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7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71화(271/273)
아, 더는 강해질 수 없겠구나.
처음 이 생각을 했던 건 대략 전투력 100만을 넘길 때쯤이었다.
평균 능력치가 600을 넘긴 시점이기도 했다.
당시 최현석은 생각했다.
여기서 더 강해지는 건 의미 없다.
레벨업을 해서 포인트를 올려도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이미 압도적으로 강했으니까.
더불어 그가 통제할 수 있는 힘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도 이유였다.
그러면서 최현석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여기서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는 모른다.
그저 직감이었다.
그리고 최현석은 확신했다.
‘할 수 있어.’
자신이라면 그 새로운 무언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전환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벽을 부술 수 있다면 단번에 도달하리라.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최현석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정확히는 스스로 멈춰 섰다.
‘지금은 그런 추상적인 것에 매달릴 때가 아니야.’
밀려드는 광신도 무리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잠시도 쉴 수 없었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마지막 결전이다.
언제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애초에 존재 여부조차 불분명한 신기루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알고 있었다.
“도망쳤던 거지.”
최현석은 너무 지쳐 있었다.
계속되는 광신도와의 전투.
아니, 학살이라 불러야 할까.
육체적인 피로도 상당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정신적인 피로였다.
수많은 사람을 제 손으로 죽이면서 쌓이는 자괴감과 죄책감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느끼게 된 새로운 경지, 혹은 그 무언가.
만약 도달한다면 그 후엔 어떻게 될까?
최현석은 불안했다.
정말 그 새로운 경지에 올라서면.
그때는 정말 인간을 저버릴 것만 같았다.
그저 더 뛰어난 성능의 살인 기계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애써 외면해 인지하지 않으려 했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어.”
과도한 집중으로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며 머리가 새하얗게 타오른다.
마나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속도를 높이던 마나는 이내 육체와 융합한다.
최현석이 교황을 보며 씨익 웃었다.
“네가 반쪽짜리인 이유. 그건 사실 당연한 거야.”“… 무슨 말입니까.”“네 목표는 애초에 신성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거든.”
사실 황궁에서 교황을 본 순간 느꼈다.
교황이 자신이 생각했던 새로운 경지, 그 무언가에 닿았음을.
하나, 불완전하다.
그 이유는 교황의 근간이 신성력이기 때문이다.
“마나는 모든 것의 근원.”
마력, 마기, 신성력.
모두 마나의 갈래에 불과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나로 이뤄져 있다.
마나로 시작해서 마나로 끝맺는 순환.
“현실을 초월하는 건… 근원인 마나와 하나가 된다는 거야.”
오직 최현석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일하게 마나를 다루며, 마나 친화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신체를 갖췄다.
같은 인간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현상.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의 육체는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남은 것은 스스로의 의지였을 뿐.
어쩌면 헤미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휘이이이이잉-!
최현석의 주변으로 마나가 소용돌이친다.
움직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나가 신체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일순간 주변 공간이 일그러진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 어떻게…”
교황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당황. 혼란. 질투. 두려움.
온갖 생각과 감정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인정할 수 없다… 나는…!”
그 모든 감정이 하나로 뭉쳐져서 만들어지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단 말이다!!!”
지독한 분노였다.
***
신성력이 흩날린다.
그라티암 전역에 내려앉은 새하얀 결정이 휘몰아치며 폭풍을 일으켰다.
“신이시여!”
“신께서 노하셨다!”
“신벌을 받아라! 크하하하!”
지상의 광신도는 두 팔을 벌리며 몰아치는 폭풍을 맞이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무너질 줄 아느냐!”
교황은 지독한 분노에 몸을 맡겼다.
자신이 백 년 넘게 해온 노력.
그 이야기의 결말이 이따위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세계에 온 지 고작 몇 년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가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 애송이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그는 분노했다.
“네놈이 무엇이 되었건 상관없다! 이 자리에서 널 죽이고 나는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후우우우웅-!
소용돌이치던 신성력 결정이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여태껏 봐왔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크기.
지름만 해도 수백 미터는 될 것 같았다.
거대한 구체 형태를 띤 결정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공기를 떨게 했다.
“시발! 이게 무슨 일이야!?”
지상에서 비켜보던 박현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도 그럴 게, 저 구체에 담긴 에너지는 그라티암 전역을 완전히 소멸시키고도 남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옛말처럼.
자칫하면 옆에 서 있다가 봉변을 당할지도 몰랐다.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물러나렴. 우리 역할은 끝났으니까.”
박현아와 헤미스.
그리고 킨리 퓨셀을 비롯한 전설들이 모두 전장에서 물러났다.
더는 이 전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죽어라!!!!!”
이윽고, 거대한 구체가 움직인다.
최현석은 그 자리에 서서 다가오는 신성력 덩어리를 바라봤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면 저것이 도시로 떨어지게 된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애초에 피할 필요도 없지만.”
최현석이 가볍게 허공을 박찼다.
콰직!
디딘 공간이 일그러지고.
빛처럼 쏘아진 그는 어느새 거대한 구체에 앞에 서 있었다.
최현석은 망설임 없이 구체를 향해 다리를 걷어 올렸다.
파아아앙-!
지상으로 떨어지던 구체가 방향을 180도 틀어 하늘로 날아간다.
엄청난 속도로 고도를 높이던 구체는 이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세상이 하얗게 물든다.
너무나 강한 빛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엄청난 에너지가 흩어지면서 고온의 열풍이 들이닥쳤다.
최현석은 손을 들어 마나를 넓게 펼쳐 폭발의 여파를 막아냈다.
“생각보다 위험하네.”
예상보다 강한 위력에 최현석은 내심 놀랐다.
만약 구체를 막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반경 수 킬로미터 내의 생물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빨리 죽어줘야겠다.”
최현석이 다시 허공을 박찼다.
교황은 거의 본능에 가깝게 자신의 팔을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쿠웅!
묵직한 소음과 함께 교황의 신형이 뒤로 쏘아진다.
최현석은 그를 따라 이동하며 계속해서 주먹과 발을 날렸다.
투웅! 쿵! 콰직!
충격파가 터질 때마다 교황이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갔다.
도저히 대응할 수 없다.
최현석의 속도는 차원을 달리했다.
어디서 공격을 오는지 인지하는 것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
그렇게 연신 얻어맞아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교황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 나는! 내가 해온 것들은!!!”“질기네. 아까 저항이 길어질수록 고통만 커진다 했던가? 그대로 돌려줄게. 그만 포기해.”
둘의 전력 차는 압도적이다.
이전에 교황이 최현석을 압도했듯.
최현석은 교황을 그 이상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고작 몇 분 만에 몰골이 된 교황이 돌연 신성력을 방출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사방으로 신성력이 뿜어지며 빛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주지! 아니, 이 땅의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겠어!”
또다시 교황의 주변으로 결정이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몰아치던 결정이 교황의 신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맹렬하게 회전하며 부피를 키우는 신성력 덩어리.
그 안에서 교황은 스스로가 거대한 결정의 구심점이 되었다.
“자폭 작전인가?”
최현석의 표정에 처음으로 당황이 떠올랐다.
결정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커진 것이다.
결정의 지름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수 킬로미터를 넘겼다.
“어…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조금 전, 지름 수백 미터짜리만 해도 이 도시를 소멸시킬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 킬로미터의 초거대 결정.
그 안에 담긴 에너지는 단순히 많다. -라고 표현할 만한 게 아니었다.
폭발 지점의 반경 수십 킬로미터는 완전히 소멸할 것이고, 대륙의 절반이 죽음의 땅으로 변할지도 몰랐다.
[주… 죽어… 죽어라…]교황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됐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결정 덩어리.
구구구구구구구구…!
최현석은 고개를 들어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새하얀 운석이 떨어지면 이런 느낌일까.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현석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솟아났다.
주변의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그의 주먹으로 몰려들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맹렬하게 회전하는 마나.
최현석은 손을 뻗어 코앞까지 다가온 결정의 끝을 때렸다.
쩌적, 쩌저적-!
거대한 결정에 균열이 일어난다.
빠르게 번지던 균열은 순식간에 결정 전체를 뒤덮었다.
쩌저저저저적!
무수히 많은 실금이 생기면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결정 덩어리.
그것이 이내 쪼개졌다.
채애앵!
결정이 맑은 소리와 함께 산산이 조각난다.
쪼개지고 쪼개져서 수억 개의 아주 작은 결정으로 나뉘었다.
투화아아!
한발 늦게 거센 바람이 일고.
쪼개진 결정이 대륙 전역에 흩뿌려졌다.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결정 조각을 바라보며 최현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 눈 오겠네.”
***
드라센 제국의 수도 드락셀.
그 앞의 대평원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뒤엉겨 피와 살점이 흩뿌려지고.
비명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막아! 여기가 뚫리면 끝이다!”“히히힛! 신께서 너희를 지켜보신다!”“평화와 안식! 그것은 죽음!”
얼굴에 웃음이 만연한 광신도.
사력을 다해 그들과 맞서는 사람들과 마족.
처음에는 인간과 마족의 연합에 어색해하거나 불쾌감을 가지는 이들도 더러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 따위 사라진 지 오래다.
광신도 무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재해였다.
그들과 맞서는 데 인간이 어떻고, 마족이 어떻고를 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존이라는 공통 과제에 직면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 지원 마법은 언제 오는가!?”“마력이 바닥났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얼마나 싸웠다고 벌써 마력이 바닥나!?”
혼란스러운 전장.
그곳을 내려다보며 제국의 공작 올라벤 그리미어가 입술을 깨물었다.
“크하하하! 안식을 위해!”“신께서 인도하신다!”
어느새 광신도 무리가 전열 후방인 이곳까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 났다.
아니, 이건 처음부터 승패가 정해져 있던 싸움이었다.
재해는 단순히 기개와 의지만 가지고 맞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폐하. 지금이라도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올라벤 그리미어가 다급히 황제를 찾았다.
드라센의 황제 람베르트.
그는 고개를 저었다.
“도망치면. 그다음엔 뭐가 남는가.”“지금 그런 말을 하실 때가….”“공작. 고개를 들어 보게나.”
황제가 고요한 눈으로 전장을 응시했다.
“모두가 목숨을 걸었네. 공작은 이걸 보고도 돌아설 수 있는가?”“폐하께서 살아남으셔야 남은 이들을 규합할 수 있습니다!”“단지 구차하게 연명할 뿐이라면 나는 죽음을 택하겠네.”“구차하게 연명해서라도 살아남으십시오! 그래야 미래가 있습니다!”
황제 람베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 또한 어릴 적부터 검을 수행한 몸.
불혹을 넘겨 지천명에 닿은 나이지만, 여전히 한 명의 기사 역할을 해내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흐흐! 불신자는 죽음으로….”
서걱-
달려드는 광신도의 목을 베어낸 람베르트가 입꼬리를 올렸다.
“자네는 물러나서 성벽으로 가게. 나보다는 자네가 더 필요할 것이야.”
“폐하!”
“제국의 황제는 당당히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렇게 선전하면 조금이라도 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지 않겠나.”“안 됩니다! 폐하!”
올라벤 그리미어가 말릴 새도 없이.
황제는 자신의 황실 근위 기사단과 함께 전장으로 돌진했다.
“가자! 무지한 광신도에게 제국의 기개가 무엇인지 알려줘라!”
““예!””
황제 람베르트는 힘껏 발을 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희번덕하게 뜬 광신도 하나가 앞을 막아선다.
“안식을!!!”
“좋다! 너에게 안식을 허하노라!”
날카로운 검이 광신도의 목을 지나치기 직전.
풀썩-
돌연 광신도가 쓰러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전장의 모든 광신도가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는 것처럼 차례대로 힘을 잃고 쓰러진다.
“…”
일순간 전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숨을 헐떡이는 소리와 부상자의 신음뿐.
모두가 흔들리는 눈으로 각자의 앞에 쓰러진 광신도를 바라봤다.
황제의 손에 새하얗고 따스한 결정이 닿은 것은 그때였다.
“이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황제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 눈, 인가?”
뜨거운 뙤약볕 아래.
새하얀 눈이 햇빛에 반짝이며 떨어지고 있었다.