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7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70화(270/273)
맞았다. 라고 인지한 순간 교황은 벽에 처박혀 있었다.
꽈아앙-!
굉음과 함께 새하얀 결정이 사방으로 휘날린다.
단순한 주먹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위력.
만약 신성력 결정으로 뒤덮인 장소가 아니었다면, 건물 외벽을 뚫고 한참이나 날아갔을 것이다.
“제법이긴 합니다만, 역시 경계를 넘지는 못했군요.”
일어난 교황이 옷에 묻은 결정을 툭툭 털어냈다.
수십 미터를 날아가 처박힌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로운 모습.
실제로 그의 몸에는 작은 생채기조차 없었다.
후욱!
그 순간 안개처럼 퍼진 결정을 뚫고 최현석이 당도했다.
불타는 마나에 휩싸인 그는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보였다.
문득 교황은 서로의 꼴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군요. 이런 것을 골계미라고 했던가요?’
교황은 전신이 새하얀 천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신성함과 경외심을 느낄법한 외형.
초월적인 무언가, 신의 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현석과 아주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지옥의 사자와 신의 사도.
둘의 대비와 상황의 아이러니가 기묘하게 즐거워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가 우습지?”
“역시 현실은 엉망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경험.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오만한 편견은 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선문답은 혼자 해!”
머리 아픈 질문에 대한 최현석의 대답은 주먹이었다.
두 주먹이 연달아 교차하며 미친 듯이 몰아친다.
상대가 전설이라 할지라도 대응 못 할 압도적인 속도와 힘.
누구든 순식간에 한 줌 핏물로 만들어버릴 파괴적인 공격이었다.
타다다다다다!
교황은 그 모든 공격을 일일이 쳐냈다.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임에도.
그는 공격이 어디로 날아올지 아는 것처럼 여유롭게 방어를 이어갔다.
파앙! 쾅!
부딪히는 충격파에 하얀 결정이 흩날리며 공간을 어지럽힌다.
몰아치는 결정 속에서 교황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인간의 육체를 초월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정말 신에 가까워졌을지도 모르겠군요.”
최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주먹과 발을 내지를 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기에 잠시도 쉴 수 없다.
교황도 딱히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지, 본인의 말을 계속했다.
“나는 깨닫고 만 것입니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경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존재의 힘을.”
말을 하는 교황의 눈동자에 기이한 열망이 담겼다.
탐욕과 열망.
더 높은 세계를 본 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감정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발을 걸쳤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보십시오. 당신과 나의 압도적인 차이를.”
수비로 일관하던 교황이 돌연 공세로 전환했다.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
최현석은 팔을 들어 막아냈다.
그리고.
쿠웅…!
묵직한 충격파와 함께 최현석의 신형이 빛처럼 쏘아졌다.
콰아아아앙-!
새하얀 결정에 처박히자 황궁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최현석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은 압도적인 힘이었다.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차원에 존재해요. 비록 한 발을 걸친 것이라 해도, 그 차이는 극명합니다.”
교황의 어조는 담담했다.
나를 과신하는 것도 아니고, 너를 얕잡아 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 같았다.
“후우…”
최현석이 자신을 깔아뭉갠 결정 덩어리를 밀치며 일어났다.
그가 다시 싸울 자세를 취하자 교황이 고개를 저었다.
“미련한 짓은 그만두세요. 저항이 길어질수록 고통만 커집니다.”“미련한 짓이라고…?”“예. 미련한 짓이지요. 물론, 인정합니다. 당신은 강해요. 역사상 가장 강한 인간일지도 모를 만큼. 이전의 나였다면 결코 당신을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교황이 양옆으로 팔을 뻗었다.
휘이이잉!
신성력이 모이면서 새하얀 결정이 만들어진다.
화려한 문양으로 허공을 수놓은 결정이 햇빛에 반사되며 반짝였다.
“하지만, 당신의 강함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역. 말했듯 나는 그 한계를 벗어났습니다.”
교황이 팔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결정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콰과과과과과광!
신성력 결정이 틀어박히며 폭발이 일어난다.
찢어지는 듯한 폭음.
그 여파로 날아오는 먼지와 결정 조각.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또다시 황궁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스스스…
먼지가 걷히면서 숨을 헐떡이는 최현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허억… 허억…”
잠깐의 전투에도 그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기에.
모든 걸 쏟아서 싸웠기에 지칠 수밖에 없다.
타오르는 마나의 불길도 이전보다 확연히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설령 당신이 더 발전해서 온다고 한들 이미 나와의 격차는….”“하, 재잘재잘 존나 시끄럽네. 주둥이로 싸워?”
“…”
예상치 못한 언사에 교황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최현석은 그런 교황을 노려보며 사납게 웃었다.
“하나만 묻자.”
최현석이 발걸음을 옮겨 교황에게 다가갔다.
교황은 제자리 서서 다가오는 최현석을 바라봤다.
터벅- 터벅-
가까워지던 둘의 거리가 이내 팔만 뻗어도 닿을 만큼 좁혀졌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최현석은 교황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봤다.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왜 나를 살려두지?”“… 무슨 말입니까?”“초월이 어떻고 다른 차원이 어떻고. 결국 네가 존나 강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잖아.”
말을 하는 최현석의 입꼬리가 주욱 올라갔다.
“그러면 입으로만 조잘대지 말고 당장 나를 죽여.”
“…”
“왜? 못하겠어? 똥 마려운 개새끼처럼 눈동자가 떨리는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불안하지?”
“헛소리!”
교황의 외침과 함께 신성력이 폭발했다.
콰아앙!
최현석은 여지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새하얀 결정이 휘날리고.
드러난 최현석의 몰골은 한층 더 처참해졌다.
타오르던 마나의 불길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다.
“주제를 아세요! 당신은 이미 졌습니다. 나는 그저 패배자에 관대한 절대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뿐입니다!”
외치는 교황의 목소리는 한층 더 격앙돼 있었다.
“후우…”
최현석은 땅을 짚으며 힘겹게 걸어갔다.
기침하자 검은 피가 울컥 토해져 나온다.
그가 손으로 흐르는 피를 닦고는 교황을 올려다봤다.
“거짓말에는 별로 재능이 없네.”
“무슨 말입니까.”
“정곡을 찔리니까 당황해서 발끈하는 거잖아.”“망상이 지나치군요. 봐 드리는 것도 이젠 끝입니다.”
교황이 하늘로 힘차게 팔을 뻗었다.
후우우우웅-!
신성력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들기 시작한다.
느껴지는 에너지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미 한계에 달한 최현석은 결코 이 공격을 버틸 수 없으리라.
“이만 죽으십시오.”
신성력 덩어리가 날아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
그동안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던 외벽이 완전히 박살 났다.
폭발을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을 정도.
이는 박현아가 사용하는 비전 마법을 뛰어넘는 위력이었다.
만약 이 장소가 신성력 결정으로 보호받는 황궁이 아니었다면, 도시 전체가 소멸했을지도 몰랐다.
“쯧, 이게 멍청함의 대가입니다.”
교황은 굳이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돌아섰다.
어차피 최현석의 육체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테니까.
그 순간.
“아, 이제 알겠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교황의 눈이 부릅떠졌다.
경악이 담긴,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그가 천천히 돌아선다.
“어떻게…?”
그곳에는 최현석이 서 있었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플로모트가 해제돼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두 눈만은 여전히 빛났다.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네가 불완전하다는 걸.”“무, 무슨 말입니까?”“경지에 한 발을 걸쳤다고 했나? 이젠 알 것 같아.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최현석이 발을 내디뎠다.
부들부들 떨리고,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걸음이었으나 그는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가오지 마십시오!”
교황의 날 선 목소리와 함께 신성력 결정이 날아든다.
피슉- 파앗-
결정이 피부를 스치면서 또다시 피가 튀었다.
최현석은 비틀거리면서, 때로는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두려웠겠지. 더는 위가 없다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올라갔는데 그제야 진짜 하늘을 보게 됐으니까.”“다, 다가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새하얀 결정과 함께 온갖 마법이 날아들었다.
콰앙! 쾅! 콰아아!
주변이 삽시간에 초토화된다.
휘날리는 신성력 결정으로 인해 마치 싸라기눈이 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최현석은 여전히 서 있었다.
“사실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어. 인간을 초월한 뭔가가 있구나.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어째서인지 최현석은 쓰러지지 않았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으로 계속 움직인다.
도리어 이전보다 몸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교황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새하얀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째서! 어째서 죽지 않는 겁니까!? 당장 죽으란 말입니다!!!”“너도. 그리고 나도. 이 싸움이 시작된 순간 본능적으로 느낀 거야.”
어느 순간부터 최현석은 떨지 않았다.
그의 신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됐다.
그것도 모자라 기묘한 보라색 빛을 뿜어내는 모습은 인간이 아닌 그 너머의 무언가처럼 보였다.
최현석이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건 내가 이길 수밖에 없던 게임이었어.”
그가 자신을 억누르던 모든 제약을 벗어던졌다.
***
박현아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바닥을 짚었다.
거칠게 오르내리는 가슴.
불규칙한 호흡은 그녀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저 괴물 같은 년. 도대체 정체가 뭐야!?”
박현아의 시선 끝에는 성녀 모리얼이 있었다.
힘겨워 보이는 그녀와 달리, 모리얼은 처음 전투 시작 때와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흐응~ 내 생각이지만, 본체에서 갈라져 나온 일종의 분신체일 거야.”
헤미스가 하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내용에 박현아의 미간에 팬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분신체? 그럼 본체는 어디 있는데?”
“이 황궁.”
“황궁…?”
“그래. 이 황궁 전체가 저 계집의 본체인 거지.”
박현아가 헛웃음을 삼켰다.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란 말인가.
건축물인 황궁이 본체라니.
“그럼 이 황궁을 무너뜨려야 저년을 죽일 수 있다고?”
“아마도?”
“그건 불가능하잖아!”
정확히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 황궁은 엄청난 양의 신성력 결정으로 뒤덮여 있다.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해서, 박현아라 할지라도 완전히 부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비전 마법을 사용한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부술 수 있겠으나,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적이 아니다.
어떻게든 방해할 게 뻔하니 당장 황궁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봐야 했다.
돌연 무언가를 떠올린 박현아가 손뼉을 쳤다.
“주둥이! 너 아무거나 잘 처먹잖아! 이 황궁 통째로 삼켜버려!”“천박하기는… 그리고 이 결정은 나라 해도 무리야. 조금만 먹어도 배탈이 나서 말이야.”
그러고 보면, 처음 등장했을 때 말고 헤미스는 무언가를 삼키거나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 또한 마족이다 보니 신성력 덩어리를 삼키는 게 부담인 것 같았다.
어쩌면 이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역일지도 몰랐다.
“그럼 어떡하는데?”
“차분하게 기다리렴. 최현석이 해결해 줄 거야.”“무슨 근거로 그딴 태평한 소리를 지껄이는….”쿠우우우웅-!
순간 황궁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진동으로 인해 천장에서 하얀 결정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뭐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거지.”“무슨 싸움을 하면 황궁 전체가 떨리는 건데!?”
박현아와 헤미스가 싸우는 와중에도 황궁은 굳건히 버텼다.
이 공간이 살짝 울릴지언정, 이런 식으로 황궁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지는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위력이어야 가능한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잖니? 우리가 같이 가 봐야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박현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런 위력이라면 납득이 간다.
아무리 그녀와 헤미스가 날고 긴다고 한들.
이 황궁이 흔들릴 만한 공격이 오가는 전투에서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저 전투가 방해받지 않게끔 하는 것. 그게 최선이야.”쿠우웅! 콰아아앙!
황궁이 연달아 흔들렸다.
그와 함께 성녀 모리얼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그 반응을 본 박현아가 씨익 웃었다.
“이거 의도치 않게 도움을 받겠는데?”
모리얼의 본체가 황궁이라는 헤미스의 추측은 사실인 듯했다.
황궁이 흔들릴수록 모리얼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으니까.
“이 틈에 귀찮게 하는 근육 돼지들을 마저 정리한다!”
어차피 성녀 모리얼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다면, 옆에 있는 추기경부터 빠르게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박현아가 다시 움직이려던 그때.
콰아아아아!
강렬한 폭발과 함께 시야가 점멸했다.
박현아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조심스럽게 눈을 뜬 그녀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어… 시발?”
구르르르르…!
황궁이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