉수가 튀어나왔다.
촉수 끝에는 입술이 축소된 것 같은 작은 입이 달려 있다.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수백 개의 촉수가 얽히며 닥치는 대로 살점을 물어뜯는다.
아무리 신성력으로 보호막을 둘러도 소용없다.
마치 연한 두부를 베어 물듯이 추기경과 성녀의 살점을 파먹었다.
“어딜!”
박현아 또한 투기를 사용해 다가오는 추기경을 날려 보냈다.
그녀는 마법을 주력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근접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느 전설과 비교해도 우위에 설 만큼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불신자! 거기 서…!”
콰아앙-
최현석을 막으려던 추기경들은 압도적인 마력에 왔던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최현석은 복도 반대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
잠깐의 질주 끝에, 최현석은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다.”
이 문 너머에 교황이 있다.
신성력의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시야가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숨만 들이쉬어도 몸 안에 신성력이 들어오는 기분이다.
최현석은 몸을 긴장시키면서 문을 밀었다.
쿠구구구구구…
문이 신성력 결정으로 뒤덮인 탓에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미는 것 같다.
쿠웅!
이윽고, 문이 완전히 열린다.
동시에 시야가 온통 새하얗게 물들었다.
예배당으로 추측되는 공간은 신성력 결정과 허공에 안개처럼 떠다니는 신성력 입자로 인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 한가운데에, 교황이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당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눈동자가 새하얗다.
밖에서 봤던 성녀 모리얼처럼.
그 또한 순백의 눈으로 최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지막 싸움을 위해서는 그 또한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가 마나를 운용하며 전신의 세포를 일깨웠다.
플로모트 1단계 – 개화(開花)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교황을 응시했다.
“당신은 어째서 용사이길 선택한 겁니까?”“… 글쎄. 용사의 마음가짐을 묻는 거라면 나도 몰라.”
최현석의 마나가 더욱 거칠게 날뛰기 시작한다.
플로모트 2단계 – 만개(滿開)
발갛게 달아오르던 피부가 새빨갛게 변하고, 몸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세계에 구원이 가당키나 합니까? 아니, 애초에 가능하리라 믿습니까?”“그래서? 애새끼처럼 짜증 난다고 다 엎어버리겠다. 이런 거야? 나이를 처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인마.”
최현석의 몸이 붉어지다 못해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붉게 충혈되던 눈도 어느새 새하얗게 변해서 마치 교황과 같이 순백의 눈동자가 되었다.
플로모트 3단계 – 낙화(落花)
최현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용사 짓 하는데 딱히 거창한 이유 같은 거 없어.”
본래 플로모트는 3단계로 구성된 투기.
이것을 자신의 신체에 맞게 개량하면서 그는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려는데 방해하는 놈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그래. 너 같은 놈들 말하는 거야.”
“…”
“그래서 일단 치우고 보는 거지.”
마나가 육체를 자극하는 걸 넘어 불태우기 시작했다.
검게 죽어가던 피부 위로 마나의 불길이 치솟는다.
플로모트 4단계 – 사화(死花)
자기 자신마저도 불살라버리는 투기.
지독한 고통 속에서 최현석은 기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이제 좀 죽어라.”
교황이 눈을 깜빡인 아주 찰나의 순간.
어느새 다가온 최현석이 주먹이 그의 머리통을 짓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